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자


또 누군가에게 '완벽주의자'라는 얘길 들었다. 지역의 중요한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회의에서 경험이 많아서 사람들을 척 보고 그 사람의 성향을 통찰력으로 파악하는 분을 만났다. 그날 회의에 어느 분이 못 나와서 사전에 합의된 준비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져서 몇몇 분들이 평소 그 분이 좀 미덥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날 못 나온 사람을 딱 한 마디로 설명했는데, 다들 그 말에 동의하고 수긍했다. "타고난 에너지가 적은 사람으로 소소한 일들을 잘 해내지만, 좀 큰 일이 주어지면 소화하기 어렵다." 정확한 표현이나 단어는 다를 수 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더니 그 통찰력 있는 분이 그 자리에 계신 다른 선배 한 분을 향해서도 딱 한 마디를 했는데, 그 표현에 대해서도 다들 딱 맞는 설명이라고 동의했다. 그 분의 표현이 짧으면서도 딱 적절하다고 느껴 다들 놀라워했다. 경험이 많은 것에 대해 타로 카드나 아로마 카드 등으로 상담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 덕분에 그 분은 나중에 나에게도 한 말씀 하셨는데, 그게 바로 저 완벽주의자 라는 단어였다.


일하면서 늘 들어왔던 말이고, 나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가끔은 득이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득보다는 실이 될 때가 더 많은 성향이다. 평소 생활은 썩 그렇지 못한데, 일을 할 때면 늘 저 완벽주의자 기질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좋은 방향으로 잘 살리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으니, 자연히 저 기질을 좀 고쳤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선생님이 말씀하신 의미도 좋은 뜻과 그렇지 못한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말투로 깨닫는다. 사람의 성향이나 기질이 원한다고 그리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못 고치고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대개 좋지 않은 쪽으로 결과가 나올 때는 일이 내 기준으로 완벽하게 될 때까지 계속 손을 댄 다거나(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기준으로는 적당히 괜찮다고 여겨도 나는 성에 차지 않는 경우), 아니면 어떤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거나 하는 경우다. 반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는 때도 있다. 대개 짧은 시간에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일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다. 몇 해전 친한 친구와 같이 어느 국회의원 보좌관들과 회의를 했을 때, 내가 회의를 진행하고 정리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깜짝 놀랐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보좌관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 등 한 20여명이 참여한 회의였는데, 사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는 분들이 자꾸 논점을 흐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면 내가 바로 잡아주고, 발언들 중간중간에 핵심을 정리해주고, 거의 두 시간이 넘는 회의를 마칠 때 참여한 분들의 발언을 전부 정리하고 요약해서 공유했었다. 회의를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 별도로 기록을 해두지 않았음에도 각 발언자들의 순서와 발언의 요지를 머리 속에 잘 담아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짧은 시간 안에 간이 회의록을 폰으로 만들어서 공유까지 했었다. 당시 그 친구는 내가 일할 때 그 정도로 집중한다는 것을 깨닫고 놀랍다고 했다.


지겹게 듣고 있는 저 완벽주의자 소릴 또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어쨌거나 버릴 수 없는 기질이라면 잘 활용해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숫자 착오 /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어려움


며칠 전 퇴근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파주행 좌석 버스를 탔다. 언젠가부터 자동차 전용 도로를 이용해 경기도를 오가는 좌석버스들은 입석을 금지하고 좌석이 꽉 차면 승객을 더 태우지 않고 그냥 출발했다. 작년 겨울에는 이것 때문에 추위에 1시간 넘게 서너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속수무책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이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화가 나고 짜증도 났다. 입석으로라도 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해도 벌금을 맞는다며 매몰차게 출발해버리는 버스 기사님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여유있게 버스를 타려면 무조건 퇴근시간 보다 조금 일찍 정류장으로 가야 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원하는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유독 겨울에 버스 타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게 내가 기다리는 정류장에 오기 전에 이미 좌석이 다 차서 오면, 기다리는 입장에서 달리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그 정류장 보다 몇 정류장 앞으로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좌석 버스는 정류장 간격도 길고 퇴근 시간에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암튼 며칠 전에도 버스를 기다리면서 작년 겨울 몇 차례 1시간씩 추위에 떨며 버스들 여러 대를 그냥 보내곤 했던 기억이 나서 좀 조마조마했다. 마침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고, 그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분주히 버스 정차 위치를 예측해 움직였다. 남은 좌석 수를 정확히 보지 못했으나 몇 좌석이 안 남았을 것이 뻔했기에 무조건 앞쪽에서 타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내 앞에 이미 여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예의 없이 그 사람들을 미쳐내고 버스를 탈 수도 없었다. 정말로 다행히 나까지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고 나서 기사님께서 다음 사람을 제지했다. 딱 내 차례에서 좌석이 다 찬 것이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안심하며 앉을 자리르 찾았는데, 어라! 빈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은 버스를 출발시켰고, 내가 혹시 잘 못 봤나 싶어서 여러 번 전체 좌석을 훑으며 빈 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내게 얼른 앉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자리가 없어요 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서너번을 둘러봐도 정말 자리가 없었다. 기사님께서 숫자를 착각해 나 한 사람을 더 태운 것이다. 나는 30분 넘게 자동차 전용 도로를 서서 가더라도 버스를 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내 바로 뒷사람이 아니라 나부터 거부 당했다면 이번에도 또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지 모른다. 배차 간격이 긴 이 좌석버스들은 자주 오지도 않아서 한 대를 보내면 마냥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기다린 버스도 좌석이 없다고 또 그냥 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운이 좋았던 것은 자동차 전용 도로에 오르기 직전 정류장에서 딱 한명의 승객이 내렸다. 그 분은 내게 자신의 자리에 앉으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시고 내렸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님도 내가 앉는 것을 보고 안심하고 출발했다.


