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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용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동서양을 불문하고 수많은 철학자들의 머릿속을 괴롭혔던 이 해묵은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저자는 아마도 성악설에 좀 더 치우쳐 있는 듯하다. 그는 지배 권력도, 폭력도, 신념으로 인한 갈등도 없는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꿈꿨다. 그래서 폭력적 성향이 없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들을 선발해 새로운 희망을 안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파피용호 안에서도 살인이 일어난다. 애인에게 차인 남자가 술김에 옛 애인을 죽인다. 파피용에 반대하는 세력이 일어나 분쟁이 생기고, 결국 지도자와 경찰을 만들어야 했다. 감옥도 생긴다. 이런 갖가지 구속과 제도를 피해 달아난 파피용도 결국 원점이다. 인간은 그 속에 악성이 있어 어느 정도 제재가 필요한 것일까. 국가가 있고 권력자가 나오고 많은 규제와 구속이 우리사회에는 존재한다. 이것들로 인해 분쟁과 싸움이 발생하지만 결국 이것들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무한한 자유가 항상 선한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재미있는 일은 파피용 최초의 범죄가 남녀의 사랑 싸움으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행성에 착륙한 엘리자베트와 아드리앵도 결국 사소한 일로 싸움을 해 결국 엘리자베트가 죽었다. 새로운 인류를 만들려면 남, 여가 필요했고 그 단 한명의 여성은 싸움으로 죽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내면에 숨어있던 악성을 끄집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이브 크라메르의 아버지도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자살하지 않았나.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상대방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 남녀의 만남이다.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라는 말로 작가는 소설을 끝낸다. 작가는 지금의 이 세계에 염증을 내고 탈출하려고 했다. 그래서 찬찬히 탈출 과정을 머릿속으로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그가 얻은 것은 탈출해 봐야 별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것은 탈출이 아닌 도피였다. 또 한편으로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작가의 애착이었다. 작가는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며 현재 우리의 세계를 가꾸고 유지하려고 한다. 우리들의 이 끝없는 탈출을 끝내는 방법,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새로운 행성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인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