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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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곶감을 먹고 있었다. 군것질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라 평소에 과자나 초콜릿 등을 많이 먹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 몸을 좀 사랑해줘야 겠다는 생각에 군것질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다고 과자를 아예 끊은 것은 아니지만 기름에 튀긴 과자 대신 곶감이나 옥수수 등으로 심심한 입을 달래며, 음 난 지금 나를 사랑하는 중이야, 라며 뿌듯해 할 때가 종종 있다. 그 날은 곶감을 먹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데 우웩! 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입에 있는 곶감을 삼키려고 노력하는데 역겨운 기운이 자꾸 입안에 감돌았다.   

침실 벽은 문둥병에 걸린 것 같고, 세탁한 지 3주일이 지난 시트는 거의 암갈색이었다... 구두약 같은 검은 때가 대야마다 줄무늬를 그리면서 단단하고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시트는 땀 냄새가 너무나 지독해서 코 근처로 올리면 견딜 수 없었다... 불결하게 가래를 끓다가 헛구역질을 하는 그의 기침 소리는 말할 수 없이 불쾌했고 뱃속에서 그의 내장이 휘젓는 것 같았다. 그가 성냥을 그었을 때 한 번 그의 모습을 보았다. 아주 늙은 노인이었는데 우푹한 회색빛 얼굴이 송장과 같았다.

 아무리 조지 오웰이라 하더라도 밑바닥 생활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마치 부랑자들의 냄새가 실제로 풍겨나는 듯한 이런 묘사를 하지는 못했을 거다. 참기 어려운 냄새, 머리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들, 주정뱅이들이 게워낸 토사물, 더러운 회색빛 침구, 때가 둥둥 떠다니는 목욕물 등. 으웩. 다시 생각해도 또 속이 안 좋아진다.

 상상만으로도 입에 있는 곶감을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혐오스러운 장면들인데, 조지 오웰은 당시 상황을 낙천적으로 혹은 담담한 태도로 잘 견뎌냈다. 나라면 지옥으로라도 꺼져버리고 싶었을 텐데, 견딜 수 없는 추위와 배고픔과 무기력함으로 내일 아침은 눈을 뜨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잠들었을 텐데, 조지 오웰은 그러지 않았다. 

 가진 돈이 적으면 근심도 그만큼 적어진다는 것은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실제로 맞는 말이다. 통틀어 백 프랑을 가지고 있으면 겁에 질려 공황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3프랑밖에 없을 때는 아주 무관심해진다. 3프랑으로 내일까지 먹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신경써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따분하긴 해도 무섭지는 않다... 가난할 때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는 기분은 또 있다. 아마 돈에 쪼들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했으리라고 믿는다. 그것은 이제야말로 진짜 밑바닥까지 왔다고 깨달을 때 느껴지는 기쁨에 가까운 안도감이다. 거덜난다는 말은 자주 해왔지만 이게 바로 거덜난 것이고 그런 판국인데도 견뎌내고 있다. 이런 기분은 많은 걱정을 덜어준다.   


그저 담담하게, 그는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접시닦이도 해보고, 살인적인 노동을 견뎌내면서, 요리사들에게 욕지거리도 실컷 먹어도 보고, 부랑자 친구에게 자신의 남은 빵 반 쪽도 나눠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친구에게 돈을 빌려 몇 주를 버티기도 하면서. 이런 날도 있으면 저런 날도 있다는 태도로, 그는 배고픔도 견디고 추위도 견디고 모욕이나 불쾌감도 참아내었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해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인 양.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없었고, 현재에 대한 한탄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지금의 장면 장면들은 단순한 소설 속의 소재에 불과하다는 듯이, 자신은 그 소설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제3자일 뿐이라는 듯이.

그가 이토록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파리와 런던의 노숙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어울리고 있는 부랑자들과 나는 엄연히 다른 계층의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미리 인지한 자신감 때문이었는지. 본인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이 참담한 일상을 손쉽게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지. 그때는 지금보다 계층간 이동이 자유로웠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비참한 현실을 스스로 비관하지는 않았다.

