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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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은 잘 안 읽는데. 이런 책이라 함은 페미니즘의 냄새가 나는, 세상의 기준에서 바라보면 조금 별나 보이는 드센 여자들 이야기. 왜 안 읽냐면 이런 책들에서는 신선함을 발견할 수 없어서.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어서.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우리들의 외침이 지긋지긋해서. 알아 먹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끊임없는 항변은 언제나 나에게 상처로만 돌아와서. 그래서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보지 않는 것이 속 편해서, 눈을 감아 버린다. 


 그런데 왜 이 책이었냐고? 왜였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함을 확인하고 싶어서.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이 땅 어느 한 구석에서 멀쩡히 숨 쉬고 있음을 상기하고 싶어서다. 


 요즘 내 주변은 세상의 상식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본인은 그런 주제이면서 틀을 벗어난 사람들을 경멸의 눈길로 바라보는 한심이들로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어색하게 앉아 있으려니 그들의 경멸의 눈빛이 따가워서. 자꾸 소심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그래서, 이러면 안 되겠다, 더 씩씩하고 당당한 사람들과 함께 공감을 형성하고 책으로나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려야겠다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의 기준이나 잣대, 가치관은 한 개인에게 무지막지한 무게로 영향을 미치니까. 그래서 친구가 중요한 거고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겠지. 그래서 책 속에서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 책을 집었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내 친구들은 씩씩하고 당당했고 근사하고 멋있고 자신만의 길을 따라 성큼성큼 걷고 있었고 어느 누구의 힐난으로부터도 자유로웠다. 그래서 나도 이런 점을 배워야 돼! 라고 친구들을 따라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확인하고 싶은 모든 것을 확인 받았다. 이들과 함께라면 나도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안심도 얻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모두 아팠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폭행, 장녀로서의 의무와 책임,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사회의 편견, 노처녀 딱지가 주는 결핍 등등으로 친구들은 힘들어 했다. 아직도 가족을 믿느냐며 결혼을 믿느냐며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그들의 외침 속에서 나는 그들의 여린 살결에 깊게 박힌 상처가 보였다. 


 억지다, 비약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살고 있는 누군가를 아프다고 진단내리는 무면허 의사다, 라고 누군가는 나를 비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자행됐던 폭행이 한 개인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주장이야 말로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가정 내에서의 폭력이 비혼을 선언하게 된 단 한 가지 원인은 아니겠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개인 각자의 불완전했던 어린시절이나 편안하지만은 않았던 경험들이 비혼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다.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의무와 책임들, 동등한 인간으로가 아닌 남성의 부속품으로 정의되는 사회적 분위기, 합리적인 주장을 할라치면 쏟아지는 드세다는 인신공격들, 이런 것들이 내 친구들로 하여금 비혼을 선언하게 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부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친구들이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 뿐이다. 


 물론 내 친구들은 내 친구들답게 과거의 상처 따위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먼지 털듯 탁탁 바지를 털고 아무렇지 않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친구들을 아프네 어쩌네 하는 것이 무례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한 켠에서는 아프지 않을까,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친구라서.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알아서. 나 또한 친구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이 되서.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무렇지 않은 척 활기차게 아침을 맞이하는 게 가끔은 힘에 버거운 줄을 익히 경허한 바 있어서. 


 아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고 물리적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들이 타인을 괴롭히는 불상사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업었으면 좋겠고 아픈데도 아프지 않은 척 있는 힘껏 살아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어차피 선하지만 않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모두들 평안한 인생을 보장받았으면 좋겠다. '


 아무도 아프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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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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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서전을 읽는 이유, 그 사람을 알고 싶어서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격은 조용한지 활발한지, 우여곡적을 없었는지, 원래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생전에 부자였는지 가난뱅이였는지,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지 비판을 받았는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한 사람이 인생을 송두리째 알고 싶어서 자서전을 읽는다.

 

 원래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고 다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인데 왜 다른 사람의 인생이 궁금할까. 동경인지, 동정인지, 동일시 혹은 공감인지. 나의 사생활을 감춰져 있는데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만 속속들이 까발려 지는데서 우월감을 느끼는지. 무언가 한 가지에 몰입하면 속속들히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혹시 나와 닮은 점은 있는지, 또는 이 점은 분명히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도 있고 살아 생전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를 알게 되면 마음이 짠해지면서 더 애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림이나 소설을 볼 때면 언제나 그 작가에게 관심이 쏠린다.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인 양 그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러고 보면 그 화가든, 작가든 무언가 매력이 있어서 내가 끌리는 걸 수도 있겠다. 모든 사람을 다 알고 싶은 건 아니고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은 사르트르가 나의 관심 속에 들어왔다. 사르트르 책은 이번이 처음이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는 한 권 만큼의 분량이다. 그는 어렸을 적에도 조숙했던 것 같고, 아버지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불우하다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어느 정도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걸까. 여느 어린 아이답게 마냥 해맑고 순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할아버지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표정이나 대사를 해야하는지 이미 6살인 나이에도 알았고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연극을 할 수 있을 만큼은 약았던 것 같다.

