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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아이의 머릿속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 걸까. 사소하면서도 통통 튀는 신선함, 이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양념을, 어떻게 이리 잘 버무렸을까.
나와 같은 나이인 이 아이. 이 아이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무엇을 하며 놀고 어떤 것을 배우고 생각했기에, 나의 사고 양식과는 전혀 다른, 이런 글을 써 내렸을까. 신기하다.
법학도인 나와 문학도인 이 아이의 사고가 비슷하거나 유사하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같은 해에 태어나서 동일한 교육을 받았을 텐데, 이 아이의 머리는 말랑말랑하다. 상쾌할 정도의 충격과 유쾌할 정도의 발랄함. 아무리 내가 법을 공부했다 하더라도 나와 이 아이의 차이가 너무 심한 게 아닐까. 괜히 심통이 나서 혼자 입만 댓발 나온다.
그리 섬세할 것 같은 외모는 아닌데, 그녀의 시선은 아주 사소한 데까지 머무른다. 우리가 매일 들르는 편의점을 모티브로 이런 글을 완성하다니! 매일 편의점을 들락날락 하지만 나와 그녀가 생각하는 편의점은 천지차이다. 철저하게 익명성이 보장되는, 너무 철저하다 못해 비인간적인 편의점의 냉랭한 공기를 그녀는 꿰뚫어 보았다. 반면 난 뭐 했나. 편의점에 진열된 많은 과자들 중에서 오늘은 뭘 먹을지, 뭐 이 정도를 고민하는 정도다. 헉! 쓰고 보니 난 정말 유치하다. 나와 그녀는 분명 동갑내기가 확실하다. 적어도 물리적인 연령 측면에서는.
그녀는 발랄하다. 가족을 버리고 가출을 했던 아비가 돌아왔다. 죽은 자로서. 그래도 그녀는 우울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연민하지 않는 법을 어미로부터 배웠으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어미를 동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시절 엄마가 예뻤다, 라는 말을 아버지가 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탄생시킬 만큼 어미를 사랑했던 아비를 생각한다. 한 때 아비는 그리도 열정적이었다면서. 유머러스하게도 그녀는 끊임없이 달리는 아버지에게 인심 쓰는 냥 선글라스까지 끼워 드린다. 까막눈과 다름없는 어미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영어 편지를 두툼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든 말든. 그녀의 유쾌함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시원한 웃음이 흘러 나온다. 신경숙의 감당하지 못할 한 줄 한 줄의 설움에 익숙해 있던 터라, 그녀의 쿨함이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소한 데에 신경을 쓰게 되면 사람이 예민해 지고 다소 우울해지기 쉬운데 그녀는 이 두 가지를 이상하게도 잘 조합했다. 그 점이 더욱 충격적이다. 가벼운 듯 하지만, 평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것을 끄집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오하거나 무겁지는 않다. 뭘까. 이 아이. 나와는 너무 다른다. 그저 전공이 조금 다를 뿐인데. (조금 다른 건 아닌가?) 다음이 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