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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난 절대 로또는 사지 않아. 얼마나 밑바닥까지 내려가 더이상 할수 있는게 없으면 로또를 사나, 싶어서."
내가 아는 선배가 한 말이다. 로또나 됐으면 좋겠다, 고 매일 생각하고 실제로도 가끔씩은 로또를 구입해 단 한 개도 맞추지 못한 내 찍기 실력에 매번 허탈한 웃음을 짓는 나는 선배의 말에 머리가 띵, 했다. 나는 지금 밑바닥에 있는 걸까? 그럼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군. 허허.
그나마 나는 부양할 처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희귀한 불치병에 걸려 매번 수천만원씩이나 되는 병원비를 내야되는 것도 아니니, 굳이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래도 로또에 당첨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질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건 명백하다. 오늘, 로또를 사야겠다. 잊으면 안 돼!)
그러나 정말 이런 저런 딱한 사정때문에 당장 큰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러나 아무리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돈 나올 구멍이 없는, 로또를 사면서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더 어려운 행운을 기대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슬픈 눈의 사람들은, 이럴 때 과연 무엇을 할까. 그리고 실적을 못내면 당장 모가지가 날아가는 회사에서 압박을 받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변호사들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비롭게도 임금만 삭감되는 게 아니라 아예 쫓겨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 자동차 센터 직원들은, 그들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답은 '속임수'.
승소할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사건도 이길 수 있다고 의뢰인을 잘 구슬려서 법정에 서게 만들어야 하고 기왕이면 자기 몸값도 잔뜩 부풀려서 회사로부터 능력있는 변호사라는 인정을 받아야 하니 결국엔 법에는 문외한인 우리 같은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때로는 전문가의 고압적인 태도로 이리저리 압박을 해야 한다. 자동차 센터 직원도 괜히 수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고쳐야 된다고 우리를 막 겁 준다. 그렇지 않으면 짤리고 마니까. 식구들이 몽땅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모가지가 날아가는 세상이니까 우리는 거짓말을 하게 되는 거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승자에게 더 큰 보상이 돌아간다, 자유경쟁 시대로 돌입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을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경제적 목표가 다른 포부보다 최우선으로 떠올랐다, 승자에게는 사회가 관대하고 패배자에게는 인색하다, 최고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게 됐다,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개인의 의무보다는 개인의 욕구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허술한 법체계 때문에 부당이득을 취하는 게 쉬워졌다, 수익과 성과가 성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되면서 공정성은 낡은 가치로 떨어졌다 등등. 휴, 벅차다. 많은 이유들을 설명했고 이 모든 복잡한 것들이 우리가 거짓말을 하게 되는 원인이 맞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저 그런 평범한 샐러리 맨으로는 집도 살 수 없고,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죽어라 성실하게 일해봤자 매달 적자다. 그리고 노후에는 돈이 없어 비참하고 쓸쓸하게 죽을 것 같다. 뭐 떼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같은 소시민들은 떵떵거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평범하게' 아이들 교육 시키고 늙어서도 돈이 없어 비참해지지는 않을 정도로만 살고 싶은 거다. 그러나 한 달 새 몇 천만원 씩 오르는 전셋값을 보면 이런 사소한 소망은 텍도 없는 사치가 되고 만다. 그러니, 누구든, 할 수만 있다면 조그만 거짓말을 해서라도 좀 더 돈을 벌 수밖에.
그렇다면 진실하고 성실하게 일해도 먹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거짓말을 없애는 근본적인 대책인데. 글쎄, 어떻게 해야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 저자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누구나 앞서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확산시켜야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욱 많이 이뤄져야 한다, 일한 만큼 공정하게 부가 배분돼야 한다, 조세도 공정하게 지켜져야 하고 거짓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과소비를 감소시켜야 하고, 어렸을 때부터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한다는 다양한 대안을 내놓았다. 급기야는 우리 사회를 인정이 넘치게 만들고 사람들을 더욱 가깝게 묶기 위해서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건설해야 하므로 지나친 스프롤 현상을 차단해야 한다는 특단의 조치까지 생각해 냈다. 저자의 노력에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서민들이 경제적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 하나만 해도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얼키고 설켜 있어 단번에 해결하기가 너무 어려운데 이 뿐만이 아니라 저자가 말한 다른 이유들도 엄청나게 많으니. 조만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 문화는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듯. 하아, 또 첩첩산중이구나.
그래도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열을 내면서 박박 기를 써보려고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바뀌겠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화도 내보련다. 세 치 혀로 너무 쉽게 인정받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일은 안 하고 포장만 하는 사람들이 인정 받고 정자가 일 한 사람들은 소외되는 것이 속상하니까. 그런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상처를 받으니까. 아무리 능글맞게 거짓말을 해보려고 해도 오히려 성실한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드니까. 좀 더 정직한 세상에서 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