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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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스갯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의 부모 세대들이 부동산 가격을 부풀려 재테크를 한 덕에, 그들의 자녀 세대들은 도저히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집값 때문에 결혼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부모들의 욕심과 탐욕이 결국은 자식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꽤나 희극적이어서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난다.

비단 부동산 뿐만은 아닌가 보다. 영화, 언론, 네일아트 등 조금 특수해 보이는 분야 뿐만 아니라 일반 사기업에서도 젊은이들의 피를 빨아 수익을 내는 잔인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네가 원하는 일을 하니까, 요즘 취업이 어려운데 뽑아준 것만도 감사한 일이니까, 이런 식의 논리로 기성세대는 시퍼런 젊음을 악착같이 빨아들인다.

그냥 책에만 나오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나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경력이나 좀 쌓아보자고 들어갔던 지역 케이블 방송국에서 말 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강도 높은 업무를 군말없이 소화해야 했다. 기자로 들어 갔지만 나는 취재는 물론, 대본도 쓰고 카메라 영상도 찍고, 편집도 하고, 섭외도 하고, 기자, PD, 카메라맨, 작가, 진행 등 혼자서 말도 안 될 만큼 많은 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그래, 일 많은 거야 뭐 그냥 고생한다고 치는데, 기자하고 싶어서 말도 안 되는 연봉에 말도 안 되는 업무량은 참겠는데, 그런데 카메라 맨도 시키고 편집까지  하라니. 젊은 청춘들의 꿈을 이용해 기회를 주는 척, 하면서 그들은 나의 능력과 열정을 마음껏 착취했다. 돈은 돈대로 못 모으고 맘고생은 맘고생대로 했던 그 시절.  그러나 그러고도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에 대해 불평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기자였고, 그 목표를 위한 중간 과정이었기 때문에 내가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메이저 언론사에 시험도 간간이 보면서 버티다가 6개월 하고 때려쳤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해서 빨리 메이저로 진출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 뒤에도 난 고작 6개월 하고 회사를 때려치는 참을성 없고 인내심 없는 의지 박약자라는 비난을 여기저기서 받아야 했다.

기자로서 대성공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사회에 끼치는 거물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누구나 졸업 후에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많은 직업 중 나는 기자를 선택한 것 뿐이다. 특이하다고 하면 특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뭐 하늘의 별따기를 할 정도로 희귀한 직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높은 진입 장벽, 극심한 취업난, 인건비를 줄여 수익을 높이려는 비인간적인 경영자 마인드, 이런 것들이 뒤엉켜 나의 언론고시 준비 기간은 하루하루가 눈물이었다.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땅의 많은 청년들, 무언가를 꿈꾸는 청춘이라면 기성세대들의 쥐어짬을 적어도 한 번씩은 다 경험했을 것이다. 왜 수익은 인건비를 줄여서 내야 하는지, 정당한 인건비를 제외한 나머지가 수익이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인건비를 주면서 수익이 높다고 기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열악한 대우로 인해 꿈꾸었던 청년들은 좌절을 맛보고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보험 영업사원으로 현실에 내몰린다. 한창 20대에 꿈을 꾸었던 청년들은 30대에 만신창이가 돼 꿈을 잃고 희망을 잃고 혈기 없는 샐러리맨으로 전락한다. 그들은 이제, 이 땅에서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뼈저리 느끼면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이런 샐러리맨들이 만든 대한민국은 그래서 늘 칙칙한 회색빛이다. 꿈도 환상도 희망도 없는, 찬란한 무지개가 사라진 폐허.

개개인의 열정이 없어서, 당신의 의지가 약해서 현실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고 개인을 탓할 일은 아니다. 지역 케이블 방송국에서 일하면서도 많은 돈을 벌자는 게 아니라, 적어도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집값은 치솟고, 물가는 자꾸 오르는데, 언제까지 메이저 언론사만을 바라보고 현실을 외면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우리들의 많은 인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스러지는 젊음들. 생기 없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우리들. 마음이 아프다.  

