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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의 함정 - 위기를 혁신으로 바꾼 경쾌한 비즈니스 이야기!
데이비드 모즈비.마이클 와이스먼 지음, 박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누가 봐도 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문제해결 능력과 깔끔한 일처리가 돋보인 그 친구는 조직에서 승승장구했다. 어떤 일이든 척척해내는 그를 상사나 동료직원 모두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상위 부서에서 그가 해낸 특정 사안에 제동을 걸었다. 순간 그를 대하는 상사나 동료들의 인식이 싸늘하게 식었다. 지난 날 그토록 높았던 그에 대한 평가는 마치 신기루가 걷히듯 사라졌다. 그 곳을 떠난 친구의 말, “한순간이더군. 그토록 날 칭찬하던 사람들이 완전히 돌아섰어. 단 한 번의 실수로 말이야.” 듣기로 그 실수란 그리 두드러진 실수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었고, 다들 그런 실수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유독 문제가 됐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프리미어 특별 운송 회사의 영업 및 마케팅 담당 부사장인 톰 프레딕스에게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이 배달된다. 회사 이익의 절반을 담당하는 주요 고객(매크로집 전자)의 메일이었다. “앞으로는 귀사에 부품 운송을 맡기지 않겠습니다.“ 톰이 이 회사로 자리를 옮긴지 몇 주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한 악재 앞에 톰은 물론 사장 이하 전 임원들은 경악했다.
늦어도 토요일 정오까지 배달이 완료되어야 할 부품이 불가피한 교통 혼잡으로 상대 회사(싱글)에 적시에 운송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싱글은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싱글은 매크로집과 사업관계를 끊으려 했다. 이에 격분한 매크로집이 프리미어와 맺은 서비스 계약의 파기를 선언하고 나섰던 것.
외견 상 운송을 책임지고 있는 운영담당 부서의 책임으로 종결된 사안임이 분명했다. 운영담당 부사장인 캐롤린 아널드의 반발이 거셌다. 단 한번의 운송 실수가 장기적으로 사업관계를 유지해온 업체와의 계약 파기를 몰고 올만큼 큰 것이었겠느냐는 문제제기와 지난 3년간 99.97%에 육박하는 정확한 운송 서비스율이 근거로 제시되면서 고객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영업 및 마케팅 담당 부서의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어느 부서의 책임일까?
우리는 때때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부터 따지기 시작한다. 네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싸우는 동안 문제는 때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고 때론 속성상 전보다 확대된다. 손을 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커지고 나서야 비로소 양자 사이에 큰일이라는 공간대가 형성돼 그제야 비로소 머리를 맞대보지만 그 땐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시점이다. 일을 그르치는 것은 한순간이다. 어떤 문제든 서로 머리를 맞댈 수만 있다면 생각보다 그 문제가 크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프리미어는 동종업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운송 업체로 타 업체 어느 곳도 차별화의 전략을 구축하고 있지 않았다. 운송비용이 타 업보다 약간 상회하기는 했어도 그것이 계약 파기로 이어질 만큼 큰 것도 아니었다. 운영담당 부서장의 말대로 라면 여전히 운송 서비스는 최상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매크로집은 사업관계를 끊지 않는 조건으로 30%의 가격인하를 요구해 왔다. 매크로집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매크로집의 계약 파기가 연쇄반응을 일으켜 다수의 고객들이 사업관계를 끊을 것이고 장차 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다. 프리미어에 닥친 위기상황을 타개할 방책은 없는 것일까?
프리미어의 창업자이자 CEO인 행크 피터스는 전직 해군 상관이자 자산관리인이 샘 클라크, 전 정치인 낸시, 소규모 은행에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했던 대릴 젠슨과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나누는 동안 그들로부터 위기 탈출의 중요한 단서를 포착한다.
“서비스가 우수해질수록 우리 회사는 점점 눈에 띄지 않는 회사로 변해버리더군요. 실제로 고객들은 우리가 그 동안 전반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제공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개별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어요. 계약을 갱신할 때가 되자 고객들은 전반적인 서비스 성과는 무시한 채 ‘우리에게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항’인 개별적인 문제들만 가지고 트집을 잡더군요.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대릴의 말이다.
