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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원래 일본소설은 잘 읽지 않는데 요즘은 일부러 일본 소설들만 골라 읽고 있다. 음, 뭐랄까. 일본 소설은 지나치게 간지러운 느낌이랄까. 부끄러움 많은 소녀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 같아 뭐라고? 더 크게 말해봐! 라고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일본 소설을 읽을 때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귀를 바짝 대고 있느라 기운이 너무 많이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열심히 들었는데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아 또 한 번 맥이 풀리는 것 같아 예전부터 일본 소설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요즘은 저런 조용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이야기들이 필요해 이것저것 일본 작가들을 탐방하고 있는 중이다. 음... 몇 권 읽어본 결과, 그냥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읽기는 좋은데 역시 몇 권 연달아 읽으니 시종일관 조용히 재잘거리는 분위기가 조금 질린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 죽이기는 좋은데 말이다. 어쨋든 일본 작가들 중 제일 눈에 많이 띈 작가는 오가와 이토. 주로 음식을 소재로 해 따뜻하고 잔잔한 이야기들을 많이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7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것인데 저마다 사연이 얽혀있는 음식이 등장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드시고 싶어하는 팥빙수, 10년 연인과 헤어지면서 먹은 마지막 식사,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셨던 기리탄포, 시집가는 딸이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끓여드리는 된장국 등. 그 음식에는 어떤 사람의 추억, 사랑, 그리움, 슬픔, 눈물, 애정 등이 깃들여 있다.
내게 그런 음식이 있나?
별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것저것 생각해 보니 꽤 여러가지 메뉴가 생각난다. 된장찌개, 쫄면, 카스테라, 떡국, 삼계탕, 김치볶음밥, 멸치볶음, 콩장, 유부초밥, 짜장밥, 감자튀김 등등등. 꽤 많구나.
그 중에서도 제일 제일 강렬한 음식은 고기!!!
우리집 식구들은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 나는 우리집 사람들에 비하면 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울 아빠랑 내 동생은 주기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으면 몸이 막 아플 정도니까. 나는 고기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음... 몇 주 동안 고기를 못 먹으면 막 고기가 먹고 싶다. 이리 저리 따져보면 햄버거도 먹고 찜닭도 먹고 보쌈도 먹고 하니 요즘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고기를 너무 자주 먹는다고 의사들이 경고하기도 하는데 내가 말하는 고기는 단백질 성분의 모든 고기가 아니고 불에 구워먹는 고기를 의미한다.
한국 사람들은 삼겹살이나 그 밖의 고기를 구워 먹기를 참 잘하는데 우리집도 고기를 잘 구워먹는다. 삼겹살, 목살, 안심, 등심, 채끝살 등등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기는 무조건 먹는다. 그런데 그냥 구워먹는 게 아니라 그릴을 준비하고 숯불에 불을 피워 야외에서 구워 먹는다. 이제는 숯불에 구워 먹는 고기에 입맛이 길들여 져서 그냥 후라이팬에 구워 먹는 고기는 맛이 없어 못 먹을 정도다. 아빠가 앞장서서 그릴도 사고 숯도 구입을 다 해 놓으셔서 사위들과 함께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다. 교대로 고기도 굽고 먹기도 하고 쌈을 나르기도 하고 왁자지껄 시끄럽다.
우리집 내부에서도 고기를 좀 줄여야 된다, 건강을 생각해야 된다, 이런 저런 문제 제기의 목소리들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고기를 구워 먹는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날씨도 살펴야 하고 엄마 아빠 스케줄, 내 스케줄, 동생네 스케줄 등 고기를 굽는 날을 정하는 것부터 떠들썩하고 날짜가 정해지면 우리는 매일 매일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고 모두 둘러앉아 숯에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먹는 그 맛이란!
맛있는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행복한 기억들.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레시피가 아닐까.
다음 고기는 언제 먹을지. 아마 아빠가 해외 출장에서 돌아와야 날짜가 정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