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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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매니큐어를 잘 칠하지 않는다. 매니큐어가 벗겨져서 지저분해지면 다시 깨끗하게 지워줘야 하는데 지우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더는 내 손톱을 못 봐 주게 되면 그제야 겨우 지운다. 그러느니 차라리 맨 손톱이 더 깔끔한 것 같다. 그런데 뭐, 매니큐어 벗겨지는 것 정도로 호들갑을 피우면서 유난을 떠는 나는 아니니, 평소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닌다. 그런데 요즘엔, 매니큐어랑 아세톤 냄새 때문에 매니큐어를 못 칠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연보라색 매니큐어를 칠해 기분 전환을 하려고 했는데 고약한 매니큐어의 지극히 인위적이고 화학적인 냄새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후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나 보다. 그래서인가? 길을 가다가도 담배 냄새에 민감하다. 원래 담배 냄새를 끔찍이 싫어했는데, 요즘엔 길을 걷다보면 주변에 담배 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도 담배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몇 걸음 더 가다 보면 꼭 담배 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정도로, 내 코는 놀랄 만한 기능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저 길을 걷다 스쳐 맡는 담배냄새인데도 집에 돌아오면 마치 밀폐된 노래방에서 2시간 죽치고 담배 연기를 맡다 온 정도로 코가 콱 막힌다. 후각만 민감한 게 아니겠지. 나의 온 감각이, 모든 신경이, 말초 하나하나까지 놀랄 만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타인의 무례한 행동, 무식한 지껄임들,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껄렁거림에 내 모든 신경은 즉각 반응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집에 오면 항상 녹초가 된다. 머리 빈 깡통들은 도처에 널렸고, 나는 요즘 유난히 예민하니. 감각이 예민하면 모든 것을 보다 예리하게 볼 수 있고, 타인의 조그마한 감정 변화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줄 수 있고, 하늘과 바람의 향기도 더 짙게 맡을 수 있어 좋긴 한데, 굳이 느끼지 말아야 할 것들, 철저히 무시해야 할 것들 마저도 인지하게 되니 그게 피곤하긴 하다. 자극의 종류를 선별하지 못하는 것이 내 신경체계의 큰 결함이다. 이 결함만 고쳐지면 어쩌면 난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을 텐데. 그건 나만의 착각인가? 후훗. 다시 매니큐어를 칠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 내 뉴런들이 제풀에 지쳐 왕성한 작동을 어느 정도 중지할 때. 그러면 왠지 모르게 몸에 해로울 것 같은, 코를 찌르는 아세톤 냄새에도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수 있겠지. 그러면 하찮은 것들의 경멸스러운 행동에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겠지. 그러면 요즘 더 이상은 화창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한 하늘 향기에도 이처럼 민감할 수는 없겠지. 흠. 어느 쪽이 좋은 걸까? 예민한 쪽? 아니면 둔감한 쪽? 하늘이나 실컷 봐야겠다!

이렇게 쓴 글들을 모으면 ‘생각의 일요일들’이 되는 걸까?

* 소설을 쓰고 있을 때는 온 힘을 다해 나 자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
* 세 번쯤 중얼거렸던 것 같아, 하느님은 내 편이었어, 라고.
* 약한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불안과 경계심.
* love is a losing game.
  하와이언 커플
  나만 모르게
  깍지 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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