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 사랑, 관계, 불안, 벗어날 수 없는 나와 가족의 심리 연대기
산드라 콘라트 지음, 박규호 옮김 / 북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많은 이들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반복의 매듭에 구속되어 있거나, 자신을 잡아주고 끌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탓에 삶이 공허하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정체성 위기, 관계의 어려움, 심리적 혹은 심신증적 질환 발병, 중독, 자살에 대한 생각 등은 많은 경우 이처럼 충족되지 못한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데 사실 이와 같은 생활 패턴은 이미 여러 세대 전에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16쪽)

부모의 요구를 더 이상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자녀는 그것을 자신의 부족한 능력 탓이라고 여기며 수치심을 느낀다. 부모가이 시점에서 자신들의 소망을 접고 자녀의 약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녀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부모가 충족되지 못한 기대에 집착할수록 자녀는 부모의 애정이 조건부이며,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게 아니라 부모의 소망이 고스란히 복사된 존재로서 사랑받을 뿐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자녀는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감정을 점점 키워가게 되며, 이런 검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너는 부족해. 너는 가치가 없어. 너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와 같은 자기파괴적인 신념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커진다. (76-77쪽)

대부분의 경우 사랑에 빠진 초기에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두 사람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가치가 얼마만큼의 중요도를 갖고, 과거의 규칙이 어느 정도까지 유효성을 가지며, 파트너와 함께 새로운 공동의 규칙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얼마나 유연하고 분리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극단적 충성심을 요구하는 부모의 자녀들은 빈번히 파트너와의 새로운 시작에 실패하고 원가족에 대한 충성심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기 못한다. (163쪽)

부모의 트라우마적 경험은 자녀의 감정 세계로 침투한다. 부모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입 밖에 내지 않더라고 그렇다. (205쪽)

우리에게는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고 다른 길을 보여주는 좋은 부모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 반드시 가족의 일원일 필요는 없다. (247쪽)

변화로 나아가는 길은 어렵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야 한다. 최선의 부모가 되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 자신의 부모와 아무리 다르게 행동한다 하더라고 과거는 시시때때로 원치 않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52쪽)

여기에는 "곧은" 길도, "평탄한" 길도, "올바른" 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는 분명하다. 자기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가면서 가족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오늘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끈을 약간 느슨하게 푸는 것, 이것이 우리의 소박한 과제다. 끈을 조금만 느슨하게 풀어보다"([심연들]). (303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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