 * 신랄한 비판이 내 입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이 정도다. 뭐 어쩌겠냐... 는 체념이다. 현실은 요 모양 요 꼬라진데, 쉽게 바뀌지도 않을 거고, 바뀔 수도 없는데, 열 내서 뭐하냐는 생각이다. 내 앞 선배들처럼 나도 이제 좀 지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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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까이 - 북 숍+북 카페+서재
김태경 지음 / 동아일보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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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방. 책쟁이들. 개성 강한 서재며 누렇게 빛바랜 헌책들. 아기자기하거나, 고즈넉하거나, 혹은 어릴 적 할아버지의 서재가 떠올라 괜시리 한 구석이 시리게 되는 다양한 모습의 책방들.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작가 신경숙이 어느 책에선가 말했다.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이번 생, 참으로 감사할 것 같다, 고 생각했다고. 나도... 나도 그렇다.

그래서, 감사한 삶을 살기 위한 계획을 세워 보았다.

- 새벽 운동(6시에 일어나서, 운동할 수 있을까? 6시에 일어난다는 것과,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너무 어렵다. 이 계획을 세워놓구서는 딱 1번 해봤다. 딱 1번 운동을 할 때의, 잠을 참아가면서 운동을 하는 그 느낌이 너무 끔찍해서, 다시는 그 기분을 느끼기 싫어서 그 뒤로는 절대, 새벽 6시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 때문에 이 계획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매일 오전 5시 45분이면 울리는 알람 때문에 나는 늘상 피곤하다.)
- 회사
- 7 ~ 10 글쓰기
- 11 ~ 12 책 읽기

이 계획표대로 실천만 잘 한다면 내 인생도 꽤나 성공적일텐데. 앞으로 몇 번이나 이렇게 하나 한 번 보자구.

* 내가 이렇게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울 때, 누군가가 이를 질책하면 나는 더 잘 해야지, 결심할까, 아니면 안 해, 하고 화를 낼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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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말하는 핀란드 경쟁력 100 - 핀란드, 국가경쟁력 세계 1위의 비밀을 말한다!
일까 따이팔레, 조정주 / 비아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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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택이나 학생주택, 노숙자들을 위한 거주지, 가정양육 수당, 아버지 육아 휴가, 무료 산모 육아용품,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무료 학교 급식, 가정간호 수당, 자유로운 교육제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도서관, 단식의 날을 통한 모금 운동, 하다 못해 산타클로스까지. 핀란드에는 우리에게는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소소한 복지제도에서부터 다양한 시스템들. 각 시스템의 분야도 다르고 혜택의 정도도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위와 같은 제도들은 모두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핀란드에도 불행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그 곳에서 살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것 같다는 부러운 생각이 퍼뜻, 든다.

우리는 핀란드처럼 못하는 이유... 뭘까? 매년 수능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을 하는 학생들의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교육제도를 뜯어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주입식 교육을 제발 좀 벗어나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받고 싶다는데 판에 박힌 커리큘럼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이유는 과연 뭘까. 무상급식이니, 저소득층을 위한 보조금이니 하는 것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쉽게 고치기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교육의 커리큘럼을 바꾸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학의 정석이 고등학생들에게 바이블이 되는 몇 십년의 관행이 조금도 변하지 않음은.
보다 나은 교육시스템에 대한 책도 많고 논문도 많고 외국 사례도 많은데 판이 변하지 않는 이유. 꼭 교육 뿐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소소한 모든 것이 그렇다.

혹자는 우리의 의식 수준이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 우리의 의식 수준이 그거 밖에 안 되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우신 분들이 분명 있고, 해외에서 여러 선전사례를 접하신 분들도 많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그렇다면 결국 드는 생각은, 과연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이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를 낮추는 무수한, 정말 너무나도 많은 말도 안 되는 제도며 인식들. 이런 것들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가. 위정자들? 잘 모르겠다. 선거 때마다 눈물을 질질 짜며 뭘 하겠다, 뭘 하겠다 외치는 그들은 도대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시는지. 그래, 어짜피 서민들의 행복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들은 제껴버리자. 자신들의 배만 채우기만 급급한 돼지 같은 사람들을 우리까 어찌할 수 있으랴. 그리고 분명 개선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조차 없어,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 식은땀을 흘리는 바보들도 제껴버리자. 이제 와 그들을 우리가 하나하나 어찌 가르친단 말인가.

