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진심인 사람들

아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열명 가량의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중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 위엔 짜장면, 탕수육, 고추잡채, 짬뽕, 마파두부덮밥, 깐풍기 등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여 음식을 먹었고, 잔을 들어 술이나 음료를 마셨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내게 토요일은 대개 늦잠을 자는 날이다. 물론 토요일 뿐 아니라 일요일에도 늦잠을 자고, 종종 평일에도 늦잠을 자기도 하지만, 내가 토요일에는 늦잠을 잔다고 일부러 쓴 것은 그날만은 늦잠을 자지 못하고 일찍 일어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멀리 보이는 북한산 족두리봉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식상한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은 공공의 공간인 혁신파크를 우리 시민들에게서 빼앗아 기업에 팔아먹으려는 오세훈 시장의 도둑질을 막기 위한 달리기 행사를 여는 날이었다. 맨처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행사를 기획한 것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쎄 이게 처음 나한테서 싹튼 기획이었다면 분명 그 초기 발아 시점과 과정이 기억에 남아있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아닌 것 같다. 확실히 최근의 나는 누가봐도 달리기에 푹 빠져 사는 것은 맞고, 그래서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운영위원, 아마도 나는 그의 머리에서 최초 발아한 싹이었으리라고 짐작하는데, 그가 아이디어를 내고 다들 재미있겠다고 맞장구를 치면서 아주 빠르게 살을 붙여 완성된 기획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혁신파크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달리기 행사. 나를 비롯한 남성 운영위원 전원이 달리기에 진심이고, 나를 제외하면 제법 달리기 경력을 쌓으신 분들이라는 것도 이 기획을 추진하게 된 이유였다. 한편으로 농성장 지킴이와 금요 집회 두 가지만 형식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현재의 답답한 상황을 재미와 신선함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지역정당 당원들이 앞장서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가고 싶은 희망도 있었다.

홍보를 열심히 했음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우리 소수의 참여자들만이라도 재미있게 신나게 놀아야지 하고 평소와 달리 조금 일찍 일어나며 생각했다. 대충 씻으며 달리리 복장을 머리 속으로 그렸다. 최근에 산 긴팔 런닝복은 몸에 완전히 딱 붙어서 조금 나온 배가 너무 보기 싫게 되지만, 땀을 많이 흘릴 예정이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버스를 탈지 걸어갈지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버스가 막 지나간 것 같아서 걸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걸음이 느려져,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남은 거리는 뛰기로 했다. 마라톤 대회 시작을 앞두고 워밍업으로 달리기를 하듯이 나는 혁신파크까지 남은 거리를 준비운동삼아 달렸다.

농성장 앞에는 예상과 달리 이미 여러 사람들이 와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나를 꼬드겨 9월 초 마라톤 대회에 신청하게 만든, 그래서 내가 장거리 달리기에 푹 빠지게 만든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 운영위원들과 그 형과 내가 있으면 오늘 행사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기획은 한 사람씩 바톤 역할을 할 손피켓을 들고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같이 한번에 달렸고, 그 방식이 서로 힘이 되기도 하고 또 사람들 눈에도 잘 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혼자 보다는 두세명 이상 모여서 뛰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좀 더 자주 이어달리기가 이어지지 못하고 흐름이 끊기는 상황이 생겼다. 그럴 때 아무렇지 않게 손피켓을 들고 뛰어나가면 정말 멋있었겠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 앞에 몇 바퀴를 연속으로 뛰고 나서 지쳐 있었다. 조금만 더 쉬면 다시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못 하겠어.