올 겨울에 몇 번이나 더 그 좌석 버스를 타고 파주를 가야할지 모르지만, 겨울은 이제 시작되었으니, 그때마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빈 좌석이 있는 버스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게 참 경기도민은 어떻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라는 말인지. 차라리 입석 금지 조치를 풀어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안전 문제 때문에 내린 그 조치를 쉽게 취소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안에만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경기도의 버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다. 다행히 전철역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라면 그래도 괜찮았지만, 거리가 멀어서 버스로 갈아타야 하거나 특정 좌석 버스 노선 밖에 방법이 없다면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이게 참 쉬운 문제가 아닌 것이 그 노선에 탑승객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나만해도 아이들을 보러 파주에 갈 때마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 낮이나 밤에 버스를 타면 거의 대체로 대여섯 명도 안 되는 승객이 탄 것을 본다. 어떤 경우엔 나 혼자 타고 제2 자유로를 30분 넘게 달리기도 한다.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를 경기북도와 경기남도로 나눌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좀 바뀔까? 뭐든 대안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공부모임


지역의 여러 협동조합에서 경영을 책임지거나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몇몇 분들이 모여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사회적 경제 영역과 복지 영역이 만나 이 지역에 꼭 필요한데, 아직 잘 구현되지 못한 가치와 활동을 만들어가자는 취지였다. 지난 10월 첫 모임을 가졌고, 두 번째 모임은 12월에 예정되어 있다. 다들 정말 바쁜 분들이라 모임 날짜를 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12월에는 [래디컬 헬프]를 읽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책은 일찍 공지가 되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구매해도 읽지 못할 것 같아서 미루고 있다가 최근에야 구매했다. 이번 주말부터 읽기 시작해서 최대한 빠르게 1번 읽고, 모임 직전에 중요한 내용들만 다시 읽을 생각이다.
















지난 첫 모임에선 [생협이 왜 이런 것까지 할까]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눴었다. 약 2시간 가량의 모임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우선 참가자들 모두 지역에서 10년 이상 20년 가까이 활동하신 분들이라 그 내공이 어마어마했다. 한 분 한 분 말씀하실 때마다 배울 점들이 보였다. 책의 내용을 두고 나눈 대화는 많지 않았다. 이 일본의 굉장한 사례를 어떻게 우리 동네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지금 부족한 것과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향이 각자 달랐는데, 그래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긴 시간 같은 사람들을 주로 만나며 약간 틀에 박힌 활동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경각심과 위기감을 갖고 있었디 때문에 이런 공부모임이 무척 반가웠다. 그날 마지막 소감으로 나는 이 자리가 나에게 힐링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었다.
















긴 시간 여유가 없는 삶을 살다보니 꾸준히 나가던 독서모임들도 다 그만두었고, 등산모임도 못 나간지 오래되었다. 늘 나오라는 사람들은 많은데 나는 늘 힘들다. 피곤하다. 죽을 것 같다고 답하며 이 삶을 지속하고 있다. 이젠 좀 하고 싶었던 것들도 찾아볼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내가 더 즐겁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도 내 관심에 맞는 일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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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1-2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엔날에는 완변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그보단 계속 수정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게 훨씬 편하고 스트레스도 덜하더라구요..ㅎㅎ

저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고 있지만 비교적 서울 직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라 출퇴근엔 그리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도 거리가 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되는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 같아요..

공부모임은 이제 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임에 이제는 회의감이 드는지라...이제는 뭐든 혼자하고 혼자 잘 할 수 있는 배움의 루트를 찾고 있죠. 찾아보니 참 많더군요. 모임은 모임대로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많아 이제는 피하게 되요~^^

감은빛 2023-12-09 03:41   좋아요 0 | URL
야무님, 성향을 바꾸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근데 확실히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아요.

경기도는 거리의 문제도 있지만,
전철로 연결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도 있더라구요.
경기도의 일부 지역 버스는 정말 답이 안 나올 정도였어요.

저도 대체로는 야무님처럼 공부 모임에는 부정적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 언급한 모임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 모임 구성원들이 죄다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배울 것들이 많고,
그 분들의 경험담들을 듣는 것이 재미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