그래, 그럼 남는 건 우리 자신들이다. 커다란 군중을 만드는 우리 개개인, 우리 하나 하나 한 명, 한 명. 우리는 지금 현재의 판을 엎어버리고 싶은 의지가 있는가?

헉! 없다. 나도 그렇고 나를 포함한 우리는 회사 생활만을 하기에도 너무 지쳐있다. 아침에 눈 떠 회사 갔다 집에 오고 회사 갔다 집에 오고 회식도 갔다가 회사에서 하는 체육대회도 가야 되고 가끔은 전 사원 등반대회도 나가야 돼고 일 박 이일로 워크샵에도 참석하시느라 우리는 그야말로 찌들어 있다. 하루 하루 헉헉 대며 출근하기도 바쁜 마당에, 왠 개혁의 의지며 판을 뒤엎으려는 혁명에 대한 열정이란 말이냐. 다른 사람의 힘든 사정을 살필 여유가 나에겐, 우리에겐 없다. 내 앞가림 하기에도 숨이 가쁘다. 자칫 방심하면 팀장에게 내 실적을 뺏기고, 명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고 정글같은 경쟁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제치고 앞서가느라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판이다. 몇 억씩 하는 집값을 나도 마련하지 못한 판에, 갑자기 전셋값을 몇 천만원씩 올려달라는 주인 때문에 나도 이삿짐 보따리를 몇 번이고 싸는 마당에 다른 사람이 쪽방에 살 건 말 건, 이를 생각할 여력이 없단 말이다. 단순히 우리 각 개인이 타인의 아픔에는 아랑곳 없는 냉혈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그랬다. 여유 없는 삶과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경쟁하는 문화. 이런 것들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 내가 살아 남을 수 있고, 누군가를 짓밟는다고 해서 내가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목숨이나마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일 뿐이다. 각각의 능력과 특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다양한 교육 방식이 아닌, 총점으로 일렬로 순위를 매기는 잔인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방법 보다는 경쟁하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그래, 그래도 우리는 한 번 바꿔보고자 꿈틀, 해 봤다. 사람들과 싸워도 보고, 부당한 현실에 용감하게 부딪혀 보기도 했다. 변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적인 꿈을 꿔 보기도 했다. 내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에 차 신나게 휘파람을 불기도 해 봤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한 때 열정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나가 떨어졌다. 유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견고한 벽은, 힘없는 개인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때는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에 몰입했던 사람들.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망을 노래했던 젊은이들은 이제, 화려한 스펙이 없으면 취업조차도 하지 못하는, 뭐 대단한 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 살겠다는데도 일자리가 없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주린 배를 굶어쥐고 시대를 한탄하는 청년 백수가 되어 버렸다. 간신히 운이 좋아 조그마한 회사에 취업이라도 한다면, 그는 이제 자신의 밥벌이에만 몰입할 뿐, 판을 깨버리자는 헛소리에는 곁눈질 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그래도, 억지로라도, 그래도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는 끈질긴 희망 한 줄기를 고집스럽게 잡아 본다. 일단 나부터라도. 예전에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기자 생활을 했던 때에는 머리 빠개지고 고민하고 얼굴이 벌개져라 토론했던 현안들을, 어느덧 나도 점점 외면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그냥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참견하라고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운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급급하다. 언제 주말 오나, 언제 퇴근하나, 하면서. 참, 할 말 없다. 그러니까, 어쨋든 나부터 좀 쌩쌩해 보자는 거다. 이런 저런 문제에 다시 목에 핏대 세우면서 싸워도 보고, 괜한 일로 분쟁을 일으켜서 다시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도 보고, 그렇게 해보자는 거다. 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고집스러움. 그래도, 가끔은 힘이 빠져 무기력하게 보내기도 하고, 별 일 아닌데도 괜히 씨근덕 거리며 울컥 화를 내도, 이렇게 가끔씩은 힘을 내보기도 하는 부족한 내가 나는 사랑스럽다.

