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작은 아이가 머리 맡에 놓아둔 색종이 카네이션을 보고 오늘이 어버이날이구나 생각했다. 날짜 감각도 없이 살고 있구나. 하루가 어찌 가는지, 일주일이 어찌 가는지, 한 달이 어찌 가는지 모르고 살고 있구나 싶었다. 숙취로 멍한 머리를 억지로 굴리며 오늘의 스케줄을 떠올려본다. 문득 어린이날은 휴일인데, 어버이날은 왜 휴일이 아니지 생각해본다. 그럼 스승의날도 휴일로 해야하나? 차라리 무슨날 무슨날을 다 휴일로 만들면 어떨까? 적게 일하고, 적게 쓰고, 많이 쉬고, 많이 놀고, 많이 사색하는 삶을 살고 싶다. 바람은 이렇지만 현실은 그나마 적게 쓰는 것 외에는 실현가능성이 없다. 그것도 적게 버니까 적게 쓸 수 밖에 없어서 그런거지 적정하게 버는데 적게 쓰는 건 아디다. 요즘은 적게 벌면서도 자꾸 많이 쓰게 되어 위기감을 느낀다.


씻고 나와 책상 위에서 큰아이의 입체엽서를 발견했다. 빨간 카네이션을 만들어 붙여놓고 짧은 글을 적어놓았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간다. 요즘 유일하게 웃는 시간은 아이들을 생각할 때와 아이들과 함께 지낼 때 뿐이다. 외출복을 입고, 시계를 차다가 노란 리본을 발견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어버이날이라는 두 단어가 겹쳐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숨이 나왔다. 이런 게 삶인가? 이런 게 삶이어야 하나? 이런 세상을 살아야 하나? 시계를 차다말고 털썩 의자에 주저않는다.


일주일 전, 그러니까 노동절 밤 안국역 근처에서 경찰에게 맞았던 기억이 난다. 캡사이신을 눈에 정통으로 맞기를 여러번,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맞았고, 비닐 우비가 너덜너덜 찢어지도록 경찰과 몸싸움을 했고, 그 와중에 한 경찰이 유가족을 붙잡고 흔드는 걸 막다가 얼굴을 한대 맞았다. 정확히 말하면 스쳐맞았다고 해야하나. 안경이 벗겨져 땅에 떨어질 뻔 했으나 다행히 가방끈에 안경테가 걸려 대롱거리다가 떨어지는 걸 붙잡았다. 맞아서 아프지는 않았으나 화가 났다. 감히 경찰이 시민에게 주먹을 휘둘러? 그것도 얼굴에? 지금도 그 경찰의 이죽거리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헬멧 속에서 나를 노려보며 비웃던 그 표정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새벽에 경찰이 밀고 들어와 차도에서 인도로 밀렸을 때, 함께 있던 친구가 앞으로 나가려던 나를 붙잡았다. "내일 아이 생일이라며? 아빠가 생일은 챙겨줘야지. 연행되면 어쩌려구?" 평소라면 절대 연행 걱정 말라고, 20년 넘게 운동하면서 집회에서 연행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큰소리 쳤겠지만, 그 순간만은 나도 모르게 순순히 친구 말을 듣고 뒤로 빠졌다. 그래 아이 생일을 유치장에 갇혀서 보낼 순 없지.


4월 18일 밤, 나는 운 좋게 광화문 여러개의 차벽을 통과하여 광화문 앞 유가족이 농성하던 곳까지 넘어왔다.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 중에 거기까지 온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백여명? 많이 잡아도 이백명 가량 될 듯했다. 내가 넘어오고 나서 대략 30분 후에 경찰은 병력을 밀어붙여 시위대를 저쪽 차벽 안쪽으로 몰아냈고, 사람들이 간신히 넘어오던 통로는 막혔다. 유가족과 거기까지 넘어왔던 인원들은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했는데, 경복궁 담벼락 모퉁이 쪽에서 경찰 병력에 가로막혀 더이상 나가아지 못했다. 얼마동안 경찰들과 대치해 앉아 계시던 유가족들 옆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 분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걸 들으며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 분들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 이런 말도 안되는 뭐같은 상황에 처해있지만, 이 사람들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 되었을, 우리 주변을 스쳐갔을 그런 사람들이었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실종자를 건져내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어버이날이자 자신의 생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월호 유가족 뉴스가 나왔다. 아침의 그 무거운 마음이 다시 몇 백배 더 무거워졌다. 그저 참담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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