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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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해서는... 참 할 말이 없다. 살다보니 더 그렇다. 다른 사람의 사랑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확고해 진다. 모든 각각의 모습들이 사랑이고 나 또한 그런 사랑을 했으며,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자살을 할 정도의 극단으로도 치달을 수 있고 반면 여름철 미지근한 맹물처럼 밍밍할 수 있다. 뜨거울 수도 있고 차가울 수도 있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줄 수 있는 모양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각 개인의 성격 상 도저히 상대방에게 줄 수 없는 모양의 사랑이 있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사랑에 관해 혼란스러워 하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서점에는 사랑에 관한 안내서들이 잔뜩 쌓여 있다. 무슨 자기 계발서 같다. 책의 내용을 후루룩 살피면 뭐 대충 이런 내용이다.


* 사랑을 하더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할 것
* 상대방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 것
* 상대방이 없어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신호를 계속 보여줄 것
* 이별의 아픔은 혼자 당당하게 맞설 것
* 예전의 애인에게 미련을 두지 말 것
* 애인이 없는 사람은(특히 여성의 경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상대방이 베푸는 친절을 거절하지 말 것


등등... 이런 종류의 책을 진득하니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대충 목차를 살펴보면 이렇다.(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그런데 뭐, 이렇게 책에 적힌 대로만 되면 그게 사랑인가. 아니, 그것도 사랑이다. 다만 내 맘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는 게 사랑이니 이런 책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마음 먹은 대로 조종이 되지 않으니, 남는 것은 후회다. 너무 많이 줘도 나중에 내 것도 좀 챙기지 왜 그랬을까 자책이 되고, 너무 덜 줘도 그 때 왜 그리 머릿속으로 따지는 게 많았을까 자꾸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 한 사랑이 끝나고 나면 자꾸 아프다. 사랑이 하나 둘 씩 지나가 경험이 쌓이면 그 아픔에도 면역이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얼마나 아플지 알기 때문에,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가 얼마나 자신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알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 진다. 그래서 사랑에 관한 조언서가 필요한 걸까? 쓸데없이 아프지 말라고, 다음엔 좀 더 준비를 해서 힘들지 말라고. 나 참, 사랑에 관한 안내서가 필요 없다고 했다가, 있다고 했다가... 사랑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사랑에 관해서는 어떤 정답도 없다. 안내서가 필요하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기도 하는 것처럼. 아주 지혜롭고 현명하게 일일이 조건을 따져 만나는 사랑도 사랑이고, 이성적인 계산 없이 감정에만 치우쳐 물불 못가려 질질거려도 그것도 사랑이다. 어느 누가 어떤 이와 어떤 색깔의 어느 모양의 사랑을 하면서 울고 웃어도, 그 누구도 당사자를 비난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할 수 없다. 그의 모습은 과거의, 현재의, 혹은 미래의 내 모습이 언제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장담 못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한다. 처음부터 조건을 따져 만나는 당신을 속물이라고 속으로 비난했고, 오직 결혼을 위한 사랑을 하는 당신을 혀를 차며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제 내가 사랑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사랑을 받을 만 한 성숙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 사랑이 무엇인지, 두 사람이 사랑을 할 때는 상대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사랑에 빠진 상대방이 자신 때문에 어떻게 힘들어 질지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이별하더라도 그와 함께 했던 사랑이 '지우고 싶은 과거'로 남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주어도 후회되지 않는 사람, 내가 아무리 손해 봐도 아깝다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 울고 불고 매달릴 만큼 빛나고 가치 있는 사람. 지금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다면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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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연인 사이에서 둘 모두 행복한 커플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기 전에 그냥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해보면 어떨까?

옥이 2010-08-1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흠. 2011-02-10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쌩뚱맞지만, 님 이름이 참 좋네요^^ 아주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하자면, 저는 "옥이" 혹은 "옥아"라는 발음을 사랑합니다. 제가 십년간 사랑했던 친구의 이름이라...하하하하 오그라드시죠? 이제 어디에 있는 지 모르는 그 친구의 이름이 길가에서 스쳐들릴때 뒤를 돌아보던 그런 심정, 그런 우연으로, 여기에 글을 남기게 되네요.

말씀하신 내용은 잘 들었습니다만... 저는 사랑은 다원주의가 아니라 일원주의, 다양성이라기 보단 독선에 가까운 것이라고 봐요. 사랑인 것과 사랑아닌 것,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그 선택과 분류의 깐깐함이야말로 비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이라 이름붙일만한 자격이 되지 않을까요?