반면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어떻게 해서 조지 오웰이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전 세계가 추앙하는 작가가 된 거지?, 조지 오웰의 밑바닥 생활은 언제 끝나지?, 무슨 계기가 있어서 이런 생활을 탈출하게 된 걸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드라마틱한 반전이 나올까?, 내 인생은 언제 한 번 쨍하는 날이 올까?, 거지 같은 생활의 청산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초조했다.  조지 오웰처럼 끝까지 밑바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하층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나의 인생에는 언제쯤 반전이 있을지, 혁명적인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모든 걸 갈아 엎고 싶어하는 내 마음은 어서 빨리 책의 끝장을 보고 싶어하며 성급해했다.

허무한 끝 장면.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변변찮은 이야기일 뿐이고 그저 여행 일기가 주는 흥밋거리쯤은 되었기를 바랄 따름이다. 혹시 무일푼이 되면 당신에게 이런 세계가 기다린다는 것 정도만은 말할 수 있겠다. 언젠가는 그 세계를 더 철저히 탐구하고 싶다. 우연한 만남이 아닌 허물없는 사이로서 마리오, 패디, 동냥아치 빌 같은 사람들을 알고 싶다. 접시닦이, 부랑인, 강변 둑길 노숙자의 영혼 속에는 정말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싶다.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는 마치 밑바닥 생활의 종결이, 나는 이렇게 해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와 동일한 수준의 사건인양, 별것 아니라는 투로  지옥보다 못한 노숙자 생활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배신감이랄까, 실망감이랄까. 무언가 쨍하고 해 뜰 날을 위한 팁을 얻을 수 있을까 했던 나의 기대감은 와장창 무너졌다.  이게 뭐야? 정작 중요한 걸 알려줘야지? 하는 원망스러움.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떤 이유였는지는 잘 모르나 현재의 불행과 시련을 마치 소설의 한 페이지 정도로 받아들였던 그의 태도가, 마음에 다가왔다. 이번 인생은 왜 이 모양이냐, 하는 체념은 아니지만 이런 인생도 있구나, 하는 담담함. 되는 대로 살자, 는 자포자기는 아니지만, 이런 인생을 겪는 것도 괜찮겠다, 는 대범함.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본인 생의 불행에만 지나치게 집중하지 않았던 자신감. 언제고 다시 한 번 최하층의 삶 속에 완벽히 빠져들어 보고 싶다는 넉넉함.

 난 너무 작은 곳에 매몰돼, 작은 것만을 바라보고, 작은 마음으로 너무나 큰 집착과 후회와 무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헉헉거리며 넘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의 배포 정도는 있어야 밑바닥 생활이든, 감옥살이든, 억울한 누명이든, 그 모든 것이 추후 내 삶의  풍성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런지. 조지 오웰이 아무렇지도 않게 부랑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의 이런 담대한 면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 인생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문제로부터 한 발자국 거리두기. 갑자기 노숙자가 되어 더러운 거지꼴을 하게 되더라도 삶을 비관하며 울지 않기. 지금의 쓰라린 경험이 훗날 내 인생의 풍성한 양분이 될 거라고 대범하게 생각하기. 내 인생이 지금 이 모양 그대로 영영 굳어지는 것은 아니니 현재를 충분히 즐기기. 그래서 나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큰 사람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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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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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살 때는, 아무 근거 없이, 그저 책을 구입할 당시의 즉흥적인 기분에 따라, 책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한다. 예를 들면, 어떤 책을 구입하면서는 따뜻하고 동화같은 이야기를 기대하기도 하고, 다른 책에게는 무언가 해박한 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책에 대한 내 기대는 그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꼼꼼히 분석한 이후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순전히 내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라서 어쩌면 책을 향한 나의 바람은 책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일방적이고 막무가내일 수도 있겠다.

이번 책에게 기대한 것은, 그저 한 두 시간 머리를 식힐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여행기, 였다. 요즘 머리도 복잡하고 심난한 일들이 많아서 어렵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들은 읽기가 버거웠다. 그래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책, 가벼운 복장으로 산책을 하듯 읽을 수 있는 책을 원했다. 그 와중에 눈에 띈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편안히 베개를 베고 누워 만화책 보듯 읽을 요량으로 책장을 한 장 씩 넘겼는데.

턱, 무엇인가에 걸려 책장을 오래도록 넘기지 못했다.

당신은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입니까?

