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이었던가? 퇴근 시간즈음부터 게시글을 쓰기 시작해, 약 30여 분만에 글을 마치고 등록하기 버튼을 눌렀는데, 뭔가 오류가 났는지 등록이 되지 않았다. 당시 급하게 나가야 할 상황이었고, 정확히 무슨 오류인지 살필 시간이 없어서 일단 임시저장된 글을 불러다 내용을 복사해 메모장으로 옮겨 저장했다. 이동하면서 북플을 이용해 글을 올리면 되겠지 생각했던 거였다.


버스 안에서 북플 앱을 통해 다시 같은 글을 올렸는데, 이번에도 오류 메시지가 떴다. "도박, 음란, 광고 사이트에 대한 게시물"이라는 이유로 등록할 수 없다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좀 황당했다. 내가 쓴 글은 도박과도 관계없었고, 음란한 내용도 전혀 없었으며, 광고 따위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혹시 내가 쓴 특정한 단어가 문제가 되는지 글을 살펴보았다. "당첨"이란 단어가 도박과 관계있다고 본 걸까? "누드 모델"이란 단어가 음란했던 걸까? 광고 사이트 얘긴 뭘까? 내 글에는 인터넷 페이지 주소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암튼 여러번 시도해도 계속 같은 메시지만 뜨길래, 일단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쁘게 하루,이틀, 사흘이 지나갔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 시간 무렵 문득 그 글이 생각나서 알라딘에 접속해 같은 글을 등록했다. 이번에도 아래와 같이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맨 처음 글을 작성하자마자 봤던 그 오류 메시지였다. 북플에서 올리려다 실패했을 때 봤던 것과 내용이 같았다. "도박, 음란, 광고 사이트에 대한 게시물"이란 이유다. 황당해서 알라딘에 문의를 넣었다. 문의할 내용을 조목조목 적으면서 좀 화가 났다. 대체 뭘 기준으로 저런 판단을 내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 글을 올리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가 실패하면서 아까운 시간과 내 노동을 허비했고, 이후 이틀이나 시간이 지나버려 해당 글은 타이밍을 놓쳤다. 물론 이 글이 막 시간을 다투는 내용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기준에서 이미 한참 지나간 얘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암튼 문의사항 끝에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요구조건을 넣었다.(길게 풀어쓴 글을 축약하느라 원래 요구하는 글과는 느낌이 달라졌다.)


1. 내 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 바람(원 글을 텍스트 파일로 첨부했다.)

2. (만약 문제가 있다면) 이 내용을 포함해 게시글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어떤 원칙과 그에 따른 조건(금칙어 등)이 있다면 이를 서재 공지사항 등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기

3. 향후 이렇게 자동 차단하는 시스템 때문에 서재 이용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보다 자세한 설명과 이에 대한 대응방법을 공지한 페이지를 작성하고 이를 시스템 메시지에 링크로 안내하기


사실 알라딘 고객센터 응대 방식이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란 걸 14년 넘게 알라딘을 이용하며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한 번에 성의있는 답변을 받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요구조건을 길고 상세하게 풀어서 썼던 거였다.


역시나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받은 답변은 성의가 없었다. 짧은 답변을 다시 내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만 정리하면 이렇다.


1. 내 글에는 문제가 없었음. 근데 금칙어 사전 db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수정했음

2. 금칙어 관련 내용은 공지로 처리하지 않고 피드백 페이지를 보완할 예정임

(이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피드백 페이지는 무슨 뜻일까?)

3. 세번째 요구에 대한 답은 아예 없다. 저 피드백 페이지를 통해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끝


그래서 결론은? 금칙어 사진 DB 오류가 났었는데, 수정했다는 얘기로 끝인가? 또 오류가 나면, 그 오류로 인해 이용자가 당황하거나 불편을 겪을 수 있으니, 자세하게 안내해 달라는데, 피드백 페이지인지 뭔지를 보완할 예정이니 기다라린 뜻인가? 


참! 알라딘의 무성의는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매번 당할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난다.


아래는 일주일 하고도 하루 전에 작성했다가 시스템 오류로 등록하지 못했던 글이다.



페미니스트

어느 술자리에서 아마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성과 대화를 나눴다. 여러 얘기중에 미투 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고, 그는 요즘 젊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각을 세우고 보수화되어가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자신도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대화가 더 나아면서 사회적으로 여전히 여성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일상에서도 늘 여성은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30대 중반의 후배가 나를 가리키며 "이 형은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라. 평생 한번도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생각해 본 적 없든데, 작년부터 이 말을 여러번 듣는다.

작년 겨울 아주 우연히 만난 출판계 친구와 무척 반갑게 술을 마시는데, 어쩌다 주제가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과 메갈리아에 이르렀다. 나는 사회 구조와 일상의 권력관계를 이유로 여성들의 입장에서 말했는데, 그 친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라. 나중에 그 친구의 입에서도 페미니스트 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이후로도 여러 남성들이 비슷한 태도를 보였고, 그 중 몇 번은 저 단어를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대학시절부터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내가 처음 만난 여성주의자, 즉 페미니스트는 교양과목 강사였다. 서울대 출신 학자라고 했고, 1주일에 한 번 부산에 내려와서 우리 과 교양 수업을 진행했다. 당시 나는 학년대표여서 출석부와 분필 등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는 역할을 맡았다. 그 강사는 수업 중에 자주 학년대표를 찾았다. 무슨 질문만 있으면 학년대표를 불러 일으켜 세우고 몰아붙였다.

