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형 인재가 되라 - 대한민국 상위 1%
장루샹 지음, 허유영 옮김 / 세계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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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갖춰야 할 덕목 중에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들라고 하면 ‘기업이 요구하는 결과물을 내는 인간형’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답을 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인간형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일원으로서의 직장인이란 자신을 고용한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데 크게 이견이 없을 것이고 보면 모르기는 해도 위에서 제시한 인간형이 당분간 그런 덕목의 수위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오래 전부터 기업의 사회적 이익이 거론되고 다양한 형태의 기업 책임이 논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논의조차 기본적인 시각은 기업의 과도한 이익에의 집착을 경계하는 형태의 것이지 기업이 이익을 포기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능력 있는 사원을 모집하려고 애쓰며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능력을 인정해주는 기업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국 어떤 형태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기업과 직장인이 관건이라면 판단기준은 투입 대 산출로 모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투입에 비해 산출이 턱없이 부족하다면 그런 결과를 낸 직원은 장래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고, 반대로 주어를 기업으로 놓아도 결과는 마차가지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 『결과형 인재가 되라』에서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인간형으로 ‘결과 중심적인 마인드를 갖춘 인재’라는 툴을 제시한다. 생각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소극적인 인간형을 배제하고 적극적으로 사고하되 실천을 담보한 인간형, 곧 임무를 완수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결과를 내기 위해 고투하는 전투적인 인간형이라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당연한 말이라 식상하기도 하고, 일견 상식 선에서 논리를 진행하는 듯한 서술구조에 다소간 맥 빠진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진리란 모래 속에서 금을 캐내듯 일반에 익히 알려진 상식에서 길어내진 것임을 안다면 그리 타박만 할 일이 아닌 듯 하다.

 

직장 초년병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하면 직장에서 성공한다’는 식의 성공의 원칙 한둘쯤 꿰차고 있는 현실이고 특정 분야에서만큼은 내로라 하는 논리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다양한 인간군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저런 지식과 생각이 행동으로 결과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누구든 듣기만 하면 수긍이 갈만한 이유를 들어 행동하지 못한 데 따르는 책임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는 한 성공이라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장밋빛 미래는 그렇듯 그저 장밋빛 미래일 뿐이다.

 

퇴보와 성공이라는 두 축 사이에 놓인 연약한 고리, ‘곧 실천력을 갖춘 마인드’를 직접 응시하고 있는 저자가 바로 그 곳에 다리를 놓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결과를 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 한편으로 독자가 결과 중심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촉구하는 다양한 논점들을 소개한다.

 

직장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면 미처 알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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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부르신 보통 사람들 - 제임스 보이스의
제임스 보이스 지음, 윤혜준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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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록렌즈로 종이를 태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볼록렌즈를 이리저리 움직여 종이 위에 초점을 정확히 맞추면 종이가 타기 시작한다. 낮이라 잘 보이지는 않아도 불꽃이 일면서 주변이 까맣게 타 들어가는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많은 경우 제대로 태워보지 못하는 일도 있다.

신앙 생활 또한 초점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성경을 통해 그 안에 기록된 인물들을 탐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인물들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 그 인물들을 인도해 가시는 분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 단순한 질문이지만 무척 중요하다. 물론 그런 질문을 직접적으로 받으면 후자라고 자신 있게 답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솔직히 들여다보면 인물에 대해 배우고 아는 데 만족하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말씀은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알고 마는 정도의 것이라면 극단적으로 말해 일반서적을 읽는 것이 낫다. 세상을 기준해서 볼 때 성경이나 신앙서적은 사실 세상이 요구하는 지식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 성경을 읽는 이유는 지식을 얻는 차원의 것과 분명 다르다. 성경 안에 모든 진리가 들어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자신을 기꺼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성경 인물이 저지른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고 그들이 행한 좋은 점은 배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인 실수에 빠지는 일이 많아지면 나와 다른 그들만의 높은 신앙과 거듭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렇지 못한 나를 대비하고는 좌절하고 절망한다. 이쯤 되면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더 이상 그들에게서 배우려 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초점이 틀렸다.

크리스천이 봐야 할 것은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고, 그 하나님이 그들이 온갖 실수와 결정적인 실패를 거듭해도 끝까지 붙드셨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이 그렇게 위대한 신앙 인물이 될 수 있었다는 것 등이다. 우리가 그들은 우리와 다른 인물이라는 고정된 생각을 갖는 한 그들이 우리보다 더한 실패를 거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좀체 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은 그들의 성공과 영웅적 자질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 사람이다. 그렇게 초점을 바로 맞춰야 제대로 보인다.

