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새콤달콤]


처음 영화 [새콤달콤]을 봤을 때, 빠른 전개와 참신한 반전 덕분에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에는 주연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참신하다고 느꼈던 반전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냥 괜찮은 오락 영화 정도의 느낌만 남았다. 최근에 우연히 다른 영화 정보를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이 [새콤달콤]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고, 일본 영화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작 소설까지 읽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 영화는 궁금해서 찾아봤다.















일본 영화와 우리나라 영화 모두 마지막 반전이 중요하다. 그래서 일본 영화의 우리나라 포스터와 디비디 표지에 저렇게 새빨간 글씨로 마지막 반전에 대한 글을 적어놓았으리라. 저 붉은 글씨 때문에 이 영화가 공포영화인 것처럼 느껴진다. 누가 저런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참 센스 후지다. 저 글씨 때문에 영화를 보려던 마음이 싹 사라질 것 같다. 


글을 쓸 때에는 그것이 책에 대한 이야기던, 영화 이야기던 그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굳이 스포일러 경고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아마도 유튜브의 영향인 것 같은데, 글에도 스포일러 경고를 미리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써 놓은 글들을 가끔 본다. 붉고 굵은 글씨로 아주 잘 보이게 맨 앞에 경고문을 적어 놓은 글들. 실은 나는 누군가 어떤 작품에 대한 핵심 내용을 미리 얘기해도 그 것을 (책이라면)읽거나, (영화라면)보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유명한 영화 [식스 센스]의 경우에도 부르스 윌리스에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를 먼저 듣고 영화를 봤었다. 물론 그가 실은 죽은 상태, 즉 유령이라는 것까지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인 그에게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나중에 뭔가 상황이 확 바뀌겠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 혹은 묘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 반전을 접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실은 나중에 이야기가 확 뒤집어질거야 라는 것을 대충 예상하고 본다고 그 재미가 그다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오히려 아예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이나 영화를 시작하기 보다는 적어도 이게 어떤 종류의 이야기라는 기본 정보 정도는 파악하고 시작하는 편이다. 책을 읽을 때에는 거의 무조건 양쪽 날개와 판권 정보, 머리말 그리고 맨 뒤의 해설이나 옮긴이의 글까지 다 읽은 후에 본문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경우에도 미리 정보를 찾아본 후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스포일러를 굳이 일부러 피하지도 않는다.


지금 굳이 일부러 스포일러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제 곧 이 두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반전에 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새콤달콤] 모두 반전 때문에 기억에 남는 영화이지만, 꼭 그 반전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밀도가 높고 짜임새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맨 처음 아무 생각없이 [새콤달콤]만 봤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 했지만, 나중에 [이니시에이션 러브]를 일부러 찾아 보고, 그 다음에 [새콤달콤]을 다시 보니 각본과 연출이 치밀하게 계산을 많이 하고 만들었다는 점이 보였다. 그리고 이미 반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본 것이라 (당연하겠지만) 반전의 의미는 거의 상관이 없고 이야기 자체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관객을 속이고 막판 반전으로 연결시킨 감각은 대단하다 싶었다. 아마 원작이 그런 구성이라 일본과 한국에서 차례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겠지.


맨 처음에 아무런 정보 없이 [새콤달콤]을 봤을 때에도, 딱 반전을 눈치 챈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은 계속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주인공인 남성과 이야기가 끊어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시점의 남성은 그 외모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도저히 같은 인물로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 영화 모두 계속 관객을 속이며 "이렇게 외모가 달라도 얘네는 같은 사람이야." 라고 마치 가스라이팅을 하듯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런 점이 마지막 반전을 더 극적으로 살리는 요소라고 하겠다. 관객을 속이는 결정적인 아이템은 바로 신발이다. 일본 영화에서는 나이키의 에어 조던이라는 것이 대사라도 등장하고, 딱 신발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아, 이건 내가 그 시절에 마이클 조던을 좋아했고, 에어 조던 이라는 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긴 하겠다. 그런 면에서 일본 영화는 참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80년대 중후반을 살았던 세대에게는 추억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우리에게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듯이, 일본에는 이 영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영화 시작 시점의 주인공인 약간 통통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농구화를 선물 받고, 잠시 후에 갑자기 남자 주인공이 바뀐다. 잘 생기고 날씬한 남성, 흔히 훈남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멋진 남성으로. 아까 말한 것처럼 관객 입장에서는 당연히 위화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감독은 신발을 비롯해 여러가지 요소로 계속 관객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한다. 결국 관객들이 감독의, 아니 원작 작가의 강압에 못 이겨 반쯤 포기하고 받아들일 때쯤에 마지막 반전이 등장한다. 그럼 이 두 영화에서 공통으로 관객들을 속이는 요소들을 알아보자.


