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일기 - 2010년 - 2014년
박용하 지음 / 체온365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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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는 타자다. `나는 타자다` 라고 글을 쓰고 말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와 타자가 행복하게 만나 한몸이 되고 합일하는 순간은 삶의 여러 순간들 중 극히 짧은 한 순간일 것이다. 결국 나는 언제나 나로 돌아오고 만다. 도로 아마타불. 그게 인생이다. (20쪽)

지나간 날들은 손쓸 수 없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지나갔기에 고통에서 놓여나기도 한다. 지나갈 날들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역시 손쓸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이 순간 역시 내 맘처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손쓸 수 없는 것들의 무덤이다. (34쪽)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을 닮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무슨 소리? 괴물과 싸우려면 괴물을 닮기도 해야 하고, 싸워서 제압하려면 괴물보다 더한 괴물이 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괴물이 함부로 굴지 않는다. (70쪽)

봄날의 나, 심각하다. 일주일째 고압 상태. 화병+우울+분노. 자꾸 열 받으니 언어 감각의 기능 상실은 물론이고 안압까지 상승한다. 화의 근본을 어떻게 처단한담. 어린애 달래듯 해야 하나. 적과 동침하듯 같이 살아야 하나. 화의 꼬리를 자르려 하면 열 꼬리, 스무 꼬리가 되레 더 꼬리치며 기승을 부리니 이쯤 되면 뇌를 폭파해 버리고 싶다. 내려놓기 힘든 걸 내려놓는 대인들도 있긴 있는 모양인데, 나 같은 소인배하곤 먼 얘기. 차라리 추운 겨울은 나았다. 늘 이맘때와 일조량 줄어드는 십일월이 더 힘들었지. 망념 떨치려 오빈리 들판을 걷다 뛰다 걷다 했다. (129쪽)

과거 없이는 현재도 없고 미래 역시 없다. 우리는 어제에서 태어나 어제일 오늘과 오늘일 내일로 살러/죽으러 간다. `화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입에 담는 자나 세력은 가해자(죄인)거나 가해의 역사를 가진 자들이고,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지금도 죄를 짓는 2차 가해인 것이다. 꿈에서라도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피해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화해`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절대 이유가 거기에 있다. (189쪽)

몸이 원하는 걸 맘껏 하다 죽는 삶은 어떤 삶일까. 좋은 삶일까. 담배 대신 커피를 다섯 잔 이상 마셨다. 난 이미 커피 중독자이기 전에 풍경 중독자이기 전에 삶 중독자였다. (250쪽)

그럼에도 안면 있는 저자가 보내온 책을 참을성 있게 읽어나간 건 담에 만났을 때의 그놈의 `안면` 때문이었다. 도장까지 박아 보낸, 질투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그들의 책을 읽는 고역과 읽기도 전에 버려지는 냉대를 그들은 알까. 이 고역과 냉대는 피차일반일 게다. 자의든 타의든 내가 서명해 보낸 책들은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모름지기 지갑을 열고 사 볼 책을 탈진할 때까지 쓸 일이다. 그리고 훗날 한 번이라도 더 펼쳐 읽게 된다면 대성공이다. 책 함부로 보낼 일이 아니다. (261쪽)

여러 날 글을 썼고 며칠 밭일을 했다. 옥수수, 고추, 가지, 오이, 애호박, 맷돌호박, 청상추, 적상추, 파프리카, 피망, 토마토, 방울토마토를 먹을 만큼 조금씩 심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어제와 다를 것도 없는, 그렇다고 어제와 똑같다고도 할 수 없는, 꿈없는, 꾸밈 없는 날들이 삶에 왔다 삶에서 빠져나간다. 삶에 있었던 순간처럼 시에 있었던 순간이 왔다 갔고, 와 있고, 올 것이다. 그렇게 나는 쓰거나 일거나 걸을 것이다. 지난해 삼월, 내게 보낸 너의 글을 페르난두 페소아란 작가가 있었다. 모르는 시인이었다. 그의 [불안의 서](배수아 옮김)를 읽으며 기쁨과 질투가 교차한다. 내가 읽고 있는 글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라는 것을. 그것을 지구 위 한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 먼저 했었다는 것을. (264쪽)

인간은 그냥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지 않는다. 누구든 이 지상에서 언젠가는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수 없기에 인간은 하루 하루, 순간 순간 지상의 인간이다. 최초의 인간이자 최후의 인간이다. (283쪽)

`한국`을 통째 들먹일 것도 없이 내 살고 있는 이곳에도 인생의 연륜 같은 걸 무색케 하는 부끄럼 모르고, 경우 없고, 노회하고 닳아빠진 나이 든 욕심꾸러기 떼쓰는 진상 노인네들이 수두룩하다. `저렇게 늙으면 어쩌나` 나를 다시 살피게 하는 노인네들. 눈과 귀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점점 쉽지 않다. 빤질거리는 우리들의 안면에 뻔뻔하게 박힌 우리들의 안구.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망실한 낯짝들이 우리들 주위를 거리낌 없이 활개치고 있다. 이래저래 괴로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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