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위선호.윤단우 지음 / 모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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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의 가장 큰 고민은 식.상.함이다. 내게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고 참을 수 없는 일이여서 서평이든 에세이를 써내려갔는데, 다시 읽어보면 누군가가 이미 문제를 제기했던 것들이다. 그것도 참 여러 번. 그래서 내 글은 소소해지고 시시해지고 뻔해진다. 별 것 아닌 내 글 앞에 나도 괜히 풀이 죽는다.


더 힘이 빠지는 건, 그렇게 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는 세상이다. 불합리한 면을 그렇게 지적 하고 개선을 촉구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이 세태며 인간들이다. 참 바뀌지 않는다. 바꾸기 힘들다. 아무리 말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나아지지 않는 세상살이가 가끔은 고달프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30대 여성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너무 뻔하지 않은가. 척하면 척이지, 뭐 이런 걸 책으로 까지 내냐며 읽지도 않다가 하도 하도 심심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나 다 아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여성의 능력이 신장되면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됐고, 결혼과 동시에 남편 집안의 종신 노예계약을 맺는 손해보는 짓을, 능력있는 여성들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것. 저자는 눈을 낮추라, 그리고 우리 사회도 새로운 가족 형태를 만들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 생각에는 전혀 대안이 아닌 대안을 내놓았다. 눈을 낮추라고 말했지만, 낮추는 데도 한계가 있는 거고 손익분기점은 존재하는 거니까. 그리고 새로운 가족형태라. 지금 30대 미혼 여성이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뭐 이런 형태의 가족을 원하는 걸까? 그건 아닐 테다. 그들도 그저 평범한 가족을 원하는 거다. 해결도 대안도 없는 지겨운 스토리.


명절이면 항상 나오는 명절 증후군부터 시작해서, 드라마의 고정 소재인 고부갈등, 아줌마들끼리 모이면 빠지지 않는 남편 흉이며 시댁 흉. 이런 문제들은 언제부터 제기됐었는지도 모르게 오래, 오래,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의 큰 문제점이었고 많은 작가들과 기자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목이 터져라 개선을 이야기 했었는데, 왜 아직도 드라마에는 고부갈등 문제가 등장하는 걸까. 명절 증후군은 왜 조금도 나아질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이런 이야기에 아직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감하는 걸까. 한국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공감하는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 진부한 이야기들은 계속되는 걸까. 글로는 식상한 주제지만, 변화는 없다.


그래도 이 뻔한 주제의 책을 읽은 후 가장 큰 느낌은 '반갑다'였다. 나만 유난떠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 같아서. 나 아닌 많은 사람들도 현 결혼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니. 괜찮은 남자가 우리 주변에 없는 게 여권 신장으로 인한 사회 흐름이고 이것이 사회의 공통된 문제로 수면 위로 떠오를 만큼의 심각한 시류라니.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얼굴도 모르지만 우리의 문제라니. '우리'라는 단어가 참 반가웠다. 사실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서 '쟤가 성인군자 인건가, 아님 내가 속이 좁아 참아 넘기지 못하는 걸까.'하고 생각하며 이질감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집안에 들이 닥치는 시부모를 짜증 내면서도 '결혼하면 다 그렇지 뭐'라고 말하는 친구가 이상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학교 다닐 때는 똑똑했던 앤데 왜, 그러려니 하고 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명절에 시댁에 가서 종처럼 일만 했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 친구들은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정색하며 분노하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곤 한 것이 사실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은 친구들로부터도 별난 애로 낙인 찍힌 나는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저자는 사적인 술자리에서나 오고가는 이야기들을 공론화 시키고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 지인들의 하소연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을 쓴 의도가 그것이라면 저자는 성공했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파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30대 미혼녀들의 문제를 개인적인 측면이 아닌, 사회적인 측면에서 정확히 짚어냈다. 그저 조용히 수군거리던 궁시럼이, 공식적인 사회 현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계속 쓰려고 한다. 쉽게 변하지 않음을 알지만, 100년이 걸릴지 천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이 말하고 투덜대면서 이의 제기를 하려고 한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trouble maker가 돼야 겠다. 쉽지 않은 역할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것, 아니면 비정상적이지만 할 수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기를 들어야 하고 그래서 눈총을 받아야 하고 별난 애로 취급 받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쟤는 성격이 유난스럽고 무던하지 않다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 그리고 변하지도 않을, 변하긴 커녕 알아먹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일일이 힘빼며 설명해야 하는 것, 오히려 그런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정말이지, 버겁다. 가혹할 만큼. 그래서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나 표출 vs 침묵, 작위 vs 부작위 중 하나를 택하라면 전자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계속 떠들고 시끄럽게 문제를 만들고 다녀야 사람들이 '아, 그게 문제구나.'라도 인식할 테니까. 그래야 천 년 후에라도 바뀌지 않을까. 아무 문제없이 조용히 천 년이 흐른다면 천 년 후에도 변화는 없을 것이다. 천 년 장기 프로젝트인데 나는 몇 년 하지도 않고 제풀에 지치다니, 푸훗 우습다.


p.s 난 무슨 역사적 사명감을 띄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아닌데 굳이 trouble maker를 자처해야 하는 걸까. 왜 작위와 부작위 중 작위를 선택하게 생겨먹었을까. 왜 내 생애에는 일어나지도 않을 변화에 내가 참견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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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2010-05-10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뭐랄까.. 하지만 여전히 저런 류의 책을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의 사회분위기에서, 저 책이 사회의 파장을 미칠까?라는 건 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어차피 결혼제도 자체에 찬성하지 않는 나로써는 결혼을 하고 안하고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마지막으로 남자로 태어난게 정말 다행이다~ 요런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고~^^

옥이 2010-05-23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속으로 생각만 하고 네 글에 답글은 달지 않았었네~ 어떻게 답글을 달까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고민했었는데, 쓰지는 않았나부다. 혼자 꿈을 꿨나부다 야~ ㅋㅋ 그래 파장은 잘못된 어휘 선택이고, 공론화 내지는 공적인 문제제기 정도로 하면 될 거 아니야!!! 시비는~ *^^* 조만간 밥이나 먹자~ 얼굴 본지 오래됐잖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