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달리기 대회
일요일에 동네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렸다. 불광천 벚꽃 마라톤 대회라는 이름의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3월 초에 지인이 알려줬다. 사실 달리기 대회라서 반가운 마음 보다는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불광천 천변 산책로는 좁은데, 사람은 엄청 많다. 특히 벚꽃이 피면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몰린다. 이 좁은 천변을 은평구청장은 잠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이것저것 돈을 쳐발라 가며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벌이곤 한다. 왜 자꾸 멀쩡한 산책로를 파헤치고, 왜 예쁘기만 한 화단을 뒤엎어 없애 버리는지. 왜 자꾸 쓸데없는 조명을 덕지덕지 붙여서 예쁘지도 않은 이상한 것들을 세워두는지. 왜 쓸데없이 구조물들을 세웠다가 없앴다가 또 세우기를 반복하는지. 평소 불광천 산책로를 따라 한강으로 달리기를 주로 하는데, 사람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밤에 달리는 편이다.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달리기 대회를 연다고? 선착순 1100명이나 모집한다고? 내가 작년에 참가했던 두 번의 대회 모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좁은 출발지에 몰려있던 모습들이 먼저 떠올랐고, 차량 통행을 막고 차선을 2개 혹은 3개까지 사용했던 모습들이 생각났다. 이 좁은 산책로에서 달리기 대회를 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불가능한 거 아닌가 싶었고, 혹시라도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일단 달리기 소모임에 이 소식을 공유했다. 그 방에 계신 다른 한 분이 작년에는 그 대회에 800명이 참여했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올해가 처음이 아니었구나. 작년에도 별 일이 없어서 올해는 그 규모를 더 늘린 거였구나. 우리 달리기 모임은 주로 불광천 산책로에서 달리기를 하다보니 이 대회는 우리 모임이 참여하기 딱 좋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참가 신청 서버가 열리면 다 같이 신청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 대회 참여하려고 일부러 멀리까지 가기도 하는데, 우리 동네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리는 건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신청하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서 드디어 서버가 열린 날. 나는 미리 알람을 맞춰두었기 때문에 딱 정시에 들어갔다. 어, 그런데 신청을 하려고 보니 홈페이지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고 나온다. 다른 대회들에 신청할 때는 이런 적이 없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대회 하나 신청하려고 회원가입까지 하게 만들다니. 참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할 수 밖에. 얼른 하지 않으면 마감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얼른 회원가입을 위한 정보들을 입력하고 빠르게 신청을 완료하고 카드 결제까지 마쳤다. 중간에 몇 차례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로딩이 길어지곤 했다. 사람들이 몰려서 서버에 부하가 걸렸다는 뜻이다. 혹시라도 마감이 되어버릴까봐 조금은 조바심이 났지만, 다행히 신청 접수에 성공했다. 그리고 소모임 방에 들어가보니 신청 완료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성공했다는 소식을 올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벌써 마감되었다고 ㅠㅠ 를 올리는 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 정말 간발의 차이였을 것 같았다. 내가 성공하고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마감이 된 듯하다. 나중에 언론 기사를 보니 서버 열리고 10분만에 마감되었다고 했다.
이쯤에서 삐딱한 사람으로서 여기저기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라는 행사 이름에 대해 한 마디 하고 달리기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번 불광천 달리기 대회는 겨우 2개의 코스만 신청을 받았다. 5킬로미터와 10킬로미터. 보통 다른 대회들은 10킬로미터가 가장 짧은 코스이고, 하프 코스와 풀코스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불광천이 짧아서 10킬로미터도 간신히 가능하고, 하프도 불가능하니 어쩔수 없이 5킬로미터를 넣었겠지. 그런데 왜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마라톤은 고유명사로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경기를 말한다. 겨우 10킬로미터 달리는 대회에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뭘까? 작년에 참여했던 와이엠씨에이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그 대회는 10킬로미터와 하프 코스 이렇게 두 개만 있엇는데, 역시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썼다. 풀코스가 없는데, 왜 썼는지 궁금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달리기 열풍이고, 마라톤 이란 단어를 써야 뭔가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달리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실제로 42.195 킬로미터 풀코스를 뛰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나는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일이고, 어쩌면 평생 도전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니, 사람이 40킬로미터 이상을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제 겨우 20킬로미터 정도는 뛸 수 있게 되어지만, 어쩌면 25킬로미터 정도는 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이상은 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런데 왜 부담스럽게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서 막 갖다 쓰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달리기 대회라고 하면 될 것을. 달리기 라는 쉽고 좋은 단어를 놔두고 왜 자꾸 마라톤 이라는 단어를 쓰는지. 참.
