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친한 친구에게 감정 노동이란 단어를 들었다. 내가 본인에게 뭔가 어렵고 안되는 일에 대해서만 자꾸 얘길하고, 그걸 듣는 일이 힘들다는 얘기였다. 무슨 말인지 금방 이해했다. 한 삼사년전부터 내가 자주 그랬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 대해 자꾸 말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살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서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 중 한 친구가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니 미안했다. 그래서 바로 사과했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만 나도 아쉬움은 있다. 그를 거의 25년을 알고 지냈고 친한 친구였지만, 한동안 그는 내 직장동료이자 친구였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던 그 친구를 자주 만나게 된 건 약 2년 전이었다. 그는 고향의 가족 문제와 본인의 경제적 사정으로 힘들어했고, 나는 그때에도 일이 너무 많고,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술에 의지해 지내고 있었다. 우린 가끔 술을 마시며 서로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격려했다. 그의 경제적 사정이 긴 시간 나아지지 않았고, 작년에는 기다리던 일이 무산되었다고 들어서, 정말 조금밖에 안 되지만 나와 함께 일하면서 급여를 받아가면 어떠냐고 연합회 반상근 일을 제안했다. 사실 그가 이 일에 딱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란 걸 알았다. 그가 수락하지 않았다면 그 돈을 내가 받으면서 일하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다. 1년 넘게 돈 한 푼 받지 않으면서 연합회 임시 사무국장 일을 해왔었다. 사람이 필요하긴 했지만, 경험자가 필요했고, 그 알량한 돈으로 경험자를 구할 수 없을테니, (그리고 사실 이 바닥에 경험자가 거의 없어서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그 돈 받고 그 일을 해야지 싶었다. 어차피 그 일은 내가 할 수 밖에 없을테니.


암튼 그 친구는 한동안 나와 같이 일을 했다. 워낙 적은 급여 때문에 주 2회 출근이었고, 그 외에 다른 부가 수입을 만들어주려고 노력은 했다.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암튼 그렇게 약 8개월을 그 친구랑 함께 일하며 우리는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가 감정노동을 느꼈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지만, 한 켠으로 조금 아쉬움이 생기는 건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 걸까? 과연 내가 그에게 늘어놓았던 하소연 같은 말들이 부적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친구로서 혹은 직장 동료로서 부적절한 말이 있었을까? 게다가 그는 평소 내 걱정을 해준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좀 하는 편인데, 그런 잔소리에 답했던 것이 그가 느꼈던 그런 불평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생각에 그는 뭔가 다른 이유로 내게 화가 났고, 그때부터 내가 떠드는 말들이 듣기 싫어졌고, 그래서 내게 감정노동을 운운한 것 같다. 왜 화가 났는지는 그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확실히 그의 말이 내게 경각심을 심어주긴 했다. 그날 이후로 친한 후배들과 술 마실 때마다 감정노동이란 단어를 떠올리며, 대화에 주의하곤 했다. 지난 이삼년간 그 친구보다 더 자주 술을 마시며 하소연을 많이 늘어놓았던 후배들 몇 명에게 물어봤다. 의외로 그들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형이 많이 힘들어해서 어떻게든 같이 답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신세 한탄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는데, 나는 말 뿐 아니라 글을 쓰면서도 신세 한탄을 하는 구나. 뭔가를 하소연 하는 구나 싶다. 출판사에서 해고 당한 후로 자주 쓰던 서평을 거의 쓰지 않게 되었고, 이후로 이 알라딘 서재에 올리는 내 글은 대부분 일상의 기록이 되었다. 그런데 그 기록의 성격이 대체로 감정을 풀어놓는 글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든다. 맨날 이런 글만 써놓으면 누군가 읽는 이도 감정노동을 하도록 만드는 구나. 그럼 그 분 역시 나에게 질려버릴테니 조심해야 하겠구나.


하지만 습관이란 건 그리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그렇게 느껴도 나는 또 계속 하소연 같은 글을 알라딘에 끄적이고 있겠지. 그게 익숙하니까. 다만 앞으로 하소연이 아닌 다른 글들도 가끔 적어보려 노력해야겠지. 예전처럼 이런 글도, 저런 글도 다양하게 적어봐야지 생각해본다. 


