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 나와
오키나와 여행 얘기가 나온 건 작년 초겨울 어느날 새벽, 술자리에서였다. 해외 여행을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선배와 오키나와를 한 번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는 후배가 마음이 맞아 "가자. 가자." 했고, 나도 예전에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를 주제로 한 국제컨퍼런스를 진행했을 때, 오키나와 참가자들을 안내하며 짧게 영어 통역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 명단에 들어있었기에 마음이 동했다. 그날 새벽의 결론은 사람을 모으자! 였다. 렌트카 기준으로 차 1대 혹은 2대에 맞추거나, 성비를 고려해 숙소에 들어가 인원을 모으자는 것.
어렵게 오키나와 일정을 한 번 정했다가 다든 바쁜 사람들이라 취소되었을 때, 내 팔자에 무슨 해외 여행이냐! 싶어서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이 사람들이 다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새 7명이 모였다고 내게 마지막 멤버로 들어오라는 권유가 왔다. 늘 바쁘지만, 훨씬 더 바쁠 시기라서 좀 망설였는데, 이렇게 지르지 않으면 평생 또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합류했다.
막상 단톡방에 들어가보니 멤버 구성이 재미있었다. 동네 선후배들. 다행히 나는 모든 멤버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이 구성으로 3박4일 해외여행이라.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톡방의 제목 "옥희 나와"는 누군가 오키나와 여행갈 거란 얘길 했는데, 듣던 사람 중 성함이 '옥희'인 분이 "왜 날 부르냐?"고 물었다는 마치 거짓말 같은 일화에서 착안해 정했다고 했다. 멤버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여성 4분과 남성 4이었던 멤버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 1분이 빠져서 성비가 안 맞게 되었지만, 그대로 7명이 가는 걸로 정했다.
여행을 다녀온 시점에서 참가자들의 우애는 무척 깊어졌다. 우린 수시로 톡을 주고 받았고, 자주 만나 술을 마셨고, 다음 여행을 어디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나눴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언급되었고, 나는 몽골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어디를 가던 돈이 필요하니 매달 일정 금액을 모으는 여행계로 하자고 했고, 가장 믿을 만한 분을 계주로 선출했다.
우리 7명은 각자 캐릭터가 뚜렸했는데, 환상의 궁합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서로 사전에 조율하지도 않는데 역할분담을 잘 맡았다. 신기했다. 일부러 그렇게 시켜도 쉽지 않았을텐데,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서로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누군가가 사전에 여행 계획과 비행기와 숙소, 렌트카 등 예약을 도맡았고, 가서는 일정 진행과 안내를 맡아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여행이었고, 누군가가 그때 그때 필요한 사소한 일들을 다 챙겨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불편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식사 준비를 비롯해 먹거리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여행 비용이 훨씬 더 들었을 것이고, 누군가 숙소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분위기를 잘 띄워주지 않았다면 서로가 친해지는데 훨씬 더 시간이 걸려 조금은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맏언니, 맏형으로서 든든하게 챙겨주지 않았다면 서로 조금씩 더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운전을 주로 맡았고, 전체 일행 중 딱 중간인 나이대여서 위로 선배들을 챙기고, 아래로 후배들과 소통하는 중간 세대로서 여러가지 일들을 신경쓰고 챙겼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영역 혹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들을 잘 챙겨주는 일행들이 고마웠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최선을 다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늘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일행 모두 한결같이 또 다음 여행을 생각하는 것이리라.
예전에는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거나, 속으로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 여행은 무조건 혼자 간다는 원칙을 세워 홀로 여행을 다닌 적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7명이라는 인원이 큰 갈등 없이 재밌게 3박4일을 지낸 건,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 멤버들 중 일부가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당일치기로 강화도 여행도 다녀왔다. 그것도 역시 12시를 넘긴 시간 술자리에서 급하게 제안되어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3명이 단촐하게 다녀왔다.
이 친밀감과 유대감이 얼마나 갈지, 정말 이 멤버 그대로 또 어디론가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하고 좋다.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 문득 문득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키나와 여행에 대해서도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잔뜩 있었고, 일부는 폰에 메모로 남아있다.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하고 엄두가 안 난다.
일상에서 가끔 남겨놓는 메모들을 보며, 이런 조각 얘기들을 이어붙여 재밌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늘 시간이 문제다. 바쁘고 바쁘고 또 바쁘지만, 그래도 소중한 관계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 일본 떠먹는 요구르트 뚜껑에는 요구르트가 묻지 않는다. 아무리 뒤집어보고, 일부러 묻혀봐도 안 묻는다. 신기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눠준 한국 요구르트를 여는 순간 묻어 있는 요구르트를 보며 일행 모두 같은 행동을 취했다. 혀로 뚜껑에 묻은 요구르트를 핥으며 이게 당연한 행동이지 생각해본다.
+ 역시 술꾼들이 포함된 멤버 구성답게 매일 밤 아와모리를 마셨다. 맛있었다. 처음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온 어떤 술보다 내 입맛에 맞았다. 덕분에 매일 행복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늦게까지 술을 마셨어도 누구 하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 일정에 차질을 주는 일도 없었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먼저 움직이는 아름다운 술자리와 여행이었다.
+ 오키나와 음식은 죄다 엄청나게 짰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짠 맛!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엄청 기대했던 회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일본 회는 우리처럼 활어회가 아니라 쫄깃한 씹히는 맛이 없었다. 회 센터를 한 바퀴 돌아봐도 살아서 팔딱이는 생선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죄다 썰어서 포장해놓은 갖가지 회들만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도 참치는 많이 먹었다. 참치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생각보다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자연을 별로 즐기지 못했다. 도착한 날엔 비가 왔고, 다음 날엔 많이 흐렸다. 날씨만 맑았어도 훨씬 좋았을텐데, 타이밍이 아쉬웠다.
+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렌트카 업체를 기다리는데, 다른 업체들은 두번씩 버스가 왔다갈 시간동안 우리 업체는 오지 않았다. 뭔가 잘 못 되었다 싶어서 전화를 하자고 했는데,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영어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처음에 받은 직원은 영어가 서툴어 잘 알아듣지 못하다가 다른 직원을 바꿨고, 그 직원이 영어로 특정 위치를 언급하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 우리 일행 모두 나를 구원자처럼 쳐다봤다. 이후 길을 물어보거나, 특정한 물건을 찾거나, 식당에서 주문할 때 영어로 했는데, 나도 워낙 오랜만에 영어를 쓰는 거라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영어공부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동네로 돌아오니 어느새 내가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처럼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역시 소문은 진실이 아닐 확률이 크고 빨리 돈다.
더 쓰고 싶은 얘기 거리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