채 몇 장 읽지도 못했는데 이 문장에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일까? 당장 코 앞의 무엇인가 때문에 울고불고 하는 사람인지. 먼 곳까지의 넓은 광야를 품기엔 내 가슴은 너무 작은 게 아닌지. 이런 조급한 나의 성격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이 한 문장 때문에 마음이 먹먹해졌고, 먹먹해진 마음은 채 씹지 않고 밥을 삼킨 것처럼 답답했다. 이 한 문장. 내 마음이 씹어 삼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충분히 씹는 과정을 거쳤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꼬로이꼬로 향하는 길만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겐가로 향하는 길은 예외없이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 삶 전체를 걸고 길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 그 정도 가치를 걸지 않고는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

힝. 또 발걸음이 멈춰선다. 인생을 걸고 향해야 하는 사람. 내 인생 전체를 걸 만큼 내가 원하는 것들. 무엇이지? 내 인생을 걸고 애쓰고 있는지.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같은 기분을 느끼려고 집은 책인데, 자꾸 나에게 어렵고 힘든 질문을 수시로 퍼붓는다. 건너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난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우물쭈물.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라 더욱 당혹스럽다. 그저 가벼운 산책 복장으로 슬리퍼를 신고 나왔는데, 이거야 원, 단단한 등산화나 아이젠까지 있어야 간신히 넘을 수 있는 산을 만난 기분. 슬리퍼만 신은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지나친 문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여기 말고도 문이 많기 때문입니다.

으앙. 감당하기가 힘들다. 자꾸 지나친 문 앞에서 무엇인가를 구걸하는 거지처럼 얼쩡거리는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또 한 번 고개를 떨구고 만다. 그 와중에도 내가 지나쳤던 문들을 다시 생각하고 있는 끔찍한 미련들이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는 내 모습이 한 편으로는 아프고 안쓰럽다.

선택의 순간을 사는 게 인생이라고. 선택에 약한 사람은 삶 앞에 나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하는 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젠 넉다운이다. 선택의 순간마다, 결정의 갈림길마다 어찌할 바 모르며 쩔쩔매는 나. 선택에 약해서, 선택에 익숙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삶이란 거대한 파도 앞에서 한없이 작은 걸까. 약삭빠르게, 단호하게, yes or no를 자신있게 외쳐야 하는데 입술만 달싹거리고 한없이 소심해서, 그래서 자꾸 겁나는 걸까.

비가,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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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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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뽀송뽀송한 병아리처럼 노오란 컵케이크 드레스(워낙 패션이나 브랜드에 문외한이라 컵케이크 드레스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혼자 상상한 드레스 모양이 있다.). 노오란 컵케이크 드레스가 갖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일당을 받으며 드레스를 상상하는 소녀. 매일 가게에 들러 원하는 옷을 보고 싶지만, 주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가게 앞까지는 오지도 못하고 길 건너 멀리서만 가게를 바라보는 수줍은 아이. 가벼운 깃털이 달린 우아한 모자와, 오드리 헵번처럼 훌륭한 미인들만 낄 것 같은 검은색 빌로드 장갑. 귀여운 분홍 드레스에 잘 어울릴 것만 같은 포근한 숄과, 세련된 정장에 안성맞춤인 진주목걸이. 따뜻한 색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달콤한 쿠키와 부드러운 밀크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것들은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다.

요즘은 자꾸 작고 귀여운 것들에 눈이 간다. 예를 들면 작은 촛불이라든가, 예쁜 인형이라든가, 딸랑거리는 방울이라든가, 아직도 다루기가 어려운 아기 화분들. 이런 것들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사소하고 하찮다고 여기며 귀찮아했었는데. 푸훗. 이제는 작은 소품 가게를 구경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다니. 예전에는 무언가 더 중요하고, 심각하고, 중대한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소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시간낭비고 무의미한 일이라고 여겼었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고 할까? 사회에 나와서도 뭔가 대단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명예도 얻고 권력도 얻어야 성공한 것이라는 그런 생각들. 사실, 이런 생각들이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어렵지. 성공은 아니더라도,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뭐 이 중에 하나라도 있어야 사회생활 하기가 조금은 덜 팍팍하니 말이다.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으나, 그래서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놓았으나, 왠지 막상 적으려니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괜히 적기가 싫어서 이 부분은 생략.

