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지만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천박하고 위험한 일로 치부하는 영국 젠트리 계급(중산계급의 상층)의 엄격한 오스틴 가족은 제인의 인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감정의 콜레스테롤은 당장 베어내야 할 잉여로 치부되었고, 감사으이 지방은 이성의 칼날로 도려내야 할 과잉으로 여겨졌다.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의 로데오에 올라탈까 봐 전전긍긍했던 어린 제인은 비난받지 않으려고 감정을 숨기는 법을 일찍부터 터득했다. 감정은 `그른 것`이고, 이성은 `옳은 것`이라는 배움은 그녀를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너무나 신중하고 방어적인 소녀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소녀는 어렸지만 인생과 인간관계의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성찰, 행동의 숨은 동기와 의도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갈고닦았다. 낭만주의자가 되기보다는 합리주의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영향으로 제인은 열 살 무렵부터 지성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22-23쪽)

코카인을 소지했다는 협의를 받고 두 차례나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던 그녀는 결국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재판정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외쳤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타협없는 개인의 권리장전을 외치는 사강을 비난하고 야유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도박 중독자에 마약 중독자라는 불명예는 그녀의 말년을 집어삼켰다. 작가의 순수한 명예와는 대척점에 서버린 그녀에게 세상은 공격과 탄핵을 퍼부었다. 프랑흐의 한 극우 정치가는 사강의 부도덕성을 개탄하면서, 단두대로 보내버려야 한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사강은 무자비한 타격을 받았고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그녀는 끝까지 운명을 건 생의 도박을 멈추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언제든지 가치를 잃고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능이 인간적인 약점과 연약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박수를 치던 손바닥으로 순식간에 뺨을 후려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116-117쪽)

똑같은 책이 `위대한 책` 또는 `무가치한 책`이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평가받기에, 예차노가 비난은 똑같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며, 그녀는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격려한다. `실재Reality`라는 것도 먼지투성이의 길가에서, 때로는 거리의 신문지 조각에서, 때로는 햇빛 속의 한 송이 수선화에서 발견되는 것이므로, 그대로 써 내려가는 용기를 가지라고 다독인다. 미움없이, 쓰라림 없이, 두려움 없이, 항의 없이, 설교 없이 써보라고, 10년만 지나면 하잘것없는 폐지 조각이 될 그런 책일지라도 써보라고 말하낟. 그저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글을 쓴다는 건 가난과 무명 속에서라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137쪽) *그녀=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는 나쁜 세계에 대해 회의하고 절망할지라도, 신생의 언어로 꽃을 피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종이에 그녀가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그녀의 말처럼, 문학에는 결승점이 없으니까, 왜냐하면 살밍란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넘어지 ㄴ곳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과 새롭게 출발을 시도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일상의 현실을 초월할 길은 오직 쉼 없이 삶을 향해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길밖에 없으니까. 유토피아란 실존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절박한 종말과 한계를 느낄 때 꿈꾸는 지향성이니까. 불가능이 있어야 가능을 강렬하게 욕망하니까. 타락한 기존 언어에 대한 절망이 있어야 새로운 언어를 갈구하니까. (172쪽)

그럴 때마다 그녀는 홀로 다짐했다. "나는 혼자다. 사람들은 나를 증오한다. 따라서 내가 옳다"라고. 당을 위해서도 척후병처럼 나서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펜과 머리밖에 믿을 게 없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공부를 하고, 사랑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로자 룩셈부르크. 비로소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첫 번째 여류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나는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궁금하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육체의 장애를 이겨내고,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게 했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운명과 철저히 대겨랗게 만들었던 것일까.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는 각오를 어떻게 끝까지 고수할 수 있었을까.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조국이며, 자유 평등 박애 앞에서 어떤 국경선도 인정하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에선 매호긍ㄹ 넘어서 불온함마저 느껴진다. 그녀에 비하면 나는 정의에 불감증으로 일관하고 불의를 보면 꾹 참아내는 사람이다. (178-179쪽)

조금만 힘들어도 존재 방식을 홀라당 뒤집고,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가면을 가차 없이 뜯어내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흉측하면서도 볼품없는 민낯을 대면할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이제껏 쌓아왔던 스타일을 일거에 무너뜨리며 타인에게 생지옥을 맛보게 하는 인간을 접할 때마다 공포를 느낀다. 진정성이라는 말을 입에 다록 다니는 사람을 만나며, 손이 오글거리고 팔뚝에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숨김없이, 툭 까놓고 솔직하게 말하는 걸 즐긴다는 사람을 보면, 일단 의심부터 든다. 문학이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해 은유의 방식으로 가면을 쓰는 이유가 단지 미학적 효용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겉모양새가 존재 방식이고 가면이 얼굴이라고 주장한 작가답게, 손택은 생애 전반에 걸쳐 끝없이 환골탈태하면서 자신에 대한 일방적 해석에 저항했다. (204-205쪽)

같이 살되 홀로 존재하기. 함께하되 책임지지 않기. 한 번도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다시 사랑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여러 번 사랑하기. 세월이 흐르면 식고야 마는 사랑의 중력 법칙을 거부하기. 서로에게 내재하면서 필사적으로 초월하기. 두 개의 존재로서 하나 되기. 둘 사이에 파고드는 어떤 타자의 사랑도 마다하지 않기.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온리 원Only One의 사랑보다 너에게만 언제나 넘버원No.1인 사랑을 하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연장하기. 그들이 세운 관계와 사랑의 극단적이고 파격적인 법칙은 명성과 추문, 편견과 비난, 추앙과 힐난, 경이와 경악, 공감과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256-257쪽) *그들=샤르트르와 보브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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