*결론은 이상한 데로 빠졌는 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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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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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건희의 생일 잔치에서 꽤나 밸이 꼬였나 보다. 00호텔, 아나운서 000의 사회, 유명 국악인, 성악가, 가수 등이 대거 출연하는 축하파티. 이건희가 뭐 얼마나 대단한데 이렇게 성대하게 생일파티를 하냐며 코웃음치고 있던 저자는 아래 상황에서 드디어 꼭지가 돌았나 보다.  

 생일잔치에 손님을 불러놓고 손님에게는 냉동 푸아그라를주고, 자신들은 냉장 푸아그라를 먹는 게 영 불편했다.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이건희 가족의 테이블에는 천만 원짜리 페트뤼스 와인이 있었지만 손님 테이블에는 이보다 훨씬 싼 다른 와인이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비서팀장인 김준 상무에게 페투뤼스 와인이 몇 병이나 있느냐고 물었다. 가져오라고 해 나눠마셨다...

이거였어? 그가 7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뛰어 나왔던 이유가? 똑같은 주둥아린데, 너네만 뭐가 특별해서 남들보다 좋은 거 먹느냐, 뭐 이런 심보? 그래서 자기도 고급와인 달라고 해서 마신거야? 나도 이 정도는 먹을 수 있다, 나도 너네랑 동등하다, 이런 고귀한 자존감으로? 부럽다. 어디 가서 고개 한 번 안 숙이고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고 살아와서.  

 너무도 유치한 예를 위에 들긴 했지만, 그리고 내부 속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저자는 삼성에 온갖 비리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기 보다는, 샐러리맨의 생활을 견디지 못한 듯하다. 언제나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뒤에서는 욕할망정, 앞에서는 굽신굽신 충성을 보여야 하고, 상사의 말 한마디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무산되기도 하고, 그 동안 자신이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물거품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저자는 이런 드럽고 아니꼬운 샐러리맨 생활이 가잖았던 것 같다. 우리 같은 일개 샐러리맨은 충성의 대상이 바로 위 직속 상사이고, 저자는 임원이라 그 대상이 이건희였던 것 뿐인데.

 이건희가 있는 곳은늘 온도를 25~26도에 맞춰야 했다. .. 이건희의 전화에는 임원과 직접 연결되는 단축키가 있다. 아무때나 단축키를 눌러 통화한다. ... 계약서 사장들이 마음 놓고 술도 못 마시는 분위기였다. 언제 어디서 전화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학수, 김인주 등은 오직 이건희이ㅡ 사적이익과 안전만이 관심사였다.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면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는 일'이다. ... 웃기는 노릇이다. ...

 삼성에서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회장을 향한 강력한 충성에 대한 강력한 보상'이라는 체계에 길들여져 있는 그들... 그들은 내가 왜 구조본을 떠났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방인인 내게는 그들이 쓰는 말 하나하나가 거북했다. 예컨대 구조본 팀장들은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기 위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보위하다라니, .. 꼭 북한에서 쓰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썼다. 

 저자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일컫는다. 검찰에서 항상 甲의 역할만 하던 그가,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샐러리맨으로 '전락'하셨으니 퍽이나 힘드셨겠다.  

이건희 회장에게 조금이라도 잘보이려고 굽신거리고 그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바로 실행되고, 그 지시가 기업의 수익을 줄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들 그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이런 것들이 권력을 쥐고 있던 그에게는 '웃기는 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 누추하고 비굴한 삶이, 하루하루고, 우리를 연명하게 하는 밥줄이다. 서두에서 기술했듯이, 저자도 잘났고 그래서 이건희 일가와 동일한 비싼 와인을 먹을 수 있는 귀한 몸이시다. 저자는 본인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건희와 동일한 선 상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우리는 비싼 와인을 달라고 할 만큼 잘나지도 못했을 뿐더러, 설사 내가 그렇게 잘났더라도 항상 몸을 바짝 낮춰야 하는 것이 샐러리맨의 비애다. 그걸 몰랐으니 저자는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나 밸이 꼬였을꼬.

저자의 이런 꼴리는 태도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곳곳에 나타나 있다. 아니, 이 책 전반에 깔린 기조다. 나도 잘났는데, 왜 내가 네 밑에서 일해야 하냐는 식이다.  

