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력을 길러라
조합원들에게 소책자와 출자증서 등을 담은 우편물을 발송했다. 주소 확인이 되지않은 분들을 제외하고 대략 230여명에게 보낼 우편물을 준비했다. 새 도로명주소와 바뀐 우편번호 때문에 일이 훨씬 많아졌다. 주소를 싹 정리해서 라벨용지를 출력하고, 일일이 봉투에 붙이고, 사람 이름을 찾아서 출자증서를 비롯한 서류들과 소책자를 담았다. 그리고 풀칠 시작. 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이런 대량 발송에 익숙하다. 십여개의 봉투를 잘 배열해 한번에 풀칠하는 기술은 신입활동가였던 15년 전에 익혔다. 그간 몇몇 분들이 내가 풀칠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기도 했다.
예전에 우체국에서 내가 속한 자치구와 그 외 지역으로 우편물을 분류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을 기억해서 각각 나눠 담고 갯수를 세었다. 근처에서 자주 만나기에 굳이 우편으로 보낼 필요가 없는 분들 우편물은 따로 빼놓고, 총 200여개의 우편물을 박스에 담고 출발했다. 서둘렀는데도 우체국 마감 시간이 15분 밖에 남지 않았다. 박스 하나와 큰 종이봉투 하나를 한번에 들어올리는데,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작년까지 여러차례 혼자 끙끙대며 우편물을 들고 가느라 힘들고, 시간도 오래걸렸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는 택시를 타리라 마음 먹었다. 무게도 무겁고, 급하기도 했다.
건물을 나서서 몇 걸음만 걸으면 지하철 역 앞에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뒤뚱뒤뚱 뛰듯이 걸어갔는데, 한 대 남아있던 택시를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이 눈 앞에서 타버렸다. 허탈한 마음에 박스를 잠시 내려놓았는데, 박스가 찢어지면서 우편물이 쏟아지려 했다. 황급히 한쪽 발로 찢어진 부위를 받치고, 빈 택시를 찾았는데 없다. 평소 몇 대씩이나 기다리던 택시가 왜 하필 이 급한 시간에는 없는 거냐! 시계를 보고 도로를 살피기를 수십번 반복하고 있는데, 마침 저쪽에서 빈 택시 한 대가 좌회전해서 다가왔다. 우편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해서 박스를 싣고 택시를 탔다.
우체국은 큰 사거리 하나만 지나면 있다. 평소 걸음으로는 7~8분이면 가고, 작년에 이번보다 더 무거운 우편물을 들고 갔을 때는 중간에 몇 차례 쉬어가느라 거의 30분이 걸렸다. 택시를 탄 시간이 대략 47분. 중간에 신호 대기했다가 택시에서 내린 시간이 52분이었다. 이제 우체국이 그리 멀지 않은데, 찢어진 박스와 역시 찢어지려는 큰 종이가방을 겹쳐 들고 걷는데, 자꾸만 짐이 쏟아지려 한다. 급한 마음에 뛰려는데, 짐이 있으니 마음처럼 뛰어지지 않는다. 간신히 56분에 우체국 도착.
예전에는 스티커를 받아서 일일이 붙였는데, 요즘은 도장을 찍으라고 하더라. 직원분께 말씀드려 도장을 받아서 찍기 시작했다. 이것도 몇 년째 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빠른 속도로 도장을 찍어나갔다. 6시 1분에 우편물을 접수하고 결제를 했다. 진짜 짧은 시간 안에 급하게 일을 마쳤다. 풀칠의 달인이자 도장찍기의 달인이 안 되었다면 시간 안에 보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미 정문 셔터를 내려서 뒷문으로 나오는데, 목덜미와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아까 택시에서 내려 우체국까지 올 때 짐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왜 자꾸 흘러내리려 했을까를 생각했다. 무겁긴 했지만, 그 정도 거리를 옮기지 못할 무게는 아닌데 라고 생각하는데, 가만 되짚어 보니 악력이 모자라서 짐을 붙들고 있는 손가락이 자꾸 풀어지려 했던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도 봄과 가을에 두 번 우편물 보낼 때마다, 팔은 괜찮은데, 어느 순간부터 손가락에 힘이 풀려 자꾸만 박스를 놓칠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박스를 길바닥에 내려놓고 몇 차례 쉬어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아마 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팔힘이 좋아봐야 짐을 들고 멀리 이동하는데는 별로 소용이 없구나. 악력을 길러야 짐을 들고 이동할 때 쓸모가 있구나. 무거운 짐을 순간적으로 들어올리거나, 들고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젊은 시절이긴 하지만 쌀 배달도 해봤고, 공사장에서 막노동 할 때 등짐을 지거나, 시멘트 포대 등 무거운 걸 옮기는 일도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손 힘이 부족해서 짐을 놓칠뻔한 기억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악력이 많이 약해졌거나, 그때보다 훨씬 장거리 이동이라 그 시간을 버티기에 악력이 부족하거나, 뭐 그런 것이겠지. 암튼 이제부터 악력을 좀 길러야겠다.
