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목요일까지는 급한 일들을 마무리 지어놓고 금요일엔 조금 느긋하게 출국 준비하고, 내가 없는 동안의 업무 지시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수요일 급한 일이 하나 끼어들어 마무리했어야 할 일들을 못 끝냈고, 목요일에 또다시 규모가 큰 사업계획서가 한 건 떨어졌다. 다음날인 금요일 밤이 마감이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정이라 포기하려 했지만, 위에서 밀어붙였다.

환전과 국제면허증 발급과 기타 준비해야할 것들을 다 금요일로 미뤄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아침부터 큰 프로젝트 추진 회의를 하면서 대부분의 일이 내게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시청 공무원이 메일로 보내줄 줄 알았던 중요한 계약 서류도 직접 수령해가라고 해서 시청에도 다녀와야했다.

사업계획서에서 내가 맡은 분량을 쓰다가 다 못 쓰고 시청으로 출발. 서류를 받고 보니 이미 은행 영업시간이 끝날 무렵이었다. 원래 사무실 근처 영업점을 지정해두어서, 그리로 전화했더니 늦게 도착하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대신 가까운 곳에 다른 영업점을 찾으라고 했다. 난감했다. 면허시험장에 가서 국제면허증도 발급받아야 해서 이미 택시를 탄 상황이었다.

은행 직원이 애프터뱅크 영업점에 대해 언급하길래, 검색해보니 가는 방향 면허시험장 근처에 애프터뱅크 영업점이 하나 있었다. 택시 기사님께 행선지 변경을 요청하고 은행에 도착했다.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해둔 금액을 무사히 찾았다. 다시 택시를 타고 면허시험장으로 갔다.

사실 왜 미리 국제면허증을 찾아놓지 않았냐는 일행들의 타박을 듣고 좀 억울한 점이 있었다. 분명 주중에는 바빠서 방문할 여유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토요일에 움직이기 귀찮다고 투덜대는 아이들을 달래서 면허시험장에 왔었다.

예전에 면허증 갱신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 당연히 문을 열었을거라 생각했다. 단 한치의 의심도 없이 먼 길을 찾아갔는데 황당하게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일상에서 정말 중요한 운전면허 업무를 하는 기관이 토요일에 문을 닫아버리면, 직장인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화가 났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암튼 금요일 오후 늦게 그 바쁜 와중에 택시를 타고 가서 국제면허증을 받았다. 하나 더 위기가 있었는데 국제면허증에 첨부할 사진은 여권용 사진이어야 한다고 했다. 하필 아침에 챙겨나온 사진 중엔 여권용 사진이 없었다. 이번에 여권을 발급받으러 가면서 2년 전쯤 증명사진 찍을때 아저씨가 3장 넣어준 여권용 사진을 가져갔는데, 바탕이 흰 색이 아니라고 해서 어쩔수 없이 다시 찍어야했고 구청 앞 작은 사진관에서 성의없게 찍은 그 여권사진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어딘가에 던져두고 잊어버렸다.

암튼 혹시 사진 때문에 국제면허증 발급이 안 된다고 할까봐 긴장을 바짝했다. 그 순간 발급을 못 받으면 운전할 사람이 부족하니 도저히 용사받을 수 없는 실수가 될 것 같았다. 담당자가 국제면허증을 발급하는 그 몇 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다행히 담당자는 사진을 문제삼지 않고 국제면허증을 건네줬다. 속으로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갈길이 바빴다. 빨리 사무길로 돌아가 사업계획서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저녁엔 아이들과 지내기로 되어있어거 야근을 할 수도 없었다.

작은 아이 공동육아 방과후교실에 7시까지 가기로 아이와 약속을 했는데, 7시 5분까지 내가 맡은 분량을 다 못 끝내고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인 신임 팀장에게 나머지릉 부탁하고 나와야했다.

택시를 타고 방과후교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전화를 했다. 일이 꼬여도 완전 제대로 꼬였다. 아이들과 저녁을 사먹고 집으로 들어가서 짐을 쌀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도 말았다.

아침에 깨보니 절망스러운 느낌이었다. 짐은 하나도 안 쌌는데, 애들을 챙겨서 보내고 공항으로 향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급하게 애들을 깨우고 난 짐을 싸는데 열중했다. 그래도 다행히 애들은 많이 보채지 않고 일어나 알아서 준비했고, 나도 사전에 머리속에 대략 생각한대로 빠르게 짐을 쌌다.

큰 아이는 학교 방과후 수업을 들으러 갔고, 작은 아이는 애들 엄마가 와서 데려갔다. 난 여권과 국제면허증 등 중요한 소지품들을 한번 더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지난 이틀이 정말 길었던 느낌이다. 짧은 여행이지만 후회없이 놀다 와야지. 일을 미뤄두고 가서 조금 맘이 무겁지만, 내 탓이 아니니 그냥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럼 잠시 안녕!

추신, 공항철도 안 몇 발짝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오래전 연락이 끊긴 대학 선배와 무척 닮았다. 근데 혹시 정말 닮은 사람일까봐 아는 척을 못하겠다. 예전엔 정말 친했던 사람인데. 진짜 그 사람이라면 다시 못 볼 기회일텐데. 근데 그는 혹시 나를 보지 못했을까 혹 내가 너무 늙어버려 못 알아보나? ㅠ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4-20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20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