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원생 인터뷰


한국 대학원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 학생들의 인터뷰는 여러 번 했었다. 다 기억도 못할 정도로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 자료도 많이 챙겨줬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는지 몰라도 일본 나고야 대학 환경대학원 학생이라고 하면서 인터뷰 요청이 이메일로 왔다. 메일을 받자마자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했는데, 그 학생이 중간에 영어 기사 하나를 링크로 보내줬다. 열어보니 내 이름과 활동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싶었던 것이,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그 영어 기사를 썼다는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언론 인터뷰도 제법 많이 했었는데,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도 대체로 이름을 보면 아, 그때 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이긴 한데, 이 영어 기사를 쓴 한국인 기자 이름은 너무 낯설었다. 게다가 그 내용도 낯설었고, 심지어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영어 기사만을 쓰기 위해 나를 인터뷰 했을 리는 없을테고, 같은 내용의 한글 기사를 영어로도 올린 것일텐데, 검색해봐도 그 기자 이름으로 된 한글 인터뷰 기사는 없었다. 나를 인터뷰 한 기자가 기사를 올리기 전에 나에게 최종적으로 사실관계 확인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런 요청이 있었다면 저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을 그대로 뒀을 리는 없다.


내 생각에는 다른 인터뷰 기사와 내가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저 기자가 영문 기사를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암튼 그 영문 기사 덕분에 일본 대학원생이 나와 우리 조합의 활동 내용을 알게 되었고, 내게 인터뷰 요청을 해온 것이다. 나는 당연히 인터뷰에 응했고, 사전에 질문지를 보내주길래, 아주 꼼꼼하게 상세하게 답변을 달아서 미리 보내줬다. 질문들이 조금 평이했고, 구체적이지 못하고 일반적인 내용도 있어서, 그냥 간단히 답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있어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달았다. 그래서 답변을 적은 문서가 7쪽이 넘는 분량이 나왔다. 


다만 이 답변을 영어로 작성할 정도의 여유는 없어서 그냥 한글로 적었는데, 그 대학원생들이 일본어로 다시 번역하는데 애를 먹었을 것 같다. 물론 요즘은 번역기가 잘 되어 있긴 한데, 일상 용어가 아닌 전문 용어들의 번역은 또 그리 신통치 않은 것 같아서 세세하게 더 찾아보고 교차 검증을 해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쪽에서 일본어 원문과 함께 영어와 한글로 질문을 적어줬길래, 한글 질문이 좀 애매하거나 이상한 문맥이 있어서 문장 단위로 교차 검증을 하면서 정확한 질문을 파악했었다.


예전에 일본 대학생들하고 국제교류행사를 준비할 때에나, 출판사에 있을 당시에 해외에서 도서 주문이 오면 모두 영어로 소통했었는데, 그건 젊은 시절이었으니 가능했던 것 같다. 이젠 영어로 문장을 쓰려니 도무지 자신이 없다. 답장을 보내면서 한글로만 적어 보내서 미안하다고 언급했다. 관련 참고자료를 좀 챙겨서 보냈느데, 그것들도 모두 한글 자료라 미안하다고 했다. 다행히 인터뷰 하러 올 때에는 한국인 교수와 함께 올 예정이며 그 분이 통역을 맡아주실 거라고 답이 왔다.


그렇게 서로 이메일로 소통한 것이 지난 달 중순부터 지난 주 까지였다. 내가 미리 답변서를 자세하게 써서 보낼 것을 그쪽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무척 놀라며 매우 고맙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나 대학원생들에게 사전에 질문지를 받으면 늘 미리 답변서를 보냈었다. 그래야 인터뷰 당일 더 구체적인 내용들을 설명할 수 있고, 보다 정확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이번에는 특히 내가 일본어를 모르고, 그쪽은 한국어를 모르는 입장이라 아무리 통역이 있어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더 자세하게 써서 보낸 것 뿐이다.


그리고 오늘 일본 대학원생 10명과 한국인 교수 한 분이 왔다. 대학원생 10명 중에는 인도에서 유학원 학생 한 명과 이스라엘에서 유학원 학생 한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우리 조합에서 운영하는 제로웨이스트 매장을 꼼꼼히 둘러본 후에 내가 매장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했고, 지하 교육장으로 이동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맨 처음에는 5명의 학생과 한국인 교수 한 분이 오실거라고 해서 매장에 있는 테이블에서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학생이 10명으로 늘어난다고 연락이 왔다. 매장 내 테이블에는 최대 7명 정도까지 앉을 수 있어서 6명이 오는 건 괜찮은데, 11명은 도저히 앉을 수 없어서 어쩔수 없이 인터뷰 장소를 지하로 옮겼다.