그 강사의 수업 중에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자꾸 남성을 악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방식이었다. 기존 사회 질서가 잘못되었고, 그에 물들어 권력 관계를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남성의 태도는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게 그들이 악한 사람이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 교양수업 때문에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남성을 적대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특히 그 강사가 수업때마다 학년대표였던 (가만히 앉아 열심히 수업 듣던) 나를 부당하게 괴롭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싫어하게 되었다.

나중에 서울에서 활동가 생활을 하며 만난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많이 달랐다. 여성연합, 여성환경연대, 성폭력상담소 등 저마다 스펙트럼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활동가들을 만나며 내 시야도 넓어졌다. 그들 대다수는 남성을 함께 이 사회를 바꿔갈 파트너로 여겼지, 적대해야 할 악한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지금은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 서울대 출신 강사가 우리에게 잘못된 여성주의를 주입했던 거라 생각한다.

암튼 나는 오래전부터 여성을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동료로 여기고, 언제나 서로 평등한 위치에 머물기 위해 노력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그랬다. 결혼 생활을 하던 때에는 늘 가사노동과 육아는 함께 분담해서 했다. 내가 아직 어린 아이들을 업고, 안고 회의를 다니거나, 촛불집회 등을 참석했던 모습 등은 지금도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나는 동네 4~50대 언니들에게 이쁨 받는 후배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오히려 당시까지만해도 동네에서 활동하지 않았던 애들 엄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들이 보기에 내가 자주 아이들을 데리고 활동을 하다보니, 그들이 보지 않는 다른 시간에도 나만 애들을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는 거라 여긴 건지, 대체 애들 엄마는 뭐하길래 늘 너만 애들을 보고 있냐는 말들을 가끔 들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오히려 어쩔수 없이 엄마라서 애들 엄마가 더 많은 가사노동과 육아를 한다고 설명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최대한 여성들과 같은 위치에 서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남성일 뿐, 절대 페미니스트 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제발 그 과분한 이름을 내게 붙이지 말아 달라.


웃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이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놀 때다. 요즘은 주로 주말에만 애들을 만나니, 주말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사람은 참 신기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평소 결코 그런 성격이 아니어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장난꾸러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장난을 치지 않는다. 아마 연애하던 시절에는 사랑했던 사람들에게만 그렇게 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 아빠는 늘 한결같이 장난꾸러기에,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한번은 작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장난을 좋아해?" 나는 아니라고 장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다시 아이는 그런데 어떻게 항상 장난을 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장난을 별로 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시 아이는 "아빠는 옛날부터 그렇게 장난꾸러기였어?" 물었다. 난 또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데 그런 대화를 하고 얼마 후 아이들과 부산에 갔을 때, 작은 아이가 아버지께 물었다. "할아버지, 우리 아빠 옛날에도 장난꾸러기였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그럼! 장난꾸러기였지." 하셨다. 헉! 내 기억에 아버지는 주로 여동생과 장난치고 노셨고,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이전에는 나도 장난을 치기도 했겠지만, 이후 나는 부모님과도, 여동생과도 심지어 친구들과도 그러지 않았었다.

암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작은 아이가 나를 어려서부터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로 알더라도 별로 상관없다. 지금 내가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아이들을 만나, 토요일을 하루종일 같이 지내고, 일요일 오후쯤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그 허전한 기분을 참기 어렵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출근해 바쁘고도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보면 수요일쯤 아이들의 그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진다. 저녁 무렵 애들에게 전화를 걸면 애들은 뭔가에 신경이 팔린 채로 건성으로 통화를 한다.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듣고 싶지만, 전화로는 쉽지 않다. 그저 아이들 목소리를 한 번 들은 것으로 만족하고 통화를 종료해야 한다.

대의원 당첨

웬만하면 주말에 다른 일정을 잡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경우는 꼭 생긴다. 3월 초 우리 조합 총회를 치뤘던 토요일이 그랬고, 이번 토요일이 그렇다. 이번 토요일은 일정이 2개나 있는데, 녹색당 전국 대의원 총회가 있고, 공동육아 방과후협동조합 신입 조합원 환영회가 있다.

녹색당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면 추첨제 대의원제도를 운영중이다. 그리고 난 남들이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아무리 원해도 쉽게 되기 어려운 녹색당 전국 대의원에 세번째 당첨되었다. 첫 대의원 추첨에 당첨되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첫 대의원 총회를 갔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각 지역 별로 종이 비행기를 날리거나, 구슬을 굴리거나, 단순히 제비를 뽑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의원을 추첨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 날 우리 조가 토론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에서 내 모습이 제법 잘 나왔는데, 그 사진이 꽤 오랫동안 녹색당 당원 가입 안내 페이지에 붙어 있어서 꽤나 자부심을 느꼈던 것도 기억난다.

주위에 그렇게 원해도 한 번도 못해봤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은 전국 대의원을 무려 세 차례나 당첨된 덕에 토요일을 아이들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아이들이 좀 더 어렸다면 데리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청소년이 된 큰 아이와 무조건 언니를 따르는 작은 아이는 분명 듣지도 않고 가지 않겠다고 선언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선 공간에 데려가서 긴 시간을 애들을 방치해 두는 것도 부모로서 할 짓이 아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당첨을 원하는 다른 분들께도 기회가 돌아가길, 나는 이미 여러번 해봤으니, 이젠 주말에 애들과 장난치며 웃고 떠들고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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