어쨌든 남은 삶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살고 싶다. 예쁘게 단장도 하고, 집도 앙증맞게 꾸미고, 밥도 기분에 따라 그날 그날 여러가지 그릇에 담아 먹고, 작은 사진이나 엽서도 모아보고, 곧 시들고 말 꽃도 공들여서 예쁘게 꽂으면서. 그렇게 금방이고 사라질 것들,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들, 돈이 나오거나 떡이 나오지도 않는 쓰잘데기 없는 일들, 누군가가 보면 시시하고 할 일 없다고 비웃기나 할 작은 것들. 그런 것들에 집중하면서 살아보고 싶다. 잘 몰랐는데 오래 전부터 내가 원하던 것을 그런 거였나 보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들, 차마 나도 정확히 몰랐던 나의 소망들. 미리 좀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지금 내 모습이 현재의 나와는 많이 달랐을 텐데.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괜한 오기 때문에 치열한 정글에서 상처받거나 아프거나 외롭지 않았을 텐데. 생각보다, 내가 상상하고 평가했던 내 모습보다, 내 심장은 많이 여린가보다. 인정사정없고 비인간적이며 무례한 경쟁사회에서 나는 언제나 꼴찌 자리에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내가 치열한 전투바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줄 알았으니. 이런...

따뜻한 색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달콤한 쿠키와 부드러운 밀크티. 내가 원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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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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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을 청초한 사랑인냥 포장한 소설, 이라고 정의하면 너무 팍팍한가? 모두들 이 소설을 아름답다, 잔잔하다, 나지막하게 새가 노래하는 것 같다, 남녀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오른다는 등 예쁜 평을 내린 가운데, 나 혼자 '불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무식한 단어를 사용했으니, 누군가는 나에게 삭막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푸훗.

주인공 남녀도 불륜이었지 아마. 그리고 여주인공의 어머니인가 아버지도 누군가가 한 명이 먼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했는데. 아버지였나? 어머니였나? 요즘 하도 소설 속에서 바람난 어머니나 바람난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서 이제는 누가 누군지 막 헛갈리기 시작한다. 그래, 여기선 어머니가 무슨 이발소 영계랑 바람이 나서 아이를 낳는 바람에 이혼을 했었던 것 같다. 일부러 골라 읽는 건 아닌데, 요즘 내가 읽은 소설 속에는 불륜에 빠져 가족을 등지는 사람이 꼭 한 명씩은 나온다. 요즘 세태가 그런건지, 아니면 우연히 내가 읽은 소설이 그런 건지.

불륜에 찬성한다, 반대한다는 말은 어찌보면 참 코믹하다. 불륜에 찬성한다고 하면 왠지 불륜을 적극 권장하는 것 같다. 마치 무상급식 찬성과 같은 말이 연상된다. 그래서 머리에 막 띠를 두르고 불륜을 추진해야 한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이 상상돼 혼자 피식 웃음이 난다. 반면 불륜을 반대한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마음을 막는 일의 허망함이란.

그래도 오늘은 불륜 찬성 vs 반대, 라는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 보려고 한다. 아름다은 소설 <초초난난>의 핵심 주제는, 여과없이 말하면 '불륜', 이었으니까.

내 입장을 말하자면, 나는 허망한 쪽이다. 즉 불륜 반대. 단순한 연애관계였든, 아니면 조금 더 구속력 있는 결혼관계였든, 상관없다. 상대방에게 너무 큰 아픔을 주니까. 살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법적으로 위법이든 아니든 하는 문제와는 관계없다. 마음이 예쁜 사람은, 위법 여부를 떠나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행위는 하지 않을  테니. 더군다나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결혼 이후 바람이라니. 자신을 믿고 어려울 때나 힘을 때나 넘어지고 싶을 때나 언제나 늘 함께하겠다는 엄청난 결정을 내려준 사람에게 그런 상처라니.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나쁘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평생, 몇 십년을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그래서 개인의 사랑은 그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 그 말도 맞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었다면 지루하게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사람과 결혼을 하지는 말았어야지. 이제 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는 고백은 무자비하고 성나 날뛰는 사자의 앞발 만큼이나 난폭하고, 잔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륜의 모습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설 속에서 불륜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바람난 연인의 모습은 줄거리를 이어가는 핵심요소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니,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난폭한 현장이 연출되고 있을지. 그래서, 불륜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아직도 약속을 깨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세상은 그렇게 신뢰적이지 않고, 누군가의 약속은 아무렇게나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그래서, 혹여라도 나의 짝꿍이 나를 배신하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울고 불고 난리쳐도 어쩔 수 없음을. 나에게만 이런 악독한 일이 닥친 것은 아니고, 세상에는 연인의 배신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음을 단단히 머릿속에 각인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할 때, 누군가가 나를 배신할 때, 그러면 울고불고 하지 말고 나도 이 책처럼 예쁜 글이나 써봐야 겠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이렇게 예쁜 글을 쓰게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 진짜 내 속마음이다..

