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김포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조금 늦긴 했지만, 하마터면 비행기를 못 탈뻔 할 정도로 늦었다고 깨닫지는 못했다. 대한항공에 대한 반감 때문에 일부러 아시아나를 예약했는데, 티켓 발행을 위해 아시아나 항공 부스를 찾아다니는데 안 보였다. 저가 항공을 비롯해 다른 항공사들 부스는 다 찾았는데, 유독 아시아나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찾아다니던 곳 정 반대편에 아시아나 부스만 외딴 곳에 있었다. 그건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나 부스만 혼자 국제선 쪽에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쨌거나 서둘러야 할 상황이었는데, 줄이 길었다. 다른 항공사 부스는 여유롭던데 아시아나는 대기자가 많았다.


직원 하나가 다가와서 맨 뒤에 선 나를 보고 "예약번호가 있으면 도와주겠다." 고 해서 폰을 건네 카톡 메시지를 보여줬다. 그 직원이 예약번호를 입력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시간이 없다."며 저쪽에 있는 다른 직원을 불렀다. 뭐라고 빠른 어투로 말하던데, '레이터' 란 단어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늦게 온 사람인 나를 두고 한 말처럼 들렸다. 그 다른 직원은 메인 부스가 아닌 대기자 줄 옆에 있는 임시 부스(복도 한 가운데 이런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로 들어가 빠르게 단말기를 두드리며, 단말기에 달린 수화기를 들어 누군가와 통화했다. 뭔가 암호 같은 알아듣지 못할 말을 빠르게 전했다. 이번에도 '레이터'란 단어가 들린 듯 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출력되어 나온 티켓을 건네며 언제까지 탑승구로 가야 한다고 빠르게 말했다. 그 다급한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급하게 계단을 올라 검색대를 향해 뛰었다.


검색대를 나와 가방에 노트북을 집어넣고 폰과 지갑 등 소지품을 챙기며 시간을 보니, 웬걸 아직 여유있는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음식이 바로 나온다는 전제 하에) 햄버거나 국수를 먹고 가도 될 시간이 아닌가. 어쨌거나 나는 곧바로 탑승구를 향했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뒤에 섰고, 곧 내 뒤로도 긴 줄이 만들어졌고, 좀 기다려 탑승을 시작하자 비행기에 올랐다.


생각해보니 적어도 출발 시간 30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은 그 시간이 지나면 티켓 발권이 안 된다는 소리였나보다. 떠올려보니 내가 공항에 도착한 것이 대략 비행기 출발 30분쯤 전이었고, 아시아나 부스를 간신히 찾아 줄을 선 것이 대략 25분에서 20분쯤 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좌석에 앉아 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기 전, 마지막으로 읽은 메세지는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분에게 온 것이었다. "이 날씨에도 비행기가 뜨나요?" 라는 문장을 읽고 나서 제주에 내려서 답해야지 생각하고 비행기 모드로 바꿨다.


비행기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나눠주는 신문을 하나 가져와 이륙 대기중일 때부터 쉬지 않고 계속 읽던 중이었는데, 어느 순간 선체 내부가 어두워졌다. 조명이 바뀐 느낌이었지만, 글씨를 읽는데 어려움은 없어서 그대로 계속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주위만 다시 밝아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지나가던 승무원이 내 머리 위의 독서등을 켜줬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했는데, 그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곧 안정 궤도에 오를 줄 알았는데, 비행기 선체가 계속 불안하게 흔들렸다. 집중해서 신문 기사를 보느라 잘 못 느꼈는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 비행기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치 추락하듯 순간적으로 선체가 내려앉았다.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면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그 느낌. 근데 그때부터 선체가 전후좌우로 크게 흔들리더니 몸이 막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신문을 접고, 주위를 살폈다. 다들 불안한 표정으로 좌석 손잡이를 꼭 잡고 있었다. 아까와 같이 선체가 추락하는 느낌이 연속으로 여러번 이어지고, 급격하게 몸이 홱 돌아갈 정도로 선체가 쏠리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속으로 이러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거 아닌가 싶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반복적으로 급격하게 선체가 내려앉는 그 느낌, 심장이 철렁,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너무 싫고 무서웠다. 이건 레일 위를 달리는 롤러코스터가 아닌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가 아닌가!


