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중순 경 아스팔트 균열에 걸려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쳤다.(이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했다.) 한창 운동에 재미를 붙인 시기였건만, 무릎 상처로 인해 약 한 달 반 이상 운동을 하지 못했다. 상처가 아물어 딱지가 무릎을 크게 덮었을 무렵에 작은 아이와 장난을 치다가 아이가 발로 상처 부위를 찼는데, 이때 딱지가 떨어져 나갔다. 짙은 분홍색 혹은 보라색의 흉터가 크게 부풀어 있었다. 대략 1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작은 크기. 문제는 부풀어 올라있는 상태였다. 흉터는 일반 피부보다 얇아서 겨울에 더 시리고, 부딪히거나 쓸렸을 때 무척 아팠다. 여러모로 불편했다. 지금은 겨울이라 상관없지만, 여름이 되면 무척 보기 싫을 것이다. 그땐 아무생각없이 시간이 지나면 이 흉터가 가라앉을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 부풀어 오른 흉터가 가라앉지 않았다. 더 기다려도 소용없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나는 병원 가기를 망설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만 뒤로 미루고 있었다. 마침내 지난 1월 어차피 가야할 거라면 더 늦기 전에 가자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무릎이니까 아무래도 정형외과를 가야지 싶어서 방문했더니, 의사는 성형외과로 가란다. 무성의한 태도. 왜 이렇게 된거냐 물으니, 내 체질이 특이 체질이라서 흉터가 그렇게 된 거란다. 나는 자라면서 많은 상처를 입었고, 여기저기 흉터도 많은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더니, 더 설명이 없고, 그냥 성형외과를 찾아가면 된다고 하고 내보낸다. 무척 기분이 나빴다. 이래서 병원에 오기 싫었던 거다. 돌아와서 아내에게 말했더니, 우리가 가입한 의료생협의 병원에서도 치료가 가능할 거라고 찾아가 보란다. 곧바로 갔어야 했는데, 한번 기분이 상했던 것 때문인지 다시 병원을 찾기가 싫었다. 물론 바쁘기도 했다. 계속 잡히는 각종 모임과 회의와 술자리들이 있었고, 약속이 없는 날엔 일찍 와서 아이들과 지내야 했다.
최근에서야 다시 병원을 가봐야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살림의원(살림의료생협의 병원)은 일주일에 한번 화요일에 야간 진료를 하길래, 어제 퇴근 후 병원을 찾았다. 마을 주치의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오랜만에 뵈어요." 인사를 건네왔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했다.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어머 진료 받으러 오신 건 처음이시네요?" 라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렇네. 의료생협 조합원이 된지 2년이 좀 넘었고, 아이들 진료받으로 몇 번 온 적은 몇 번 있었는데, 내가 진료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어떻게 왔냐는 말에 작년에 10월에 다친 상처 얘길 꺼냈더니, 고맙게도 내가 다쳐서 한동안 다리를 절고 다녔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일단 흉터를 보여줬다. 손으로 만져보고, 눌러보더니 "이건 켈로이드가 맞는 것 같아요." 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물었더니,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대충 들어보니 지난 달에 정형외과 의사가 했던 말과 비슷하다.
켈로이드 피부는 피부 속에 있는 섬유질이 과도하게 비대해지는 현상인데, 주로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고 한다. 또 피부 손실이 많았던 상처(즉, 상처가 큰 경우)나 무릎처럼 상처에 벌어지는 힘을 지속적으로 받는 상처에도 나타난다고 한다. 정형외과 의사에게 했던 말을 다시 했더니, 대개는 체질적인 요인이 많은데, 내 경우에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 치료 방법은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는 것이라고 했다. 스테로이드가 켈로이드를 수축시켜서 부풀어오른 흉터를 작아지게 만든다고 한다. 한번에 끝나지 않고 여러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치료실로 자리를 옮겨 주사를 맞았다. 백원 동전보다 조금 작은 흉터에 주사바늘을 찔러넣고 스테로이드를 살짝 투여하고는 주사바늘을 살짝 뺐다가 다른 방향으로 다시 찔러서 투여하고 또 빼서 다른 방향으로 또 찌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흉터이긴 하지만 생 살을 주사바늘로 이리저리 헤집는 터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이 뇌를 강타했다. 순간순간 아팠지만 내색을 할 순 없어서 이를 꽉 깨물고 참았다. 주사를 다 놓고 나서 되도록 흉터 주위를 거즈나 밴드로 덮어 두라고 한다. 켈로이드는 자꾸 닿고, 부딪히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고 직접 물리력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다.
주사를 다 놓고 간호사가 거즈를 붙이고 있는데, 아내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들어왔다. 치료실 문 밖에서 아이가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문을 살짝 열었고, 작은 아이가 나를 쳐다봤다. "아빠, 아퍼? 저번에 내가 차서 아픈거야?" 그 얘길 듣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아이가 발로 차서 딱지가 떨어졌던 날, 무척 아파서 아이에게 화를 냈던 기억이 났다. 너 때문에 아빠가 아프다는 말을 아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벌써 몇 달이나 지난 일인데. 그래서 얼른 "아니야! 우리 이쁜이 때문에 아픈거 아니고 다른 일로 아픈 거야." 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내가 치료실을 나온 후에도 또 한번 물어본다. "나 때문에 아픈거 아니야?"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아니라고 다시 한번 확인해줬다.
병원을 나와서 운동을 마친 큰 아이를 기다리면서 분식집에서 배를 채웠다. 아이들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주사를 맞은 자리가 불편해서 조금씩 다리를 절으며 걸었다. 참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순간 넘어져 다친 상처가 벌써 몇 달째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지. 게다가 다시 또 몇 달간 주사를 맞아야 한다니. 잠들기 직전에는 주사바늘로 찌른 자리가 쿠쿡 쑤시면서 아팠다.
치료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이었다. 아이들을 씻으러 들여보내고, 어제 택배로 받은 봉투를 뜯었다. 갈라파고스 출판사에서 선물로 받은 책이었다. 언젠가 응원 댓글을 쓰면 신간을 보내준다는 이벤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되었다. 책을 조금 살펴보고,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