제일 중요한 요소는 언급한 거처럼 신발이다. 일본에도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연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미신(혹은 징크스?)이 있다. 그래서 마유와 스즈키가 헤어지고, 다은과 장혁이 헤어진다고 암시하는 증거라는 기능도 있다. 그리고 운동화는 살찐 주인공이 날씬한 주인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기능도 한다. 주인공이 운동화를 선물 받고 열심히 운동해서 살을 뺀 것이라고 관객을 속이는 요소인 것이다. 그 속임수를 완성하기 위해 두 영화 모두 두 사람이 만날 때 주변에서 뭐라고 말을 하거나 눈짓으로 남성의 기를 죽이는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서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두 남성이 부딪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도 운동화는 꼭 필요한 소품이다. 두 사람이 부딪히기 위해서는 주위를 살피지 않고 달리도록 만들어야 하고 달리기 위해서는 운동화가 필요하니까. 두번째 요소는 이름이다. 일본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모두 '스즈키' 라는 성을 가졌다. '스즈키'가 얼마나 흔한 성씨인지는 모르지만, 우연히 한 여성이 연달아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 정도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는 한다. 우리나라 '김'씨, '이'씨, '박'씨 정도라면 아주 자연스러울 것 같기는 하다. 일본 영화에서 두 남성이 같은 성을 가졌다면, 우리 영화에서는 같은 이름을 가졌다. '혁'이라는 이름. 그리고 일본 영화는 여기서 애칭이라는 한 가지 요소를 더했다. 여성이 남성을 부르는 '탓쿤' 이라는 애칭.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처음에는 서로 성으로 부르고,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야 이름에 '상' 이나 '짱'을 그리고 남성에 한해 '쿤' 을 붙이는데, 그냥 이름 만으로 부르는 건 정말 아주 친한 사이에 한해서 가능한 것 같다. 그에 반해 애칭은 상대적으로 좀 더 쉽게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이 같은 것 만으로도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굳이 애칭까지 넣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일본 영화에서 이 애칭이 좀 억지스럽다. 이런 것들이 마지막 반전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는데, 이 이야기가 밀도가 높고 잘 짜여졌다는 증거 중 하나다. 그러니까 관객들을 속이는 요소들도 계속 등장하지만, 관객들이 억지로 이 정도면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겠네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의외로 실은 그게 아냐 라고 알려주는 요소들도 존재한다. 처음 등장한 남성은 스즈키 유우키 이고, 뒤에 등장하는 남성은 스즈키 타쿠야 이다. 여성은 두 남성을 모두 '탓쿤' 이란 애칭으로 부르는데, 타쿠야는 이름 때문에 이 애칭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유우키는 대체 왜 탓쿤이 되는 걸까? 여성은 유우 라는 글씨의 한자(夕)가 가타가나 타(タ) 처럼 생겼다고 말하면서 이 남성의 애칭을 '탓쿤'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이전에 습관적으로 '탓쿤' 이라 불렀거나 부르려던 실수는 그냥 무시하거나, 옷에 붙은 '태그'라고 둘러댔었다. 그 다음으로 관객을 속이는 요소 중 하나는 여성이 이 두 남성을 만난 계기가 같다는 것이다. 일본 영화에서 마유는 두 남성을 모두 미팅에서 만났다. 약 1년 가량의 시간 차를 두고. 한국 영화에서는 두 남성이 모두 다은이 일하는 병원에 환자로 실려온다. 환자와 간호사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이야기에는 관객을 속이는 요소들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이래도 속을 거야? 라며 놀리듯 이 두 사람이 다른 사람임을 보여주는 암시들도 존재한다. 일단 누가 뭐라해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의 외모가 가장 큰 증거이고, 그 다음이 두 사람의 성격이다. 한없이 순하고 착한 초반 주인공에 비해 그 다음 주인공은 한일 양국 모두 어느 정도 까칠하고 자기 중심적인 면이 있다.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이 하나 나오는데, 바로 남자 주인공의 폭력성이다. [새콤달콤]의 장혁은 피곤하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여러 상황 때문에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직접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니시에이션 러브]의 타쿠야는 무려 세 차례나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마 80년대 일본이라는 시대 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대에는 한국 남성도 폭력을 자주 사용했고, 그럼에도 여성들은 그 폭력에 대항하거나, 신고하거나, 헤어지거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아, 물론 지금도 아주 높은 확률로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제법 많겠지만, 적어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일본 영화의 시점이 87년이고, 우리 영화의 시점이 영화가 개봉한 21년 즈음일테니 당연한 선택이라 볼 수 있겠다. 그 외에도 여성이 남성을 대하는 태도 표정, 그리고 반대로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이 두 남성이 절대 같은 사람일 수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나는 특히 남성의 기질과 버릇에 주목했었다. 타쿠야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차갑다. 스스로 자신이 잘난 사람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그걸 보란 듯이 드러낸다. 그리고 버릇처럼 반복하는 행동이 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유우키는 그렇지 않다. 장혁도 기본적으로 잘생기고 잘난 사람 특유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특징적인 그의 표정과 말투, 반복되는 몸짓들. 당연히 이장혁에게는 그런 모습들이 전혀 없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 출간된 번역본이 있었다. 그런데 평들을 읽어보니 굳이 원서를 일부러 읽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마지막 반전에 대해 충분히 살펴 보았으니, 이제 각 인물들과 배역에 대해 알아보자.