몸매 자랑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먹는 양과 횟수를 줄였다. 식사는 거의 하루 1끼, 저녁만 먹거나, 저녁에도 밥이 아닌 술과 안주만 먹어서 아예 밥을 안 먹는 날도 많았다. 이상하게 사무실에 앉아있어도 배가 안 고프거나, 밥 먹을 여유도 없이 바쁘거나 했고, 의식적으로 식사 시간을 늦춰서 늦은 점심 겸 저녁이 되도록 먹기도 했다. 즉 일부러 굶은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덜 먹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연말에 특정 기간을 제외하면 평소 술 약속을 별로 잡지 않아서, 술과 안주로 배를 채우는 횟수도 확 줄였다. 물론 밖에서 먹는 술자리는 확 줄였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혹은 혼자 마시기는 했다. 그래도 거의 매일 마셨던 예전에 비해서는 술 마시는 횟수가 줄었다.
최근 전신거울을 들여다보면 확실히 몸매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꾸준히 운동을 해도 사라지지 않던, 아랫배와 옆구리에 살짝 잡히던 군살이 이젠 거의 사라졌다. 전에는 배에 힘을 줘야 간신히 윤곽이 드러나던 복근이 이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윤곽이 보인다. 그런데 그 겨울동안 사실 운동을 그리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예전에 한창 운동했던 때에 비하면 거의 안했다고 말해도 될 정도다. 날이 춥고 몸 움직이기 귀찮고, 거의 바깥 온도와 비슷한 (그래서 새벽에 타일위에 얼음이 얼어있기도 한) 화장실에서 샤워까지 하기가 싫어서 일부러 땀을 많이 안 흘리기도 했다. 물론 화장실이 그렇게 춥기 때문에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을 좀 움직여서 체온을 올려놓아야한다. 그래서 아침과 밤에 잠깐씩 딱 몸이 더워지기 시작할 정도로만 운동을 했다. 본격적인 온동까지는 가지 않고, 준비운동 정도만 했다는 의미다.
암튼 이로써 식사량을 줄이고, 술을 줄여야 복근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분명 20대의 나는 식사량을 줄이지 않고, 술도 줄이지 않고 복근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5년쯤 전에 다시 결혼 전 몸매로 돌아가리라 마음 먹고 운동을 시작하면서 식이요법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예전에 많이 먹으면서도 복근을 유지했던 기억 때문에 식사량 조절 같은 건, 필요없다고, 먹고 싶은대로 먹고, 술도 매일 같이 마셔도 복근 만들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간 꾸준히 운동을 해서 뱃살의 상당부분을 줄이고 허리 사이즈를 줄이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아랫배와 옆구리에 살짝씩 잡히는 군살은 아무리 해도 없어지지 않았었는데, 며칠 전에야 비로소 군살 없이 가벼운 몸이 되었다. 운동은 별로 하지 않고, 순전히 술과 밥을 덜 먹어서 만든 몸매이니, 내 생각과는 완전 반대로 만들어진 결과다.
이제 봄부터 초여름까지 꾸준히 운동을 하면 좀 더 선명한 복근을 만들 수 있겠지. 비로소 결혼 전 몸매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어느정도는 실현한 것 같다. 날이 좀 풀리면 다시 운동을 해야겠다.
인터뷰
며칠 전 방송대학티비 촬영팀과 인터뷰를 했다. 어느 선배에게 소개 받았다며, 내 본명이 아닌 감은빛 국장님을 찾는 전화를 받은 건 지난 주였다. 그 선배가 당시 내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고, 평소 페이스북으로 자주 접하던 내 덧이름을 알려줬구나 싶었다. 암튼 인터뷰를 요청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날짜를 정했다. 사전에 질문지를 받아보니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간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공중파를 비롯해서 몇몇 채널에서 촬영을 해갔기 때문에 방송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그리 긴장되지는 않았다. 굉장히 가볍게 생각하고 피디님과 촬영팀을 만났는데, 이 팀은 그간 만나왔던 다른 촬영팀과 달리 준비를 많이 하더라. 나는 발전소 주변을 비롯해서 그냥 실내 공간에서 촬영할 거라 여기고 따로 미팅 장소를 예약해놓지도 않았는데, 담당 피디는 계속 닫힌 공간을 찾더라. 짧게 쓰면 되겠지란 생각에 예약도 하지 않은 빈 회의실 하나를 찾아 들어갔는데, 헉! 조명 세팅에만 무려 30분 이상을 쓰더라.