이 책, 『하나님이 부르신 보통 사람들』 또한 접근 방식에 있어 초점을 맞추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하나님은 완전해 보이는 영웅을 부르시지 않았다. ‘우상 숭배자’인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살인자’인 모세를 부르셨다. 그리고 ‘양치기 소년’을 부르셨다. 그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시작부터 결격사유가 많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후사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아브라함이 어떻게 훼방했는지 보라. 아브라함의 행위는 하나님이 그와 했던 약속을 거둬야 할 정도로 결정적인 것이었다. 덜컥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나님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긴가? 이스마엘을 인정하라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깨지 않으셨다. 원래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자였던 이브라함은 원래 세상의 방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번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라. 하나님은 그 외에도 아브라함이 행한 여러 가지 잘못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하셨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환경과 사건을 조성하시고 섬세하게 아브라함을 훈련하셨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비로소 약속의 하나님을 말할 때면 제일 먼저 그의 이름이 나오는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이다. 모세와 다윗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다. 내가 현재 형편없는 상태에 있다해도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처음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세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삶에 개입하신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휘두른다고 생각지 마라.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를 연상하면 좋을 것이다.

아버지는 자식이 ‘이렇게 자라줬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자식이 현재로선 그 기대를 모두 충족해 줄 수 없는 걸 알고 있다. 아이가 언제 기대수준에 이를지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이란 자주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까맣게 타 들어가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자식을 윽박지르는 아버지는 없다. 하나님은 그런 아버지보다 더 자비로우신 아버지다. 그렇다면 명백하지 않은가. 현재의 나를 책망하는 대신 달라질 미래의 나를 기대하며 바라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의 좌절이란 없다는 것, 말이다.

이 책은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든든한 인생이라는 점을 핵심적으로 일러준다. 아울러 ‘자주 같은 잘못에 빠지는 자신이 보이거든 거듭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행간의 말로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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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광장에서 나남신서 1179
송호근 지음 / 나남출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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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송호근의 시대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가 10여 년 동안 각종 신문에 쓴 칼럼을 모아 단권으로 엮은 것이다.

어느 세대라고 10년 동안 숨가쁜 일이 없었을까마는 지난 10년은 우리 세대에게 정치 과잉과 경제적 쇠락을 강제한 10년이었다. 어느 때보다 정치적 냉소는 깊어갔고 실물경제는 체감지표 저 아래를 맴돌았다.

희망이 사라져 가는 듯한 이 상황을 사회학자의 눈이 피해갈리 없었겠다 싶다. 저자는 그 10년을 두루두루 적고 있다. 예리한 메스를 대기도 했고, 정밀한 현미경으로 뚫어져라 관찰하기도 했다.

피아(彼我)가 구별된 시대를 건너온 우리 세대가 직면한 현 사회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전선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사회가 아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주장하는 바에 귀 기울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에 과연 우리의 눈과 귀가 어느 곳을 향해 열려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들이 자신을 향해 있는 한 아집과 상대 흠집내기의 확대재생산은 불가피하다. 공론(空論)을 남발하는 사회에 남는 것은 거듭되는 혼란과 회복 불가능한 좌절뿐이다.

따라 배우고 싶을 정도로 논리 전개가 명쾌하고, 부러울 정도로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칼럼의 특성상 정해진 분량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꼼꼼히 담은 저자의 수고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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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 10주년 기념판, 성숙한 인격의 8가지 자질
빌 하이벨스 지음, 박영민 옮김 / IVP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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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로 유명한 저자의 책이 또 나왔다. 우선 반갑다. 저자는 이미 전작을 통해 필요하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에는 정작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어리석은 행태를 꼬집고 기도의 능력과 기도할 이유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눈뜨도록 도전한 바 있다.

전작과 성격이 판이한 책이 발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재출간된 것은 출판사의 소개처럼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겐 다소간 이물감이 없지 않았다. 전작의 깊은 영성에 크게 도전을 받았던 터라 빌 하이벨스가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기대심리가 충분히 자극되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 책이 다르고 있는 주제에 대한 선입견은 그 이상이었다. 인격이라는 주제가 빚어내는 뉘앙스가 ‘세상적’이라는 형용사와 결합됨으로써 섣부른 판단을 불러왔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이 책을 거침없이 읽게 된 데는 저자의 서문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이 책은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간에, 인격의 힘을 높이 평가하고 우리 사회와 자신에게 이 인격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지점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이 책이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는 이미 그리스도께 일생을 바친 사람으로서 자신이 획기적으로 변화하여 인격의 미덕이 눈부시게 드러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당신이 이미 인격을 연마하는 도정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도정이 예상보다 험난할지라도 말입니다.”

