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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나의 정원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김향 옮김 / 윌북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사람이 여기 있구나. 꽃을 가까이 두고 그리워 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의 노력을 부나 성공을 위한 경쟁이 아닌 소박한 자연에 쏟을 줄 아는 향기로운 자, 그가 여기 있구나. 그녀의 정원에서는 다양한 꽃들이 사계절 순리에 따라 한껏 피어오르고, 제 시간이 지나면 더 곱게 스르르 물러난다. 꽃들에게 주어진 절정의 시간을 즐기고, 그 꽃이 지더라도 슬퍼하지 않는 사람. 다음을 기약하며 더 분주히 정성을 쏟을 줄 아는 사람. 바로 타샤 튜더다.
자연히 생각의 시선은 나의 삶으로 이어진다. 나? 글쎄,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침에 눈을 떠 몽롱한 상태로 밥을 입에 쑤셔놓고, 지하철에서는 나를 답답한 통조림 속의 참치로 만들어 버린다. 서울 한복판. 하루종일 상쾌한 바람내 대신 주구장창 책상에 앉아 컴퓨터 전자파를 쐬는 나. 눈은 시리고 속은 울렁거리고 엉덩이는 무겁고 배는 더부룩하다. 야근 수당도 없이, 눈치보며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자야할 시간. 그나마 미친듯이 술을 퍼마시는 회식이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인생은 선택이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타샤 튜더처럼 향기롭게 살 수 있다. 파란 하늘. 하늘거리는 꽃잎.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꽃내음. 그.러.나. 나는 왜 자연이 주는 풍요와 자유를 찾아 떠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 도시를 맴도는 것일까...
용기가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다. 도무지 맘에 드는 것이 없고 불만밖에 없는, 회사의 기계부품에 지나지 않는 이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나마 이마저도 아니라면 사회에서 낙오될 것 같아 무서워서. 내 인생이 실패작인 것 같고 성공과도 애초에 멀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차마 이 무거운 짐을 시원스레 벗어던지지 못한다. 내가 꿈꾸는 삶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지긋지긋한 일상임에도 말이다. 다른 삶을 꿈꾸면서도 세속의 잣대를 놓지 못하는 나. 이 어찌된 모순이며 불인치란 말인가. 나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반면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용감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한 가지 불만은 있다. 왜 자신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 그 곳에 있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렸는지. 불도저로 나무를 쓰러뜨리는 사진들은 이 책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신의 눈을 위해 다른 이의 생명을 불사르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걸까? 인간의 욕심은 언제나 무엇인가의 희생을 요구한다. 다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은 그래도 그녀의 욕심은 '아름다운' 욕심이었다는 것.
책 사이에 타샤 튜더의 정원으로 가는 관광상품 전단지가 끼어있었다. 비록 날짜가 지난 것이긴 했지만. 한 번 가보고 싶다. 내가 차마 내지 못하는 용기로 그녀가 얼마나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 나도 한 번 맛보고 싶다. 청명한 9월, 지금 이 시간 그녀의 정원은 어떤 풍경으로 나를 맞이할까? 나도 살짝 욕심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