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난 오늘˝ 메뉴를 열어 과거 오늘 쓴 글들을 보면 유난히 더위와 폭염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2018년은 더욱 많았다. 그 해는 기상청에서 밝힌 역대 두 번째로 더웠던 여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해 나는 기후위기 강의를 하러 여기저기 불려다녔는데, 실제로 여름에 강의를 했을 당시에 참가자들의 호응이 컸다.

역대 가장 더운 해였다는 1994년은 이상하게 내 기억에 더위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학교라고 부르고 감옥이라고 느껴야하는 갇혀있는 삶을 살았던 마지막 해였고, 폭력사건에 휘말려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야 했던 시간들이 바로 그해 늦봄에서 초여름이었다. 뒤돌아보니 그랬다. 그 시절에 나는 그냥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폭염도 뭐도 그냥 다 신경쓰지 못하고 지냈나보다. 그저 원했던 것은 하루라도 빨리 이 감옥 같은 학교를 졸업하는 일 뿐이었다. 하긴 그 시절의 교실에는 겨우 벽걸이 선풍기 여섯대 정도가 더운 바람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고, 에어컨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기에 아무리 더워도 그냥 덥구나. 하고 말았을 것 같기는 하다.

아, 그런데 올해 여름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이미 에어컨이라는 신문물에 익숙해진지 오래인 이 몸은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생활을 창고 지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어차피 더우니 아예 옷을 벗고 운동을 하고 땀을 씻고 개운한 기분을 느끼면 되리라 여겨 그렇게 지냈다. 땀을 씻고 그 개운한 느낌을 느끼는 것 까지는 정말 좋은데, 그러고 나와서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사실 깨어있을 때에는 뭐 어차피 더위를 피할 수 없으니 그냥 땀을 닦으며 견디다가 못 견디겠으면 찬물을 뒤집어쓰고 선풍기 앞에서 버티면 그나마 버틸만 했다. 문제는 밤이다. 밤에 잠을 자야 다음날 활동을 할텐데, 무더위와 높은 습도 때문에 잠이 들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뜬 눈으로 물을 뒤집어 쓰고 선풍기 앞에 버티기를 반복하다가 피로에 지쳐 기절하듯 잠이 들어야 겨우 두세시간 잠을 잘 수 있었다.

도저히 이렇게는 지낼 수 없다 싶어서 동네 혼자 사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더워서 못 견딜 것 같으면 언제든 오라고 한 친구 집에서 3일을 내리 머물렀다. 마지막 3일째에도 그는 저녁에 또 올 것인지를 물었다. 그저 올 거라면 같이 저녁을 먹을 것인지 등을 이야기하기 위해 물은 것이다. 아마 더 오래 머물렀어도 그는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날 밤은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 정말 내가 이래서 집을 떠나있었지! 하고 다시 깨달았다. 새벽까지 이러다 쓰러져 잠들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도저히 못 견디고 사무실로 피난을 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에어컨을 켜고 온도를 높이고 바람의 세기를 낮추고 반대편에 선풍기를 세팅하고 맨 바닥에 종이박스와 스티로폼 판대기를 깔고 누웠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깨도록 알람을 맞춰두고 누워있었는데,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들 때문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깼는데, 딱 2시간 반 정도 잤더라. 그런데 그 잠이 너무나도 달고 개운했다.

또 다른 친구에게서는 가끔 주말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연락이 오곤 한다. 그런 날 자연스럽게 그 친구 집으로 가서 거기서 자고, 어떻게 핑계를 대서 하루 정도 더 머무리기도 했다. 물론 이 친구도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얼마든지 재워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저 그 연락을 하는 타이밍이 좀 안 맞았을 뿐.