책을 쓰는 데 있어서 읽어야할 또는 읽기를 바라는 대상을 선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저자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두루 인격의 필요성에 대해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쓰고 있다. 전반적인 기조는 비그리스도인에게 맞춰져 있다. 우선 성경 인용이 많지 않다.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 또한 단일 방향을 정해놓고 집요하게 금맥을 찾아 들어가는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평이하게 글을 끌어가고 있다. 여러 개의 장으로 구분해 놓아 호흡마저 전반적으로 짧다.

제1장은 인격을 다룬다. 제2장부터 순서대로 용기, 자기 통제력, 비전, 인내, 사랑이 독립적인 소제목을 이룬다. 외관상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것이 저자가 의도한 바대로 인격이라는 큰 뼈대에 자연스럽게 수렴하고 있는 것은 인격의 최고조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초한 훈련된 덕목임을 누구보다 저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어떤 것의 바탕을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판을 한다든지 제멋대로 추측해서는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론 단시일 내에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 바라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쉽게 포기하고 마는 어리석음 또한 자주 범한다. 훈련이란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지나치게 길기도 하고, 언제 그 끝이 보일지 모를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훈련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또한 훈련의 과정을 통과해서 그토록 바라던 훌륭한 인격을 갖췄다고 해도 그것이 근본 바탕에서 벗어난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인격을 쌓으려고 하는 이유부터 바르게 정립하고 있어야 한다. 인격은 그것을 얻어 내가 이롭게 되고자 하는 이기심을 배제한다. 그것은 타인에게 자신을 내주는 용기를 필요로 하며 자기 통제력과 비전과 인내가 조합될 때 견고하게 조성된다. 전적으로 타인 지향적이라는 얘기다.

사랑은 인격이 고도로 완성된 자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빛을 잃지 않는 것은 그분의 전적인 헌신과 자기 희생에 있다. 그분은 피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자기 몸을 십자가의 고난 속에 기꺼이 내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그분을 향한 어떤 형태의 배신이라도 통회의 심장을 담아 십자가 앞으로 가져오기만 하면 언제든 충분히 용서해 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계시다. 난 그것이 놀랍고 감사하다.

잘 알다시피 시중에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나와있다. 그 중에서도 인격을 다루는 책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문제는 그런 유형의 책들이 하나같이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데 있다. 인격의 본질적 측면을 다루지 않는 내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자명하다.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남을 앞지르기 위한 차원의 술수를 부끄럼 없이 가르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주소다. 겸손마저도 출세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그 책들 속에서 올바른 미래와 영혼을 깨우는 능력을 찾기란 어려운 법이다.

우리가 오늘 이 책에 주목하는 것은 이 책이 비 진리가 진리를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이 왜 인격을 갖추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고 목적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그 지향이 어느 곳이어야 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겁쟁이인가 용기 있는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선택을 합니다. 옳은 일과 편리한 일 중에서 선택을 하고, 신념을 지키는 것과 안락, 탐욕, 인정 때문에 신념을 굽히는 것 중에서 선택을 합니다. 충분히 예견되는 위험 부담을 무릅쓸 것인지, 몸을 웅크려 안전함과 평온무사, 방관의 껍질로 숨어들 것인지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분을 믿고 신뢰할 것인지, 아니면 그분의 뜻을 지레짐작해서 회의와 두려움의 틈새로 숨어들 것인지 선택합니다. 이런 선택의 상황은 매일 속사포같이 우리 앞길에 쏟아집니다. 우리는 이런 선택에 어찌나 자주 직면하는지 우리가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입니다. 그리고 신중하게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는커녕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구절을 읽고 부끄러웠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내 상태를 정확히 지적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기는커녕 자기 몸을 추스르는 데 바쁜 내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기대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내 모습을 제대로 응시한 후에야 비로소 이 책을 끝까지 붙잡으려는 갈망이 일었다.

어떤 종류의 책이든 기독 서적은 읽는 이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깨달음을 주지만 이 책이 내게 준 가르침은 독특했다. 마치 속을 들여다보고 있기라도 하듯이 속마음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이 책이 저자가 겪은 실제적인 삶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양은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여전히 빚진 자일 수밖에 없는 죄인의 죄성이 그렇듯 심층적인 부분에서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저자가 달라졌다면 나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이 그 이유였다.