읽던 신문을 대충 접어서 무릎 위에 두고 양쪽 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때 저 앞쪽 간이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꼭 맨 승무원이 불안해하는 승객들을 표정으로 달래고 있는 걸 봤다. 그 승무원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게도 살짝 웃음을 보내며 뭔가 말을 하는 듯 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표정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 여유를 되찾았고, 곧 다시 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에 집중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그냥 남들 보기에 태연한 척 하려고 신문을 읽는 척 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어쩌면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내게는 엄청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한참 심하게 흔들리고 덜컥 덜컥 추락하는 느낌이 들 때는 문득 머릿속에 비행기 잔해가 뉴스 영상으로 비치고, 아나운서가 날짜와 시간을 말하며 몇 명의 사망자와 몇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래. 비행기 사고는 생존자가 거의 없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있을 뿐. 문득 참 보잘것 없는 인생을 살았구나. 뭐 하나 남긴 것 없이 이렇게 가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안전벨트 등이 꺼지고 승무원들이 마침내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나 승객들에게 나눠줄 음료를 준비하기 시작할 때, 이제 안전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제 확실히 선체의 흔들림은 없었고, 안정적으로 비행하는 느낌을 받았다. 비행기를 많이 타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일 때문이라도 비행기를 타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제주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세 번째 제주행이었다. 셋 다 놀러간 것이 아니라 일 때문에 간 것이었다. 그 중 한 번은 주말을 끼어 2박 3일간 다녀왔고, 1박 2일은 일을 했고, 나머지 시간은 혼자 올레길을 걷고, 지겨울 때까지 바다를 쳐다보고, 흑돼지 삼겹살에 한라산 소주를 마시며 보내다 돌아왔다. 이번에는 딱 주 중이라 시간을 뺄 수가 없었다. 한참 일이 많을 때라 내려갔다가 당일 바로 돌아와야 할 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래도 제주까지 가서 저녁에 바로 올라오기는 좀 억울했다. 억지로 다음날 오전 일정을 비우고, 1박을 결심했다. 제주에 사는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했다. 반가운 목소리. 저녁에 만날 약속을 하고 몇 년 만에 볼 그 얼굴을 떠올려봤다. 


그러나 하루 전날 친구는 급한 일이 생겨 만날 수가 없다고 했다. 마침 함께 아는 한 선배가 그때 제주에 있을 예정이라고, 그 선배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출판계를 떠나 딱 한 번 봤던가, 아니 두 번 봤던가? 암튼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선배에게 전화를 했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문자를 주고 받았고, 그 선배는 그날 제주이 있긴 하지만, 저녁에도 일정이 있어서 나를 만나기는 어렵다고 했고, 나중에 서울에서 보자고 했다.


음, 제주에 또 아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닌데, 하루 전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연락해 만나자고 할만큼의 관계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몇몇 얼굴들과 이름들이 머리속에 스쳐갔지만, 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지워버렸다. 대부분 제주시가 아닌 서귀포 쪽이거나 외곽에 사는 이들이었다. 저녁과 함께 반주를 하고 다음날 돌아올 일정으로 연락을 하긴 미안했다.


토론회


토론회 장소는 작년 11월에 강연하러 왔던 곳이었다. 익숙한 장소라 쉽게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들어가고 싶었는데, 비행기에서 하도 시달려서 그랬는지 입맛이 없었다. 그래도 앞에서 떠들려면 배를 채워야 할텐데, 나중에 분명 후회할텐데 생각하며 뭐 적절히 끼니를 때울 곳을 살폈다. 식당이 몇 개 있었는데, 딱히 땡기는 곳이 없었다. 그냥 편의점에 들어가서 캔 커피 하나로 끼니를 때웠다.


