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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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의! 이 글에는 책의 주요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책을 읽을 생각이시라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의 영혼 캐시에게

 

세상 그 어떤 말로도 도저히 표현 할 수 없는 나의 영혼, 캐시. 너는 지금 어디있니?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니? 보고 싶구나. 그래 나도 이제 곧 너를 만나러 가게 될 거야. 너도 어디선가 보았겠지. 나를 계속 보고 있었겠지? 비록 살아서는 우리의 사랑을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우리 사랑을 방해한 인간들 모두에게 복수했어. 그 잘난 힌들리와 보잘것없는 에드거와 이사벨라까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어. 아니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 차라리 죽음은 축복이었을지도 몰라. 그뿐 아냐. 힌들리의 아들과 이사벨라와 나 사이의 아들 그리고 캐시 너와 에드거 사이의 딸까지 모두 내 뜻대로 만들었어. 헤어턴은 글자도 모르고, 입만 열면 거친 욕설 밖에 모르는 촌놈이 되어버렸어. 크크 나를 하인 취급했던 힌들 리에겐 하나 밖에 없는 아들 헤어턴이 자신에게 지껄이는 욕이 가장 큰 복수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야 늘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에게는 사실 내가 복수 한 것이 아니야. 그 스스로가 그렇게 된 것 뿐. 오히려 내가 한 복수는 재산을 뺏은 것 밖에 없지. 이사벨라의 아들. 음 그러니까 내 아들. 그 못난 놈은 이름이 린턴이었어. 크크 이름조차 비실거리는 린턴이었으니, 평생 빌빌거리다가 가버렸지. 아니 됐어. 그 자식에 대한 얘기는 관둘래. 내 마음으로 그 놈을 아들로서 인정한 적도 없지만, 그 못난 놈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멍청한 놈! 캐시. 네 딸은 내 아들과 결혼했어. 흐흐 못난 놈에게는 과분한 결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에드거 린턴을 파멸로 몰아넣고, 그 재산을 모두 뺏어야만 했거든. 설마 내가 너와 나의 못다한 사랑을 자식 대에서 이뤄주기 위해 둘을 결혼 시켰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그지?

 

캐시. 나는 하루에도 몇 십번, 아니 몇 천번씩 그날을 후회해! 23년 전 바로 그날을. 너와의 말다툼이 있었던 날. 그리고 얼떨결에 몰래 너의 속마음을 들어버린 그 날 말야. 만약 내가 그날 네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너는 과연 그 보잘것없는 에드거 린턴에게 가버렸을까? 아니야!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너는 나를 버리고 떠나지 않았을거야! 그래 너를 떠난 것은 나였어! 나는 그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 어떻게 네가 나를! 우리의 영혼은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던 그 입으로, 어떻게 네가 나를 두고 에드거 자식을 사랑한다고, 그와의 결혼을 입에 올릴 수가 있어! 어떻게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네 곁을 지킬 수가 있었겠어!

 

아니 모든일의 시작은 26년 전이었어. 우리 둘이 몰래 집을 빠져나가 습지를 쏘다니다가 린턴가의 ‘티티새 지나는 농원’으로 들어간 날 밤. 그날이 없었다면 우리의 운명은 아마도 달랐을거야. 그 비실대는 에드거 놈을 만나지도 않았겠지. 아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제발 돌이킬 수만 있다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우린 그날 적당히 돌아다니다가 되돌아 왔어야 했어. 그 빌어먹을 망할 집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캐시, 나의 영혼 캐시. 네가 죽은 후로 단 하루도 아니 단 한순간도 널 잊지 못했어. 하루라도 더 빨리 널 만나고 싶었어. 이 강인한 육체는 절대 아플 일이 없지만, 내 마음은 늘 병들어 있었지. 하지만 이제까지 내게는 할 일이 있었어. 내 사랑을 방해했던 모든 인간들에게 파멸을, 복수를 돌려주는 일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어. 남은 인간들. 헤어턴과 캐서린을 더 이상 조정하고 싶지 않아. 이제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없어졌어. 그저 네가 보고 싶어. 캐시, 조금만 더 기다려. 지금 곧 갈거야! 26년 전 습지를 함께 쏘다녔던 그날 밤 이전의 시간으로. 제발 다시 한 번 더 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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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2-20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선독 후댓글입니다. 편지글 형식의 리뷰를 읽고 싶지만 아직 읽지 않아서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민음사판이 있는데 그거라도 읽어봐야겠어요.
그리고,, 시간 되신다면,, 샬럿의 제인에어도 읽어주세요 ^^

감은빛 2012-02-22 16:0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아고 죄송합니다!
<제인에어>를 선물 받고 당연히 리뷰를 써야 했는데,
그때 3분의 1정도 읽다가 말고, 여태 미뤄두고 있었네요.
안그래도 이번에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 그 생각했습니다.
빨리 다 읽고 <제인에어>도 마저 읽어야지 하고 말이죠.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차트랑 2012-02-2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풍의 언덕에 대한 리뷰를 다시 만나는군요.
반갑습니다~

감은빛 2012-02-22 16:09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폭풍의 언덕> 리뷰를 다른 서재에서도 만나셨나봐요. ^^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