무튼간에,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글들 몇개를 추천드립니다. 한번쯤 꼭 읽어보시길^^

잘 알려진 번역가인 문강형준씨의 블로그 포스팅

사랑이라는 사건:미조구치 겐지 <츠카마츠 이야기>
http://blog.naver.com/caujun/60098528336

여성주의자 유유씨의, 기존 연애형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제시적 성격의 간략한
블로그 포스팅
http://blog.naver.com/beenchair/90013111944

또, 요새 잘나가는 20대 작가시죠? 박가분씨의 포스팅
<사랑에 대해 흔히 말하는 냉소적 공식>
http://blog.naver.com/paxwonik/40032943174
 
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위선호.윤단우 지음 / 모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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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의 가장 큰 고민은 식.상.함이다.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고 참을 수 없는 일이여서 서평이든 에세이를 써내려갔는데, 다시 읽어보면 누군가가 이미 문제를 제기했던 것들이다. 그것도 참 여러 번. 그래서 내 글은 소소해지고 시시해지고 뻔해진다. 별 것 아닌 내 글 앞에 나도 괜히 풀이 죽는다.


더 힘이 빠지는 건, 그렇게 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는 세상이다. 불합리한 면을 그렇게 지적 하고 개선을 촉구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이 세태며 인간들이다. 참 바뀌지 않는다. 바꾸기 힘들다. 아무리 말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나아지지 않는 세상살이가 가끔은 고달프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30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너무 뻔하지 않은가. 척하면 척이지, 뭐 이런 걸 책으로 까지 내냐며 읽지도 않다가 하도 하도 심심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다 아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여성의 능력이 신장되면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고, 결혼과 동시에 남편 집안의 종신 노예계약을 맺는 손해보는 짓을, 능력있는 여성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 저자는 눈을 낮추라, 그리고 우리 사회도 새로운 가족 형태를 만들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 생각에는 전혀 대안이 아닌 대안을 내놓았다. 눈을 낮추라고 말했지만, 낮추는 데도 한계가 있는 거고 손익분기점은 존재하는 거니까. 그리고 새로운 가족형태라. 지금 30대 미혼 여성이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뭐 이런 형태의 가족을 원하는 걸까? 그건 아닐 테다. 그들도 그저 평범한 가족을 원하는 거다. 해결도 대안도 없는 지겨운 스토리.


명절이면 항상 나오는 명절 증후군부터 시작해서, 드라마의 고정 소재인 고부갈등, 아줌마들끼리 모이면 빠지지 않는 남편 흉이며 시댁 흉. 이런 문제들은 언제부터 제기됐었는지도 모르게 오래, 오래,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큰 문제점이었고 많은 작가들과 기자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개선을 이야기 했었는데, 왜 아직도 드라마에는 고부갈등 문제가 등장하는 걸까. 명절 증후군은 왜 조금도 나아질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이런 이야기에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걸까. 한국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공감하는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진부한 이야기들은 계속되는 걸까. 글로는 식상한 주제지만, 변화는 없다.


그래도 이 뻔한 주제의 책을 읽은 후 가장 큰 느낌은 '반갑다'였다. 나만 유난떠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 같아서. 나 아닌 많은 사람들도 현 결혼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니. 괜찮은 남자가 우리 주변에 없는 게 여권 신장으로 인한 사회 흐름이고 이것이 사회의 공통된 문제로 수면 위로 떠오를 만큼의 심각한 시류라니.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의 문제라니. '우리'라는 단어가 참 반가웠다. 사실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서 '쟤가 성인군자 인건가, 아님 내가 속이 좁아 참아 넘기지 못하는 걸까.'하고 생각하며 이질감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집안에 들이 닥치는 시부모를 짜증 내면서도 '결혼하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는 친구가 이상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학교 다닐 때는 똑똑했던 앤데 왜, 그러려니 하고 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명절에 시댁에 가서 종처럼 일만 했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 친구들은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정색하며 분노하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곤 한 것이 사실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은 친구들로부터도 별난 애로 낙인 찍힌 나는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저자는 사적인 술자리에서나 오고가는 이야기들을 공론화 시키고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 지인들의 하소연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을 쓴 의도가 그것이라면 저자는 성공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파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30대 미혼녀들의 문제를 개인적인 측면이 아닌, 사회적인 측면에서 정확히 짚어냈다. 그저 조용히 수군거리던 궁시럼이, 공식적인 사회 현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계속 쓰려고 한다.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지만, 100년이 걸릴지 천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말하고 투덜대면서 이의 제기를 하려고 한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trouble maker가 돼야 겠다. 쉽지 않은 역할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것, 아니면 비정상적이지만 할 수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기를 들어야 하고 그래서 눈총을 받아야 하고 별난 애로 취급 받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쟤는 성격이 유난스럽고 무던하지 않다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 그리고 변하지도 않을, 변하긴 커녕 알아먹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일일이 힘빼며 설명해야 하는 것,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정말이지, 버겁다. 가혹할 만큼. 그래서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표출 vs 침묵, 작위 vs 부작위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전자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 떠들고 시끄럽게 문제를 만들고 다녀야 사람들이 '아, 그게 문제구나.'라도 인식할 테니까. 그래야 천 년 후에라도 바뀌지 않을까.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천 년이 흐른다면 천 년 후에도 변화는 없을 것이다. 천 년 장기 프로젝트인데 나는 몇 년 하지도 않고 제풀에 지치다니, 푸훗 우습다.