토론회는 예상보다 사람도 많았고, 분위기도 괜찮았다. 나도 충분히 내 역할을 잘 했다 싶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하고 나면 늘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는데, 나는 대체로 큰 실수는 없는 편이라 작은 실수들 몇 가지를 두고 후회하거나, 그래도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날 토론회 발제는 지금까지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잘 한 편이었다. 시작 전에 생각해 둔 꼭 해야할 말들은 다 제대로 전달했고, 중간에 즉석에서 떠오른 이야기도 잘 끼워넣었다. 시간을 살짝 넘기긴 했는데, 앞에서 시간을 더 많이 쓴 발제자도 있었으니, 그 정도는 괜찮았다. 토론회가 끝나고 한동안 사람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느라 꽤 오래 서있었다. 같이 서울에서 내려온 한 연구원이 언제 올라가냐고 묻길래 "내일" 이라고 답했더니 바로 부럽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가냐고 물었더니, 사실 본인은 어제 내려왔다고 했다. 그와 잠시 떠들다가 그만 친구가 약속을 깨버려 지금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들켜버렸다. 하필 그날은 주최측에서 저녁 식사도 계획하지 않았다. 작년에 내 강의를 주선했던 분은 저녁에 회의가 있다고 급하게 가버리셨다.


혼자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가방을 메고 나섰다. 잠시 걸었다. 제주 칼 호텔을 지나며 오래전 신혼여행 때가 떠올랐다. 안돼! 이런 기분에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 힘들어! 고개를 휘휘 내젖고, 몰아치는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빨리 걸음을 옮겨, 그 동네를 벗어났다. 일부러 차를 타지 않고 계속 걸었다. 대략 방향은 잡고 있었다. 작년에 왔을 때, 호텔(이라 쓰고 모텔이라 읽자)이 많고, 식당이나 술집이 많은 동네는 봐 두었다. 바다가 멀지 않은 동네.


동문시장


쎈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며 걷다가 문득 지도 앱을 열어보니, 걷기엔 너무 먼 거리라 느꼈다. 게다가 배가 고팠다. 점심도 안 먹고 캔 커피 하나로 때웠던 게 기억났다. 일단 노트북이 들어서 무거운 가방부터 내려놓고 싶었다. 숙박업소 검색 앱을 깔고 찾아보니 가까이에 호텔(이라 쓰고 모텔이라 읽자)이 있었다. 저렴한 편이었다. 결제하고 5분 가량 걸어서 찾아갔다. 주인장이 건넨 열쇠로 열고 들어온 방은 모텔보다 더 소박했다.


가벼운 몸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다. 회가 먹고 싶었다. 회 한 접시에 한라산 소주 한 병, 그리고 바닷가에서 맥주 두세 병 정도 마시면 다시 숙소로 걸어 돌아올 수 있으리라. 어쩌면 술이 모자라 숙소에서 맥주를 좀 더 마실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하며 방향을 잡고 걸었다.


이런저런 술집과 식당들을 지나면서 계속 머리속에 회만 떠올렸다. 한참을 걸어서 동문시장이라 적힌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에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도 많았다. 누군가 삶에 회의가 들면 재래시장을 찾으라고 했던가? 그 활기에 전염되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으라는 뜻이었던 것 같은데. 난 저 활기찬 분위기 밖에 걷도는 이방인일 뿐이라는 생각에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었다. 한참 걷다가 횟집을 하나 발견했다. 식사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지, 주인장은 포장 손님으로 착각한 듯 했다. 오후에 많이 떠들어 목이 조금 아팠지만, 목소리를 높여 먹고 갈 거라고 했고, 주인장은 2층으로 안내했다. 넓지 않은 실내에 손님이라곤 나 혼자였다. 티비도 하나 없이 조용한 객실에 앉아 회가 나오길 기다렸다. 조선족인 듯한 중년의 종업원이 반찬을 놓을 때, 한라산 한 병을 주문했다. "하얀 거?" 라고 묻길래, "네." 답했더니, "하얀 건 좀 독해요." 라고 알려준다. 그 하얀 한라산을 평소 2병 이상 먹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다가 참는다. 평소 소주는 빨간 걸로만 먹는다고 대꾸해주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했다가 오히려 빨간 게 뭐냐고 물으면 뭐라 답하지 라고 혼자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참돔회가 나왔다. 접시에 무를 깔지 않고 그냥 회만 놓아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훨씬 깔끔하고 좋았다. 맛있었다. 내가 들어온 시간이 좀 늦어서 앉자마자 몇 시까지 하냐고 물었는데, 시간은 충분했다. 한 40분 분 가량 후, 회 한 접시와 한라산 한 병을 다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거기서 다시 바다를 향해 걸었다. 도중에 포장마차가 길게 이어진 길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골목에서 술과 안주를 즐기고 있었다. 일행이 있었다면 나도 저기 합류하고 싶었으나, 혼자 저 골목을 들어서기는 조금 망설여졌다. 그냥 다시 걸었다. 바다를 만날 때까지. 제주에 와서 바다 한 번 못 보고 가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내일은 시간 상 바다를 찾아갈 여유가 없을테니, 이 밤에 충분히 바다를 즐겨야했다. 


