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코끼리에게 물을 (양장)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자리에 앉아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어 제끼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고, 게다가 읽자마자 먹먹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바로 서평을 쓰는 것은 더더욱이 쉽지 않은 일.
아프다.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다, 해피엔딩이다, 흡입력이다, 하고 칭찬을 하는데 나만 혼자 아파하는 일이 종종 있다. 지금처럼. 오늘도 그런 일 중 하나다.
누군가를 구경거리로 삼는다거나 누군가를 쇼를 위해 억지로 훈련시킨다거나 하는 일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서커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서커스가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내가 느끼는 당혹감이 무엇이었는지 혼자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그 나이에도 누군가를 단순한 흥미거리로 바라본다는 사실에 막연한 혐오감과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난쟁이들이 나오고 180kg이 넘는 뚱보가 나오는 것들이 왜 재미있는지. 나는 그들이 슬퍼보였고 불쌍해 보였다. 왜 저네들은 저런 곳에 나와서 자신의 이상한 몸뚱어리를 남들의 구경거리로 사용해야만 하는지, 난쟁이가 뭐가 재미있다고 사람들은 웃어대는지. 하나도 재미없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쇠사슬을 칭칭 매고 있는 코끼리의 눈은 언제나 촉촉히 젖어 있었던 것 같다. 촌스러운 형형색색의 원숭이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고 갈기가 퀭한 사자는 모든 권력을 빼앗긴 채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린 듯 보였다.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 채찍질을 내리치는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의 단장이 잔인하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어린시절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박수를 치며 보는 서커스였는데, 나는 혼자 두통을 느끼고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을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좀 평범했으면, 좀 더 단순했으면, 나도 다른 애기들처럼 박수치면서 깔깔 댈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학교도 안 가도 되는 공휴일, 명절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쉬는 날이었는지 , 아무튼 그런 쉬는 날 종종 해주던 서커스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해맑게 동심에 젖어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내 삶도 지금보다 더 단순하고 명랑해졌을 텐데.
목적을 수단으로 삼는 것, 생명을 그 자체로 존중하지 않는 것, 강자가 약자를 강압하는 것, 다른 사람들의 평범하지 못한 점들을 손가락질하며 놀려대는 것,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것, 그들의 슬픈 눈빛을 바라보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다.
책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 두려움때문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일꾼들의 삶. 갇힌 동물들, 로지에게 내려쳐지는 채찍질, 미친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하는 말레나,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제이콥. 특히 로지의 성난 눈빛... 어깨가 아프고, 마음이 심난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누군가도 나에게, 누군가도 다른 누군가에게, 아무도 서커스처럼 행동하지 않기를.
이 모든 게 다 눈속임이야, 제이콥. 그리고 그건 나쁜 게 아냐, 사람들이 우리한테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니까. 사람들은 우리한테 눈속임을 원해. 그게 눈속임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