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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가 말하는 핀란드 경쟁력 100 - 핀란드, 국가경쟁력 세계 1위의 비밀을 말한다!
일까 따이팔레, 조정주 / 비아북 / 2010년 2월
평점 :
사회주택이나 학생주택, 노숙자들을 위한 거주지, 가정양육 수당, 아버지 육아 휴가, 무료 산모 육아용품,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무료 학교 급식, 가정간호 수당, 자유로운 교육제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도서관, 단식의 날을 통한 모금 운동, 하다 못해 산타클로스까지. 핀란드에는 우리에게는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소소한 복지제도에서부터 다양한 시스템들. 각 시스템의 분야도 다르고 혜택의 정도도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위와 같은 제도들은 모두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에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핀란드에도 불행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그 곳에서 살면 지금보다는 더 행복할 것 같다는 부러운 생각이 퍼뜻, 든다.
우리는 핀란드처럼 못하는 이유... 뭘까? 매년 수능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을 하는 학생들의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는데 교육제도를 뜯어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주입식 교육을 제발 좀 벗어나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받고 싶다는데 판에 박힌 커리큘럼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이유는 과연 뭘까. 무상급식이니, 저소득층을 위한 보조금이니 하는 것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쉽게 고치기 어렵다 하더라도, 적어도 교육의 커리큘럼을 바꾸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학의 정석이 고등학생들에게 바이블이 되는 몇 십년의 관행이 조금도 변하지 않음은.
보다 나은 교육시스템에 대한 책도 많고 논문도 많고 외국 사례도 많은데 판이 변하지 않는 이유. 꼭 교육 뿐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소소한 모든 것이 그렇다.
혹자는 우리의 의식 수준이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 우리의 의식 수준이 그거 밖에 안 되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우신 분들이 분명 있고, 해외에서 여러 선전사례를 접하신 분들도 많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그렇다면 결국 드는 생각은, 과연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이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를 낮추는 무수한, 정말 너무나도 많은 말도 안 되는 제도며 인식들. 이런 것들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가. 위정자들? 잘 모르겠다. 선거 때마다 눈물을 질질 짜며 뭘 하겠다, 뭘 하겠다 외치는 그들은 도대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시는지. 그래, 어짜피 서민들의 행복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들은 제껴버리자. 자신들의 배만 채우기만 급급한 돼지 같은 사람들을 우리까 어찌할 수 있으랴. 그리고 분명 개선할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조차 없어,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 식은땀을 흘리는 바보들도 제껴버리자. 이제 와 그들을 우리가 하나하나 어찌 가르친단 말인가.
그래, 그럼 남는 건 우리 자신들이다. 커다란 군중을 만드는 우리 개개인, 우리 하나 하나 한 명, 한 명. 우리는 지금 현재의 판을 엎어버리고 싶은 의지가 있는가?
헉! 없다. 나도 그렇고 나를 포함한 우리는 회사 생활만을 하기에도 너무 지쳐있다. 아침에 눈 떠 회사 갔다 집에 오고 회사 갔다 집에 오고 회식도 갔다가 회사에서 하는 체육대회도 가야 되고 가끔은 전 사원 등반대회도 나가야 돼고 일 박 이일로 워크샵에도 참석하시느라 우리는 그야말로 찌들어 있다. 하루 하루 헉헉 대며 출근하기도 바쁜 마당에, 왠 개혁의 의지며 판을 뒤엎으려는 혁명에 대한 열정이란 말이냐. 다른 사람의 힘든 사정을 살필 여유가 나에겐, 우리에겐 없다. 내 앞가림 하기에도 숨이 가쁘다. 자칫 방심하면 팀장에게 내 실적을 뺏기고, 명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고 정글같은 경쟁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제치고 앞서가느라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판이다. 몇 억씩 하는 집값을 나도 마련하지 못한 판에, 갑자기 전셋값을 몇 천만원씩 올려달라는 주인 때문에 나도 이삿짐 보따리를 몇 번이고 싸는 마당에 다른 사람이 쪽방에 살 건 말 건, 이를 생각할 여력이 없단 말이다. 단순히 우리 각 개인이 타인의 아픔에는 아랑곳 없는 냉혈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그랬다. 여유 없는 삶과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경쟁하는 문화. 이런 것들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누군가를 짓밟아야, 내가 살아 남을 수 있고, 누군가를 짓밟는다고 해서 내가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목숨이나마 하루하루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일 뿐이다. 각각의 능력과 특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다양한 교육 방식이 아닌, 총점으로 일렬로 순위를 매기는 잔인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방법 보다는 경쟁하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그래, 그래도 우리는 한 번 바꿔보고자 꿈틀, 해 봤다. 사람들과 싸워도 보고, 부당한 현실에 용감하게 부딪혀 보기도 했다. 변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적인 꿈을 꿔 보기도 했다. 내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에 차 신나게 휘파람을 불기도 해 봤다. 그러나 모두 헛수고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한 때 열정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 나가 떨어졌다. 유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견고한 벽은, 힘없는 개인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때는 학생운동이나 시민운동에 몰입했던 사람들.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희망을 노래했던 젊은이들은 이제, 화려한 스펙이 없으면 취업조차도 하지 못하는, 뭐 대단한 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먹고 살겠다는데도 일자리가 없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 주린 배를 굶어쥐고 시대를 한탄하는 청년 백수가 되어 버렸다. 간신히 운이 좋아 조그마한 회사에 취업이라도 한다면, 그는 이제 자신의 밥벌이에만 몰입할 뿐, 판을 깨버리자는 헛소리에는 곁눈질 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그래도, 억지로라도, 그래도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는 끈질긴 희망 한 줄기를 고집스럽게 잡아 본다. 일단 나부터라도. 예전에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기자 생활을 했던 때에는 머리 빠개지고 고민하고 얼굴이 벌개져라 토론했던 현안들을, 어느덧 나도 점점 외면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그냥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참견하라고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운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급급하다. 언제 주말 오나, 언제 퇴근하나, 하면서. 참, 할 말 없다. 그러니까, 어쨋든 나부터 좀 쌩쌩해 보자는 거다. 이런 저런 문제에 다시 목에 핏대 세우면서 싸워도 보고, 괜한 일로 분쟁을 일으켜서 다시 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도 보고, 그렇게 해보자는 거다. 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고집스러움. 그래도, 가끔은 힘이 빠져 무기력하게 보내기도 하고, 별 일 아닌데도 괜히 씨근덕 거리며 울컥 화를 내도, 이렇게 가끔씩은 힘을 내보기도 하는 부족한 내가 나는 사랑스럽다.
*결론은 이상한 데로 빠졌는 걸?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