작년 가을에 한 번 와봤던 곳. 방파제와 테트라포트 너머로 시커먼 바다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문득 요의를 느껴 돌아보았는데, 대중화장실이 없었다. 한참을 걸으며 찾다가 간신히 발견했다. 화장실을 해결하고 나서 편의점에서 500밀리리터 캔 맥주 2개를 샀다. 안주는 필요없었다. 방파제에 몸을 기댄 채 홀짝 홀짝 한 캔을 비우고, 방파제에 걸터 앉아 또 한 캔을 비웠다. 오가는 이들이 모두 연인이거나 가족이어서 조금 더 쓸쓸해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먼 것 같았는데, 또 금방 온 것 같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다시 500밀리 맥주 두 캔을 더 샀다. 좀 더 마셔야 잠이 올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를 하고, 알몸으로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그제서야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박일환


이 분을 만나 인연을 맺었던 건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 당시 이 분은 모 출판사 대표였고, 나는 출판노동자의 삶을 막 시작할 때였다. 늦게 출판계에 들어와 아는 것 하나도 없는 상태로 영업 일을 한다고 많이 힘들었고, 또 그만큼 많이 재미있고 신나기도 했다. 전교조 해직 교사이셨고, 복직해서 다시 중학교 국어 교사로 지내셨던 이 분은 출판사 대표 직에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계속 학교에만 계시다가 가끔 일이 있을 때에만 사무실에 와서 회의하고 술을 마시는 것이 대표로서 이 분이 하셨던 일의 전부가 아니었던가 싶다. 아니,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평소 교사로 생활하시면서도 틈 날때마다 시간을 내어 회의하고 또 술을 마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늘 그렇게 살아서 잘 안다!) 그것도 돈 한 푼 못 받는 직책 뿐인 대표라면 더욱 그렇다. (이것도 내가 늘 그래서 잘 안다!) 아니, 오히려 맨날 후배들 술 사느라 돈이 나갈일이 더 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책만 내는 작은 출판사 대표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그 출판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 이 분이 미안하다는 내용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사실 나는 대표로서 제대로 중재해주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원망을 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이 분도 곧 대표직을 내려놓았고, 실무자 출신이 대표가 되었다가, 나중에 또 다른 시인께서 대표가 되셨다는 소식을 계속 듣고 있었다. 이 분이 대표가 되기 이전에는 또 유명한 시인께서 대표였다. 그러고보니 그 출판사는 계속 시인들이 대표가 되는구나. 아니, 아니다! 맨 처음 대표는 소설가가 맡았구나. 그 이후로 계속 시인들이 이어받았구나.


어쨌든 출판사 대표직을 물러나고 부지런히 글을 쓰시고, 책을 내신다고 느꼈다. 그러다 학교에서 퇴임하시고 나서는 훨씬 더 부지런히 글을 쓰시는 듯 하다. 


시인으로 소개 받았고, 시를 몇 번 읽어봤지만, 시 보다는 산문을 더 잘 쓰신다고 느꼈다. 물론 이 분 시가 별로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만큼 산문이 더 좋다는 뜻이다. 요즘 페이스북에 이 분이 '국어사전 혼내기'라는 글을 연재하는데, 정말 재미있고, 신기하고 또 황당한 내용이 많다. 나중에 책으로 엮는다면 꼭 구매해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이 분 말씀을 보니 이미 [미친 국어사전]이란 책을 냈다고 하시더라. 그러고 보니 언젠가 [어휘 늘리는 법]이란 책도 나중에 사야지 생각만 했다가 잊어버렸는데, 언젠가 사투리에 대한 책도 쓰셨던 것 같은데, 이 참에 다 찾아봐야지 싶었다. '국어사전 혼내기'고 빨리 연재 분량을 모아 책으로 내 주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또 뵐 날이 오면, 선한 웃음 짓는 얼굴 앞에 책들을 주욱 내밀고 서명 해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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