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좋아
재작년 그제 쓴 글을 엊그제 북플로 읽었었다. 북플의 지난 오늘 코너를 보다보면 평소엔 글이 없거나 소수의 글이 있는데, 신기하게 요맘 때는 과거 오늘 쓴 글들이 좀 있는 편이다. 연말이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더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무렵, 그러니까 한 이십여년 가까이 전에는 아이들과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로 적었었고, 중간에 꽤 긴 시간동안은 거의 글을 안 썼다가 한 칠팔여년 전부터 다시 간간히 글을 썼었다. 암튼 엊그제 다시 읽을 글은 아마 서너개쯤이었다. 한 십오년쯤 전에 쓴 글은 작은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때 추운 날씨에 아가인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있었던 얘기들을 적어 놓았더라. 그 전후로 책 이야기를 쓴 해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이 맨 처음 얘기한 재작년, 그러니까 23년에 쓴 글이었다. 그 글에 몇 가지 주제가 담겨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곧 있을 송년회 장기자랑에서 노래를 부를 예정이란 내용이었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한동안 내가 노래를 꽤 잘 한다고 착각을 하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무대 경험 두 개를 적어 놓았다. 둘 다 대학시절이었다. 그때 정말 뼈저리게 내가 결코 노래를 잘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아니 오히려 한참 실력이 떨어진다는 걸 깨달았었다. 그리고 또 적어 놓았던 건 졸업 후 환경단체에 들어가서 첫 신입활동가 교육에서 불렀던 노래. 그 노래 덕분에 친해진 동기이자 나이 차이가 좀 나는 형님이 있었고, 그 형이랑 같이 일하다가 알게 된 사람과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나는 결혼으로 이어준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야기도 그 글에 간략하게 적었더라.
그 다음으로 재작년 엊그제 시점에서 곧 있을 송년회 장기자랑에서 부를 노래를 준비할 예정이라 적었었다. 그 글에서 말한 그 송년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정말 오랜만에 아주 긴 시간만에 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개인적으로 스스로 호흡이나 발성에서 아쉬움이 좀 있었으나 큰 실수는 없었고 노래를 들었던 청중들의 반응은 꽤 좋았다. 특히 노래가 후렴구에 이르렀을 무렵 누군가 불을 꺼버렸고, 사람들이 저마다 폰을 열어 손을 들어 머리 위로 흔들었다. 딱 거기 쯤에서 아주 살짝 음이 흔들렸었는데, 그렇게 불을 꺼줘서 사람들 얼굴이 안 보이니까 좀 더 편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어두운 가운데 사람들이 흔드는 폰 불빛만이 밝으니 분위기도 더 살아서 노래를 듣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더욱 분위기에 심취하게 되었으리라.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는데, 아마 한 칠팔년 전쯤 두음으로 고음을 부르는 법을 배워 익혔다. 그 후로도 꾸준히 더 고음을 부를 수 있도록 연습했고, 어떻게하면 좀 더 듣기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 덕분에 한 사오년 전부터는 두음을 좀 더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경험도 쌓였고, 남성 음역대에서 어지간한 고음의 노래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소화할 수 있는 것과 잘 부르는 것은 다른 것이다.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르기를 원하지만, 나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주로 듣는 음악과 부르는 음악이 다르다는 것. 평소에 내가 주로 듣는 음악은 외국 노래들이다. 젊었을 때는 주로 영미권 팝 음악을 주로 들었고 최근 몇 년은 주로 일본과 중국 노래들을 듣고 있다. 아주 가끔은 평소 잘 들어보기 어려운 다른 여러 언어의 곡들도 일부러 찾아 듣는다. 우리나라 가요는 일부러 듣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평소에는 잘 손이 가지않는 느낌이다. 특히 내가 부르길 좋아하는 락 성향이 강한 곡들은 더 자주 듣지 않는 편이다. 어떤 노래를 잘 부르려면, 그 곡을 많이 자주 듣고 잘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새로운 노래를 통 익히지를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주로 90년대 노래들이다.
