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오는 날 다음날이 휴일이면, 아침에 일어나는 게 행복하다. 만약 휴일이 아니라면, 그 때는 전쟁이다. 아이들을 깨우고, 준비물을 챙기게 시키고, 또 내가 챙겨주고, 씻으러 들어가라고 독촉하다가, 정 안 되면 짜증내는 아이를 꼭 안고 달래가며 화장일 입구까지 데려가야한다. 간단히 먹을 걸 준비해주고, 나도 씻고 출근 준비를 해야한다. 아이들은 아침에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다. 양치나 세수를 하다가도 멈춰있고, 머리를 빗다가도 멈춰있고, 먹다가도 멍하니 가만있다. 그럴때마다 난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급기야 화를 내는 날도 있다. 다행히 이젠 큰 아이가 제 할일은 대부분 알아서 하는 편이라 한결 편해지긴 했다.

오늘처럼 휴일 아침이면 한결 여유롭다. 나도 아이들도 맘껏 이불 위에서 뒹굴며 늦잠을 잘 수 있다. 난 밤에 막 잠든 아이들의 얼굴과 아침에 아직 깨기전 아이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정말 좋다. 새삼 이 아이들이 언제 이만큼 자랐나 하고 신기하다 싶기도 하고, 이렇게 사랑스럽고 천사같은 얼굴이었나 싶기도 하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와 뺨에 입맞추고 꼭 껴안으면 왠지 벅찬 감정이 솟구친다.

오늘은 아마 7시 무렵 깼다. 아이들이 다 이불을 차고 자고 있어서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차례로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앞서 말한것처럼 이마와 뺨에 입맞추고, 한번씩 껴안은 후에 방을 나왔다. 확실히 가을이다. 맨 다리가 약간 쌀쌀한 느낌이다. 화장실을 다녀와 노트북을 켜고 중국어 강좌를 잠시 봤다. 왠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작은 아이 곁에 누웠다. 녀석의 고요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울 것 처럼 소리를 냈다. 악몽을 꾸는 건가? 난 급하게 아이를 껴안고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아이의 귀에 낮은 음성으로 ˝괜찮아. 아빠가 옆에 있어. 아빠가 지켜줄게.˝ 라고 속삭였다. 녀석은 잠시동안 더 인상을 쓰면서 살짝 몸부림을 치다가 곧 내 팔과 다리에 매달렸다. 다시 표정이 평온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를 안고 누워있었다. 이런 시간이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하며 누워 있었다.

밖에서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크게 나서 정신이 들었다. 아이들 아침 먹일 준비를 해야했다. 냉장고엔 김밥과 주먹밥이 있어서 밥은 하지 않아도 된다. 간밤에 행사장에서 남은 주먹밥을 잔뜩 가져왔고, 그 전날 밤엔 또 다른 행사를 마치고 남은 김밥을 가져왔었다.

애호박과 두부를 썰어서 묽은 된장국을 끓이고, 남은 애호박은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입혀 부쳤다. 냉장고에서 꺼낸 김밥도 계란을 입혀 부치고, 노랑과 빨강 파프리카를 썰어놓았다. 주먹밥을 어떻게 데울까 고민하다가 그건 그냥 먹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알라딘에 글을 쓰려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도 자주 그런 일이 있어서 모뎀과 공유기 전원을 껐다 켰는데, 그래도 안 되었다. 또 한 번, 이번에는 끄고나서 한 5분의 시간을 두고 다시 켰다. 그래도 되지 않아서 인터넷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신호가 가다가 멈추는 현상이 있다고 일단 복구신호는 보냈지만 기사가 방문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내일 방문해도 되냐 묻길래 제일 바쁜 월요일이라 안 된다 하고 화요일 오전으로 약속을 정했다. 그럼 이제 화요일까지 인터넷은 휴대폰 엘티이 밖에 못 쓴단 얘긴데 난 데이터 양이 적어서 테더링을 할 순 없다. 노트북으로 쓰던 글을 포기하고(임시저장 되어 있겠지?) 폰으로 북플을 열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난 스스로 재미없는 사람이라 여긴다. 매사에 진지하고 농담이나 장난은 애들하고 있을 때 외에는 잘하지 않는다. 회의,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 진행을 맡아왔지만, 파티와 같은 흥겹게 노는 자리의 진행은 스스로 잘 안 어울리더라는 생각을 했다. 몇 번 해봤는데, 재미없었다는 평을 들었다. 어제의 파티 진행도 그래서 안 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같이 가야하는데, 아이들을 돌봐야 하므로 안된다고 거절했다.

작년에 작은 도서관 문학의 밤 진행을 하고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나에게 와서 안아달라고 하더니, 곧 내 다리에 매달렸다. 사람들은 웃었고, 난 말을 멈추고 아이를 떼어놓으려 했지만, 아이는 더욱 꽉 매달렸다. 어쩔수 없이 아이를 왼팔로 안아 올리고, 오른손으로 마이크를 잡고 진행했다. 큐시트를 왼손에 들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볼 수 없었다. 기억에 의존해 즉흥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아이들을 데려가야하는 행사에선 아무것도 맡지 않으려고 애썼다.

작은 아이는 아마 낯선 어른들만 가득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자신과 놀아줄 수 있는 언니가 만화책에 푹빠져 반응이 없고,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도 글씨를 못 읽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언니가 안 놀아주니 아빠를 찾았을텐데, 아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떠들고 있었으니 아빠도 놀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다시 혼자 그림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겠지.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도저히 못 견딜 지경이 되었을테고, 무조건 아빠한테 안아 달라고 했을 것이다. 혼자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보려고 애썼을 아이가 가여웠다.