인터뷰 때는 일본어와 영어로 질문이 오면 통역하시는 교수님이 우리말로 옮겨주셨고, 나는 우리말로 답하고 다시 교수님이 영어와 일본어로 옮겨 주셨다. 간단한 답변은 영어로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역시 일상적으로 쓰지 않으면 말이 잘 나오지 않더라. 그대로 일본어와 영어 모두 흥미를 가지고 익히려고 노력했던 말들이라서 들으면서 조금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평소 좀 더 열심히 익혔다면, 더 잘 알아듣고, 간단하게 답변도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금방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리 쉽게 될 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즐거운 경험이었고,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일본인들은 정말 계속 반복적으로 감사합니다! 를 얘기하더라. 대체 얼마나 많은 감사합니다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내게 이메일을 보낸 후에 계속 소통했던 대학원생은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을 병행하는 사람인데 정말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고 한국인 교수님이 칭찬을 여러 번 했다. 인터뷰 할 때에도 내 옆에 앉아서 번역 앱으로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글로 변환하여 폰을 보여주곤 했다.


인터뷰까지 공식 일정을 다 마치고 학생들이 매장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는 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 소통해왔던 학생을 포함해 한 두 학생과 개인적인 대화를 좀 나누고 싶었다. 가능하면 일본어로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하아! 정말 간단한 몇 가지 표현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말을 건 후에 하고 싶은 말은 영어로 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온 한국인 교수님은 이렇게 친절하게 잘 해주실 줄 몰랐다면서 다음에는 정식으로 강의를 편성해서 강사비도 책정해서 오겠다고 했다. 계속 교류하면서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예전에 프랑스 르망 대학교 교수님이 한국 협동조합 전공 교수님과 함께 와서 인터뷰를 했던 것이 외국인과 인터뷰 첫 경험이었는데, 이번이 두번째가 되었다. 그때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교수님이라고 들었고, 통역하러 함께 오시는 한국 교수님도 엄청 유명하신 분이어서 (게다가 엄청 깐깐하신 분이셔서) 긴장을 좀 많이 했었다. 이번에는 대학원생들이 오는 거라서 긴장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준비를 미리 다 해뒀기 때문에 아주 여유있게, 편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질문에 답을 했다.


다음에 또 만날 기회가 되면 아예 ppt 로 시각 자료를 띄워놓고 강의나 발표 형식으로 설명하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과 작별하면서 여러번 말한 것처럼 이 교류가 단발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있기를 바란다.


안면도


주말에 아이들과 안면도에 다녀왔다. 모처럼 일 없이 쉬는 주말이기도 했고, 아이들과 아무 생각없이 어디 놀러 가고 싶기도 했다. 친한 후배가 매년 연말 회사에서 숙박비로 쓴 경비를 정산해서 돌려받기 때문에 겨울마다 친한 사람들에게 숙소를 끊어 주곤 한다. 몇 해 전에는 그 비용으로 친한 선후배들 모아서 놀러 다녀오기도 했었다. 올해는 수능 시험을 본 우리 큰 아이를 위해 선물하고 싶다고 나에게 숙소를 예매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온양온천 쪽에 숙소를 잡아달라고 했는데, 그쪽은 지금이 성수기인지 여의치 않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무데나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잡아 달라고 했더니 안면도의 해안가 펜션을 잡아주었다.