[이니시에이션 러브]의 마유코는 마에다 아츠코가 맡았다. 처음 보는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에 보았던 드라마 [스캔들 이브]에도 나왔더라. 비록 앞 부분에 짧게 등장했다가 거의 마지막 쯤에 또 아주 짧게 나오고 말기는 하는데, 그 앞 부분의 역할이 제법 인상적이어서 표정 연기를 칭찬하며 봤었는데, 이 사람이 저 배우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서 다시 [스캔들 이브]의 해당 장면을 찾아 보았는데, 그래도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영화가 2015년 작품이고, 드라마는 2025년에 나온 거라 10년이라는 시간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맡은 배역이 너무나도 달라서일까? 모르겠다. 아, 그리고 이 사람 아주 유명한 아이돌 출신이더라. 마침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이 아이돌 출신으로 유명 배우랑 결혼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캐스팅 담당자가 일부러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마유코는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그리고 아주 영리한 아니 영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타쿠야가 폭력까지 휘둘렀기 때문에 마유코가 아주 자연스럽게 착한 남자를 선택한 것은 당연하다. [새콤달콤]의 다은에게는 이런 면이 보이지 않아 좀 아쉽다. 장혁의 이야기에서 정당성을 많이 부여하는 것에 반해 다은의 선택에는 막 공감하기가 조금 어렵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영화가 좀 더 마유코에게 집중한 느낌이고, 한국 영화는 장혁에게 집중한 느낌이다. 며칠 전에 [내 몸을 빌려드릴까요] 를 읽고 쓴 글에서도 썼는데,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의 일본을 잘 알지 못해 놓치고 지나가는 디테일이 많은 느낌이다. 당시의 일본 문화를 잘 아는 분들이라면 훨씬 더 풍성한 느낌으로 이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마유코는 치위생사로 나오는데, 병원에서 일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두 남성을 만난 것도 미팅 자리였고, 보여주는 모습도 모두 퇴근한 후의 일상이다. 치위생사 라는 직업이 다른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반면 다은은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인데, 두 남성을 만난 것도 모두 병원이었고, 병원에서 정말 피곤하고 힘들게 일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새콤달콤]의 다은은 채수빈이 맡았다. 이 배우를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이 배역에 찰떡같이 잘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기를 잘 했다. 물론 영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말도 안되는 상황들을 계속 밀어붙이며 억지로 웃기려 드는 측면이 있어서 상식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많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종합병원의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결국은 공감하게 되었다. 초반에 이어지는 병원 장면들을 보면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서 목이 말라도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있을 때, 친절하게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 봐주고, 다른 간호사들 보다 조금 더 잘 챙겨줬던 간호사가 있었다. 다은이 이장혁에게 잘해주는 장면들을 보면서 그 사람이 생각났다. 요 위에서 마유코가 아주 영리하고 자연스럽게 남자를 바꿨다고 말했는데, 상대적으로 다은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서야 결국 다른 선택을 하는 거처럼 보인다.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줬다면 좋았을 것 같다.