난 속으로 혹시 누군가 이 회의실을 쓰려고 들어오면 당장 비켜줘야 하는데, 빨리 촬영하고 끝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 분들은 계속 그림자의 위치와 농도 등을 따지며, 보조 조명을 하나 더 설치할까 말까, 각도를 조금 옮겨라 말아라, 조명 색을 노란 계통으로 갈지, 분홍이나 파랑 계통으로 갈지 등을 논의하더라. 헐! 방송 인터뷰라는게 이렇게 조명을 공들여 설치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조명 기사님은 혼자 무거운 조명을 몇 개나 가져오셨는지 보조조명까지 해서 여러개의 조명이 나와 주변을 눈부시게 비췄다.
예전에 짧은 인터뷰 때에는 야외나 복도에서 했기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서서 몇 마디 말을 하고 끝냈는데, 이번에는 담당 피디 맞은 편에 앉아서 조명을 받으며 했다. 내가 어떤 설명을 하면서 손동작을 하고 몸을 움직이자, 카메라 기사님이 자세를 바로 잡고, 가능한 한 몸을 틀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그 말을 의식하고 나니 말을 하다가 자꾸 흐름이 끊어지고,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강의를 하거나 발표를 할 때 내가 얼마나 손과 몸을 많이 움직이는지 깨달았다. 손과 몸의 움직임을 봉쇄당하고 나니 말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았다. 담당 피디님과 함께 리허설도 짧게 했는데, 오히려 본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 말을 더 못한 것 같다.
요즘 부쩍 흰머리 지적도 많이 받고, 피곤해보인다거나 늙어보인단다는 소리도 많이 듣는데, 과연 방송에 내 몰골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아무리 조명을 많이 비추면 뭐하나. 얼굴이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게다가 내 목소리도 불만이다. 자주 회의록을 만들기 위해 녹취 파일을 들으며 작업하는데, 내 목소리는 정말 마음이 들지 않는다. 정말 남들이 듣는 내 목소리는 저렇단 말인가? 예전에 내가 사회를 봤던 행사 동영상 파일을 누군가 페이스북에 올렸길래, 아이들과 함께 봤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이상해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아빠 목소리가 평소 저렇게 들리는 거 맞냐고 했더니 큰 아이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라. 아, 저 싫은 목소리가 내 목소리란 말이지? 난 트리거포인트가 목소리라고 몇 번 글에도 쓰고, 남들에게 말하고 다니는데, 정작 내 목소리는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슬프다.
사고 픈 책은 많고, 읽은 시간은 적고
작년 연말부터 장바구니에 10여권의 책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계속 주문을 미루고 있다. 당장 사도 읽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다가도 잠시 고민하다가 창을 닫기를 반복한다. 초겨울에 산 책들도 대부분 아직 손도 못 댔다. 연말에 잠시 짬이나서 관심있는 소설책 서너권을 몰아서 읽기는 했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책 읽을 여유는 거의 없다. 집에서는 씻고 뻗거나, 뭔가를 틀어놓고 술을 마시고 뻗거나 둘 중 하나다. 사무실과 집의 이동 거리는 책을 읽기는 너무 짧다. 사무실에서는?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다. 주말에도 아이들과 지내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집회를 나가거나 해야 한다.
어쨌거나 읽은 여유는 없는데, 사고 싶은 책은 왜이리 많은지.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보는 순간 바로 사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미 담겨있는 책들을 다시 살피며 한 두 권을 빼고 어쩌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결제를 하지 않고 또 한번 미룬다. 일단 오늘 구매해도 열흘 가까이는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 열흘 후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때 사서 읽어야지.
3월 초까지는 바빠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고 3월 초가 지나면 좀 나아지느냐?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그때는 또 다른 이유로 계속 바쁘겠지. 혼자라면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좀 여유를 찾고 싶은데, 아이들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언제쯤 좀 여유를 가지려나?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하려나? 그런 생각이 들면 우울하다! 오늘은 야근 마치고 술 한 잔하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