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빈티지샵
이사벨 울프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뽀송뽀송한 병아리처럼 노오란 컵케이크 드레스(워낙 패션이나 브랜드에 문외한이라 컵케이크 드레스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혼자 상상한 드레스 모양이 있다.). 노오란 컵케이크 드레스가 갖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일당을 받으며 드레스를 상상하는 소녀. 매일 가게에 들러 원하는 옷을 보고 싶지만, 주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가게 앞까지는 오지도 못하고 길 건너 멀리서만 가게를 바라보는 수줍은 아이. 가벼운 깃털이 달린 우아한 모자와, 오드리 헵번처럼 훌륭한 미인들만 낄 것 같은 검은색 빌로드 장갑. 귀여운 분홍 드레스에 잘 어울릴 것만 같은 포근한 숄과, 세련된 정장에 안성맞춤인 진주목걸이. 따뜻한 색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달콤한 쿠키와 부드러운 밀크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것들은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다.

요즘은 자꾸 작고 귀여운 것들에 눈이 간다. 예를 들면 작은 촛불이라든가, 예쁜 인형이라든가, 딸랑거리는 방울이라든가, 아직도 다루기가 어려운 아기 화분들. 이런 것들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사소하고 하찮다고 여기며 귀찮아했었는데. 푸훗. 이제는 작은 소품 가게를 구경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다니. 예전에는 무언가 더 중요하고, 심각하고, 중대한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소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시간낭비고 무의미한 일이라고 여겼었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다고 할까? 사회에 나와서도 뭔가 대단하고 중요한 일을 하고 싶고, 그래서 명예도 얻고 권력도 얻어야 성공한 것이라는 그런 생각들. 사실, 이런 생각들이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는 어렵지. 성공은 아니더라도,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뭐 이 중에 하나라도 있어야 사회생활 하기가 조금은 덜 팍팍하니 말이다.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고 했으나, 그래서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놓았으나, 왠지 막상 적으려니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괜히 적기가 싫어서 이 부분은 생략.

어쨌든 남은 삶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살고 싶다. 예쁘게 단장도 하고, 집도 앙증맞게 꾸미고, 밥도 기분에 따라 그날 그날 여러가지 그릇에 담아 먹고, 작은 사진이나 엽서도 모아보고, 곧 시들고 말 꽃도 공들여서 예쁘게 꽂으면서. 그렇게 금방이고 사라질 것들,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들, 돈이 나오거나 떡이 나오지도 않는 쓰잘데기 없는 일들, 누군가가 보면 시시하고 할 일 없다고 비웃기나 할 작은 것들. 그런 것들에 집중하면서 살아보고 싶다. 잘 몰랐는데 오래 전부터 내가 원하던 것을 그런 거였나 보다.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들, 차마 나도 정확히 몰랐던 나의 소망들. 미리 좀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지금 내 모습이 현재의 나와는 많이 달랐을 텐데.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괜한 오기 때문에 치열한 정글에서 상처받거나 아프거나 외롭지 않았을 텐데. 생각보다, 내가 상상하고 평가했던 내 모습보다, 내 심장은 많이 여린가보다. 인정사정없고 비인간적이며 무례한 경쟁사회에서 나는 언제나 꼴찌 자리에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내가 치열한 전투바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줄 알았으니. 이런...

따뜻한 색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달콤한 쿠키와 부드러운 밀크티. 내가 원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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