p.s 난 무슨 역사적 사명감을 띄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굳이 trouble maker를 자처해야 하는 걸까. 왜 작위와 부작위 중 작위를 선택하게 생겨먹었을까. 왜 내 생애에는 일어나지도 않을 변화에 내가 참견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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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0-05-1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랄까.. 하지만 여전히 저런 류의 책을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의 사회분위기에서, 저 책이 사회의 파장을 미칠까?라는 건 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어차피 결혼제도 자체에 찬성하지 않는 나로써는 결혼을 하고 안하고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마지막으로 남자로 태어난게 정말 다행이다~ 요런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고~^^

옥이 2010-05-2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속으로 생각만 하고 네 글에 답글은 달지 않았었네~ 어떻게 답글을 달까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고민했었는데, 쓰지는 않았나부다. 혼자 꿈을 꿨나부다 야~ ㅋㅋ 그래 파장은 잘못된 어휘 선택이고, 공론화 내지는 공적인 문제제기 정도로 하면 될 거 아니야!!! 시비는~ *^^* 조만간 밥이나 먹자~ 얼굴 본지 오래됐잖아~ ㅋㅋ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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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이다. 20대 비주얼 좋은 남녀 배우들의 로맨스 드라마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요즘 시대에 그녀는 뚱딴지처럼 동성애자를 이야기한다. 아직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그녀는 동성애자들의 소외감과 아픔을 논한다.


지나간 사랑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쿨하게 과거 따위는 잊는 요즘 세태에, 그녀는 계속해서 예전에 스친 사람을 생각한다. 그때 내뱉었던 말들이 그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말이었는지를 곱씹고 곱씹으며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그를 만나면 생기있는 얼굴로 악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타자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나만이 옳다고 생각될 때, 그 때는 나이 먹은 거라며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 더 옳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점점 어려지는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이고,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과 사람에 대해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힘든 시기도 있었다. 새파란 청춘 시절, 비릿내 나는 청춘을 어이할 줄 몰라,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고 자신을 쓰레기라 여기며 길바닥을 서성이던 적도 있었단다. 바람 피는 아비에게 대들기도 하고 아비를 무시하기도 하고 그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했다. 참, 태어나자마자 차디찬 윗목에 며칠 동안 놓여 그저 죽어주기를 바랬던, 그런 어미도 있었다. 축복받지 못한 삶이었다. 고비고비 마다 얼마나 아팠을 것이며, 그 상처들은 또 얼마나 깊이 그녀의 여린 가슴에 박혔을까. 세상에 대해 울분을 토하고 싶을 것이고,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울고 싶을 것이다. 가끔은 아무데나 대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도 있을 테다.


이런 그녀의 고민이, 세상에 할 말이 있는가....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는가... 다. 조금도 개의치 않고 함부로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시리고 눈에 밟히고 그저 사라지기만 하는 것들이 안타깝고 낯설 텐데.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에 반응하고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거슬릴 그녀다. 세상이 쓰레기로만 보여 답답해 하는 청춘들에게, 나도 그랬다...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하다 못해 세상에 대한 한탄과 원망, 욕지거리라도 내뱉을 수 있는 그녀다. 그런 그녀가 할 말이 없다니.


그럼 나는... 나는 할 말이 있는지. 하고 싶은 말, 해야겠다는 말이 꼭 있는지. 뭘까. 회사, 집, 회사, 집을 반복하며 나만의 쳇바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나는, 세상에 해야 할 말이 있을까. 잠시 했던 기자질이 피곤했던 것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에 간섭하는 게, 아는 체 하는 게, 그리 기웃거리는 게 힘들어서였을 지도 모른다. 자신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한 개인주의자, 나와 얽힌 일에만 관심을 보이는 이해관계자, 철저한 군중 속 개인. 나 아닌 타인의 일에, 타인을 넘어선 세상일에 기웃거리기엔 난 너무 게으르고 오지랖이 좁다. 나불거리기 좋아하고 지껄이기 좋아하는 내가 요즘 들어 침묵하는 이유는 바로 나의 좁은 오지랖에 있다. 나에게 세상은 너무나 넓다.


