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가족제도는 기본적으로 과잉보호를 특징으로 한다. 그런데 그것이 학교에까지 연장될 경우, 새로운 주체의 형성에는 치명적 결함이 될 수 있다. 즉, 학생들이 몇겹의 보호막에 둘러싸여 '내적 동력을 갈고닦을'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학교가 진정 대안이 되려면 가족의 지평을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22쪽
인간은, 아니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뭔가를 배운다. 살아 있음 자체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학습하는 과정 아닌가.-37쪽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ㅐ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40쪽
10대와 6.70대가 함께,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는 활동이 대체 무엇이 있을 수 있는지를. 어떤 스포츠, 어떤 취미활동도 불가능하다. 고로, 단연코 공부밖에는 길이 없다!-47쪽
즉, 독서는 단지 지적 능력의 보완이나 정보 습득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시각의 군림, 감각의 폭주를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입구가 된 것이다. -106쪽
얼 쇼리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빈민운동이란 빈민들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탐색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을 마련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다시 말해, 그들이 철학적으로 무장하게 된다면, 그들은 더이상 충동에 몸을 내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정치적이고 공적인 실천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121쪽
고전의 스승들은 우리로 하여금 공부에 대한 좁은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도록 종용한다. 그들의 보여주는 공부의 길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책을 통해 존재와 세계의 심연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존재와 세계의 모든 것을 책으로 변환하는 것. 물론 이 두 개의 경로는 궁극적으로 서로 통한다. -146쪽
요컨대 공부란 특정한 시공간에 고착되지 않고 끊임없이 다른 존재로 변이되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의 변이를 통해 세상의 질서와 배치를 바꾸는 것. 거기가 바로 공부가 혁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195쪽
거울을 보고 머리카락을 좀 잘랐다. 긴 생머리, 언제까지 이렇게 다닐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갈라진 끝부분을 조금만 잘라낸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니 쏠쏠한 재미가 크다.
그러므로 정말 귀다운 귀와 입다운 입을 가진 사람은 남을 지도하고 다스릴 만합니다. 동양 고대의 성인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10쪽
아, 나는 바보 같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그저 멍청할 뿐.남들은 딱 잘라 잘도 말하는데, 나만은 우유부단, 우물쭈물.흔들흔들 흔들리는 큰 바다 같네.쉴 줄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이네.(도덕경)20장-88쪽
<장자>에 그림자가 싫어서 계속 도망가는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그림자도 더 빨리 따라오니 그는 더 빨리 달아나려고만 합니다. 장자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당신이 나무 그늘에서 쉬면 그림자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142쪽
순자에 따르면 지(知)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앎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지(智)는 사람이 안것과 실제 대상이 들어맞았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198쪽
'같다'와 '다르다'는 동전의 양면인 셈입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같아지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돌멩이까지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면 다 같습니다. 그러나 돌멩이조차도 같은 돌멩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전체를 강조하면 개인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개인을 강조하면 개인을 침해하는 전체가 부정되어야 합니다. 사실은 이런 문제가 모두 관념에 불과합니다. 현실은 언제나 가변적이어야 합니다. -245쪽
재미있다. 매일 리뷰를 쓴다. 읽은 책을 다시 들여다 보며 줄그어 본 내용들을 되새김질 해 본다. 암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