p.s. 갑자기 불륜, 이 무슨 뜻이지? 궁금해졌다. 계속 글에다가 불륜, 불륜, 이라고 쓰니까 왠지 엄청나게 나쁜 말 같고 무슨 범죄를 지었을 때 쓰는 말 같았다. 찾아보니, 불륜.(不倫)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 이런 말이었구나. 뜻은 참 선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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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
최유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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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기 보다는? 단순? 단순이 웬 말이냐.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덕을 부리니. 비 오는 날에는 꼼짝도 하기 싫어해,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비 오는 날에는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겠다, 결심을 한다. 추운 날씨를 뚫고 나가 밥 한 끼를 사 먹느니 차라리 굶어죽겠노라며 극단적인 선포를 한다. 겉으로는 모두에게 친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철저히 구별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무례하게 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지적할 만큼 대범하지도 못해 혼자 얼굴만 시뻘겋게 씩씩거린다. 참다 참다 폭발하면, 그때는 그걸로 세상만사 끝장이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정신 못 차리게 몰아붙이고, 정말 다시는 안 본다. 술 한 잔으로 훌훌 털어버릴 만큼 화끈한 성격은커녕, 한 번 있었던 일은 두고두고 혼자서 되씹는 스타일이다.  

몸 피곤한 일은 딱 질색이라, 오지탐험 따위는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서 혐오하고, 누군가가 힘든 일을 억지로 강요하면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아도 피곤하니 그만해라, 라는 기색을 얼굴에 확연히 나타낸다. 강요, 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한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지만, 하기 싫은 일은 어느 누가 와서 시켜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 대통령? 유명한 교수?, 누가 오더라도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킬 만큼 대단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권력을 이용해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마음껏 경멸해 준다.

좋게 말하면 감수성이 매우 풍부해 작은 일에도 크게 좋아하고 조그마한 타인의 배려에도 크게 감동 받는다. 감성적으로 세심하기 때문에 타인을 잘 배려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날은 마음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워지기도 한다. 좋은 것도 크게 표현하고 어두운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울한 날엔 ‘폭풍’이 몰아친다. 이런 날은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 혼자 방에서 비를 맞고 있노라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선뜻 전화를 걸지는 않는다. 설사 연락을 하더라도 지금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괜한 신변잡기들만 늘어놓는다. 아니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주거나. 이런 날,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간, 본전도 못 찾기 일쑤다. 엄청난 불벼락을 감당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런 날은 그냥 혼자 두는 게 상책이다. 대부분 하루, 이틀 정도면 다시 환한 미소를 띠며 재잘 재잘 수다를 풀어 놓을 테니까.  

그러다가 1년에 한 번 정도는, 어느 누구도 감당 못할 무시무시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날에는 읽는 책이 있다. 울어야 할지, 참아야 할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 날, 울고 싶은데 적절한 타이밍이나 구실을 찾지 못한 날, 견딜 수 없는 우울함에 대항해 오냐 그래,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어 주마, 라며 괜한 오기를 부리는 날. 이런 날에는 꼽아드는 책이 있다. 방안 책꽂이 어느 곳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꽂혀 있는 그 책... 몇 장 채 읽지도 못하고 와락, 쏟아지는 눈물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어, 다시는 읽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1년에 몇 번쯤은 기어코 뽑아들고야 마는 그런 책이 있다.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안다면.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책 중에 주체할 수 없는 날, 내가 뽑아드는 책이 무엇인지 안다면. 캄캄한 새벽, 혼자 방 안에서 그 책을 읽으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눈물 속에 무엇이 섞여져 흐르는지 알고 있다면.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는 새벽,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알고 있다면. 그리고, 이런 나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내 평생의 반려자일 것이다. 아니, 아마 평생 모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그것을 알든 모르든 나는 평생, 당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고슴도치 같은 나의 영혼을, 아픔을 감수하고도, 있는 힘껏 품어준 당신이기에. 그렇게 넉넉한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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