작가란, 오지랖 넓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꾸만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싶고, 내 일이 아니어도 막 나서서 중재해 줘야 하고, 지나가다 누가 잘못하면 지적질도 해 줘야 하고, 그러다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가 있으면 가서 토닥거려 주기도 해야 한다. 여기서 들은 이야기, 저기 가서 나불거릴 만큼 가벼운 입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모든 약한 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 알아야 한다. 지금껏 나쁘게만 사용했던 '오지랖도 넓다.'는 말이 새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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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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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유년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글을 쓰는 걸까. 첫 번째 소설집에서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더니 두 번째 소설집에서는 어머니의 고된 일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두 개를 조합해 보면 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어머니가 힘들게 자식들을 키우는 그런 모습이다. 그런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을까. 그래서 차압 딱지가 붙고, 상경해서 반지하에 살고,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을까.


작가의 초기 작품에는 그 작가의 유년기가 비춰진다던데... 그녀의 유년기는 어땠을까. 아직 다 내뱉지 않은, 다 내뱉긴 커녕 이제 막 시작인 작가라, 그녀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동갑인 점이 계속 신경 쓰이나 보다. 얘는 이럴 때, 난 뭐했나... 싶어서다. 그녀의 작품이 1집과 2집에서 어떻게 변했고, 어떤 비유나 전개가 마음에 들었고, 그녀의 이런 시각은 마음에 들었고, 참신한 상상력과 톡톡 튀는 문장력이 훌륭하고.... 뭐 이런 분석보다는 그냥, 난 뭐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 마냥 부럽기만 하다. 그래서 이것 저것 서평을 써보려고 끄적이다가, 부러운 마음이 커 정리는 안 되고, 그래서 서평 쓰기는 포기해 버렸다.


암튼 대단한 작가가 문단에 나왔다는 평론가들의 평가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p.s 요즘엔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 게, 힘들다기 보다는, 그냥... 그저 그렇다. 그냥.. 시들해졌다. 초탈한 느낌? 아니면 체념? 성숙과 체념은 한 끝 차이다.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한다. 쓰면 뭐하나, 주저리 주저리 떠들면 뭐하나, 싶어서다. 뭐, 잠시 그럴 수도 있지. 그냥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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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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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의 머릿속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 걸까. 사소하면서도 통통 튀는 신선함, 이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양념을, 어떻게 이리 잘 버무렸을까.


나와 같은 나이인 이 아이. 이 아이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무엇을 하며 놀고 어떤 것을 배우고 생각했기에, 나의 사고 양식과는 전혀 다른, 이런 글을 써 내렸을까. 신기하다.


법학도인 나와 문학도인 이 아이의 사고가 비슷하거나 유사하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같은 해에 태어나서 동일한 교육을 받았을 텐데, 이 아이의 머리는 말랑말랑하다. 상쾌할 정도의 충격과 유쾌할 정도의 발랄함. 아무리 내가 법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나와 이 아이의 차이가 너무 심한 게 아닐까. 괜히 심통이 나서 혼자 입만 댓발 나온다.


그리 섬세할 것 같은 외모는 아닌데, 그녀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데까지 머무른다. 우리가 매일 들르는 편의점을 모티브로 이런 글을 완성하다니! 매일 편의점을 들락날락 하지만 나와 그녀가 생각하는 편의점은 천지차이다. 철저하게 익명성이 보장되는, 너무 철저하다 못해 비인간적인 편의점의 냉랭한 공기를 그녀는 꿰뚫어 보았다. 반면 난 뭐 했나. 편의점에 진열된 많은 과자들 중에서 오늘은 뭘 먹을지, 뭐 이 정도를 고민하는 정도다. 헉! 쓰고 보니 난 정말 유치하다. 나와 그녀는 분명 동갑내기가 확실하다. 적어도 물리적인 연령 측면에서는.


그녀는 발랄하다. 가족을 버리고 가출을 했던 아비가 돌아왔다. 죽은 자로서. 그래도 그녀는 우울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연민하지 않는 법을 어미로부터 배웠으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어미를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시절 엄마가 예뻤다, 라는 말을 아버지가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탄생시킬 만큼 어미를 사랑했던 아비를 생각한다. 한 때 아비는 그리도 열정적이었다면서. 유머러스하게도 그녀는 끊임없이 달리는 아버지에게 인심 쓰는 냥 선글라스까지 끼워 드린다. 까막눈과 다름없는 어미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영어 편지를 두툼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든 말든. 그녀의 유쾌함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시원한 웃음이 흘러 나온다. 신경숙의 감당하지 못할 한 줄 한 줄의 설움에 익숙해 있던 터라, 그녀의 쿨함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소한 데에 신경을 쓰게 되면 사람이 예민해 지고 다소 우울해지기 쉬운데 그녀는 이 두 가지를 이상하게도 잘 조합했다. 그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가벼운 듯 하지만, 평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을 끄집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오하거나 무겁지는 않다. 뭘까. 이 아이. 나와는 너무 다른다. 그저 전공이 조금 다를 뿐인데. (조금 다른 건 아닌가?) 다음이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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