확실히 나는 아직은 경험과 능력이 부족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건 이제 겨우 3달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전에 3년 넘게 달리기를 해오긴 했지만, 그건 1~2킬로미터 위주의 짧은 달리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한번도 쉬지않고 5킬로미터 이상 달린 경험은 단 한 번 뿐이었다. 그 한 번의 경험을 근거로 10킬로미터 코스를 덜컥 신청해놓고 6킬로미터, 7킬로미터, 8킬로미터, 9킬로미터 이렇게 거리를 늘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체력도 경험도 부족한 상태로 9월 초 첫 대회를 치렀다. 정말 힘들었는데, 또 그것이 무척 인상적인 경험이었고, 그 힘든 조건을 무릅쓰고 썩 나쁘지 않은 기록으로 완주를 했다는 것에 스스로 조금은 감동했다. 재미있는 상황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오기가 생겼다. 이렇게 된 이상 올해 안에 한번 더 대회를 나가서 내가 만족할만한 기록을 세우고 싶었다. 대회에서 딱 한번 10킬로미터를 뛰어봤을 뿐이지만, 이제 10킬로 정도는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꾸준히 뛰기 시작했다. 달리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즐겁고 재미있었으니 이렇게 열심히 달린 것이 아닌가 싶다. 가끔 피우던 담배도 아주 손을 떼고, 3달 동안 열심히 달려서 올해 안에 달성하고 싶었던 목표, 페이스 600으로 10킬로를 완주하는 일을 최근에 달성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15킬로를 완주했다. 15킬로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페이스 541. 600페이스, 즉, 1시간 30분 안에만 들어오면 괜찮을텐데라고 생각한 것에 비하면 꽤나 성공적인 결과였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제일 뿌듯한 것은 15킬로를 달리는 동안 단 한번도 쉬거나 걷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간에 화장실을 한번 다녀왔지만, 이건 생리현상이니까 예외로 두자. 그래서 그날 지난 3달 간의 내 노력이 성과를 맺었다고 생각해서 보람을 느꼈었다.

그런데 이번 혁신파크 공공성 지키기 위한 달리기 행사에선 다시 좀 한계를 느꼈다. 일단 함께 뛰는 사람들이 달리기 내공이 장난 아닌 분들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풀코스를 여러차례 완주한 분들이시고, 이미 달려온 세월이 몇 년씩 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나보다 훨씬 안정적인 자세로 조금 더 빠른 페이스로 잘 달리는 모습이었다. 같이 달리며 따라가는 것이 조금 벅찬 달리기를 계속 해온 셈이니 내게는 벽이고, 한계였던 것이다.

이날 행사는 정말 힘들었지만, 온화하고 멋진 날씨 만큼이나 신나고 재미있었다. 9시부터 13시까지 4시간 동안 총 24개의 생명이 참여했고, 한바퀴에 700미터인 코스를 총 120회 돌아서 84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렸다. 24개의 생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사람이 21명, 강아지가 3마리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달렸지만, 몇몇 사람들은 걸었고, 강아지들도 걸었다. 더 소수의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혁신파크를 돌았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이 공적 공간을 민간에 팔아먹도록 허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외치고 알렸다.

행사를 마치자마자 다들 다음 행사는 또 언제 할거냐고 물었다. 이건 정기적으로 기획한 건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금방 다시 추진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다들 정말 이 달리리를 즐겼기 때문에 또 하자는 마음이 들었으리라. 지치고 힘들지만 마음은 벅찬 상태로 우리는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배를 채우러 움직였다. 그리고 맨처음 말한 것 처럼 그 자리에서 큰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 그리고 독서

아마 수요일 저녁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뭔가 상한 음식을 먹은 것 같다고 하고 병원에 갔고, 장염이라고 진단을 받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고 했다. 그러고 하루이틀 지나면 낫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낫지 않고 계속 더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토요일에 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아이는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에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아마 토요일 밤에 아이랑 같이 있어준 애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 작은 아이를 챙기고, 좀 쉬고, 일도 하기 위해 내가 교대해주길 원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가야할 일이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떴을때 몸이 무겁고 이래저래 조금씩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이가 기다릴 거라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움직여 씻고 준비를 했지만, 음, 쉽지 않았다.

버스를 갈아타면서 파주로 가는 빨간 버스를 간발의 차로 놓쳤다. 이런 순간들이 가장 힘빠진다. 겨우 1~2분, 어쩔 때에는 3~40초 차이로 버스가 출발하는 걸 신호에 걸려 쳐다만 봐야만 할 때. 버스 도착 알림 전광판을 보니 다음 버스는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가까운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목이 말라 뭔가를 마시고 싶었다. 일단 탄산음료는 좋아하지 않으니 배제. 주스류도 너무 달아서 통과. 마땅히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러다 평소라면 아에 쳐다보지 않았을 커피 쪽으로 갔다.