대회 날짜가 다가오는 중에 이 대회에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달릴 예정이고,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씨가 구청장과 함께 달릴 거라는 언론 기사가 나왔다. 누군가가 계획을 세웠다. 사람들을 모아서 대회 장소에서 혁신파크 민간 매각 반대 피케팅을 하자고 했다. 그때 얼른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 대회 신청에 성공한 사람들을 모아서 등에 몸자보를 붙이고 뛰면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겠다고. 그래서 우리 소모임에서 신청 성공한 사람들에게 몸자보를 붙이고 함께 뛰어주십사 부탁들 드렸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렇게라도 뛰면 사람들 눈에 띄겠지.
그리고 대회 전 날. 지인 중 누군가가 많이 속상한 일을 겪어 위로해주자고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아이들을 만났다가 친한 친구랑 만나고 있었는데, 늦게라도 좋으니 꼭 오라는 연락을 받고 밤 늦은 시간에 합류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고, 달리기 대회 때문에 컨디션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원래 대회 전날엔 음식도 신경쓰고, 일찍 자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엄청 노력해야 하건만.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새벽 4시가 넘어서였고. 대충 씻고 누운 것이 5시였다. 알람을 5개를 맞춰놓고 눈을 감았다. 겨우 2시간 조금 넘게 자고 울리는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기를 반복했다. 4개의 알람을 모두 끄고 다시 누웠다가 5번째 알람 때 눈을 번쩍 떴다. 아, 너무 피곤했고, 너무 너무 나가기가 싫었지만, 몸자보를 전달해주고 나서 나도 몸을 풀어야 달릴 수 있다. 그냥 대회였다면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혁신파크 투쟁의 일환으로 참여하는 거라 안 나갈 수가 없었다. 이미 다른 동료들은 거리에서 피케팅을 시작했을 시간에 나는 세수만 하고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대회 장소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몸자보를 함께 붙이실 분들에게 전달하고 나도 준비를 시작했다. 피켓팅을 하고 있던 동료 두 명이 와서 도와줬다. 내 등에 몸자보를 달아주고, 배번호표를 앞에 달고 짐을 맡기는 등 준비를 도와줬다. 날이 추워서 손도 시려웠고, 이상하게 옷핀으로 고정하는 일이 잘 안 되었는데, 동료들이 도와주니 금방 해결되었다. 마치 두 명의 매니저가 붙어서 선수를 보좌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암튼 혼자 대회에 나갔던 경험이 기억나서 이렇게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엄청 기분이 좋았다.
