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늘었다
요즘 부쩍 흰머리가 늘었나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흰머리를 지적한다. 오래전부터 왼쪽 귀 위쪽에 흰머리가 있었다. 오른쪽에는 많지 않은데, 왼쪽은 자꾸 늘어났다. 재작년이었던가? 부쩍 늘어난 것이 눈에 띄더니, 작년에는 나도 놀랄만큼 늘었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다. 어차피 늙어가는 처지에 흰머리 좀 있다고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후배들은 염색 좀 하라고, 늙은이처럼 그게 뭐냐고 말한다. 어제 오랜만에 마주친 사람은 나보고 염색을 했냐고 물었다. 급한 일이 있어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그 말이 좀 이상했다. 분명 흰머리를 보고 말을 했을텐데, 그 말은 왼쪽 귀 근처만 흰색으로 염색했냐고 묻는 말이었나? 멋 부리려고 일부러 그 부분만 흰색으로 염색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데 그 정도로 내 흰머리가 멋있나? 아니 그냥 우연히 마주쳤는데,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서 흰머리가 눈에 띄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염색했냐고 말이 나왔을지도 모르지. 별것 아닌 말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시비
며칠 전 토론회에서 만난 선배가 툭 말을 던졌다. "넌 여기 무슨 일로 왔냐?"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지만, 진짜 정이 안가는 사람이다. 속으로 '이 인간 또 시비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동안 잊을만하면 꼭 한번씩 만나는 이런 인연은 대체 뭐지? 왜 이런 인간을 계속 마주치며 살아야 하는 거지? 왜 난 급이 안 맞아서 당신이랑 같은 자리에 있으면 안 되나? 나랑 같은 자리에 있어서 불쾌하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딱 대놓고 하던가? 무슨 일로 왔냐고? 넌 무슨 일로 왔어? 아우 진짜! 확 들이받아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래 뭐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아,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받아쳤어야 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었던 나 자신이 싫은 거다. 바보같이 왜 웃고 있었던 걸까?
이 놈의 불치병
며칠 전 회의에 참석했는데, 낯선 여성이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인사를 했다. 너무 반갑다고, 여기 계시냐고 물었다. 난 당황했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며 일단 반갑다고 답을 하고, 이 여성을 어디서 만났던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입은 반갑다는 말을 내뱉었으나, 얼굴 표정과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 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나는 긴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어디서 어떻게 만난 인연이었을까를 고민했다. 어딘가 회의 자리에서 마주쳤을 것 같은데, 그 반가워하는 말투를 보면 그냥 단순히 스쳐갔던 건 아니었겠지? 뭔가 나와 공감대가 있었던 걸까? 그런데 난 왜 기억을 하지 못할까?
회의 시간 내내 그가 발언할 때마다 유심히 들으며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그리고 긴 회의가 끝나갈 때 즈음 기억이 났다. 우리 동네 녹색당 총회에 참석한 분이었다. 그날 처음 나왔고, 이후로 녹색당 모임에 나온 적이 없으니 딱 한 번 만났었다. 올해 총회였다. 그 총회는 내게 여러모로 힘든 행사였다. 나는 창당하기 전부터 운영위원을 맡아 여러가지 일을 함께 했다. 창당 후 지역에서 당원모임을 결성할 때, 당연한 듯이 운영위원이 되었고 우리 지역 녹색당을 대표해 수많은 회의에 참석하고, 여러 행사에서 발언을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많은 일들을 해왔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나는 좀 많이 지쳐있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지만, 생계를 위한 활동이 따로 있는 입장에서 녹색당 활동은 제 2의 직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회의를 하고, 회의 결정사항을 실행하고, 연대활동을 해야 했다.
언젠가 당내에서 누군가와 갈등을 겪을 때, 그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욕을 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내가 지역에서 독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지역을 대표하는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발 부탁이니 내가 운영위원을 사퇴하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서, 내가 계속 해왔던 일이라서, 사람들이 내가 하길 바라기 때문에 해왔다. 작년 연말부터 올해 초 총회를 준비하면서 이번에는 반드시 맡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분명 당원들은 또 맡아주길 바랄 것이다. 달리 할 사람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냐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거절해야 했다. 그 총회는 그런 자리였다. 그걸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그는 아마 그래서 나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도 활동가였고, 딱 보기에도 경력이 많고 일을 잘 할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처음 나온 총회에서 아주 예리한 지적과 질문을 던졌다. 당원들은 그에게 운영위원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 일이 너무 많아 맡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회의 도중에 그 사실이 기억났다. 그 회의에서 나는 10분 동안 발표를 맡았는데, 준비한 내용을 설명하다보니 정해진 시간을 훌쩍 지나 거의 15분 가량을 떠들었다. 당시 총회에서도 나는 당원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시간을 지체했다. 아마 내가 진행한 세 번의 총회 중에 가장 비효율적으로 시간만 질질 끌었던 총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아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저 사람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구나 라고.
