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처네 (반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찌 보면 두 남녀가 이루어 가는 `우리`라는 단위의 인생은 단순한 연출의 누적에 의해서 결산되는 것인지 모른다. 약간의 용기와 성의만 있으면 가능한 연출을 우리들은 못하든지 안 한다. (28쪽)

나는 사람 사는 것이 다랑논 부치는 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다랑논을 보면 삶이 행복하다 불행하다 말하는 게 얼마나 건방진 수작인가 싶다. 다랑논은 삶의 원칙 같다. 다랑논의 경작은 삶에 대한 애착의 일변도 같다. (32쪽)

기러기 떼는 높이 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은 비단 시계에 국한된 말은 아니리라. 안데스산맥 높이 나는 독수리는 눈으로 사냥감을 보는 정도지만 추운 밤하늘을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는 가슴으로 구만리 장천 너머에 있는 도래지를 본다. 그것은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90쪽)

세간이래야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집올 때 해 가지고 온 낡은 장롱을 비롯해서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옹기와 사기들이 전부지만, 우리 식구들의 기쁜 웃음과 허망한 한숨이 밴 피붙이 같은 세간들이다. 그 세간을 비워 낸 집은 집이 아니고 삶이 머물렀던 흔적일 뿐이었다. (141쪽)

숨가쁜 삼복지경, 작열하는 불볕 아래 엎드려서 곡식을 가꾸는 농부들은 가혹한 삶의 비등점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며 인내한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그 말은 참을성이 모자라는 사람이 하는 소리일 뿐, 여름 농부에게는 가당찮은 말이다. 여름 농부의 참을성은 끝이 없다. 농부의 참을성은 곧 삶 자체인 것이다. 저문 밭고랑에서 허릴 펴며 돌아볼 때 자신이 온종일 지나온 깨끗한 밭두둑에 서 있는 곡식의 싹수 있음이 참을성의 원인이긴 한다. (163쪽)

그 강을 건너서 참 오랫동안 우리 부자는 각자의 인생을 나이 차이만큼 떨어져서 걸어왔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확신을 갖지 못하시고 불쾌한 얼굴로 돌아보며 저만큼 앞서 가시고, 아버지에게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 나는 주눅이 들어서 그 뒤를 따라왔다. 그 까닭은 아버지의 힘에 대한 위압감 때문인데, 그때마다 그 강이 생각났다. 내가 아버지로서 그 범람하는 필연의 강에 섰을 때, 과연 나는 열세 살 먹은 내 자식을 건사해서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아버지는 그런 내 의지의 박약함을 눈치채시고 나를 `못난 놈`하고 나무라시는 것만 같아서 아버지 앞에서 나는 늘 움츠러드는 것이다. (171쪽)

알밤 빠지는 소리는 작다. 마음이 조용히 머물러 있어야 들린다. 그래서 마음이 분망한 철없는 시절에는 못 듣는다. 할머니 말마따나 철이 나야 들린다. (197쪽)

드디어 전장포에 도착했다. 조용했다.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도 별로 없다. 돌담 너머 납작한 집의 툇마루에 늙은이들만 더러 봄 햇살에 속절없이 늙고 있었다. 어떤 집은 빈집인 채로 봄 햇살에 집이 혼자 늙고 있었다.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처럼 침묵하는 동네의 적적한 고샅을 돌아가자 작고 쓸쓸한 포구가 나타났다. 자포자기하고 주저않은 사람처럼 실망스러운 포구의 모습이었다. (260쪽)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기호품마저 몰개성적으로 규격화되었다. 조금 더 있으면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라면 사람의 유전자나 염색체까지도 규격화해서 거추장스러운 격, 성, 정을 배제시킨 인간을 만들어 낼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편할까? 자존심을 상하고 울분으로 밤을 지새울 일도 없을 것이고, 그리움 때문에 시린 노을빛 속에 서서 마음을 떨 일도 없고, 배신 때문에 죽이고 싶은 미움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로 성공을 위한 분발심도, 사랑을 쟁취하려는 수컷의 뜨거움도, 연민과 고독을 기대고 싶은 신앙심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266-267쪽)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 방 밖의 눈보라치는 소리를 듣는 행복감을 작고 흔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죄 된다. 기실 삶의 각고가 누적된 후에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북하면 과묵하신 할머니가 `참 좋다`고 한숨처럼 감탄을 하셨을까. (297쪽)

불영계곡은 가을이 제일 좋다. 만산홍엽이 동면을 서두르는 처연한 몰락의 가을 절정기보다, 모든 걸 다 떨쳐버리고 잠드는 순리의 침묵 가득한 늦가을의 골짜기가 좋다. 그때의 불영계곡은 모든 것이 다 홀연하다. 흐르는 물도, 산등성이의 나목도, 바위도, 모든 거싱 신생대의 지각 변동을 치르고 난 골짜기처럼 너무 조용해서 마음이 엄숙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약점을 홀연히 인정하는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다. 편안함의 극치, 그래서 좋다. 그런 감정은 깊은 가을에 깊은 골짜기에 들면 어디서나 느끼게 마련이지만 나는 불영계곡에서 더욱 분명하게 느낀다. (389-390쪽)

그러니 반짝하는 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인생이란 연못가의 봄풀이 미처 봄꿈이 깨기도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 이파리가 가을 소리를 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는 거야. (422족)

이른 봄이면 장원처럼 새파란 보리밭 위로 종달새가 `지지배배`거리며 하늘 높이 떠오르고, 초여름에는 누렇게 익은 보리밭이 심해처럼 너울을 짓고 출렁거렸다. 저녁 때 노을지는 큰밭 머리에 서면 뉘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해서 나는 노을에 귀 기울이고 한참 동안 서 있기 일쑤였다. (540쪽)

돈독한 모습은 돈독한 사이일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그 사이는 하루 이틀의 사이가 아니라 세월이 걸리는 사이다. 춘분 때까지 한 항아리에서 묵은 배추김치 같은 사이다. (564쪽)

백로 때의 들녂은 마치 대운동회날의 점심시간같이 한가롭다. 여름날, 숨가쁜 농부의 허둥대던 소리의 여운이 남은 빈들은 목이 터지라고 외치던 응원 소리와 작은 발자국이 힘을 다해서 내닫던 숨찬 소리를 잠시 제자리에 놓아두고 청군 백군이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빈 운동장 같다. 농부들이 어정거리던 들머리는 맑은 햇살만 내릴 뿐 본부석 천막 아래처럼 아무도 없다. 잠시 후, 확성기에서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면 5, 6학년 여학생의 율동으로부터 운동회의 오후 순서가 진행되듯, 한로가 지나면 농부들은 갈걷이를 하러 들에 나올 것이다. 그때까지 농부들은 운동장 가장자리 펄펄 끓는 국밥 솥 곁에서 학부형들과 얼굴이 벌게서 크게 웃는 선생님들처럼 들녘 가장자리의 주막에서 적조했던 친구들과 그렇게 어울린다. 그 소리가 아련히 들판을 건너온다. 그게 백로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573-5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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