아이들이 오전엔 늦잠을 자는 편이라 점심때가 지나 데리러 갔고,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 조금 기다렸다 출발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가 제법 막혀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해질 무렵이 다 되어 있었다. 나는 금요일 밤새 일을 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에너지 음료와 커피를 들이붓고 운전을 시작했다. 혹시 졸릴지 몰라서 입에 씹을 사탕과 초콜릿을 미리 챙겨두었다. 도로를 달리면 졸립지 않은데, 차가 막혀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뒷좌석에서 자고 있었다. 누가 말을 붙여 줄 사람도 없고, 음악을 틀어놓아도 졸리긴 마찬가지였다. 사탕을 입에 넣고 간신히 졸음을 쫓으며 운전했다. 막히는 구간을 벗어나자 다시 금방 졸음이 달아났고, 또 막히는 구간이 오면 그땐 사탕의 힘으로 버텨서 졸음 때문에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전에 출판사에 다닐 때에는 정말 피곤한 상태로 운전하는 일이 잦았다. 욕심이 많아서 영업과 편집을 같이 했는데, 낮에는 영업하러 다니고, 밤에는 교정교열을 보느라 밤을 새곤 했다. 그런다고 월급을 더 받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정말! 그때 졸음을 쫓기에 좋은 여러 방법들을 많이 시도해봤다. 내 결론은 작은 사탕이나 초콜릿이었다. 평소라면 달아서 입에도 대지 않는 것들이지만, 운전할 때 입에 넣으면 졸음이 싹 달아났다. 그래서 그 후로 그리 피곤한 상태가 아니라도 운전할 때에는 그런 것들을 꼭 챙기는 편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조금 쉬니 해가 졌다. 창 밖으로 일몰 모습이 정말 멋졌다. 저녁을 먹기 위해 차를 타고 조금 이동해 식당을 찾았다. 저녁을 먹고 미리 검색해 둔 카트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웠다. 전화로 미리 물어보니 해가 져도 라이트를 켜 둬서 운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부터 체험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 모두 따로 운전을 해볼 수 있었다. 카트를 운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핸들이 엄청 무거워서 (즉 파워핸들이 아니라서) 힘을 계속 주고 돌려야 했고, 엑셀과 브레이크가 모두 힘껏 밟아야 해서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큰 아이는 그래도 재미있어 하고 금방 적응해서 운전을 잘 했다. 아주 작은 자동차 경주 트랙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작은 아이는 타기 전부터 무서워하며 걱정을 많이 했고, 타고 나서도 차가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 않아서 무서워했다. 재미를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초반에 일부러 작은 아이 뒤쪽에서 아이를 응원하며 몇 가지 요령을 알려주고 칭찬해주며 뒤따라 갔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집중하느라 힘든데 내가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이 오히려 방해되는 것 처럼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아이를 믿고 그냥 내 페이스대로 즐겼다.


최고 속력이 약 40킬로미터 까지 나오는 작은 카트를 크게 커브를 돌아야 하는 트랙으로 모는 일은 스릴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다만 엔진 소음이 제법 컸고, 해 떨어진 이후라 찬 바람이 제법 불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트랙을 몇 바퀴 돌고 나니 손도 시렵고, 몸도 좀 추웠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이들이 늦게까지 놀도록 내버려뒀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고 아이들은 과자 먹으며 늦게까지 놀았을 것이다. 다음날 조금 늦잠을 자고 일어나 숙소 정리를 하고 나와서 미로 공원에 갔다. 미로 공원은 제법 넓은 부지에 요일마다 돌아가면서 6개의 코스로 운영을 한다고 했다. 재미있었다. 나는 일부러 아이들을 앞세워 알아서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아이들이 이끄는대로 그냥 따라만 다녔다. 아이들은 중간에 좀 길을 헤매였으나 나중에는 어렵지 않게 길을 찾았다. 미로 곳곳에 스탬프를 찍는 거점이 4개 있었는데, 그걸 다 찍고 나가려면 좀 헤맬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스탬프 4개를 다 찍고 미로를 빠져나왔다.


점심으로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 좀 돌아다녔다. 아이들 입맛에 딱 맞는 식당이 별로 없었다. 제법 오래 식당을 찾아서 차를 몰고 다니다가 지칠 무렵에 전라도 밥상이란 식당이 눈에 보이길래 전라도식 백반을 떠올려 들어갔는데, 간장게장 정식집이었다. 아이들은 간장게장을 안 먹어봤으니 먹어보면 맛있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좀 비싸도 정식을 주문했는데, 대실패였다. 아이들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나만 혼자 3인분의 간장게장과 양념게장과 대하장을 다 먹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다른 반찬으로 밥을 맛있게 먹었다. 뭐 결과적으로 맛있게 먹었으니 됐지 뭐. 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저녁 늦게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밤이었다. 야간 운전 때문에 좀 피곤했다. 정말 딱 씻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


이번 주도 일정이 많고 준비해야 할 일들도 많다. 무사히 잘 보내길 바라며,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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