 

"내게는 진실이라는 것이 없었다."

 

위와 같이 고백하는 것을 보면 한편으론 솔직하긴 한 것 같다.

 

 성품은 온화했던 것 같고.

 

"나는 폭력도 증오도 모르고 질투라는 이름의 그 괴로운 수련을 겪지도 않았다 어려운 고비와 마주쳐 본 일이 없는 나는 우선 현실이 상냥한 변화만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다. 그 누구의 변덕도 나를 지배할 수는 없었다."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온화한 법이니까. 

 

 그러나 재미있거나 유머러스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생각이 너무 많고 진지해서. 조금 유쾌한 사람이 좋은데.

 

 한 권만 읽고 확정짓기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까뮈와의 우정은 어떠했는지, 부인과는 어떠한 사랑을 나누었는지, 왜 세상의 비판을 받았는지,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딱히 어떤 점에 끌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를 더 알고 싶다. 너무 진지한 면이 조금 부담되기는 하지만, 20세기 최고의 지성이었던 그와 좀 더 친해지고 싶다. 얘는 왜 이렇게 진지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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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쟁이가 뭐 어때? 스누피 시리즈 1
찰스 M. 슐츠 지음, 김철균.박수진.김난주 옮김 / 종이책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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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삶이, 인생이, 아니 이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나의 하루 하루가, 한 시간, 한 시간이, 월화수목금토일이, 지겨운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안정인 것 같기도 하고 무기력한 것 같기도 하고 반면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아무 일도 없어서 변화가 없고 무미건조한 것 같아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걸 감사할 줄 모르고 투덜대는, 배부른 소리인 것 같기도 하고. 갈피를 못 잡고 휘청휘청 대는 요즘이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축 쳐진 어깨로 친구를 만나야 할지, 샐러리맨으로서 고만고만한 나의 현재를 마음껏 즐겨야 하는 건지, 요즘 나의 일상을 어떤 말로 정의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무지 한 마디로 요약하기가 어렵다. 딱히 지금 상황이 아니면 행복할지 여부도 확신할 수 없는 이 어정쩡함이란. 고민만 커져서 머리가 윙윙거린다. 고민이 고민을 낳고 생각이 생각을 낳고 여러가지 잡념과 공상들, 헛된 희망과 불가능한 목표, 허황된 꿈과 비논리적인 상상들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는 점점 커진다. 그 벌어진 틈 만큼, 그 깊이만큼 나의 허우적거림은 더욱 힘겨워진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나도 모르겠는 내 속마음은 무엇을 바라고 있기에 유쾌한 나의 얼굴에 한숨을 지게 하는 것일까. 내가 원하는 건어느 정도의 명예도 가져야 하고 남과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 나만의 개인시간도 가질 수 있는 생활이래야, 나는 만족하나보다. 위 요건을 다 갖추지 못하면. 다 안 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조건은특별함?! 무언가 남과 다르다는 명예?! 그랬나내가 그런 걸 원했었나

 

지금 회사를 그만 두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대학 졸업 후 계속 시험에, 취업에, 사회생활에 몰입하느라 쉼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휴식 시간을 갖고 싶다. 마음껏 늦잠 자고 마음껏 빈둥거리고 마음껏 구경하고 걷고 늘어지고 책을 읽고 까페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떠나고 햇살 좋은 오후, 사무실 책상이 아닌 상큼한 공기 속에서 산책을 하는 것. 요즘 내 꿈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이다.

 

지금 마음 상태로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식이다. 이렇게 내 인생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자꾸 들린다. 1년 쯤 쉰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는 쪽으로 추가 기울었다. 다만 그러면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하는 고민. 직업이 없어져 버려서 더 우울감 속으로 빠져들지는 않을지, 휴식 후의 삶에 대해 전전긍긍하며 고민하게 되지는 않을지. 내 인생인데 왜 내가 확신을 하지 못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내가 확실히 알지 못하는지, 그저 그런 경제적 안정과 자유 중 내가 더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확실히 꼽지 못하는지, 세상은 왜 yes or no로 구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지.

