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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사랑에 관해서는... 참 할 말이 없다. 살다보니 더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확고해 진다. 모든 각각의 모습들이 사랑이고 나 또한 그런 사랑을 했으며,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자살을 할 정도의 극단으로도 치달을 수 있고 반면 여름철 미지근한 맹물처럼 밍밍할 수 있다. 뜨거울 수도 있고 차가울 수도 있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줄 수 있는 모양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각 개인의 성격 상 도저히 상대방에게 줄 수 없는 모양의 사랑이 있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사랑에 관해 혼란스러워 하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서점에는 사랑에 관한 안내서들이 잔뜩 쌓여 있다. 무슨 자기 계발서 같다. 책의 내용을 후루룩 살피면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 사랑을 하더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할 것
* 상대방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 것
* 상대방이 없어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여줄 것
* 이별의 아픔은 혼자 당당하게 맞설 것
* 예전의 애인에게 미련을 두지 말 것
* 애인이 없는 사람은(특히 여성의 경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상대방이 베푸는 친절을 거절하지 말 것
등등... 이런 종류의 책을 진득하니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대충 목차를 살펴보면 이렇다.(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뭐, 이렇게 책에 적힌 대로만 되면 그게 사랑인가. 아니, 그것도 사랑이다. 다만 내 맘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 게 사랑이니 이런 책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마음 먹은 대로 조종이 되지 않으니, 남는 것은 후회다. 너무 많이 줘도 나중에 내 것도 좀 챙기지 왜 그랬을까 자책이 되고, 너무 덜 줘도 그 때 왜 그리 머릿속으로 따지는 게 많았을까 자꾸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 한 사랑이 끝나고 나면 자꾸 아프다. 사랑이 하나 둘 씩 지나가 경험이 쌓이면 그 아픔에도 면역이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얼마나 아플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가 얼마나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 진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조언서가 필요한 걸까? 쓸데없이 아프지 말라고, 다음엔 좀 더 준비를 해서 힘들지 말라고. 나 참, 사랑에 관한 안내서가 필요 없다고 했다가, 있다고 했다가... 사랑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사랑에 관해서는 어떤 정답도 없다. 안내서가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하는 것처럼. 아주 지혜롭고 현명하게 일일이 조건을 따져 만나는 사랑도 사랑이고, 이성적인 계산 없이 감정에만 치우쳐 물불 못가려 질질거려도 그것도 사랑이다. 어느 누가 어떤 이와 어떤 색깔의 어느 모양의 사랑을 하면서 울고 웃어도, 그 누구도 당사자를 비난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할 수 없다. 그의 모습은 과거의, 현재의, 혹은 미래의 내 모습이 언제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장담 못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한다. 처음부터 조건을 따져 만나는 당신을 속물이라고 속으로 비난했고, 오직 결혼을 위한 사랑을 하는 당신을 혀를 차며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제 내가 사랑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사랑을 받을 만 한 성숙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 사랑이 무엇인지, 두 사람이 사랑을 할 때는 상대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사랑에 빠진 상대방이 자신 때문에 어떻게 힘들어 질지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이별하더라도 그와 함께 했던 사랑이 '지우고 싶은 과거'로 남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주어도 후회되지 않는 사람, 내가 아무리 손해 봐도 아깝다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 울고 불고 매달릴 만큼 빛나고 가치 있는 사람. 지금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