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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불륜을 청초한 사랑인냥 포장한 소설, 이라고 정의하면 너무 팍팍한가? 모두들 이 소설을 아름답다, 잔잔하다, 나지막하게 새가 노래하는 것 같다, 남녀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오른다는 등 예쁜 평을 내린 가운데, 나 혼자 '불륜'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무식한 단어를 사용했으니, 누군가는 나에게 삭막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다. 푸훗.
주인공 남녀도 불륜이었지 아마. 그리고 여주인공의 어머니인가 아버지도 누군가가 한 명이 먼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했는데. 아버지였나? 어머니였나? 요즘 하도 소설 속에서 바람난 어머니나 바람난 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서 이제는 누가 누군지 막 헛갈리기 시작한다. 그래, 여기선 어머니가 무슨 이발소 영계랑 바람이 나서 아이를 낳는 바람에 이혼을 했었던 것 같다. 일부러 골라 읽는 건 아닌데, 요즘 내가 읽은 소설 속에는 불륜에 빠져 가족을 등지는 사람이 꼭 한 명씩은 나온다. 요즘 세태가 그런건지, 아니면 우연히 내가 읽은 소설이 그런 건지.
불륜에 찬성한다, 반대한다는 말은 어찌보면 참 코믹하다. 불륜에 찬성한다고 하면 왠지 불륜을 적극 권장하는 것 같다. 마치 무상급식 찬성과 같은 말이 연상된다. 그래서 머리에 막 띠를 두르고 불륜을 추진해야 한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이 상상돼 혼자 피식 웃음이 난다. 반면 불륜을 반대한다는 말도 어불성설이다. 마음을 막는 일의 허망함이란.
그래도 오늘은 불륜 찬성 vs 반대, 라는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 보려고 한다. 아름다은 소설 <초초난난>의 핵심 주제는, 여과없이 말하면 '불륜', 이었으니까.
내 입장을 말하자면, 나는 허망한 쪽이다. 즉 불륜 반대. 단순한 연애관계였든, 아니면 조금 더 구속력 있는 결혼관계였든, 상관없다. 상대방에게 너무 큰 아픔을 주니까. 살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법적으로 위법이든 아니든 하는 문제와는 관계없다. 마음이 예쁜 사람은, 위법 여부를 떠나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행위는 하지 않을 테니. 더군다나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결혼 이후 바람이라니. 자신을 믿고 어려울 때나 힘을 때나 넘어지고 싶을 때나 언제나 늘 함께하겠다는 엄청난 결정을 내려준 사람에게 그런 상처라니.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나쁘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평생, 몇 십년을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그래서 개인의 사랑은 그 누구도 손가락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 그 말도 맞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었다면 지루하게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사람과 결혼을 하지는 말았어야지. 이제 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됐다는 고백은 무자비하고 성나 날뛰는 사자의 앞발 만큼이나 난폭하고, 잔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륜의 모습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소설 속에서 불륜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바람난 연인의 모습은 줄거리를 이어가는 핵심요소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니,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난폭한 현장이 연출되고 있을지. 그래서, 불륜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아직도 약속을 깨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세상은 그렇게 신뢰적이지 않고, 누군가의 약속은 아무렇게나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그래서, 혹여라도 나의 짝꿍이 나를 배신하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울고 불고 난리쳐도 어쩔 수 없음을. 나에게만 이런 악독한 일이 닥친 것은 아니고, 세상에는 연인의 배신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음을 단단히 머릿속에 각인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아프게 할 때, 누군가가 나를 배신할 때, 그러면 울고불고 하지 말고 나도 이 책처럼 예쁜 글이나 써봐야 겠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이렇게 예쁜 글을 쓰게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 진짜 내 속마음이다..
p.s. 갑자기 불륜, 이 무슨 뜻이지? 궁금해졌다. 계속 글에다가 불륜, 불륜, 이라고 쓰니까 왠지 엄청나게 나쁜 말 같고 무슨 범죄를 지었을 때 쓰는 말 같았다. 찾아보니, 불륜.(不倫)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난 데가 있음. 이런 말이었구나. 뜻은 참 선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