그나마 최근에 2000년대쯤의 유명한 락발라드 몇 곡을 배워 익혀서 조금 익숙하게 부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노래들마저도 지금 시점에서는 한참 옛날 곡이 되어버렸다. 뭐 사람이 옛날 사람이니 노래가 옛날 노래인 것은 어쩔수 없나 싶기도 하다. 아주 가끔은 주로 듣는 일본 노래나 중국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서 연습을 해보는데, 중국노래는 가사를 다 외우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 한계에 부딪혔고, 일본 노래는 상대적으로 가사는 외울만했다. 그럼에도 영어 노래처럼 익숙하게 부르기는 어렵더라. 생각해보니 그나마 내가 가사를 좀 외우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익숙하게 부를 수 있는 외국 노래들도 죄다 옛날 노래들 뿐이다. 영어 노래들도, 일본 노래들도, 정말 불러보고 싶어서 열심히 가사를 공부해봤던 중국 노래도.
저 맨앞에 언급한 글에도 썼었는데, 주위에 노래를 잘하는 지인들이 많다. 거의 가수처럼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도 두어명 정도 있고, 한 분은 오래전부터 투쟁 현장 작은 무대들에서 노래를 불러온 분이기도 하다. 이 분들과 어울리다보니 과거와 달리 계속 겸손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나 혼자 불러보면 꽤 괜찮다 싶다가도 나중에 이 사람들이 부르는 걸 들으면, 역시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자각할 수 있다.
가수가 되어 본 꿈
오늘은 아니 어제는 초저녁부터 잠이 와서 졸면서 영어를 익히고 있었는데, 그러다 일찍 잠이 들어버렸다. 도중에 두어번 깼는데, 금방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가 아까 두 시쯤 완전히 깼다. 잠에서 깨기 직전에 꾼 꿈에서 나는 가수였다. 곡을 쓰려고 하는데, 어떤 지점에서 막혀있었고, 어느 작은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어느 특정 지점에서 내가 원하는 발성이 나오지 않아 전반적으로 꿈 속의 나는 뭐든 잘 풀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연습실을 같이 쓰는 어느 밴드와 같이 연습을 해보았고 꽤 괜찮은 피드백을 받고, 이제 준비했던 그 공연 무대에 올라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아무리 작은 무대여도 관객은 많았고, 너무 떨리고 긴장이 되는 와중에 이제 리허설을 하러 가야하는데 갑자기 발이 떨어지지 않더니 점점 온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없게 되었다. 한참 괴로워하다가 이게 꿈이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고 멍하니 있다가 엊그제 읽었던 그 글이 생각나 이 꿈이랑 연결해서 글을 써야겠다 싶어서 폰을 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났는데, 오래 전에 골방에서 혼자 소설 습작을 하던 시절에 끄적였던 글 중에 밴드를 중심에 두고 쓴 글이 있었다. 키도 크고 멋진 외모의 기타리스트와 천재라 불리는 베이시스트, 그리고 드럼은 음 드럼은 기억이 안 나네. 글의 주인공은 평범한 외모에 노래 실력도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어떤 특유의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보컬이자 세컨 기타였다. 여기에 밴드의 주변 인물들과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성, 주인공에게 호감을 가진 여성, 그리고 기타리스트의 팬들, 베이스 연주자의 팬들. 막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들이 얽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었다. 그런데 글을 쓰려니 자꾸 디테일에서 막혔다. 실제 밴드를 해본 적이 없으니 혼자 골방에서 아무리 애를 써봐도 구체적인 묘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 전에 노래패를 해보기는 했지만, 분위기와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통기타를 쳐보기는 했지만 전자기타를 쳐본 적이 없어서 주인공인 두 기타리스트의 행동 묘사에 자신이 없었다. 이 글은 나중에 밴드를 한번 해보고 써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평생 밴드 경험을 해보지는 못했다. 장담할수는 없겠지만, 남은 인생에서도 밴드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미 다 늙어가는 처지에 그런 일이 생길 확률은 점점 더 줄어들테니.
갑자기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졌으나, 이 새벽에 그럴 수는 없는 법. 얼른 잠이나 다시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