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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평점 :
저자는 이건희의 생일 잔치에서 꽤나 밸이 꼬였나 보다. 00호텔, 아나운서 000의 사회, 유명 국악인, 성악가, 가수 등이 대거 출연하는 축하파티. 이건희가 뭐 얼마나 대단한데 이렇게 성대하게 생일파티를 하냐며 코웃음치고 있던 저자는 아래 상황에서 드디어 꼭지가 돌았나 보다.
생일잔치에 손님을 불러놓고 손님에게는 냉동 푸아그라를주고, 자신들은 냉장 푸아그라를 먹는 게 영 불편했다.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이건희 가족의 테이블에는 천만 원짜리 페트뤼스 와인이 있었지만 손님 테이블에는 이보다 훨씬 싼 다른 와인이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비서팀장인 김준 상무에게 페투뤼스 와인이 몇 병이나 있느냐고 물었다. 가져오라고 해 나눠마셨다...
이거였어? 그가 7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뛰어 나왔던 이유가? 똑같은 주둥아린데, 너네만 뭐가 특별해서 남들보다 좋은 거 먹느냐, 뭐 이런 심보? 그래서 자기도 고급와인 달라고 해서 마신거야? 나도 이 정도는 먹을 수 있다, 나도 너네랑 동등하다, 이런 고귀한 자존감으로? 부럽다. 어디 가서 고개 한 번 안 숙이고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고 살아와서.
너무도 유치한 예를 위에 들긴 했지만, 그리고 내부 속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저자는 삼성에 온갖 비리들이 마음에 안 들었다기 보다는, 샐러리맨의 생활을 견디지 못한 듯하다. 언제나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뒤에서는 욕할망정, 앞에서는 굽신굽신 충성을 보여야 하고, 상사의 말 한마디에 중요한 프로젝트가 무산되기도 하고, 그 동안 자신이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물거품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저자는 이런 드럽고 아니꼬운 샐러리맨 생활이 가잖았던 것 같다. 우리 같은 일개 샐러리맨은 충성의 대상이 바로 위 직속 상사이고, 저자는 임원이라 그 대상이 이건희였던 것 뿐인데.
이건희가 있는 곳은늘 온도를 25~26도에 맞춰야 했다. .. 이건희의 전화에는 임원과 직접 연결되는 단축키가 있다. 아무때나 단축키를 눌러 통화한다. ... 계약서 사장들이 마음 놓고 술도 못 마시는 분위기였다. 언제 어디서 전화를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학수, 김인주 등은 오직 이건희이ㅡ 사적이익과 안전만이 관심사였다.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면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는 일'이다. ... 웃기는 노릇이다. ...
삼성에서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회장을 향한 강력한 충성에 대한 강력한 보상'이라는 체계에 길들여져 있는 그들... 그들은 내가 왜 구조본을 떠났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방인인 내게는 그들이 쓰는 말 하나하나가 거북했다. 예컨대 구조본 팀장들은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기 위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보위하다라니, .. 꼭 북한에서 쓰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썼다.
저자는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일컫는다. 검찰에서 항상 甲의 역할만 하던 그가, 상사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샐러리맨으로 '전락'하셨으니 퍽이나 힘드셨겠다.
이건희 회장에게 조금이라도 잘보이려고 굽신거리고 그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바로 실행되고, 그 지시가 기업의 수익을 줄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두들 그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이런 것들이 권력을 쥐고 있던 그에게는 '웃기는 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 누추하고 비굴한 삶이, 하루하루고, 우리를 연명하게 하는 밥줄이다. 서두에서 기술했듯이, 저자도 잘났고 그래서 이건희 일가와 동일한 비싼 와인을 먹을 수 있는 귀한 몸이시다. 저자는 본인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건희와 동일한 선 상에 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이라는 것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우리는 비싼 와인을 달라고 할 만큼 잘나지도 못했을 뿐더러, 설사 내가 그렇게 잘났더라도 항상 몸을 바짝 낮춰야 하는 것이 샐러리맨의 비애다. 그걸 몰랐으니 저자는 회사를 다니면서 얼마나 밸이 꼬였을꼬.
저자의 이런 꼴리는 태도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곳곳에 나타나 있다. 아니, 이 책 전반에 깔린 기조다. 나도 잘났는데, 왜 내가 네 밑에서 일해야 하냐는 식이다.
그들에겐 삼성 임원 자리가 정부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벼슬'로 비치는 모양이었다. ... 어느 검사는 나를 가리켜 '전관했다'는 표현을 썼다. 법원에서 검찰, 혹은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길 때 썼던 표헌이 '전관'이다. 공직사회 안에서 소속만 바뀔 때 쓰는 표현이다.
'전관'이라는 단어를 꼭 공직사회 내에서만 써야 된다는 법은 또 누가 정한 건지. 권력층 내에서의 전관예우는 쉽게 뿌리 뽑을 수 없는 우리 사회 고질병이다. 그런데 전관의 대상은 공직 사회 테두리 내에서만 써야 하고 하찮은 사기업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듯한 저자의 태도란. 또 하나의 벽을 쌓는, 결국 이건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저자의 특권의식. 참 당황스럽다.
결국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온 유치한 자의 징징거림을 엮은 책이라니. 책을 읽다 확 짜증이 나서 그만 책을 덮어 버렸다. 한 1년 넘게 책을 처박아 두었다가 서평도 이제야 쓴다.
지금의 회사 조직 문화가 옳다고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짝 기어 엎드려야 하는 샐러리맨 생활이 나 역시 편치는 않으니까. 그러나, 신처럼 모셔지는 이건희가 아니꼬왔던 자신의 유치한 마음을 자신은 정의로운 척, 양심에 찔리는 척하며 자신이 무슨 대단한 양심 선언이라도 하는 선량한 지식인인양, 자신을 포장하는 꼬락서니가 꽤나 거슬린다는 거다.
결국, 서민인 우리들이 보기엔 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꼴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헐뜯고 자신은 깨끗한 냥 떠들며 호들갑들을 떠는 모습을 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과격한 서평은 처음 써 보는데, 진짜 재수없고 밥맛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