하지만 행사 준비 회의에선 달리 진행을 맡아줄 사람이 없었다. 회의는 소강상태로 길어졌고 다들 지쳐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내게 맡아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왔다. 마지막으로 고민이 되었다. 공간이 달라서 어쩌면 작은 아이도 잘 놀수 있을것 같았다. 또 하나의 고민은 내 진행이 재미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 단점을 보완해 줄 다른 한 사람과 공동진행을 하는 조건으로 승락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고, 긴 회의를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행사 하루 전 함께 진행을 하기로 한 여성 활동가와 짧게 준비를 위한 논의를 했다. 이 친구도 평소 회의나 간담회 진행을 보면, 나 못지않게 재미가 없던데. 이 파티 완전 흥행 실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진행 자체는 별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분위기를 띄울 것인가 하는 스킬이 중요하다. 둘이 함께 진행하려면 둘의 호흡도 중요할텐데, 지금 이 짧은 시간에 준비할 수도 없었다. 혼자 하는게 차라리 편할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왠지 자신이 있었다. 재미있게 할 수 있을것 같았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평소보다 한 톤 높은 음성과 조금 더 흥분한 마음가짐으로, 조금 과장하고 오버해서 말했다. 하지만 또 차분할 때는 차분하게 했다. 내 목표는 낯선 사람들이 서로 조금이라도 더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아이스 브레이킹이 필요했다. 몇개의 프로그램을 알고 있고 종종 써먹어 봤지만, 파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적절한 걸 찾아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고민 끝에 `가위 바위 보` 게임으로 정했다. 진행자가 적절히 분위기를 잘 띄워야했다. 큐시트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가 맘을 바꿔, 감탄사와 손동작까지 표기한 대본을 만들었다.

행사장에 일찍 도착해 이것저것 준비를 도와준 후에 입 운동을 했다. 목도 가다듬었다. 작은 아이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 뛰어다니며 노느라 보이지 않았고, 큰 아이는 맨 앞자리에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이크와 대본을 들고 있는 날 보고, ˝아빠가 사회자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자기도 나중에 사회자 할 거라고 했다. 아빠 딸이니 잘 할 거라고 말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들이 늦게와서 시작이 좀 늦어졌고, 축하공연에서 두번째 앵콜이 나와서 또 진행이 늦어졌다. 총괄하는 친구(앞서 나와 공동진행을 하려던 여성 활동가)가 자꾸 시계를 보며 걱정했다. 밥도 먹어야 하고, 마쳐야할 시간은 계속 다가오는데 아직 본 행사는 시작도 못 했으니 그 초조함은 당연하다. 난 대략 계산을 해보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내게 맡기라고 했다. 순서 하나를 간략하게 진행하면 될텐데, 흐름을 자연스럽게 가져가려면 순서를 바꿔야했다. 그 친구에게 바뀐 계획을 알려줬다.

앞서 말한 아이스 브레이킹 게임을 뒤로 보내 밥 먹기 직전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다. 순서를 늦춰 늦게 도착한 사람들 포함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중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동네에서 유명한 언니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내 말에 적절한 반응과 리액션을 보여주어 내가 좀 더 자신감을 가질수 있도록 해주었다.

밥 먹으면서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느낀점을 말할 수 있도록 1분 발언대를 하자는 내 아이디어도 성공이었다.

파티를 다 마치고, 준비팀만 남아서 뒤풀이를 했다. 우린 모두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친 개운한 기분으로 술을 마셨다. 누군가 큰 아이에게 너희 아빠 어떻게 이렇게 사회를 잘 보냐고 물었다. 아이에게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들으라고 한 말이겠지.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공치사를 많이 받았지만, 사실 난 그리 한 게 없다. 무대 준비, 음향 준비, 현수막과 포스터를 비롯해 행사장을 꾸미는 일, 음식을 준비하고 세팅하는 일 등등 뒤에서 나보다 훨씬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다. 오히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는 이유로 혼자 공치사를 받는게 부담스러웠다.

축하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큰 아이가 내가 써놓은 대본을 읽고 재미있어 했다. 특히 가위 바위 보 게임에서 ˝사회자가 왕이니 무조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등의 표현을 보고 웃었다. 그런 아이의 웃음도 내게 힘이 됐다.

밤에 잠들기 전 준비팀에서 홍보를 맡은 이가 찍은 페이스북 생중계 영상을 다시 돌려 봤다. 아! 내 목소리 왜 이렇게 이상한거지? 이게 진짜 내 목소리야? 예전부터 영상 인터뷰 한 거나, 행사 스케치 등에서 내 목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긴 했지만, 이번에 일부러 감정을 끌어올려 오버해서 진행한 목소리는 더 이상했다.

큰 아이에게 이 목소리가 아빠 목소리와 똑같은지, 그러니까 아이에게 내 목소리가 실제 이렇게 들렸는지 물었더니 그렇다 했다. 그렇구나! 이 이상한 낯선 목소리가 내 목소리구나. 아이는 다만 아빠가 평소보다 훨씬 소리를 크게 내서 놀랐다고 했다.

인터넷이 되지 않아 폰으로 긴 글을 쓰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다. 이제 점심 먹고 어디로 놀러갈지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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