치료자 되신 하나님께서 이 책을 통해 비친 내 적나라한 비인격을 가져가 다뤄주시기를 소망한다. 작은 돌부리를 피해 달아나 한참 후에 그것과 유사한 돌부리를 또 다시 만나는 정체된 신앙에서 한사코 벗어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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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의 함정 - 위기를 혁신으로 바꾼 경쾌한 비즈니스 이야기!
데이비드 모즈비.마이클 와이스먼 지음, 박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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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문제해결 능력과 깔끔한 일처리가 돋보인 그 친구는 조직에서 승승장구했다. 어떤 일이든 척척해내는 그를 상사나 동료직원 모두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상위 부서에서 그가 해낸 특정 사안에 제동을 걸었다. 순간 그를 대하는 상사나 동료들의 인식이 싸늘하게 식었다. 지난 날 그토록 높았던 그에 대한 평가는 마치 신기루가 걷히듯 사라졌다. 그 곳을 떠난 친구의 말, “한순간이더군. 그토록 날 칭찬하던 사람들이 완전히 돌아섰어. 단 한 번의 실수로 말이야.” 듣기로 그 실수란 그리 두드러진 실수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었고, 다들 그런 실수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유독 문제가 됐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프리미어 특별 운송 회사의 영업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인 톰 프레딕스에게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이 배달된다. 회사 이익의 절반을 담당하는 주요 고객(매크로집 전자)의 메일이었다. “앞으로는 귀사에 부품 운송을 맡기지 않겠습니다.“ 톰이 이 회사로 자리를 옮긴지 몇 주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한 악재 앞에 톰은 물론 사장 이하 전 임원들은 경악했다.

늦어도 토요일 정오까지 배달이 완료되어야 할 부품이 불가피한 교통 혼잡으로 상대 회사(싱글)에 적시에 운송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싱글은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싱글은 매크로집과 사업관계를 끊으려 했다. 이에 격분한 매크로집이 프리미어와 맺은 서비스 계약의 파기를 선언하고 나섰던 것.

외견 상 운송을 책임지고 있는 운영담당 부서의 책임으로 종결된 사안임이 분명했다. 운영담당 부사장인 캐롤린 아널드의 반발이 거셌다. 단 한번의 운송 실수가 장기적으로 사업관계를 유지해온 업체와의 계약 파기를 몰고 올만큼 큰 것이었겠느냐는 문제제기와 지난 3년간 99.97%에 육박하는 정확한 운송 서비스율이 근거로 제시되면서 고객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영업 및 마케팅 담당 부서의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어느 부서의 책임일까?

우리는 때때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부터 따지기 시작한다. 네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싸우는 동안 문제는 때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고 때론 속성상 전보다 확대된다. 손을 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커지고 나서야 비로소 양자 사이에 큰일이라는 공간대가 형성돼 그제야 비로소 머리를 맞대보지만 그 땐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시점이다. 일을 그르치는 것은 한순간이다. 어떤 문제든 서로 머리를 맞댈 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그 문제가 크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프리미어는 동종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운송 업체로 타 업체 어느 곳도 차별화의 전략을 구축하고 있지 않았다. 운송비용이 타 업보다 약간 상회하기는 했어도 그것이 계약 파기로 이어질 만큼 큰 것도 아니었다. 운영담당 부서장의 말대로 라면 여전히 운송 서비스는 최상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매크로집은 사업관계를 끊지 않는 조건으로 30%의 가격인하를 요구해 왔다. 매크로집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매크로집의 계약 파기가 연쇄반응을 일으켜 다수의 고객들이 사업관계를 끊을 것이고 장차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다. 프리미어에 닥친 위기상황을 타개할 방책은 없는 것일까?

프리미어의 창업자이자 CEO인 행크 피터스는 전직 해군 상관이자 자산관리인이 샘 클라크, 전 정치인 낸시, 소규모 은행에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했던 대릴 젠슨과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나누는 동안 그들로부터 위기 탈출의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다.

“서비스가 우수해질수록 우리 회사는 점점 눈에 띄지 않는 회사로 변해버리더군요. 실제로 고객들은 우리가 그 동안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개별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어요. 계약을 갱신할 때가 되자 고객들은 전반적인 서비스 성과는 무시한 채 ‘우리에게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항’인 개별적인 문제들만 가지고 트집을 잡더군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대릴의 말이다.