스즈키 타쿠야는 마츠다 쇼타라는 배우가 맡았다. 처음 보는 배우인데, 키도 크고 정말 잘 생겼다. 찾아보니 재일교포 배우인 마츠다 유사쿠 라는 사람의 아들이라고 하고, 형인 마츠다 류헤이도 배우라고 나왔다. 어, 이 이름은 익숙하다 싶어서 보니 확실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재미있게 봤었던 드라마 [아수라처럼] 에 나왔더라. 타쿠야에 대해서는 저 위에서 반전 이야기를 할 때 제법 자세히 다뤘다. 이것도 아마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타쿠야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미야코와 바람을 피우는 모습이 낯설고 이상하게 여겨졌다. 불륜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저 드라마 [아수라처럼] 에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적어도 다들 죄책감을 느끼기는 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물론 타쿠야도 죄책감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지만, 자신이 도쿄에서 시즈오카까지 그 먼 길을 운전해서 가주는 것으로 죄책감을 상쇄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거리감이 없어서 이 두 도시가 얼마나 먼 지 잘 모르겠는데, 대사로 너댓시간 운전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차로 다섯시간 운전한다면 거의 서울 부산 간 거리에 가까운데. 그렇게 먼 거리를 오간다는 것은 확실히 너무 피곤하고 힘든 일이기는 하다. 나도 부산까지 운전을 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이 정도 장거리 연애라면 애초에 접근 자체가 달랐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혁은 장기용이란 배우가 맡았다. 이름은 낯선데 얼굴은 익숙했다. 어디서 봤나 해서 찾아보니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왔더라. 내 주위 중년 남성들 대부분이 이 드라마를 정말 좋아했고, 아주 친한 친구 한 명은 심지어 인생 드라마라며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던데, 나는 이 배우가 맡은 깡패 캐릭터가 아이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고 난 후로 이 드라마를 보기 싫어졌었다. 결국 나중에 억지로 다 보기는 했는데,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절대로 들지 않는다. 뭐 그만큼 실감나게 연기를 잘 했다고 볼 수 있겠지. 이 배우가 나온 다른 작품은 기억나지 않는데, 검색했을 때 나온 사진들을 보면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나 표정들이 다양하더라. 영화에서 장혁은 인천에서 다은과 연애를 하다가 서울에 있는 대기업으로 파견을 나간다. 타쿠야가 며칠에 한번씩 시즈오카에 다녀왔던 것에 반해 장혁은 초반에 거의 매일 밤에 인천으로 퇴근했다가 아침에 서울로 출근한다. 비록 이동 거리는 도쿄 시즈오카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 길이 얼마나 심각하게 막히는 길인지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제법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나도 부천에 살 당시에 서울로 출퇴근을 했었고, 자주 운전을 해야 했었다. 지금은 성인이 된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였고, 아침에 아기를 신도림 장모님께 맡기고 종로로 출근했었다. 아기 짐이 엄청 많았기 때문에 차로 이동해야 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두 길(고속도로와 국도) 모두 지독하게 막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도 신도림과 종로 모두 얼마나 막히는 길인가! 퇴근할 때는 또 반대로 신도림에 가서 아기를 데리고 다시 부천으로 가야 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든다.