지난 번 두 번째 대회의 기록보다 1분을 앞당기는 것이 목표였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았지만, 동료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냈다. 처음부터 조금 오버 페이스로 뛰었다. 반환점까지는 순조롭게 달렸다. 페이스가 나쁘지 않아서 무난히 목표를 달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환점에서 물을 마시는데, 다른 대회와 달리 종이컵이 아닌 플라스틱 컵을 사용했더라. 환경을 생각해서 종이컵을 안 쓴 것은 좋은데, 컵을 담을 통을 조금 더 멀리 뒀으면 좋았을텐데, 가까이에 두는 바람에 뛰다가 멈추고 물을 마셔야 했다. 한번 멈추면 흐름이 끊어지는 법. 게다가 오버 페이스 였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걷게 되었다. 아주 짧은 시간 걷다가 갑자기 목표가 생각났다. 얼른 다시 뛰기 시작했다. 뛰다가 약 6킬로미터 지점에서 한 참가자가 나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면서 작은 소리로 "혁신파크 화이팅!" 이라고 말해줬다. 역시 몸자보를 붙이고 뛴 보람이 있구나. 나는 고맙습니다 하고 크게 소리를 치고 힘을 냈다. 약 7.5킬로미터 지점에서 여러 사람들이 누군가를 보호하듯 둘러싸고 걷는 모습을 보았다. 김미경 구청장과 황영조 씨가 그들 가운데서 걷고 있었다. 에워싸고 걷는 이들은 아마도 공무원들이겠지. 카메라를 든 사람 두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들 무리의 앞으로 가서 김미경 구청장이 내 등에 붙인 몸자보 문구를 읽을 수 있도록 잠시 멈춰섰다. 그런데 내가 멈추자마자 카메라 맨 중 한 명이 나를 제지하며 비키라고 했다. 평소였다면 약간의 실랑이를 벌여서라도 그냥 물러나지는 않았겠지만, 이건 달리기 대회니까 실랑이를 벌이면 무조건 내가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순순히 비키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조금 힘이 빠졌다. 너무 순순히 비켜준 것 같아서 후회한 것이다. 이렇게 되었으니 목표라도 달성하고 싶어서 속력을 올리고 싶었으나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8킬로미터를 지나면서 부터는 체력이 딸린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9킬로미터 지점부터 자세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발바닥이 아팠다. 드디어 저 멀리 결승점이 보였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결승점에 들어서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마치 만세 삼창을 하듯이 "혁신파크 민간 매각 반대"라는 구호를 세 번 크게 외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여기저기서 피켓팅을 하던 동료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여 줬다. 기록을 보니 지난 대회보다 오히려 11초나 더 느렸다. 반환점에서 아주 잠시 걸었던 것과 구청장 앞에 잠시 멈췄던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아니 사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무릎도 안 좋은 상태로, 최악의 컨디션으로 참여했으면서 이 정도 뛰었으면 잘 한거 라고 생각을 바꿨다. 4월 12일에 또 대회에 나가야 하니, 그때는 꼭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 이번에는 2분 줄이는 걸 목표로 달려봐야겠다.
성폭력과 자살
장제원 이라는 정치인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성폭력 사건으로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고 했다. 하! 박원순이 한 짓과 완전히 똑같은 짓을 또 저질렀구나. 이제 뭐 성폭력을 저지른 정치인들의 행동 패턴 같은 것이 되려나. 뭐 그러기엔 안희정은 멀쩡히 잘 있긴 하는구나. 스스로 생각해도 수치스럽고 앞으로 사람들의 비난과 수사를 받는 과정 등을 견디기가 힘들다 생각해서 결국 생을 마감한 것이겠지만, 그 행동은 너무 비겁하다. 살아서 죄값을 치르고 피해자에게 사죄할 생각을 해야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SNS에 박원순을 옹호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다시 나타나더라.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 쓰레기가 쓰레기인 이유는 명확하다.
지브리 풍 그림들
갑자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체의 만화 프로필들이 눈에 뜨기 시작했다. AI가 만들어 준 이미지라고 하더라. 순간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다. 너도 나도 다들 유행처럼 하는 것에 나는 제일 먼저 반감부터 느끼는 사람이다. 남들이 다 본다는 영화는 보기가 싫어지고, 남들이 다 읽는다는 베스트 셀러 도서는 안 읽고 싶어진다. 삐딱한 인간이라 그런가보다. 지브리 풍 그림체라는 것도 누군가 좋아할 수 있고, 그걸 프로필로 쓸 수도 있지만, 너도 나도 다 따라하는 모습은 기괴하다고 느낀다. 저작권 문제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발언들 그리고 에너지 소비 등 많은 의견들이 넘쳐나던데, 그걸 다 떠나서 나는 그냥 사람들이 나도 한 번 해볼까 하고 따라하는 모습 자체가 불편하고 무섭다.
AI가 만든 이미지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딥페이크를 비롯해서 여기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할 말이 많은데.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 오늘은 제주 4.3 기념일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