나는 우유를 못 마시는 사람이다. 그 분해효소가 없는 거겠지. 우유를 강제로 먹였던 국민학교 시절과 군대에서 엄청 괴로웠지만, 제대한 이후로는 한번도 먹지 않았다. 내게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마치 외계인처럼 신기한 존재다. 그리고 커피 역시 내게는 우유만큼은 아니라도 몸에서 잘 받지 않는 음료다. 커피만 마시면 소화가 잘 안된다는 것을 안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마치 물처럼 아메리카노를 마셔대던 친구들 덕분에 나도 종종 같이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했다. 몇 번 같은 문제를 겪으며 원인이 커피일거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마시지 않으려 했다. 사실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상관 없었다. 그런데 살다보면 커피가 꼭 필요하거나 땡기는 순간들이 있다. 우유와는 달리 커피는 가끔 먹게 된다. 가령 밤새 야근을 하고 아침 일찍 취재나 출장을 가기위해 운전을 해야한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졸음 운전을 피하기위해서는 커피를 마셔야했다.

그 순간이 그랬다. 약간의 두통과 몸 전반적인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 때문에 내 두뇌는 본능적으로 커피로 눈을 돌렸다.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메리카노는 그닥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콜드브류 커피는 또 취향에 맞았는데, 냉장고 한 구석에 콜드브류 커피가 있었다. 게다가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평소에 커피를 잘 마시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콜드브류 커피 두 개를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나는 커피를 마시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콜드브류 커피 특유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셨다. 버스를 기다리는 20분 남짓한 시간에 벌써 각성효과가 나타나 두통이 사라지고, 컨디션도 조금은 좋아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제2 자유로를 30분 조금 넘게 달려 파주에 도착했다.

아이는 병실에서 몰골이 말이 아닌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몇가지 잔 심부름을 시켰다. 부모로서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아이가 아픈 것이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내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이 나왔다. 아이는 장염이라서 죽 한 그릇과 간장 그리고 동치미가 나왔다. 아이는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죽을 조금 정말 아주 조금 깔짝대다가 다시 뚜껑을 덮었다. 10분의 1은 커녕 맨 위의 건더기 몇 알만 건져 먹었을까. 약 먹어야 하니 조금만 더 먹자고 해도 속이 안 좋다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며칠간 설사와 복통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얘기했다.

차라리 잠을 자면 괜찮지만, 깨어있는 시간동안 아이는 심심해했다. 요즘 아이답게 휴대폰으로 각종 짧은 영상 보기를 즐기는 아이는 토요일 반나절만에 데이터를 다 써버렸다고 내게 데이터 쿠폰을 구해달라고 했다. 나는 쿠폰을 구해준 후에 심심하면 책을 읽으라고 했다. 아이는 책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나도 앗차 싶었다. 왜 책을 챙겨올 생각을 못 했을까? 아침에 내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는 증거라 여겼다. 나는 조금 고민끝에 병원에서 가까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에 있는 아이의 자치방에 가서 책과 필요한 물품들을 갖다주기로 했다. 아이의 자치방은 버스를 타기에는 노선과 배차시간이 애매하고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곳에 있었다. 이럴 때 내 선택은 언제나 걷는 것이다.

아이의 방에 도착해보니 아파서 괴로워하다가 급하게 병원으로 간 흔적이 역력했다. 방을 좀 치워줄까 하다가 아이가 싫어할까봐 그냥 필요하다는 물건들을 먼저 찾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을 좀 챙기려는데, 책상 위에는 시집들이 여럿 보였는데, 소설은 한 권 밖에 없었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이었다. 책을 집어보니 아이는 이미 다 읽은 상태였다. 여기저기 책갈피 테이프를 붙여놓았고, 해당 페이지들을 열어보니 밑줄도 많이 그어져있었다. 아이가 읽을 책을 갖다주려 했는데, 이미 읽은 책 밖에 없었다. 아이와 통화해서 시집을 세권 챙기고 내가 읽으려고 하나밖에 없는 소설을 챙겼다. 나중에 아이에겐 엄마랑 연락해서 집에서 책을 갖다달라고 하라고 당부했다.

아이는 내가 처음 도착했던 오전과 달리 오후에 낮잠을 잘 잔 후로는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복통도 많이 가라앉은 듯하고 설사도 멈췄다. 저녁으로 나온 죽은 거의 절반을 먹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한결 나아진 모습을 보고 조금 안심했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좀 챙겨준 뒤 본격적으로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속이 답답한 것이 뭘 먹은 것도 없는데,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 책에 집중하다가도 가끔 속이 불편한 느낌 때문에 좀 짜증이 났다. 그때 그 커피가 든 병이 보였다. 아, 아까 커피를 마시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장염을 앓고 있는 아이도 그리고 나도 둘 다 소화가 잘 되지않아 고통받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에휴!


이 뒤는 책 이야기인데, 이것도 엄청 내용이 길어질 예정이다. 할말이 너무 많은데, 얼마나 어느 정도로 할지 모르겠다.