앞서도 언급했는데, 이 영화는 일본 영화에 비해 장혁의 비중이 아주 높다. 일본 영화에서는 앞쪽 유우키의 이야기와 뒤쪽 타쿠야의 이야기를 카세트 테이프 A면과 B면이라고 제목을 붙여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다. 원작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중심 이야기가 타쿠야와의 사랑이기 때문에 결국은 타쿠야 이야기에 무게가 더 실려 있기도 하고, 실제로 등장 장면도 타쿠야가 더 많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래도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이장혁의 이야기가 정말 짧다. 이 영화만 봤을 때에는 이게 당연하게 느껴졌는데, (결국 장혁과 다은의 이야기가 중심이니까) 일본 영화와 비교하니까 좀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이장혁의 비중이 줄었다. 타쿠야는 본인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간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미야코를 거부하지 못하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데, 장혁은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닌 것으로 나온다. 무리해서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의 피로,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를 파견 나온 비정규직 두 사람에게만 맡겨놓은 모양새가 말이 안 되기는 하지만, 암튼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 하는 회사 상황 등으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3교대 근무로 늘 지쳐있는 다은이 임신 후 낙태하는 상황에서 곁에 있어주지 않고 굳이 회사로 가버린 선택 등의 상황으로 홧김에 다은을 두고 떠나 버린다. 다은이 장혁의 회사로 반지를 보내(일본 영화에도 같은 장면 있음)면서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이별을 인정한 셈이 된다. 그리고 이후에 장혁이 보영과 관계를 시작한다. 어, 그런데 일본 영화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이 두 사람 이별의 결정적인 요인은 남자가 이름을 잘 못 부른 것인데, 타쿠야는 이미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에 결정적인 실수가 당연하겠지만, 장혁은 왜 실수를 했을까? 이 부분이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네.


또 한 명의 스즈키인 유우키는 모리타 간로 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타쿠야의 빈 자리를 운 좋게 차지한 럭키 가이. 귀엽고 착한 남자. 영화에 나온 만큼 착한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할 것이다. [새콤달콤]을 먼저 봤기 때문에 포동포동 귀여운 남자 배우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다부지게 근육질일 것으로 예상되는 배우가 나왔다. 그럼에도 의외로 귀여운 매력을 잘 보여줬다. 다른 역할을 맡으면 또 완전 다른 이미지가 될 것 같다. 다부진 체격 때문에 깡패 같은 역할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다. 일본 영화에서는 유우키와 마유코의 풋풋한 사랑, 설레는 사랑 이야기도 제법 좋았다.


이장혁 역은 이우제 라는 배우가 맡았다. 일본 영화 유우키에 비해서는 훨씬 부드럽고 귀여운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좀 더 포동포동한 느낌이기도 하다. 아마 배역 때문에 일부러 살을 찌운 것으로 보인다. 일본 영화에 비해 이장혁은 다은과 제대로 연애한다는 느낌은 안 든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 이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알콩달콩 사랑을 잘 키워갈 것인가? 어쩌면 마유코 유우키 커플과 달리 다은 이장혁 커플은 잘 될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마유코와 유우키는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타쿠야와 비슷한 상황으로 갈 것 같다.


이시마루 미야코는 키무라 후미노가 연기했다. 전형적인 동양 미인, 특히 일본 미인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공부도 잘 했고, 좋은 직장도 얻었는데 예쁘기도 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타쿠야와 함께 도쿄에 올라온 그 친구가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사람을 만날 확률이 극히 드물고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여러가지 다른 요인들 때문에 바로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은근슬쩍 고백까지 한다면 마음이 흔들릴만도 하겠다. 아, 아냐. 이렇게 타쿠야의 바람을 이해해주면 안 되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중에 과연 타쿠야와 미야코가 이어질까? 아마 영화에서 타쿠야가 미야코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 당하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키무라 후미노는 재작년에 영화 [시티 헌터]에 나왔더라.  