하늘과 땅
엇그제는 좋아하는 옷을 꺼내 입었다. 황토색 면바지는 색깔 때문이 아니라 내 몸에 꼭 맞고, 편해서 좋아한다. 2년 전쯤 후배가 샀다가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이라고 해서 내가 입어봤더니, 나에게 꼭 맞았다. 하늘색 티셔츠는 색감이 너무 좋아서 아끼는 옷이다. 정장을 입지 않기 때문에 조금 격식을 갖춰야 하는 날에는 칼라가 있는 티셔츠를 입는 편인데, 이 옷의 칼라와 단추 디자인을 좋아한다. 하지만 한 사오년 동안 이 옷을 입지 못했다. 몸에 붙는 옷이라 배가 나오면 보기 싫기 때문이다. 어느날 여러 사람들과 야외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실 때 이 옷을 입고 있었는데, 고기를 잔뜩 먹고 배가 뽈록 나온 나를 보고 누군가 비웃었다. 아, 진짜 티셔츠 아래단이 뽈록 나온 배에 걸쳐 있는 모습이 끔찍하게 보기 싫었다. 그 후로 이 옷은 계속 옷장 안에만 있어야 했다.
작년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뱃살이 좀 없어졌다 싶었을 때, 이 옷을 꺼내 입어봤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랫배에 아직 남은 살이 만져지니, 그때 그 비웃음이 떠올랐다. 다시 옷을 벗어 옷장에 쳐박아두었다.
올해는 운동 보다 탄소화물을 줄이는 식사 덕분에 뱃살이 많이 없어졌다. 드디어 자신있게 이 옷을 꺼내 입을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입지 못하고 있던 옷이 꽤 많았다. 예전에 즐겨입었던 몸에 딱 붙는 티셔츠와 민소매 셔츠들. 그 중에서도 아끼는 옷은 밴드 블랙홀에게 받았던 티셔츠다. 그 옷은 받고 나서 몇 번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배가 나오기 시작해서 계속 옷장에서 잠자고 있었다. 가끔 옷을 찾다가 그 옷을 비롯해 입지 못하는 옷들이 보이면, 한숨이 나왔다. 올해는 자신있게 그런 옷들을 입고 다녔다.
암튼 엇그제 그렇게 좋아하는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출근했다가 회의에 참석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한 젊은 여성 활동가가 내게 "땅과 하늘의 형상화하는 스타일로 맞추셨군요. 역시 자연을 사랑하는 분이세요."라고 했다. 아니 정확히 저 문장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의미였다. 순간 좀 당황해서 뭐라 반응을 해야할 지 몰랐다. 이건 분명 뭔가 놀리는 느낌인데,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여성은 평소에도 나를 만나면 놀리듯 말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라서 번번히 제대로 대응을 못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얘길 주고 받다가 그가 생각보다 더 어리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한때 일했던 단체에 그도 일했었는데, 나보다 10년이나 후배였다. 교육기수로 몇 기냐고 물었다가 앞자리가 예상치 못한 숫자가 나와서, 내가 이렇게 늙었구나 싶었다.
지긋지긋하게 싫다! 내가!
어제 중요한 설명회를 마치고 후련한 기분으로 뒤풀이를 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백남기 어르신 부검 영장이 발부되었단다. 다들 화가 나 있었고, 당장이라도 서울대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황당하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설명회 준비를 하느라 이틀동안 밤을 샜기 때문에 많이 피곤했고,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술이 많이 들어갔다. 다행히 조건부 영장이라 당장 집행을 하진 않을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그 조건부라는 것이 무척 치사하고 더러운 짓이라는 것에 대해 토론했다. 유가족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부검을 하겠다고 했고, 부검에 유가족이 들어와 참관하라고 했단다. 부검하는 장면을 모두 녹화할 거라고 했단다. 애초에 부검을 해야할 상황이 아님에도 말도 안되는 영장을 발부하면서, 유가족이 원하는 이라는 단서를 달아버림으로써 이 부검을 유가족이 원하는 것처럼 아니 원해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럼 유가족이 끝까지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뭔가 캥기는 것이 있어서 응하지 않는 거라고 억지를 부리며 강제 집행을 하겠지.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317일 동안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 계시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부검을 한다고? 이렇게 사인이 명확한데 왜 부검을 해야하나? 그 인간들은 머리가 없나? 지능이라는 것이 없나? 그렇게 멍청한 인간이 어떻게 판사가 되었나?
일부 사람들이 서울대병원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나는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소주 한 병을 들이부었다. 그래. 마셨다가 아니라 들이부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리고 기절하듯 쓰러져 잠들었다.
아침에 해야할 중요한 일 두개를 놓쳤다. 서너개쯤 맞춰놓은 알람도 나를 깨우지 못했다. 부재중 전화가 10통이 찍혀있었다. 부랴부랴 씻고 집을 나섰는데, 도무지 술이 깨지 않았다. 시청에서 협약을 맺고 도장을 찍는데, 공무원에게 내가 아직 술이 덜 깼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공무원이 내게 도장을 조금 삐뚤게 찍었다고 한 소리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러고 살고 있나? 늘 뭔가에 쫓기듯 살고 있는 내가 싫었다. 늘 뭐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늘 술에 쩔어 살고 있는 내가 싫었다. 지긋지긋하게 싫다! 내가!
어제가 마감이었던 기사 하나를 오늘로 미뤄두었다. 이제 그 기사를 써야한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아직 술이 덜 깬 머리를 굴리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