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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마리암은 하라미(사생아를 비하해 일컫는 말)고, 생모인 어머니와 동굴 같은 오두막에서 살고, 아버지 잘릴에게 버림받고, 40살 라시드에게 시집보내지고, 그때부터 수없는 매질과 폭행에 시달리고, 이빨이 깨지고, 꽃다웠던 얼굴은 어느새 노파처럼 변한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고, 여성은 부르카를 써야하고, 남성을 동반하지 않으면 외출도 못하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들키면 온 몸이 시퍼렇게 매질을 당하고, 여성을 위한 병원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심지어 마취제 없이 배를 갈라 아이를 낳고.
계속되는 폭행에 라시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보고, 라시드는 또다른 부인 라일라를 목졸라 죽이려 하고, 라일라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리고, 위층에서 아이는 불안함에 덜덜 떤다. 모든 것을 잃은 마리암은 라일라를 잃을 수는 없고, 삽자루 날로 악몽이 끝나고, 그러다 결국 모든 것이 끝나고...
여성의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많은 이야기와 사건들을 통해 나는 끊임없이 해답을 찾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결국 나나의 한 마디로 정리되는 걸까.
"단 하나의 기술만이 있다. 그것은 타하물(참는 것)이다."
"마리암, 그게 우리 팔자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그런 거다. 참는 거지.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알겠느냐?"
그러나 그녀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난 너무 예민하고 반항적이다. 라시드의 우쭐거림이 특히나 눈에 거슬린다.
"내가 혐오스럽다고? 이 도시에 사는 여자들의 절반은 나 같은 남편을 만나려고 죽기 살기로 덤빌 거다. 죽기 살기로 말이야."
남성들의 살인과 폭행, 강간으로부터 남성은 여성을 보호한다. 그것을 빌미로 남성은 여성을 폭행하고 강간하고 짓밟아버린다. 남성이 가해자였다가 보호자였다가 또다시 가해자로 뒤엉키는 이 출구 없는 미로. 생각의 꼬리를 기어이 따라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질식할 것만 같은 두통 속에 갇혀 버린다.
한국 여성들의 삶은 어떠한가. 물론, 아프가니스탄 여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감사하고 감사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감사만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알게 모르게 보이는 여성차별. 우리사회 뼛속 깊이 뿌리내린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
취직부터 살펴보자. 물론, 여성이라고 특별히 감점을 하거나 대놓고 우리는 남성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출산, 육아 등으로 인한 인력 손실(우리 사회는 이것을 손실이라 생각한다)을 우려, 인사권자는 심정적으로 남성에게 많은 점수를 준다. 언뜻 볼 때는 우리 사회에서 남녀는 평등한 존재인 듯 착각이 들지만 실질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다반사다. 아이를 낳으면 밤새 아기를 달래고 회사에 집안일에... 요즘은 남편들이 많은 것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도와줌’일 뿐 끝까지 이것은 여성의 몫이다. 며느리가 되면 여성은 당연히 시댁에서 종처럼 허드렛일을 도맡아야 하지만 남성은 여전히 백년손님. 이것에 반기를 들면 드센 여자, 성격 이상한 여자로 낙인이 찍혀 손가락질 받게 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나이듦에 관해서는 또 어떤가.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안정된 삶을 찾는다. 그러나 여성은 나이가 들면 꽃이 시들었다는 둥 쇠락한 똥차 취급을 받는다. 최근 가수 엄정화가 한 토크쇼에 나와 나이든 여가수의 설움을 말하며 눈물을 쏟은 것은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여성의 백발도 아름답다 말할 수는 것인지.
행복을 꿈꾸며 눈부신 태양 아래서 세상에 대해 꾸밈없은 미소를 지었던 한 소녀.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제2, 제3의 마리암과 라일라가 되어 세상을 하직해야할지. 얼마나 더 많은 한숨이 있어야 비로소 여성들도 당당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지. 작가는 마리암의 죽음을 찬란하다며 미화했지만 난 그런 식으로 승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런 식으로 미화하기에 그녀의 삶은 너무나 길었고, 고단했으며, 처절했다. 그것은 하나도 빠짐없는 ‘현실’이었다. 그. 리. 고. 악몽의 수레바퀴는 아직도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