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안내 + 외국어

아마 6월 중순 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도착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이 있어서 급히 가야할 상황이었다. 갑자기 덩치가 큰 남성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가왔다. 아마 동남아쪽에서 오신 분일거라고 짐작했다. 이 동네는 관광지와 거리가 먼데, 어쩌다 혼자 여기서 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나 싶었다.

그는 내게 ˝익스큐즈미˝ 라고 말을 걸었다. 길을 물으려는 것 같아서 친절을 가장한 웃음을 머금고 그에게 다가섰다. 그의 한글 지명 발음은 서툴렀다. 두어번을 다시 물어본 후에야 인천의 어딘가 숙소를 묻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인천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다. 동인천의 몇군데 근대문화유산과 월미도 등을 제외하면 거의 가본적이 없었다. 게다가 대중교통으로 인천을 가는 법을 얼른 떠올리지 못했다. 어쩔수없이 나는 인천이 여기서 아주 먼 곳이며, 거기까지 가는 법을 모른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타야할 버스가 왔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 버스에 올랐다. 조금 더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앱으로 검색해서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그가 택시를 타거나 누군가 다른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무사히 숙소를 찾아갔기를 바란다.

떠올려보면 부산에 살 때 외국인들에게 길안내를 많이 했다.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면서 자신감이 붙기도 했고, 주로 놀았던 곳이 해운대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만났다. 가끔은 그들과 친해져서 함께 해변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런 것들도 다 경험이라고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와도 당황하지 않고 친절을 가장한 웃음을 보이며 다가갈 수 있다. 그때 만난 분으로서는 날 만난 것까지는 행운이었을 수 있는데, 너무 엉뚱한 장소에서 만났다. 아니 내게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결과적으론 운이 나빴다.

과거 오늘 쓴 글들

페이스북처럼 북플도 과거 오늘 내가 쓴 글들을 알려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글을 자주 쓰는 편은 아닌데, 신기하게 그게 같은 날짜인 경우가 가끔 있더라.

오늘 알려준 글은 2개인데, 8년전 쓴 글과 3년전 쓴 글이다. 8년전에는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해 일어난 일들을 쓰면서 그 증상을 난치병 혹은 불치병이라고 했다.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난치 혹은 불치라고 표현했듯이 여전히 이로 인한 해프닝이 생기곤한다. 이제는 이걸로 생긴 각종 곤란하고 난처했던 이야기들을 모아 책 하나를 낼만한 분량이 될 것 같다. 오래전에 엄마를 못 알아보고, 여동생도 못 알아본 적이 있는데, 그런 내용이 뷰티 인사이드 라는 드라마에 나오더라.(물론 나는 단 한번씩이었지만, 드라마에선 아예 다른 사람들을 전혀 못 알아본다는 설정으로 항상 못 알아봄) 또 언젠가 전유성 씨의 딸이 띠비에 나와서 ˝아빠가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못 알아본다.˝ 고 말했던 걸 봤는데, 막상 화장하고 다니는 큰 아이를 길에서 마주쳤다가 못 알아볼 뻔 했다. 언젠가 우리 딸들이 ˝아빠는 길에서 마주치면 나를 못 알아봐요.˝ 라고 말할까봐 겁난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3년전에 쓴 글은 독립운동가 김단야, 박헌영, 주세죽 세 분에 대한 이야기로 이 분들의 삶에 대해 처음 들었던 것도 이젠 제법 오래전 일이다. 이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딸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도 반영했고, 나중에 언젠가 시간이 나면 자료 조사를 철저히 해서 소설로 써야지 하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3년전에 소설로 나왔다. 내가 구상했던 것과는 살짝 촛점이 다르긴하지만.

우리나라는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아주 많은 역사를 잃어버렸다. 미군정에 의해 제대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그대로 득세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오히려 계속 쫓기고 탄압받는, 독립이 아닌 일본과 미국이 바통 터치만 한 것 같은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수많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묻히고 잊혀졌고, 수많은 친일파들이 많은 권력과 재산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그것을 누리고 있다.

역사를 잊은 이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더 늦기전에 잃어버린 독립운동가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친일파들의 실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더 많은 김단야, 박헌영, 주세죽들이 발굴되기를 바란다.

폰으로 글을 쓰다보니 어제 완성하지 못하고 하루를 넘겨버렸다. 그래서 여기 소개한 글들은 8년전과 3년전 어제 썼던 글들로 정정한다.

오늘도 기분좋은 근육통으로 시작하는 토요일 아침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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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0-07-1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육통으로 시작하는‘과 ‘기분좋은‘을 병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콜라를 마셨더니 콜라만 먹고 취하던데요? ㅎㅎㅎ

덕분에 잘 먹고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다음 번에는 제가 한 턱...

감은빛 2020-08-21 19:02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네요. 약 한 달 전에 사고를 당해 그간 답을 달 수가 없었음을 양해해주세요. 지난 번에는 아직 회복 중이라 연락을 받고도 못 나갔음을 또 양해 부탁드립니다. 다 낫고 나면 꼭 뵈어요.

페크pek0501 2020-07-17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으로 글쓰기 불편해서 어떻게 쓰십니까? 짧은 글도 아닌데 말이죠.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합니다. 근육통도 날려 버릴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감은빛 2020-08-21 19:08   좋아요 0 | URL
폰으로 글쓰기가 불편하죠. 그런데 많이 쓰다보면 조금은 익숙해지더라구요. 폰으로 회의록도 남기고, 메일도 보내고, 간단한 문서도 작성하고, 어지간한 글의 초안도 쓰는 등 자주 쓰게 되어서요.

답이 아주 많이 늦었어요. 그 중 약 한 달은 교통사고로 인해 답을 남기기 어려웠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