 

생각이 너무 많아서이다. 즉흥적으로 지르지 못하고 항상 계획적으로만 움직여 왔던, 내 몸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이 빌어먹을 계획적 습성 때문이다. 하고 싶은 대로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를 고민하며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나의 꼼꼼함 때문에.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상태로 오늘 나의 기분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를 고민하며 아침에 눈을 뜬다. 재미는 있네. 오늘 내가 행복한 걸까, 아닌 걸까를 직감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고민을 한 후 파악하다니. ㅋㅋ

 

그래서 스누피를 읽는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단순하게 유쾌해 지려고, 귀여운 캐릭터들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킬킬대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울고 아무 일도 아닌 것에 웃어보려고, 세상이 주는 온갖 시름과 고민들을 떨쳐보려고, 스누피가 말하는 철학적인 질문을 과감히 무시하려고, 그래서 멍청하고 단순하게 내 식대로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이리저리 뒤엉킨 머릿속을 만화책의 두께만큼 정리하는 데는 성공, 인생에 대한 나만의 해결책을 찾는 데는 아직곧 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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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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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구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책을 살까 말까, 꽤 오랜 시간, 몇 달 됐었나.... 아무튼 긴 시간을 고민햇었다.) 책을 다 읽는데도 오래 걸렸고(음.. 이 때는 다른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사서 이것 저것 읽느라 그랬나... 원래는 한 권 책을 붙들고 그 책 다 읽고 다른 책으로 옮겨가고 하는데 이 때는 마구잡이로 이 책 읽었다가 저 책 읽었다가 그랬다. 이유는 역시, 잘 모르겠다.) 그리고 서평을 쓰는 데도 아주 오래 걸렸다.(아마 2주 정도 이 서평을 붙들고 있었나... 어떤 말을 써야 할지 확 다가오는 주제가 없어서. 붕붕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무질서하게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요즘 무언가 머릿속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들이 피곤해져서 그런가.) 어쨋든 모든 것이 오래 걸리는 책이었다. 이 책은. 그것이 책 때문인지, 아니면 그 때 그 때 나에게 맞딱뜨려진 상황 때문인지 분간이 잘 안 간다.

 

 며칠 째 서평을 쓰려고 붙들고 있었는데 잘 정리가 되지 않아 떠오르는 대로 감상을 써볼까 한다.

우선 책 전반에 관한 전체적인 느낌. 이 책에 대한 호평이 자자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구매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저자가 자살을 했다는 데 있다.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사연들이야 모두 갖고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기독교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아무래도 자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자살이라는 씻지 못할 죄를 범한 자의 책을 내가 굳이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때문에 오랜 시간 이 책을 구매리스트에만 올려놨었다. 그리고 저자의 우울한 감정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져 있을 것 같아, 그 우울함이 나에게로 고스란히 옮겨질 것 같아, 그 우울함을 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더더욱 구매를 망설였다.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다가 왜 이 책을 구입했는지 이유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생전에 우울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라는 나의 추측은 완벽히 빗나갔다. 그녀는 세상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었고, 뜨겁게 타오르고 싶은 열정으로 온 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팽팽한 시선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왜 생을 접어버리고 말았던 걸까. 그녀가 궁금해 혹시 평전 같은 것이 없는지 찾아봤지만 만족할 만한 서적은 없었다. 그녀의 글들은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있는데.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기 보다는, 여리여리하고 세심하고 풋풋한 질감이다. 딸에 대한 애정도 그렇고, 청년들에 대한 기대도 그렇고, 낯선 땅 독일에 대한 호기심도 그렇고. 왜 극단적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학교에서 5분 이상 더 가는 곳에 가서 살 자신은 나에게 없었다.

: 나도 그런데... ㅋㅋ 강남 쪽 사무실은 입사지원 시 자체 배제한다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었지.


말을 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안고...

: 이럴 때가 있는데. 괜히 힘들고 서러울 때. 누가 말시키면 으앙, 바로 울어버릴 것만 같을 때.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입을 열면 바로 후회될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할때. 내 짐만 유난히 더 무거운 것 같고 발은 부르트고 배는 고프고 날은 덥고 짜증도 못 부리고 그렇게 걷다가 돌부리에 발가락을 찌었을 때. ㅋㅋ

 

내 꿈과 동경-몇 년이나 길게 지속되었던-을 던져 넣어 버린 곳도 이 호수 속이었다.

호수에 던져버렸나. 난 어디에 버렸었었나. 어느 구석에 내 청춘을 함부로 내던졌었나. 딱히 좋은 장소에 버리지도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도시 쓰레기들과 나도 모르는 새 버려진듯 하다.

 

눈이 내리는 소리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소리.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나의 젊은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지?

 

자유, 청춘, 모험, 천재, 예술, 사랑, 기지..

