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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어떻게 12제자를 위대한 리더로 키웠는가 - 예수의 수퍼리더십 4원칙
케네스 블랜차드.필 하지스 지음, 조천제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예수의 수퍼 리더십 4원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사전 지식 하나가 필요하다. 크리스천이라면 익히 알고있는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 제자와 관련된 지식이 이 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리더가 될만한 자질이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와 아무려면 예수가 아무나 제자로 택했을까 하는 의문에 관련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자의 기대는 예수 사후 제자들이 보여준 놀라운 능력 때문에 생긴 일종의 심리학적인 오류이며, 후자의 의문은 예수가 제자들을 택했을 당시 제자들의 직업만 봐도 쉽게 풀릴 의문이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당시 어부는 최하층민이었다. 교육 수준은 극히 낮았다. 예수가 죽기 전까지 그가 보여준 행적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물위를 걷는 예수를 보고 단번에 물 속에 뛰어들었던 것이나 예수를 잡으러온 군병들 사이에서 한 남자의 귀를 벤 것은 그의 다혈질적인 기질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것은 아마도 거친 어부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기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베드로만 속물적 근성을 지니고 있었을까? 아니다. 예수를 판 가룟 유다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제자들 모두 예수가 왕으로 옹립되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데 관심을 두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예수를 판 자가 그들 중에서 나왔고,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자도 그들 중에 있었다.
현대적 관점으로 봐도 제자들은 리더가 되기엔 싹수가 노란 사람들이었다. 그런 제자들이 달라졌다. 제자들과 함께 했던 그 3년 동안 예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예수의 무엇이 형편없던 제자들을 전혀 다른 사람들로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의문의 궤적을 좇아간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발견한 리더십을 예수의 수퍼 리더십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퍼 리더십이라는 명칭에서 연상되는 독특한 카리스마라든지 무한한 지식과 경험들로 구성된 능력이라든지 하는 등의 획기적인 리더십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리더십은 리더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영향력으로 가슴과 머리, 손, 습관의 전 영역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리더십은 섬김(가슴)에서 시작된다.
시중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리더십론은 리더의 양식과 행위 스타일에 초점을 맞춘다. 각종 리더십 스타일을 A형, B형, C형 등으로 유형화하고 그들 각각의 특징을 그럴듯하게 분류해낸다. 그리곤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테스트해 볼 것을 주문하고 그 유형에 따라 리더십을 개발하라고 빳빳한 처방전을 써준다. 이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으면(해당 유형의 페이지를 펼치면) 어김없이 3일치의 약을 내준다. 그것이 스킬이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추종자들이 생길 것이고 한번 생겨난 추종자는 계속 따를 것이다’. 이 주술과도 같은 스킬은 하지만 그 효용이 딱 3일이다.
리더십은 머리와 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리더십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삶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깊이 공명한다. 예수의 리더십의 대상은, 끊임없이 보여줘도 못 본 듯이 행동하고 아무리 가르쳐도 배운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아무리 믿어도 끊임없이 등뒤에 칼을 겨누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처럼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효율적인 리더십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다시 말해 리더십은 가슴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마음가짐이 잘못되었다면 결코 예수처럼 섬기는 리더가 될 수 없다.”
가슴으로 시작하는 리더십은 섬기는 리더십이다. 섬기는 리더십은 겸손과 자신감을 특징으로 한다. 반면 자기중심적 리더십은 교만과 두려움을 그 자리에 앉힌다. 추종자들을 통제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행태를 보이는 자기중심적 리더십은 후계자로 보이는 싹을 자르기에 바쁘다. 중심에 자기 외의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유형의 리더십이다. 하지만 섬기는 리더십은 최고의 리더가 하나님임을 바로 알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은 위임받은 것이라는 청지기적 관점을 갖고 추종자를 바라본다. 추종자가 바라는 것과 추종자에게 유익이 될만한 것에 관심을 보인다.
추종자보다 못났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 아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잘 아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더불어 “예수는 모든 일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통해 얻은 겸손과 하나님께 의지함으로써 생기는 자신감을 갖고 임했다.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가슴의 두 번째 특징이 바로 자신감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항상 느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온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을 최우선시하고, 용서와 자비를 갖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것은 우선 순위와 관계가 있다. 섬기는 리더십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이 바로 전자와 관계된다. 후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못박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예수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예수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섬기는 리더 또한 자신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용서하는 예수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바탕이 될 때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때때로 해를 끼치는 추종자를 너끈히 용서할 수 있다. 가슴으로 하는 리더십은 체화된 겸손과 자신감을 용서와 자비로 드러내는 것이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머리란 리더 역할을 인식하는 리더 자신의 관점이자 신념 체계다. ..... 예수의 관점에서 리더십은 먼저 남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는 이 관점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그들과 3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섬기는 리더십이라고 해서 무조건 추종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리더십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을 잘 알았다. 예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제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직접 그 비전에 따라 살았다. 추종자들은 리더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들을 어디로 인도하는지 알지 못하면 흥미를 잃고 만다. 따라서 리더는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여 가려는 방향을 보여주고, 사람들의 에너지를 목적지로 집중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명확한 비전을 수립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목적과 미래상, 그리고 가치다. 목적은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상은 목적한 대로 살아가면 장차 어떻게 되겠다고 하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돕는다. 아울러 추구하는 가치는 구성원들의 결속을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더 큰 뜻을 품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목적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제자들이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미래상을 제시하고, 추구해야 할 가치를 두 가지로 정리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목적과 미래상, 가치가 선순환할 때 조직은 역동적인 조직으로 변모한다. 동일한 미래와 가치를 꿈꾸고 추구하는 일원이라는 동료의식이 강화되고, 그럼으로써 목적에 더욱 매진하는 연쇄효과를 거둔다. 결과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큰 조직이든 소모임이든 당신이 리더라면 이 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당신이 이끌고 있는 조직이나 모임이 지지부진하다면 그것은 리더인 당신이 추종자들에게 목적과 미래상을 제시하고 가치를 표방하는 일에 소홀한 결과일 수 있다.