보영 역은 정수정이 맡았다. 정수정이라고 해서 누군지 몰랐는데, 아이돌이었더라. 키무라 후미노를 보고 나서 정수정을 다시 보니 이 두 사람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했다. 물론 제작진이 일부러 그런 느낌의 배우를 섭외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극 중 두 사람의 성격과 행동은 상당히 다른데,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은 정말 많이 비슷했다. 그런데 이놈의 제작진. 어떻게든 억지로 웃기려고 옷에 케첩을 흘리고, 고추장을 흘리고, 아, 진짜! 온갖 음식을 흘리고 씻지도 않고. 왜 예쁜 배우를 데려다가 이렇게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전혀 웃기지 않고 그냥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달랬다. 


원작 소설의 제목이자 일본 영화의 제목인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통과의례처럼 거쳐가는 사랑이라고 한다. 첫사랑을 말하는 것 같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 결혼 전까지 거쳐가는 인연들이 모두 해당되겠지. 결혼을 했어도 또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 불륜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인생은 모르는 것이기에 결국 모든 사랑이 해당될 수도 있겠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이라는 것, 사람을 좋아한다는 감정이 결국은 그렇게 계속 변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 영화 제목은 [새콤달콤] 이다. 처음에 그 상품이 생각났다. 그걸 캐러멜이라고 부르던가? 확실히 사탕은 아니었는데. 암튼 제목을 보자마자 그것의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혀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 상품은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왜 제목이 새콤달콤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번이나 봐도 모르겠다. 사랑이 새콤하면서도 달콤하다는 뜻인 것 같은데. 달콤은 알겠는데, 새콤은 뭘까?  


맨 처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봤을 때는 [새콤달콤]도 그리 나쁘지 않은 영화였는데, [이니시에이션 러브]와 비교하니 너무 못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억지로 웃기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겠지만,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이 안 된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일본 영화처럼 좀 진지하게 만들 순 없었을까? 그리고 감독이 장혁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웠던 건 이경영이었고, 그 다음은 박철민이었다. 아, 진짜!!!! 얘네들은 쓸데없이 억지 웃음만을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들인데, 이건 캐릭터 낭비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백번 양보해서 박철민은 그래도 직장상사로서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이경영은 정말 불필요한 인물이다. 일본 영화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역할이다. 이경영 때문에라도 다시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경영이 나올 때마다 확 그냥 영화를 꺼버리고 싶은 걸 얼마나 열심히 참았는지 모른다. 사실 영화 자체는 일본 영화가 훨씬 만듦새가 좋았는데, 주연 배우들의 연기는 채수빈과 장기용이 더 좋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무리 채수빈과 장기용이 연기를 잘 하고 합이 좋아도 이경영 때문에 이 영화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일본 영화에서는 80년대가 배경이라 비정규직이 나오지 않는다. 타쿠야는 도쿄로 발령을 받아 간 것이지 장혁처럼 파견을 나간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일본을 버블경제 직전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우리 세대가 응답하라 시리즈로 88년과 94년을 기억하는 것처럼 일본의 중년들은 이 영화로 그 시대를 추억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자막이 올라갈 때 작은 화면으로 80년대 백과사전이 나온다. 이후 세대는 본 적이 없을 그 시대의 물건들과 문화를 보여준다. 요런 거 참 재밌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들을 설명하는 자막에 자주 감독 이름이 나온다. 감독이 자주 썼던 물건, 감독이 자주 했던 것. 뭐 이런 식이다. 여러 물건들이 소개되었는데, 카세트 테이프나 전화카드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들도 있고,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나 만화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아, 아마도 원작에서도 그럴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카세트 테이프가 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근데 이미 글을 너무 길게 써서 이건 그냥 패스.


[새콤달콤]에서는 파견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대해서 다룬다. 비록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정규직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무시 당하는 모습 만은 사실적이다. 그리고 매일 야근에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할 정도의 업무 강도로 일을 시켜 놓고, 일이 마무리되면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현실도 똑같다. 이 부분이 이 영화 전체에서 딱 하나 칭찬할 부분이라 하겠다. 공교롭게도 80년대 일본과 202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같은 이야기의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재미있다. 이런 식으로 일본과 한국이 같은 내용을 영화로 만든 것들을 비교하면 쓸 이야기 거리가 많겠다. 시간 날 때 하나씩 써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