피터스는 비상 경영회의에서 회사에 닥친 경영상 위기를 ‘탁월함의 함정’이라는 용어로 풀어냈다. 대릴이 겪은 상황이 실마리였다. ‘탁월함의 함정이란, 성과가 향상될수록 점점 고객의 눈에 띄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정의한 피터스에게 톰은 지난 5년 동안의 고객의 만족도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5년 전 고객들은 회사의 성과를 보통 이상으로 평가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보통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 동종 업계 최고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는 무역연합의 수치는 무용지물이었다. 경쟁사들의 성과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면 고객들의 기대치가 상승했다는 결론이 가능했다. 성과는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고객들의 인식은 낮은 상황. 프리미어의 현주소였다. 원인이 밝혀진 이상 이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요즘 잘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나와 조직을 지배하고 있다면 우선 멈칫할 일이다. 많은 경우 자기 혁신에서 한참 뒤로 물러나 현실 안주로 뱃살을 찌우고 있는 형국이기 쉽기 때문이다.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사실 매크로집의 계약파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프리미어는 여전히 탄탄대로의 기업이었다. 동종 업계 최고의 운송 체계를 갖춘 기업의 자기 확신은 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상황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문제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문제란 다루기 힘들 정도로 커진 상태에서 터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과 기업의 부침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정말 잘 나가던 개인과 기업이 하루아침에 내리막길을 걷는 것을 보면 참 한순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타인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한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고객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동안 그 서비스에 익숙해진다. 기업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서비스를 향상시키지만 이미 향상된 서비스에 익숙해진 고객은 기업이 제공하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좋지 않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 고객은 그 동안 받아온 최상의 서비스는 잊은 채 문제에만 집중한다. 그리곤 타 업체로 눈을 돌린다.

해결책은 바로 그 지점에 닿아있다. 고객에게 알려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받은 고객들이 눈을 딴 데로 돌린다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자사가 제공한 서비스의 질에 대해 알리지 않은 책임이 회사에 있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성과(고객에게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기업의 이익)와 인식(기업이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고객의 확신)의 균형은 그래서 필요하다.

“추상적인 제품을 다루는 서비스 회사였음에도 차별화된 성과 수준을 고객이 충분히 느끼게 해 주는 데 소홀했었다”는 초기 실패담을 소개한 대릴에게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피터스가 질문을 던졌다. 대릴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회사는 장기 고객이 아니라 잠재 고객과의 의사소통에 신경을 더 많이 썼죠. 둘째는, 고객들이 우리의 서비스가 향상되었으며 경쟁사들보다 훨씬 월등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주리라 생각했죠.” 이어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 탈출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프리미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을 살펴보고, 그 회사들이 무엇 때문에 우수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세요. 그 회사들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프리미어의 기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치를 강화해나가는지 등을요. 그렇게 하다보면 피터스씨의 상황을 해결해 줄 유용한 접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사 입장에서가 아니라 프리미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게서 배우라는 것이다.

경영 회의에서 프리미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의 다양한 가치들을 조사한 피터스와 톰, 그리고 재무부장의 발표가 있었다. 그 회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프리미어에 그들만의 독특한 가치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상품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객과 지속적으로 의사소통해야 합니다.” 피터스의 말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우린 자신이 갖고 있는 남과 다른 특징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특징을 갈고 닦는다. 단기적으로는 그 특징이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유도함으로써 인정을 끌어내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프리미어에서 보듯 그런 특징이란 내 가치를 인정해 주는 상대방에게 장기적으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작은 실수가 발생하면 그것을 대하는 실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현저히 커진다.

그런 예는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 든 친구의 예 말고도 주위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 처할 때 대부분 그런 실수를 저지른 자기를 학대한다든지 남을 원망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프리미어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이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또 다른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우린 때로 자신의 장점을 타인에게 얘기하는 사람을 두고 자기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리고 반대로 시시콜콜 자기 자랑에 빠지지 않는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 상사를 향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을까? 아니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떠나 내가 나를 표현하지 않아도 남이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나 한 것일까? 프리미어의 경우처럼 자신의 가치를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고객은 알 수 없다. 자기 가치를 매길 리스트는 자기가 제시해야 한다. 고객이 무슨 리스트를 갖고 자기를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

어느 교육장에서 강사가 한 얘기가 있다. 대학에서 강의한다는 그 교수의 말이 잘한 학생을 칭찬하면 아닙니다, 하고 손사래를 치더라는 것이다. 잘한 것을 칭찬하면 예 감사합니다, 하고 답례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겸양의 태도인양 받아들이는 순간 자기존중에서 멀어지게 되기 쉽다고 했다. 교수의 말에 일리가 있지 않은가.

우린 때론 우리의 가치를 자랑하는 데 소홀하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를 홍보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프리미어가 적극적으로 자기 홍보에 나섰듯 우리도 그렇게 할 일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조직적인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과장이나 허풍이 아닌 한 말이다.

성과가 향상될수록 점점 고객의 눈에 띄지 않게 되는 탁월함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직장과 사회 곳곳에 그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깨달음과 공감을 갖게 해준 것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탁월함이다. 그렇다면 이 책도 탁월함의 함정에 빠질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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