고마운 사람들


꽃샘 추위 때문인지 무리한 야근 때문인지 지난 주 금요일부터 심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금요일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금요일 저녁 아이들을 데려온 이후로 증상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토요일 아침에는 열이나고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토요일에는 중요한 일정이 두 개나 있었다.


남들은 그렇게 원해도 한 번도 안 걸리는데, 나는 세번째로 당첨된 녹색당 전국 대의원 총회가 그날이었다. 당연히 참석할 예정이었고, 미리 자료집을 살펴보고 올해 주요 사업 내용 중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머리 속을 정리해놓았었다. 그런데 씻고 나갈 준비를 하다보니 열 때문에 도저히 자신이 없어졌다. 게다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했는데, 내 몸도 제대로 챙길 자신이 없는데, 아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몇 번 고민하다가 포기하고 이불을 덮어쓰고 잠들었다. 녹색당 활동가에게는 아파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죄송하다고 문자를 남겼다.


땀 흘리며 한 잠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한 결 가벼웠다. 열도 내렸고, 머리도 덜 아팠다. 토요일 두 번째 중요한 일정인 공동육아 방과후협동조합 신입 조합원 환영회가 열릴 시간이었다.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 나가면 낮에 쉬어서 회복되었던 것만큼 다시 악화될 것 같았다. 그냥 밤까지 푹 쉬면 일요일 아침엔 감기 기운을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은 아이가 환영회에 가길 원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아파서 나가기가 힘든데, 안 가면 안 되겠냐 했더니, 안 된단다. 무조건 가야 한단다. 아이는 힘없이 자꾸만 처지는 내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애쓰며 나가자고 보챘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이런게 아빠인가보다 싶었다.


집을 나서서 가는 길에 아이가 물었다. "올해 환영회는 아빠가 행사 진행 안 해?" 그러고보니 작년 신입 조합원 환영회는 내가 기획하고 진행했었다. 아이도 그 생각이 났었나보다. 사실 이번에도 내게 진행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나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들살이와 환영회를 포함해 여러 행사 진행을 계속 맡았었는데, 한 두번도 아니고 같은 사람이 계속 하면 지겨울 게 뻔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번엔 진행을 다른 분이 맡았는데, 다행이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느라 행사 시간에 한참 늦어버렸는데, 내가 진행을 맡았다면 펑크가 날 뻔 했다.


행사장에 딱 들어간 순간 한 분과 마주쳤는데, 그가 곧바로 깜짝 놀라며 나를 걱정했다. 아파 보이고,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본인이 아이를 데려다줄테니, 집으로 가서 쉬라고도 했다. 나는 그래도 움직일만 해서 왔다고, 이왕 왔으니 앉아 있다가 가겠다고 답했다. 그날 만난 여러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줬다. 근데 한 세시간 앉아 있는게 참 힘들더라.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심심해서. 목이 아파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술도 며칠째 마시지 않고 있어서 달리 시간을 보낼 일이 없었다. 내 주위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으면서 끝까지 술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이 몇 있다. 새삼 그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술을 안 마시면서 어떻게 술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지난 2주 동안 그래서 일부러 술자리를 피했다. 꼭 가야할 자리라면 되도록 적게 먹으려 애쓰며 그냥 술을 마시는 걸 선택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는 와중에 지금껏 살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바로 아까 내가 들어오자마자 입구에서 딱 마주쳐서 엄청나게 걱정을 해 준 분부터 시작해, 그날 그 자리에도 고마워 할 사람이 여럿 있었다. 난 평소 지지리 운도 업서고, 복도 없는 인생이라고 여겼건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게 바로 운이고 복이 아니었나 싶다. 그랬구나! 나 생각보다 복 많은 인간이었어. 운 좋은 사람이었어. 그러고 남은 시간을 보냈다.


운동이 필요해


재작년 가을 어깨 부상과 작년 여름 무릎 부상이 무척 컸다. 그리고 작년 가을부터 여기저기 관절이 불규칙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손가락, 손목, 어깨, 골반, 무릎, 발목까지. 무릎은 아주 가끔을 제외하면 거의 늘 아팠고, 그 다음으로 자주 아팠던 곳이 손가락이었다. 그래서 류마티스성 관절염을 의심했다. 여러 증상이 일치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지원이 안 되어 비싼 돈을 주고 받은 혈액검사 결과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고정된 자세, 즉 계속 앉아 있는 생활 방식이 문제라고 보았다. 잦은 손가락 통증 때문에 류마티스성을 의심하기 전에 내 진단도 그랬다. 


