한 십여년 전부터 한 가지 일만 해본적이 없다. 정기적으로 돈(급여)을 받고 하는 일은 늘 하나였지만, 그 외에도 늘 한두가지 일을 돈 안 받고(무급으로) 더 했고, 가끔은 부정기적으로 돈 되는 일을 조금 더 하기도 했다. 거기에 가사노동과 육아도 당연히 언제나 일정부분 해왔다. 거의 3job, 4job에 가까운 삶을 계속 살았지만, 항상 최저임금이 안 되거나, 딱 그만큼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작년 여름부터 조합 일 외에 전국단위 연대 조직 사무국 역할을 맡아왔다. 일을 막 많이 했던 건 아니지만, 별로 티나지 않는데, 시간을 잡아먹는 자잘한 일들이 계속 내 몫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서울지역 연대조직도 실무자가 없는 상태에서 무슨 일이 생길때마다 나에게 연락이 왔고, 그때마다 일을 넘길 사람이 없어 내가 해결해야 했다. 급기야 올해 1월부터는 공식적으로 서울 연대조직 사무국도 맡았다. 1월부터 어제까지 우리 조합 일과 서울 조직, 전국조직 실무가 전부 내 몫이었다. 공식적인 3job이었지만, 돈은 우리 조합에서만 받았다. 나머지 2개 조직 일을 하느라 잦은 야근에 총회 준비 때문에 밤을 새는 일도 잦았지만, 1원 한 푼 받을수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 바빴다. 낮엔 여기저기 회의를 다니느라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사무실로 돌아와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처리했고,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맡은 주 업무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애들을 맡지 않은 날엔 늘 야근이었다.
어제 공식적으로 전국조직 사무국을 다른 조합 활동가에게 넘겼다. 이제 책임을 맡은 곳이 3개 조직에서 2개 조직으로 줄었다. 상황이 유동적이긴 하지만, 어쩌면 서울조직 사무국도 한 두 달안에 다른 사람에게 넘길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래도 옆에서 도움을 주는 역할은 계속 남겠지만.
서류 일체를 전달하고 나오니 절로 한 숨이 나왔다. 어쨌거나 어제는 한 결 부담감을 덜은 마음으로, 좀 가벼워진 어깨로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랑 술을 마셨다. 그간의 스트레스를 술과 수다로 풀었다.
한 가지 일을 덜어낸 걸 어떻게 알고 녹색당 동료가 연락해왔다. 지방선구 기초의회 후보 선본에 결합해서 도움을 달라는 거였다. 4년전 지방선거를 직접 뛰어본 사람이 꼭 필요할테니 선본 결합은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승낙하고 나니 또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당장 오늘부터 회의에 결합해달라 요청했는데, 오늘 저녁과 주말엔 일정이 꽉 찼다. 저녁엔 이미 회의가 있고, 내일은 오전에 강의가 있고, 오후엔 녹색당 전국대의원 대회가 있다. 전면 추첨식 대의원 첫 해에 대의원이 된 후로 몇 년만에 다시 뽑힌건지 모르겠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는 아이들과 보내야 한다. 많이 바빠진 후로 내겐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내 말을 들은 그는 ˝그럼 여유가 생긴게 아니네.˝ 라고 했다. 나는 답했다. ˝그게 여유가 생긴거예요. 적어도 야근이나 밤샘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제 비로소 다른 일에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기거예요˝
신해철 책이 나왔다. 책 읽을 여유도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