지금은 아이들과 부산에 와있다. 부모님께서는 긴 폭염에도 에어컨을 안 켜고 버티시다가 아들과 손주들이 오고서야 에어컨을 켜셨다. 내가 에어컨을 쓰면서도 전기요금 덜 나오는 방법을 알려드려도 소용없다. 암튼 그래서 어제 밤은 시원하게 잘 잤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28도나 29도로 높이고, 바람 세기는 제일 약하게 해두면 실외기가 일을 적게한다. 그렇게 긴 시간 켜놓아도 전기요금은 적게 나온다. 물론 에어컨의 수명과 기종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어제 아이들과 부산행 기차를 탈 때 조금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아침에 늦지 않게 출발해야 한다고 여러번 신신당부를 해놓고 일부러 기차 시간보다 훨씬 여유있게 약속을 잡아놓았는데, 역시 아이들은 늦게 왔다. 아직은 조금의 여유가 있다고 여겨 아이들을 안심 시켰는데, 전철을 갈아타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환승통로가 너무 멀어서 다음 열차를 놓칠 위기에 처했다. 나는 순간 판단을 잘 못하여 뛰면 탈 수 있을 줄 알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또 손에도 든 채로 아이들에게 뛰라고 했는데, 결국 눈 앞에서 열차를 놓쳤다. 이젠 정말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무거운 짐들을 들고 뛰었던 나와 아이들은 이미 완전히 땀에 젖고 지쳐있었다. 아직 오전이었는데 실외 공간이었던 전철역은 완전 찜통이었다.

간신히 기차 시간에 맞춰 타고 부산으로 오니 부산은 더 더웠다. 그야말로 불볕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기간동안 아이들과 뭘 하고 놀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면서 집에 그냥 머물기를 원했다. 음, 이정도 더위라면 진짜 그게 나으려나 모르겠다. 암튼 정신 없었던 휴가 첫 날을 어찌어찌 지나고 이제 둘째 날 아침이다. 오늘은 저녁에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볼 예정이고 운 좋게도 꼭 원했던 1루 내야 좋은 자리를 구했었다. 큰 아이가 가장 기대하는 일이다. 비록 엄청 더울 테지만, 맛있는 것 먹고 재밌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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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08-08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4년의 폭염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점심식사후 강제로 주어지던 두 시간의 오침 때문입니다. 두 시간의 오침후 한 시간의 전투 수영, 그리고 해질녘까지 이어지던 전투 축구. 군바리가 아닌 태능선수촌 선수처럼 보낸 그해 팔월은 이십대이후 가장 더웠던 시절입니다.

감은빛 2024-08-19 18:06   좋아요 0 | URL
어우! 그 더위를 국가대표 선수처럼 보내셨다니, 대단하시다는 생각과 함께 얼마나 힘드셨을지 상상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점심식사 후 두 시간의 오침은 좋은데요. 군대 있을 때는 철책선에서 야간 경계근무 섰던 시절 날들을 제외하면 꿈도 못 꿀 일이었어요.

그나저나 며칠이 휙 지나는 동안 서울의 열대야 기록이 기상관측사상 가장 길게 이어지는 것으로 발표가 났네요. 정말 사람 잡는 더위입니다.


희선 2024-08-18 0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여름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이번 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더 덥군요 더워서 그런지 조금 어지럽기도 하고... 부산은 이번 여름 아주 덥겠습니다 더운 낮에는 바깥에 나가지 않는 게 좋죠 조금 시원해지려나 했는데, 다시 더워진 느낌도 듭니다 덥다 해도 여름 가겠지요 지금은 부산에서 돌아오셨겠네요 감은빛 님 두 따님과 좋은 시간 보냈기를 바랍니다


희선

감은빛 2024-08-19 18:08   좋아요 1 | URL
부산도 서울도 둘 다 엄청 덥네요. 두 도시 모두 기상관측 이래 최장 기간 열대야 기록을 세웠다고 해요. 참 올해도 더위 때문에 너무 힘드네요.

희선님, 덕분에 아이들과 즐거운 휴가 보내고 잘 돌아왔어요. 일상으로 돌아오면 일상에 적응을 해야 할텐데, 자꾸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