한 2년 전부터 담배를 확 줄이고 나서 평소보다 휴식 시간이 줄었다. 예전에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라도 한 두시간마다 한 번씩 책상 앞을 떠나 옥상에 올라 몸을 움직였는데, 이젠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두세번 화장실 오갈 때를 제외하면 계속 책상 앞에 거북이 자세로 앉아 있는다. 일이 많아서, 일에 집중하느라 그렇기도 하지만, 달리 책상 앞을 떠날 핑계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이게 딱 시간 정해놓고 쉬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소변이 자주 마렵지 않은 날엔 너댓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아있는 경우도 있다.


의사 선생님 처방은 운동(스트레칭 중심)과 규칙적인 휴식이었다. 사실 운동은 나도 계속 원했었다. 여기 저기 관절이 자꾸 아파서 못했던 거였다. 그래도 조금씩 시동을 걸어보려고 안 아픈 관절 중심으로 움직이려 애써보곤 했다. 다만 고립 운동을 지양하는 개인 취향 때문에 특정 관절을 제외하고 운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한 가지 단서가 더 붙었다. 스트레칭을 많이 하라는 거였다. 내 운동 습관 중 가장 나쁜 습관이 워밍업을 소홀히 하는 점인데, 스트레칭을 아주 가볍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운동 할 때 일부러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려고 큰 판형에 사진이 많은 스트레칭 책도 샀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다시 밤마다 그 책을 펼쳐놓고 스트레칭을 해봐야겠다. 아프다는 핑계로 참 오래도 운동을 쉬었다. 이제 다시 운동에 몰입해보자. 계속 아프고, 힘들고, 어렵고, 피곤하다는 생각에 휩싸여있지말고, 뭔가에 재미를 붙이고 확장해나가야겠다.


도배


지난 겨울 두 번이나 윗 집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방이 아주 엉망이 되어버렸다. 시커멓게 커다란 곰팡이가 피었다. 나 혼자 지내는 날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아이들이 오는 날엔 곰팡이 때문에 애들이 아플까봐 걱정이었다. 윗집 주인은 나중에 도배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바쁘게 지내다보니 벌써 4월이 되어다. 지난 주에 다시 전화를 해서 도배 빨리 해달라고 요청했다. 어제 저녁에 공사업체에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도배를 하겠다는 거였다. 하루라도 빨리 곰팡이가 잔뜩 핀 방을 바꾸는 일은 분명 좋은데,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많은 날이라, 방을 치워둘 여유가 없었다. 근데 도배를 하려면 벽을 비워줘야 한다.


혼자 살면서부터 가구를 들여놓지 않아 옷장이나 이불장 등은 없지만, 행거와 실내 철봉 등 부피가 큰 녀석들이 벽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걔네를 치워줘야 도배를 할 것 아닌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사짐 싸듯이 큰 비늘봉투에 옷들을 쓸어담고 행거를  분해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사정이 생겨 좀 늦는다고 사무실에 연락하고 방을 치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전혀 다른 집이 되어 있을텐데, 나는 또 행거를 조립하고, 옷과 이불을 다시 정리하고, 그외 잡다한 물건들을 치울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번주 주말에는 안심하고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겠다.















또 읽어야 할 책이 나왔다. 읽을 책은 자꾸 쌓이는데,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사야지.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야지. 돈 없어서 다른 사치는 못 해도 책 사모으는 재미라도 느껴야지. 물론 나중에 이사나갈 때는 또 분명 후회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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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10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9-04-03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로 하면 공연히 말했다 후회도 되고, 괜스리 디스하는 거 같아 맘도 편치않고...ㅠㅠ
그래서 말보다는 글로 푸는 게 후회도 덜하고 자기성찰도 되는 듯요~^^

감은빛 2019-04-10 18:49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해보니 확실히 말로 하는 것 보다는 글이 더 낫긴 하네요.
순오기님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