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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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자유'다. 그는 손 사이를 스치고 지나는 바람이었고, 무형의 힘찬 파도였다. 그에게 고정된 것, 정해져 있는 것은 없었다. 딱딱한 고체가 아닌 잡을 수 없는 공기요, 물이었다. 그런 그는 유연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보았고, 일상적인 것도 특별한 것으로 여겼다. 호기심으로 작은 눈을 반짝였고, 본능에 충실했으며 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이 한 세상, 원 없이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러다, 죽었다.

나도 분명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조르바와 같은 자유는 아니다. 아무데서나 자고 얼굴을 시커멓게 그을리고 이빨도 빠지고 아파도 병원도 못가고 손은 거친. 이슬 맞아 떠도는 그런 자유는 내가 꿈꾸는 자유가 아니다. 말이 좋아 별 보며 숲 속에서 다람쥐들과 함께 잠드는 거지, 실제 해 봐라.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내가 꿈꾸는 자유는 누구에게도 굽실거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멸시받지 않고, 상한 감정을 숨기며 비굴하게 웃지 않아도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고통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을 수 있는. 사치는 아니나 부족함 또한 없는. 그리고 어느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직업. 적고 보니, 집에서 큰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한, 전문직이어야 하는데. 전문직? 의사나 변호사 뭐, 이런 거? 그런 직종은 뭐 당당하고 누구에게나 당당할 수는 있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며, 잠 자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일에만 매진해야 하고, 그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가면들을 쓰고 살아야 하는지. 사진작가나 화가, 이런 직업이 좀 더 자유롭긴 하지만, 이들 직업은 다 인맥으로 성패가 나뉘기 때문에 인맥 관리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럼 다시 자유와 멀어진다. 원점이다.

마냥 자유를 꿈꾸자니 불안하고 힘겨운 생활이 두렵고, 안정적인 자유를 꿈꾸자니 다시 답답한 현실로 뛰어들어야 하고. 이것 참 어렵다. 결국 내가 꿈꾼 건 허영심이나 허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자유라면 모두 조르바처럼 불안정해야 하는 걸까. 조르바의 자유 vs 보장된 삶. 난 어느 쪽을 선택해야 이번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이제 나는 조르바의 삶이 부럽지 않은, 사회에 어느 정도 적응된 그런 나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안정을 쉽게 놓을 수 없는, 아니 이 안정을 잃을까 불안해하는, 그리고 그 사회의 틀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하는 그런 나이.

그러나 지금 조르바를 꿈꾸는 자가 몇이나 될까. 조르바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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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1-01-2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인이 결국 적어 놓긴 했지만,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파악하고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면
혁명가 되야하고(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문제로 해결하면 극단적으로 사회적 욕심을 버리는 선택을 해야겠지.
예를 들어 사회적 욕심을 많이 버린 종교인들 정도?

그런데 양쪽다 어렵다면 사회에 수긍해가면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