그들에겐 삼성 임원 자리가 정부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벼슬'로 비치는 모양이었다. ... 어느 검사는 나를 가리켜 '전관했다'는 표현을 썼다. 법원에서 검찰, 혹은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길 때 썼던 표헌이 '전관'이다. 공직사회 안에서 소속만 바뀔 때 쓰는 표현이다. 
 

'전관'이라는 단어를 꼭 공직사회 내에서만 써야 된다는 법은 또 누가 정한 건지. 권력층 내에서의 전관예우는 쉽게 뿌리 뽑을 수 없는 우리 사회 고질병이다. 그런데 전관의 대상은 공직 사회 테두리 내에서만 써야 하고 하찮은 사기업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듯한 저자의 태도란. 또 하나의 벽을 쌓는, 결국 이건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저자의 특권의식. 참 당황스럽다.  

결국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온 유치한 자의 징징거림을 엮은 책이라니. 책을 읽다 확 짜증이 나서 그만 책을 덮어 버렸다. 한 1년 넘게 책을 처박아 두었다가 서평도 이제야 쓴다.  

지금의 회사 조직 문화가 옳다고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짝 기어 엎드려야 하는 샐러리맨 생활이 나 역시 편치는 않으니까. 그러나, 신처럼 모셔지는 이건희가 아니꼬왔던 자신의 유치한 마음을 자신은 정의로운 척, 양심에 찔리는 척하며 자신이 무슨 대단한 양심 선언이라도 하는 선량한 지식인인양, 자신을 포장하는 꼬락서니가 꽤나 거슬린다는 거다.  

결국, 서민인 우리들이 보기엔 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꼴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헐뜯고 자신은 깨끗한 냥 떠들며 호들갑들을 떠는 모습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과격한 서평은 처음 써 보는데, 진짜 재수없고 밥맛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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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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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고치에서 빠져나와 즐거워하고 즐겁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나 때문이었다.'

이렇던 한나와 미카엘도 결국은 서로를 지겨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부부로 변한다. 모든 연인들의 코스. 처음은 언제나 설레고 상큼하다.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상대방의 표정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고 그에 실린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온 몸의 촉수를 상대방에게 집중시킨다. 뭘 하면 좋아하는지, 자신의 어떤 면을 싫어하는지, 혹시나 내가 실수라도 하진 않았나, 함께 있던 장면을 계속 돌려보고 돌려본다. 하루 종일 상대방을 생각하고, 다음에 만날 때는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얼굴에 미소를 띤다. 하루에 2시간 이상씩 통화를 해도 통화 종료가 아쉽다. 그 때는 하루하루가 싱글벙글이고 뭘 해도 신이난다.

그러다 그 연인들은 서로를 지겨워하는 부부가 된다. 신기하다. 처음엔 그렇게 서로 좋아서 한 시라도 떨어져 있기 실어하던 그들이 이제는 제발 한시라도 떨어져 있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되는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쓴다고 해도 결코 가질 수 없는 마음도 있기 때문에. 얻고 싶은 마음을 얻지 못할 때 사람은 얼마나 비굴해지고, 초라해지고, 예민해지는지. 상대방의 기침 소리 하나에도 간을 졸이고, 상대방의 기운 없는 목소리에도 내가 뭘 잘못했나 주눅이 든다. 그뿐인가? 얻었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마음이 저 멀리 달아나기라도 한다면.  나를 위해 '고치에서 빠져나와 즐거워하고 나를 즐겁게 하려고 애쓰고' 있던 그 사람은 나도 모르는 새 낯선 표정의 이방인으로 돌변해 있다. 내 것이라고 확신했던 그의 마음이 손가락 사이로 속수무책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볼 때, 그 때는 또 얼마나 허망한지.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말할 필요도 없다.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 본 사람이라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 때의 절망적인 심정을...

사람 마음이 오고 갈 때, 그 때의 기대와 아픔.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도, 내 마음도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주고 받은 마음은 평생, 한결 같았으면. 안 될까? 마음이, 아프다... 마음은 원래, 항상 아픈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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