피터스는 비상 경영회의에서 회사에 닥친 경영상 위기를 ‘탁월함의 함정’이라는 용어로 풀어냈다. 대릴이 겪은 상황이 실마리였다. ‘탁월함의 함정이란, 성과가 향상될수록 점점 고객의 눈에 띄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정의한 피터스에게 톰은 지난 5년 동안의 고객의 만족도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5년 전 고객들은 회사의 성과를 보통 이상으로 평가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보통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 동종 업계 최고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는 무역연합의 수치는 무용지물이었다. 경쟁사들의 성과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면 고객들의 기대치가 상승했다는 결론이 가능했다. 성과는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고객들의 인식은 낮은 상황. 프리미어의 현주소였다. 원인이 밝혀진 이상 이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요즘 잘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나와 조직을 지배하고 있다면 우선 멈칫할 일이다. 많은 경우 자기 혁신에서 한참 뒤로 물러나 현실 안주로 뱃살을 찌우고 있는 형국이기 쉽기 때문이다.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 사실 매크로집의 계약파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프리미어는 여전히 탄탄대로의 기업이었다. 동종 업계 최고의 운송 체계를 갖춘 기업의 자기 확신은 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상황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문제가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문제란 다루기 힘들 정도로 커진 상태에서 터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인과 기업의 부침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정말 잘 나가던 개인과 기업이 하루아침에 내리막길을 걷는 것을 보면 참 한순간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타인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한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고객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동안 그 서비스에 익숙해진다. 기업은 기존 고객을 유지하고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서비스를 향상시키지만 이미 향상된 서비스에 익숙해진 고객은 기업이 제공하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좋지 않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 고객은 그 동안 받아온 최상의 서비스는 잊은 채 문제에만 집중한다. 그리곤 타 업체로 눈을 돌린다.
해결책은 바로 그 지점에 닿아있다. 고객에게 알려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받은 고객들이 눈을 딴 데로 돌린다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자사가 제공한 서비스의 질에 대해 알리지 않은 책임이 회사에 있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성과(고객에게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기업의 이익)와 인식(기업이 탁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고객의 확신)의 균형은 그래서 필요하다.
“추상적인 제품을 다루는 서비스 회사였음에도 차별화된 성과 수준을 고객이 충분히 느끼게 해 주는 데 소홀했었다”는 초기 실패담을 소개한 대릴에게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피터스가 질문을 던졌다. 대릴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회사는 장기 고객이 아니라 잠재 고객과의 의사소통에 신경을 더 많이 썼죠. 둘째는, 고객들이 우리의 서비스가 향상되었으며 경쟁사들보다 훨씬 월등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주리라 생각했죠.” 이어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 탈출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프리미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을 살펴보고, 그 회사들이 무엇 때문에 우수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세요. 그 회사들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프리미어의 기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치를 강화해나가는지 등을요. 그렇게 하다보면 피터스씨의 상황을 해결해 줄 유용한 접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사 입장에서가 아니라 프리미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에게서 배우라는 것이다.
경영 회의에서 프리미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의 다양한 가치들을 조사한 피터스와 톰, 그리고 재무부장의 발표가 있었다. 그 회사들은 놀라울 정도로 프리미어에 그들만의 독특한 가치를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가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는 상품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객과 지속적으로 의사소통해야 합니다.” 피터스의 말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우린 자신이 갖고 있는 남과 다른 특징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특징을 갈고 닦는다. 단기적으로는 그 특징이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유도함으로써 인정을 끌어내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프리미어에서 보듯 그런 특징이란 내 가치를 인정해 주는 상대방에게 장기적으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작은 실수가 발생하면 그것을 대하는 실망의 크기가 다른 사람의 그것보다 현저히 커진다.
그런 예는 처음 이 글을 시작할 때 든 친구의 예 말고도 주위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 처할 때 대부분 그런 실수를 저지른 자기를 학대한다든지 남을 원망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프리미어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이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또 다른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있는지 보아야 한다. 우린 때로 자신의 장점을 타인에게 얘기하는 사람을 두고 자기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한다. 그리고 반대로 시시콜콜 자기 자랑에 빠지지 않는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봐주지 않는 상사를 향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을까? 아니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떠나 내가 나를 표현하지 않아도 남이 나를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생각을 해보기나 한 것일까? 프리미어의 경우처럼 자신의 가치를 고객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고객은 알 수 없다. 자기 가치를 매길 리스트는 자기가 제시해야 한다. 고객이 무슨 리스트를 갖고 자기를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과 같다.
어느 교육장에서 강사가 한 얘기가 있다. 대학에서 강의한다는 그 교수의 말이 잘한 학생을 칭찬하면 아닙니다, 하고 손사래를 치더라는 것이다. 잘한 것을 칭찬하면 예 감사합니다, 하고 답례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는 것이 무슨 겸양의 태도인양 받아들이는 순간 자기존중에서 멀어지게 되기 쉽다고 했다. 교수의 말에 일리가 있지 않은가.
우린 때론 우리의 가치를 자랑하는 데 소홀하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기를 홍보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프리미어가 적극적으로 자기 홍보에 나섰듯 우리도 그렇게 할 일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조직적인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과장이나 허풍이 아닌 한 말이다.
성과가 향상될수록 점점 고객의 눈에 띄지 않게 되는 탁월함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직장과 사회 곳곳에 그런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깨달음과 공감을 갖게 해준 것이야말로 이 책이 지닌 탁월함이다. 그렇다면 이 책도 탁월함의 함정에 빠질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