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닿지 못해 절망하고 다 주지 못해 안타까운
최유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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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기 보다는? 단순? 단순이 웬 말이냐.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덕을 부리니. 비 오는 날에는 꼼짝도 하기 싫어해, 나중에 아기를 낳으면 비 오는 날에는 학교에 보내지 말아야 겠다, 결심을 한다. 추운 날씨를 뚫고 나가 밥 한 끼를 사 먹느니 차라리 굶어죽겠노라며 극단적인 선포를 한다. 겉으로는 모두에게 친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철저히 구별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무례하게 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지적할 만큼 대범하지도 못해 혼자 얼굴만 시뻘겋게 씩씩거린다. 참다 참다 폭발하면, 그때는 그걸로 세상만사 끝장이다.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정신 못 차리게 몰아붙이고, 정말 다시는 안 본다. 술 한 잔으로 훌훌 털어버릴 만큼 화끈한 성격은커녕, 한 번 있었던 일은 두고두고 혼자서 되씹는 스타일이다.  

몸 피곤한 일은 딱 질색이라, 오지탐험 따위는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서 혐오하고, 누군가가 힘든 일을 억지로 강요하면 직접 말로 하지는 않아도 피곤하니 그만해라, 라는 기색을 얼굴에 확연히 나타낸다. 강요, 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한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불구덩이에도 뛰어들지만, 하기 싫은 일은 어느 누가 와서 시켜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 대통령? 유명한 교수?, 누가 오더라도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킬 만큼 대단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권력을 이용해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마음껏 경멸해 준다.

좋게 말하면 감수성이 매우 풍부해 작은 일에도 크게 좋아하고 조그마한 타인의 배려에도 크게 감동 받는다. 감성적으로 세심하기 때문에 타인을 잘 배려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어떤 날은 마음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워지기도 한다. 좋은 것도 크게 표현하고 어두운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울한 날엔 ‘폭풍’이 몰아친다. 이런 날은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가끔 혼자 방에서 비를 맞고 있노라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핸드폰만 만지작만지작 거리고 선뜻 전화를 걸지는 않는다. 설사 연락을 하더라도 지금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고 괜한 신변잡기들만 늘어놓는다. 아니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주거나. 이런 날, 섣불리 잘못 건드렸다간, 본전도 못 찾기 일쑤다. 엄청난 불벼락을 감당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런 날은 그냥 혼자 두는 게 상책이다. 대부분 하루, 이틀 정도면 다시 환한 미소를 띠며 재잘 재잘 수다를 풀어 놓을 테니까.  

그러다가 1년에 한 번 정도는, 어느 누구도 감당 못할 무시무시한 우울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날에는 읽는 책이 있다. 울어야 할지, 참아야 할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 날, 울고 싶은데 적절한 타이밍이나 구실을 찾지 못한 날, 견딜 수 없는 우울함에 대항해 오냐 그래,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어 주마, 라며 괜한 오기를 부리는 날. 이런 날에는 꼽아드는 책이 있다. 방안 책꽂이 어느 곳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꽂혀 있는 그 책... 몇 장 채 읽지도 못하고 와락, 쏟아지는 눈물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어, 다시는 읽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1년에 몇 번쯤은 기어코 뽑아들고야 마는 그런 책이 있다.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안다면.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책 중에 주체할 수 없는 날, 내가 뽑아드는 책이 무엇인지 안다면. 캄캄한 새벽, 혼자 방 안에서 그 책을 읽으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 눈물 속에 무엇이 섞여져 흐르는지 알고 있다면.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는 새벽,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알고 있다면. 그리고, 이런 나를 감당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내 평생의 반려자일 것이다. 아니, 아마 평생 모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그것을 알든 모르든 나는 평생, 당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고슴도치 같은 나의 영혼을, 아픔을 감수하고도, 있는 힘껏 품어준 당신이기에. 그렇게 넉넉한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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