예수는 제자들이 비전을 수행하도록 지속적으로 돕고 계속해서 그 비전을 각인시켰다. 리더는 자신의 생각을 추종자들이 이해했는지 지속적으로 피드백할 필요가 있다. 조직의 비전 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구성원의 이해와 노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조직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리더의 몸소 실천보다 빠른 것은 없다.
리더는 일일 수행 코치다.
“예수는 제자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동안 각 단계에 맞는 수행 코치 역할을 했고, 리더십 스타일을 계속 바꿔 나갔다. 이런 노력으로 예수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계속해서 사역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예수는 손을 통해, 즉 유능한 리더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인 섬기는 리더십을 제자들에게 전해주었다.”
가슴과 머리가 준비되었다면 다음은 가슴과 머리에 품은 것을 실행한 손이 필요하다. 저자는 섬기는 리더는 ‘수행 코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수행코치는 수행계획을 수립하고, 일일 코치 역할을 하며 수행결과를 평가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추종자가 A학점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는 데로 모아진다. 여기서도 목표를 명확히 밝히는 일이 더없이 중요하다. 그래야 추종자들이 중도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후에 추종자의 자리로 내려가 그들이 최고의 결과를 내도록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 일은 리더가 몸으로 보여주는 실천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보편적으로 조직은 일일 코치 역할보다는 수행계획을 수립하고 수행결과를 평가하는 데 주력한다. 특히 후자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평가 결과를 분석하고 그것을 피드백 자료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조치로 책임자를 가려내고 추궁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말단을 문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사이 총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끈 리더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면책된다. 이런 형태의 구조하에서 구성원들이 창의적으로 일을 벌이기를 기대하기란 힘들다.
조직의 활력은 말단이 조직 목표를 향해 집중할 때 달성된다. 조직이 수행 코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조직 구성원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노력을 부단히 펼칠 때 구성원은 감동한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에 자신의 이상을 합치시킨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젊은 피’는 그렇게 수혈되는 것이다. 리더가 본을 보이고 추종자가 그런 리더가 되기를 꿈꾸며, 그가 또 다른 추종자를 돕는 구조야말로 조직이 사는 승리의 전략이 될 것이다.
긍정적인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표적과 기사를 본 사람들이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몰려들었을 때 예수는 멀리 한적한 곳으로 물러섰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 올랐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구세주를 열망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주 목격된 예수의 능력은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했을 것이다.
리더는 추종자의 열광에 직면하면 자칫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때로 그것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오판이 결정적이라는 데 있다. 예수는 비전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그 비전의 근원인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비전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리더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 끊임없이 자기를 추동하느라 지친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에너지가 모두 소진돼 주저앉는 모습도 보았다. 물론 리더는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추종자들이 비전을 향해 달음질하도록 리더가 몸으로 보이는 실천에서 비롯한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얘기다. 따라서 충전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동안 예수는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부추기거나, 친구나 적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감정적으로 대처하라는 압력과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러나 예수는 다음의 다섯 가지 주요 습관을 지킴으로써 이런 부정적인 요소를 물리치고, 계속해서 사역의 길을 걸었다.
1. 혼자만의 시간 갖기
2. 기도하기
3. 성경을 공부하고 생활에 적용하기
4.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에 응답하기
5. 서로 돕는 관계 맺기“
잠잠히 음미해 보면 위에 든 습관들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성찰과 관계망 형성은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유혹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게 해준다.
리더는 곁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많이 두어야 한다. 리더가 완전한 사람이 아닌 이상 리더 또한 조언이 필요하다. 리더의 잘못이 공공연하게 피드백되고 수정되어야 성장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보다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수립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아울러 그런 바탕 위에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리드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보다 둘이 더 낫고 둘이 함께 노력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넘어지더라도 다른 하나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고, 리더를 일으켜 세울 수도 있다.
예수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말하면 섬기는 리더십이다. 비전과 목표를 향해 제자들이 매진하도록 스스로 낮아져 그 비전과 목표에 헌신한 리더십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겸손한 리더십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세상과 정반대의 리더십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리더에게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기대하고 특출한 능력으로 구성원들을 휘어잡아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그런 리더를 만나면 고통스러워한다. 어떤 리더도 자신을 초개와 같이 버리면서 구성원들의 성장만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목격하는 리더는 대부분 구성원들의 응축된 힘을 이용해 자신이 두드러지기를 바란다.
리더와 구성간의 전통적인 관계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의 리더십은 그것과 달랐다. 그렇다고 그가 보인 리더십이 어리석었던 것일까? 『목적을 이끄는 삶』의 저자인 릭 워렌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고기 잡는 베드로를 섬김으로 이끈 예수는 2천년 후에도 21억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