첫 단편인 [재희]는 이미 영화로 본 내용이었다. 물론 영화는 약간의 각색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 책의 재희와 영화의 재희는 약간 느낌이 달랐다. 책의 재희는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그 재희는 아닌 것 같았다. 같거나 비슷한 행동과 대사였지만, 그렇게 느꼈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나름의 매력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반면 주인공인 영은 소설 쪽이 훨씬 더 살아있는 느낌이고, 영화에서는 억지스럽거나 무리한 측면이 좀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뒷 편에 나올 카일리 이야기를 위해 군대에서 6개월만에 의병 제대를 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영화에선 없다.

아, 영화가 이 소설집에서 첫 단편 [재희]만 갖다 썼다면, 전체 이야기를 다 써서 드라마도 나왔다고 들었다. 이제 이 책을 다 읽었으니, 드라마와도 비교해봐도 재미있겠구나 싶다.

두번째 단편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내용인데, 하아, 이걸 다 어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분명 이 책에 실린 4편 중에 가장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무게 중심이 여기에 확 쏠리는 느낌이다. 작가가 혹은 출판사가 표제작으로 삼은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남자가 나오고, 그와의 사랑 이야기가 잘 구성된 흐름 속에 녹아있어 좋은 글이지만, 그리고 카일리라고 이름 붙인 그 문제의 병을 지금껏 단 한번도 보지 못한 특유의 태도로 대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두번째 단편보다는 비중이 약하다고 느낀다.

어쨌거나 두번째 단편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가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도 문제라고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 영이 신랄하게 까고 있는 그 중년의 운동권 출신 찌질한 남성이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사회적인 위치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거의 정신병 취급하는 그 남자 특유의 말들. 철학과 사상과 신념들. 그것 것들을 이렇게까지 나쁜 것처럼 취급하는 태도에 결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짐작할 수 있다. 마치 클리셰처럼 띠동갑 커플을 설정해 세대 갈등으로 인한 블래코메디와 풍자를 깔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 NL, 학생회장 출신 운동권, 종북좌파 라는 설정 역시 깔 것이 많은 적절한 씹을 거리가 되어줄테니 안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총련 사태를 경험한 마지막 운동권, 미행과 감청, 압구정 부유한 집안 출신, 출판사 외주 편집자라는 설정까지 얼핏보면 엄청나게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인물을 마치 유령과도 같은 과거의 유물이자, 이제는 쓸모없는 혹은 얼른 자리를 내주고 비켜야하는 똥차 같은 것으로 취급하며 조롱하고 모욕한다. 특히 해당 인물이 네번 합쳐서 약 72시간 구치소에 머물렀고,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니고 장판이 깔린 옥사에 누워있다 나왔는데 허리와 목이 안 좋다는 후유증 얘기를 한다고 표현한 장면에서 할말을 잃었다. 만약 네차례 연행을 당했다면, 그 네번 모두 적지않을 수준의 구타를 당했을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 필요 이상의 폭행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부상을 입는다. 그 과정에서 허리나 목이 아플 수 있다는 설정을 과연 작가가 안 했을까? 그런데 그저 누워만 있다 나왔으면서 무슨 후유증이라고 썼을까?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이 이 띠동갑 운동권 출신 꼰대를 이렇게 어이없고 사소한 것으로 비꼬는 것이 이 소설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95학번이고, 짧은 기간 PD계열 학생회 활동을 했었다. NL들과는 생각하는 방식과 기본으로 깔고가는 대전제가 달라서 함께하기가 피곤하다 여겼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는 같이 가야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내 태도는 나중에 NL과 PD 양쪽 모두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나는 결국 학생운동 판에서 퇴장하고 시민운동으로 경로를 바꿨다. 새만금, 경부고속철도 이 두가지 거대한 국책사업이라는 환경 파괴에 맞섰고, 평택미군기지 조성 초기에 강하게 반발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나도 잘 믿기지 않는데, 이때 실제로 미행도 당했다. 한미FTA반대 범국본 시절에는 내가 도청을 당하진 않았지만, 범국본 내에서 나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선배 활동가가 도청을 당한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도청당하는 것을 역이용하기도 했었다. 그게 2006년 일이었으니 이 작가가 도청과 미행을 마치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먼 과거의 잔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적절한지 물어보고 싶다.