이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천재? ㅋㅋㅋ

 

온갖 물질의 결핍과 가난과 노동, 식사부족, 수면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 촌음을 아끼고  인식에 바쳐지는 정열과 성의, 조금도 외계나 속물과 타협하려고 들지 않   는 자기 유지의 노력, 정말로 이러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팽팽한 세계.

패기와 오만. 타협하지 않는 고집. 지금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 아늑한 고요

 

마침내 약간의 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어. 그것은 진짜 안정은 아니었어. 물론 그렇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것이라도 괜찮았어.

나도, 그랬어... 그런데 그 안정도 나는 가질 수 없었어. 진짜가 아니라는 걸 당시에도 알고 있었지만 난 그거라도 필요했어. 거지 같은 알량한 안정. 그런데 결국 갖지 못했어. 때론 가짜라도 괜찮을 때가 있는데 말이지.

 

부러운 사람 중 한 명이다, 전혜린은. 부러우면 지는 건데. 좀 더 살았으면 어땠을까. 조금 아프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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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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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느 역에서 기차를 놓쳐야 할까.”

“비와 눈, 햇살과 안개는 과학적인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연히'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당신의 미래는 이미 망친 것도, 금빛으로 빛나는 것도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농부들이 따르는 날씨에 관한 격언이 일기예보보다 옳을 때도 있음을 깨닫는 기쁨은 무척이나 컸다. 농부들의 격언이 올해 맞지 않았더라도 다음 해에 다시 기회가 있었다. 나는 적어도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던 어린 시절을 보낸 게 기쁘다. 일기에보에서 비가 온다고 해도 눈을 기다리고, 날씨가 추워진다고 해도 따뜻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으니까.”

 

작년 겨울 뉴욕에 가서 지하철을 탈 일이 있었는데, 이런. 밤 10시 11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는데 지하철이 오는지, 아니면 막차가 끊겼는지, 온다면 몇 분 후에 오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역무원도 없고 안내판도 하나 없다니 이게 무슨 경우지?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있어서 그럼 아직 지하철이 끊긴 건 아니겠지, 하고 기다리다가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뉴욕 한 복판에서 발이 묶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 옆 사람에게 지하철이 언제 오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그 흑인도 잘 모른단다. 지하철이 오는지, 끊겼는지, 몇 시에 오는지. 몇 분 후에 지하철이 오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정보 정도는 얼마든지 쉽게 얻을 수 있는 서울 한복판에, 1분이라도 열차가 지연되면 역무원에 항의전화를 빗발치게 해대는 철저한 승객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나는, 흑인의 그 무대책이 참 황당했다. 이렇게 허술한 지하철 시스템을 용인하다니... 마음도 좋으셔라. 완벽에 가까운 한국 지하철 시스템에 새삼 감동을 했다.

 

지하철이 조금만 늦으면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느냐고 성화를 해대는 분위기 속에 살다보니, 일기예보가 틀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거나 며칠 째 추위가 풀리지 않는다거나 하면 항의글로 기상청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것을 자주 보며 살다보니, 우리는 점점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가 된다. CGV에서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다면 아마 CGV 홈페이지는 그 날로 바로 다운되고 여기저기 인터넷에 이에 대한 비판글이 마구 올라오고 CGV는 당장에 사과글을 올리고 이런 일이 있었다며 뉴스 기사가 나오고 CGV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 휴, 아마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겠지. 뭐 이 정도야 우리나라 여러 분야의 인프라 발전을 위해서라며 긍정적인 눈빛으로 바라봐 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삶을 대하면서도 완벽주의자가 되어 가고 있다는 조금은 슬픈 사실.

 

정확해야 하고,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고, 항상 예측대로 결과가 나와야 하고, 모든 선택 중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야 하고, 가장 효율적이어야 하고. 실수를 해서도 안 되고. 물건을 하나 사는 데도 인터넷으로 모든 조건과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는 습관은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취업을 하든, 이직을 하든,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진로를 결정하든, 모든 선택은 완벽해야 하고 예측 가능해야 하고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되고. 뭐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봐 줄 수 있지만, 이것이 지나쳐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고 절망하고 자책하고 미련을 갖게 되니.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나았을까? 지금 이 길이 최선이었을까? 그 때 A가 아닌 B를 선택했어야 하는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자책들. 정확히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지 못한 기상청처럼 우리는 자꾸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다. 나만, 그런가.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바라는 낭만. 오늘의 예측이 완벽히 비껴나가는 유머를 즐길 수 있는 여유. 이제 기차역에서 기차를 놓칠 일이 없다며 완벽한 철도 시스템을 원망할 수 있는 넉넉함. 이런 기대감으로 인생을 대한다면. 하하. 생각만 해도 너무 낭만적이야. 내일은 펑펑 눈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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