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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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폴의 이상한 나라처럼 현실이 아닌, 지금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싶은, 팍팍하고 괴롭고 무의미한 현실을 벗어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피터팬의 동화 속으로 들어가 환각에 취한 듯 요정과 함께 날아다니고 싶은, 그런 날. 그런 날에 이 책을 구입했다. 정확히 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흐리멍텅한 날. 밖으로는 죽어도 나가기 싫은, 내가 제일 싫은 비 오는 날.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어쨋든 나는 때려 죽여도 나가기 싫은 비 오는 날, 그 비를 뚫고 직접 서점을 방문해 이 책을 덜컥, 구입했다. 작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르고 듣도 보도 못한 제목의 이 책을 말이다. 단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제목만으로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초콜릿처럼, 지금의 골치아픈 모든 것들, 지루하고 재미없고 답답한 모든 것들을 사르르 녹여줄, 그런 책을 찾고 있었다.

잠시 환상의 나라에 다녀온 듯. 어렸을 때 에버랜드에서 느꼈던 황홀감이었다. 그 때 놀이기구 이름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배를 타고 들어가면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인형들이 인사를 해 주고 귀여운 인형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놀이기구가 있었다. 어렸을 적 나는 그 곳이 진짜 세계라고 생각했는지, 잔잔하게 흐르는 예쁜 선율에 맞춰 휘둥그레한 눈으로 인형들에게 신나게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살면서 그렇게 황홀한 경험은 아직까지 없을 정도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에버랜드 놀이기구 이후에는 그렇게 강하게 기억되는 황홀함의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현실은 황홀하다기 보다는 아프고 무섭고 팍팍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잠시나마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완벽히 현실을 잊고 작가가 주는 환상 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환상은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화려한 느낌이었다. 주인공인 티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평생을 큰 고통 속에서 살았지만, 그리고 때때로 나도 주인공들의 눈물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큰 감상은 슬픔이 아닌, 화려함이었다. 요리를 통해 묘사되는 사랑은 시각, 미각, 청각, 후각을 시시각각 자극하면서 잠시도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았다. 쏟아지는 갖가지 자극들 때문에 다양한 감각이 되살아났고 총천연색 자극은 화려한 환상을 제공한다. 마치 귀여운 인형과 수많은 레이스, 가지각색의 조명과 앙증맞은 음율의 놀이기구가 나의 모든 것, 눈, 코, 귀 등을 사로잡은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우중충했던 그 날 하루는 순식간에 생기있는 시간들로 변했다. 늘어져 있던 세포들은 책을 통해 받은 자극들로 다시 싱싱하게 살아 올랐다. 라틴 아메리카 문학 특유의 환각적인 환상. 그 매력에 흠뻑 빠지기에 충분하다. 나는 요리를 싫어하는데, 이 책을 읽고, 와, 나도 요리 한 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이 정도면 최고의 소설로 꼽아도 되지 않을까?

* 왜 항상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에 대해 서평을 쓸 때는 이렇게 쓰기가 어려운 걸까?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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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1-05-1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단 서평쓰신 분이 어렸을 때는 에버랜드가 아니라 자연농원이 아닌지..

사실관계 확인 부탁드립니다..ㄷㄷㄷㄷ

옥이 2011-05-20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너 자연농원 아네? ㅋㅋ 왠 사실관계? ㅋㅋ 너 다리다치더니 되게 깐깐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