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모방 - 언어와 음악은 어떻게 자연을 흉내 내고 유인원을 인간으로 탈바꿈시켰을까?
마크 챈기지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사진을 보여주며,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자랑하느라 바쁘다. 고양이를 키워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자꾸 고양이 사진을 보고, 얘기를 듣다 보니 나도 흥미가 생겼다. 모래에 대소변을 깔끔하게 처리한다는 사실이나, 평소에는 본체만체하다가 캔 따는 소리만 들리면 귀신같이 알아듣고 달려온다는 얘기를 듣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양이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가다가 전혀 뜻밖의 책에서 또 고양이 이야기를 만났다.

 

신경과학자인 마크 챈기지는 ‘매일 생선과 물 주기’와 ‘변기 옆에 모래 상자 두기’ 이 두 가지 조치만으로 우리는 ‘수억 년에 걸쳐 진화한 야생동물 고양이’를 ‘대소변을 가리고 제 몸을 씻을 줄 아는 유해조수 사냥꾼’으로 곁에 둘 수 있다고 한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인간에게 길들었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집의 구조를 고양이에게 자연스럽게 바꾸었기 때문에 곁에 머무는 것이다. 고양이는 길드는 것이 아니라 ‘응용’된다. 인간이 야생 고양이의 본능과 재능을 방향만 달리하여 활용한 것이다.

 

저자는 인간도 고양이와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해서 지금과 같은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이 아니란다. 인간은 유인원과 같은 상태이지만, 문화가 인간의 본능과 재능을 응용해 언어와 음악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즉, 인간에게 언어를 만들고 배우는 언어 본능이나, 음악을 만들고 배우는 음악 본능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고, 진화한 것은 언어와 음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비밀을 ‘자연응용(nature-harnessing)'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이 책의 원제인 'Harnessed(응용된)'는 여기서 나온 말이다.

 

저자는 이 독창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증거들을 보여준다. 그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보고 듣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실제로 보고 들은 결과와 그것을 의식적으로 이해하는 결과는 다르다. 내가 하나의 물체를 본다면, 첫 단계의 시각 체계는 단지 각각의 윤곽을 본다. 중간 단계의 시각 영역은 윤곽 몇 개가 조합된 것을 보고, 물체 자체를 보는 것은 가장 높은 단계의 시각 영역이다. 이제 비로소 나는 물체를 지각하고 의식한다. 그러나 나의 의식적 자아는 낮은 단계의 시각 구조를 좀처럼 의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설명은 저자의 전작인 『우리 눈은 왜 앞을 향해 있을까?』(뜨인돌, 2012) 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보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듣기에서도 우리는 소리의 기본이 되는 낮은 단계의 음향 구조를 의식하지 못한다. 분명히 낮은 단계의 청각 영역은 그것을 들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언어와 음악, 그리고 글자 역시 낮은 단계에서 자연을 닮았다. 자연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소리가 나며, 유인원은 생존을 위해 그 자연의 소리를 이해하고 어떤 사건인지 순간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언어는 그 자연의 소리(사건)를 닮았고, 덕분에 인간은 이를 잘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 유인원은 생존을 위해 듣는 것만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동작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음악은 인간의 동작을 닮았다. 덕분에 인간은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책 덕분에 인간은 한순간에 수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유인원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저자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는데 흥미로운 설명들 덕분에 차츰 설득당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3-05-1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이 쓰신 리뷰를 읽으니,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잘 모르는 책이라 알라딘의 책소개를 찾아봤는데, 이 책의 카테고리는 생물학, 인류학, 교양인문학으로 나옵니다. 일반 기준으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책이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은빛 2013-05-23 14:0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서니데이님.

어렵지 않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서니데이님께도 흥미로운 책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고맙습니다!

2013-05-11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3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3 16: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