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주 전쯤에 아이들과 식당에서 보쌈을 시켜 먹고 있었다. 큰 아이가 그날 따라 꼭 보쌈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막걸리를 시켜 마셨고, 아이들은 밥과 고기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는데, 한참 후에 남자 하나가 들어와서 주문도 하지 않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아마 일행을 기다리는 중이었겠지. 그러고도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내가 막걸리 한 병을 거의 다 비워갈 때 쯤에 그 남자의 친구들이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 30대 중반으로 보였다. 세 사람이 큰 소리로 떠들어서 본의 아니게 그 이야기들을 주워듣게 되었는데, 제일 마지막에 온 남자만 기혼이고, 나머지는 다 미혼인 듯 했다. 근데 그 유일한 기혼인 남자가 최근 아내와 부부싸움을 좀 심각하게 한 모양이다. 자세한 내막까지 듣진 못했지만, 그 싸움 때문에 아내가 이혼을 들먹였고, 급기야 이혼 서류까지 준비한 모양. 그 남자는 계속 어떻게 자기에게 그럴 수 있냐고 목청을 높였다. 아직 어린 아이가 있는 모양인데,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는 거라고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막걸리를 마시다가 목에 탁 걸리는 느낌이었다. 헛기침을 하며 아이들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은 다행이 지들끼리 스티커를 갖고 놀고 있었다. 아직 아이들에게 이혼 얘기는 한 적이 없다. 다만 사정이 있어서 엄마와 아빠가 따로 살게 된 것이라고만 했다. 정말 다행히도 아직 아이들이 이 일로 상처를 받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 오래 되었다. 큰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작은 아이는 거의 태어난지 그리 오래지 않아 바로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한 단 한번도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부는,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않고, 만나도 인사는 커녕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않는 모습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지도 모른다. 가끔 의견 다툼이 생기면 큰 소리로 싸운 적은 있지만, 말 한 마디 따뜻하게 주고받는 모습 조차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늘 엄마나 아빠 한 사람과 시간을 보냈지, 둘 다 함께 뭔가를 한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상황이 아이들에겐 그리 이상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집에서 나온 지 네 달째. 일이 바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지내고 있어서, 이별 후의 애들엄마와 내 관계에 대해 제대로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뭔가 불편한 감정들은 있었지만, 그 감정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날 막걸리를 마시다가 뭔가가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던 날, 하나하나 기억들이 떠올랐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과연 결혼을 선택했을까? 그 사람을 만났던 시간들은 정말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행복했다. 사랑한다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지난 시간에서 배운 것은 이것 하나일 것 같다. 함께 사는 일은 사랑의 영역이 아니라 생활의 영역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함께 살다보면 거슬리는 부분, 보기 싫은 부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생길 수 있다.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오해와 갈등이 쌓여가고, 그것을 푸는 일이 너무도 힘겨워, 그냥 쌓아놓고 무시하고 지나쳤던 시간들이 결국은 관계를 부숴버렸지만,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쩌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선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얼굴을 마주 대하면 불편하니,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함께 있어야 할 시간에는 뭔가 일을 만들어 거기에 집중했다. 말 한 마디 썪지 않았고, 눈길도 주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시간들이 힘들었지만,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 더 겁났던 것 같다. 그러면 진짜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어느날 너무 늦은 시점이었지만, 그래도 이 관계를 다시 회복해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노력을 했다. 말과 행동을 바꾸려고 애썼고, 조금은 상냥해지려고 애썼다. 그때 계속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가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였다. 어쩌면 다시 회복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노력을 하지 않고, 회피해 와서 그랬지, 노력을 하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어느날 충북 지역으로 취재를 갈 일이 있었다. 전날까지 교정 원고를 넘기고 가야 했지만, 밤을 새워 작업을 해서 아침에 간신히 원고를 넘기고 곧바로 차를 몰고 출발해야 했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이틀씩 밤을 새도 버틸만한 체력이 있을 때였다. 에너지음료를 마시고, 혹시 몰라 껌과 초콜릿을 챙기고 출발했다. 도중에 네비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가는 길을 알려줘 평택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곳은 평택에서 활동하던 시절, 농사짓는 마을 빈 집에 들어가 살 때였다. 익숙한 길이 보이니, 문득 그 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여유는 있었다. 가서 그 집의 사진을 찍어서 메일로 보내며, 우리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리게 만들어, 다시 시작하자는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다. (자세한 내용은 당시에 쓴 서재 글을 참조 ttp://blog.aladin.co.kr/idolovepink/6823647)
무사히 그 집과 그 마을의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 메일을 보냈다. 내 간절한 마음이 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가 메일을 보내고 조금 시간이 지난 어느날, 술에 취해 새벽에 늦게 들어온 날, 그는 평소와 달리 안 자고 일을 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게 그러지 말라고, 이미 우린 끝났다고,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왜 금방 답이 오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불안해하던 참이엇다. 그 새벽 우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정말 돌이킬수 없음을 깨달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멸망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계속 나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나는 존경이 아니라 사랑을 원했지만, 그는 사랑을 포기하고 존경을 택했나보다. 그리고 그 존경마저도 나의 태도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옅어진 것 같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아마 그냥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는 타인이 되어 버렸을까? 그럼 나는 어떨까? 나 역시 이젠 그 사람을 별 감정없이 대한다.
확실히 같이 살지 않고, 늘 얼굴을 대하지 않는 것이 훨씬 편한 것 같다. 그 사람은 나와의 관계를정리한 이후로 외모를 많이 바꿨다. 머리 스타일과 색깔을 바꿨고, 귀걸이를 끼고, 목걸이를 걸었다. 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러 식당에 가서, 아이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문득 그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다. 낯설었다.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다른 사람일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또 함께 살았던 그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다만 하나 억울한 것은 이런 거다. 그는 저렇게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기분이 우울해 슬픈 노래를 들으며 울고 싶었다. 친구가 보내준 노래 중에 이 노래가 계속 마음속에 남았다. 볼빤간사춘기 처음 듣는 팀인데, 목소리가 참 좋다. 그리고 이어서 김동희의 [썸데이]를 듣고, 스탠딩에그의 [넌 이별 난 아직]을 듣고, 셀린 디온의 [think twice]를 듣고, 박기영의 [그대 때문에]를 듣고, 데비 깁슨의 [will you love me tomorrow]를 듣고, 엊그제 알게 된 노래 릴리 알렌의 [Littlest Things]를 반복해서 들었다.
얼마전 술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하다가 이 이야기를 했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한 건 거의 몇 명 되지 않는다. 말을 하면서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 그렇게 많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글로도 쓸 수 있겠구나 싶었다. 굳이 누군가 읽기를 원해서 쓰는 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적어본다.
이 글은 부득이 두 개의 버전으로 적는다. 공개할 수 있는 수위의 글과 공개할 수 없는 수위의 글. 하나는 여기에 공개하지만, 다른 하나는 영원히 나 혼자만 열어볼 수 있는 공간에 둘 것이다. 술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내 손을 잡고 "많이 힘들었겠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네, 저 무척 힘들었어요 하고 싶었다. 그 위로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