이 학생회장 출신 출판 외주편집자라는 인물과 나는 같은 학번에 학생운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고, 출판계에 몸 담았다는 것도 같다. 미제국주의라는 단어를 썼고, 성조기를 싫어했으며, 철학 책을 좋아했고, 뭔가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꼰대라는 것도 같다. 차이점은 나는 종북좌파는 아니었다는 점, 이 인물은 출판계에 종사하며 더는 사회운동을 안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운동판에 속해있고 앞으로도 계속 운동을 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나는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겠다. 물론 디테일하게 따지면 수없이 더 많겠지만, 그렇다.

한때 우리 세대가 386부터 586까지 그들 나이 앞자리 수에 빗대어 꼰대로 불렀던 그 세대를 비꼬고 비판한 것처럼, 우리 아래 세대도 X세대를 꼰대 취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 이것 까지는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사회를 바꿔보려는 수많은 노력들이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운동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단순하게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이 인물이 과연 필요한가 모르겠다. 이 두번째 단편의 핵심 주제는 어머니와의 관계다. 그런데 작가는 이 글의 첫 시작을 정말 사랑했다는 이 남자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떡밥으로 자신이 준 일기의 교정본과 메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 인물이 주인공에게 교정지를 왜 굳이 5년이나 지나서 주었는지, 만나서 주고 싶다고 한 것은 무었이었는지, 왜 5년이나 지나서 자신이 못 지켰던 약속을 지키겠다고 나선 것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는 어머니와의 이야기와 이 남자와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과거로 갔다가 현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 인물이 이 이야기에 꼭 필요하고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었다면, 앞에 저 의문들은 왜 해소하지 않고 그냥 글을 닫았을까? 애초에 띠동갑에 꼰대인 아저씨를 왜 그렇게까지 사랑했을까? 아니 사랑에는 이유가 없을 수 있겠지, 하지만 이 인물을 알아나가면서 결국은 헤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주인공이 그만큼, 그러니까 음독자살을 시도할만큼 그렇게 계속 좋아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음은 주인공이 이 인물을 보며 생각한 표현들이다. 개떡같은(105쪽), 약간 맛이 간 것 같기도(105쪽), 정체불명ㅇ이 종교단체에 속한 사람인가?(105쪽),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도 안 궁금하고 안 중요해 보이는 얘기를 줄줄 이어나갔고(110쪽), 아는 형님에 요즘 애들이라니 단어 선택이 퍽이나 꼰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118쪽), 고문을 당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장판이 깔린 옥사에서 누워 있다 나온 거였다.(139쪽), 감옥에서 나올 때마다 몸에 새로운 문신을 새겼다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때면 그 문신을 다시 새로운 문신으로 덮었다는 얘기를 들을 땐 우주를 표류하는 것처럼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139쪽), 반지하방에서 섹스를 한 뒤 전직 운동권 학생회장의 후일담을 듣는 내 모습이 지독히도 80년대 후일담 소설 같아(139쪽), 이야기가 거기까지 흘러가자 나는 정말 이게 뭔 소리인가, 하는 기분에 사로잡혔고(140쪽), 지금은 그냥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저자 욕이나 하며 맞춤법을 고치는 별 볼 일 없는 남자잖아요.(141쪽), 나한테 이런 헛소리를 할수 있는 거겠죠.(141쪽), 당신의 뇌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141쪽)

물론 주인공이 이 인물을 왜 좋아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표현한 내용이 훨씬 더 많고, 좋은 표현이라 생각할만큼 괜찮은 것들도 많다. 아무리 사랑이라는 감정이 혼란스럽고, 충동적이고, 맹목적이라고 해도 왜 주인공이 이러는지 모르겠다. 물론 알 수없다. 당연히! 나는 주인공이 아니고,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처음 읽을 때에는 이런 것이 운명적인 사랑인가 싶었던 것이 다시 보니 이건 주인공도 저 인물도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미쳤거나, 아니면 각자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감정만 바라본 거였네. 까지는 납득이 간다. 그런데 이 사랑이야기를 이런 관점에서 보려면 어떻게든 이 연인의 현재 시점 이야기를 잘 마무리 했어야 했다.

음, 역시 나도 표현의 한계를 느낀다. 내 생각과 내가 주로 쓰는 단어는 딱 여기까지인 것 같다. 어쩌다 비판적인 내용을 더 많이 쓴 것 같은데, 책은 엄청 좋았다. 네 작품 모두 일정하게 현실과 이상과 괴리와 편견이 섞여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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