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옮긴이의 말 중에서.
글쓰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라고 못박는 에르노에게 글쓰기란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난 시공간에서 행해야 할 작업이다. 글쓰기가 시작된 그 순간부터 작가의 내면에는 타인의 시선이 틈입할 여지가 없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솔직하고 화끈하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다른 어떤 글보다. 유려한 표현을 사용한다거나 화려한 비유를 쓰거나 하지는 않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내보이기 때문에 독자인 나는 그녀가 존경스럽다. 자신의 감정과 자신의 선택과 자신의 행동에 이토록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다니. 속 끝까지 다 뒤집어서 보여주는 그녀를 보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나도 좀 더 자신감을 갖자,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녀가 얼마나 당차냐면...
그 당시에 나는 내 행동이, 그리고 내 욕망이 품위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문제삼지 않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말할 정도다. 얼마나 멋진지! 거짓 가면을 쓰고 위선을 떨어대는 사람들 속에서 혹시나 나의 행동이 그들에게 트집을 잡히지는 않을지 불안해 하는 나에 비하면 얼마나 시원한지! 항상 주변의 평판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화살을 쏘아댈지 걱정하고 아파하는 나를 돌아보면, 그녀는 거침없는 말 같다. 예전에는 나도 내 주관대로 행동하는 씩씩한 아이였는데 자꾸 주변으로부터 돌을 맞다보니 작아지고 위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맞아보니 돌이 아파서,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고 내 생각, 내 주관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나이를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에 무너지는 게 나의 신념이었나? 내 고집의 단단함이 겨우 이만큼밖에 안 됐나? 겨우 이럴 걸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었나, 하는 실망감들.
나보다 줏대 있고 고집 센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다. 나도 더욱 고집을 부려야겠다, 생각이 드니 말이다. 더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겠구, 나보다 더 대가 센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위안 또는 합리화?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도 내 스스로의 껍질이 무르기 때문이겠지만, 어떻든, 지금은 이러한 자기 합리화가 필요한 시점.
반갑습니다. 아니 에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